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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열반재일입니다. 스님께서는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중들과 함께 기도를 한 후 발우공양을 마치고 대중공사 시간에 몇 가지 업무와 일들을 직접 챙기셨습니다.
유수스님께는 “다음에 죽림정사에 갈 때 법사들은 큰 스님과 함께 발우공양할 때 이번에 받은 발우를 가지고 가서 발우공양에 참여하도록 일정을 고려해 달라”고 하시면서 발우를 챙겨가도록 당부하셨습니다. 지난 3월 1일, 죽림정사에서 3.1절 기념 법회와 신규 법사 수계식이 있었는데, 도문 큰스님께서는 직접 수계식을 관장하시면서 스님과 법사님들께 새 발우를 내려주신 바 있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에 있을 용성조사 열반일에 유수스님을 비롯한 법사님들이 죽림정사에 가게 되면 큰스님께 받은 발우를 꼭 가져가서 함께 발우공양을 해달라는 당부셨습니다. 스승님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묻어나는 말씀이셨습니다.
또 청년정토회에서는 1천 명이 모이는 행사를 위해 장소를 알아보는 중인데, 천명이 모일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민이라고 합니다. 마침 서울에 올라와있던 문경 교육팀에서 연수원 부지를 찾느라 다녀온 곳이 있는데 5천 명이 들어갈 만한 장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문경 교육팀에서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행사를 진행하는 부서에서 직접 답사를 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말 서울공동체 대중들의 일정 중에서 “일요일 저녁을 언양 작천정에 가서 벚꽃을 보고 저녁을 먹고 올 수 있는 일정으로 하고, 또 아침 7시부터 울력을 하면 아침부터 일정에 쫓길 수 있으니 8시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며 주말을 좀 더 여유롭게 운영할 수 있도록 조언해 주셨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오후에는 어느 쪽으로 가야 진달래 등 화사한 꽃놀이를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겠다고 하시며, 대중들이 봄에 업무에서 벗어나서 자연을 만끽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이셨습니다.
또 오늘 회향하는 두 분에게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한 도반은 우울증이 심해서 회향해서 치료에 집중하겠다고 하니“우울증을 숨기거나 별 것 아닌 걸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울증은 호르몬이나 물질의 분비 이상으로 생기는 것과 심리적인 상처가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심리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수행해서 한 번 치료해 보겠다는 것보다는 약을 먹고 치료하는 것이 빠릅니다. 약 먹는 것을 꺼리면 안 됩니다. 정기적으로 약을 먹다가 어느 정도 괜찮아지면 의사와 상담한 연후에 끊어야 합니다. 그래도 비상약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심리가 불안해지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 병을 알고 통제를 해야 합니다.
항상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도록 하고 만성화 되면 치료가 어렵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살이 많아지는 것도 핵심은 우울증입니다. 여기 공동체에 있거나 나가 살거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간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현대 의학만으로는 치료가 잘 안 됩니다. 자기가 약을 잘 챙겨먹어야 합니다. 밥은 하루 3번 먹는데, 약은 못 챙겨 먹는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밥은 한 그릇 먹어야 하는데, 약은 하나만 먹으면 됩니다. 가볍게 생각하되 치료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라며 회향해서 나가더라도 치료를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짚어 주셨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열반재일 법문이 있었습니다. 서초법당의 정토행자들은 지난 달 31일부터 부처님의 출가와 열반을 기념하여 부처님처럼 닮아가기 위해 용맹정진을 해왔습니다. 180여명의 정토행자들은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자세를 가지런히 합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날입니다. 올해를 불기 2559년이라 하는데, 불기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날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열반일은 음력 2월 15일입니다.”라며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이어 어떤 달력을 쓰느냐에 따라 열반절을 비롯해 출가절, 탄생일, 성도절이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열반절이 인도 달력으로는 두 번째 달 마지막 날인 2월 보름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반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열반이라는 말이 무엇인가? 인도 빨리어로는 ‘니빠나’,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입니다. 모든 번뇌가 다 사라진 경지, 번뇌가 소멸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문으로 번역하면 멸(滅),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적멸(寂滅)입니다. 고집멸도의 ‘멸’입니다.
고(苦)와 락(樂)은 돌고 돕니다. 이를 윤회라고 합니다. 고와 락이 윤회하는 이것이 괴로움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되어 있는데, 우리는 괴로움은 없고 즐거움만 있는 것을 추구합니다. 고(苦)와 락(樂)의 뿌리가 욕망입니다. 욕망이 사라지면 고락이 동시에 사라집니다. 고락이 사라진 상태를, 모든 번뇌가 사라졌다는 의미로 열반이라고 하고, 윤회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뜻에서 해탈이라고 합니다. 열반은 행복이라 할 수 있고 해탈을 자유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쓰는 행복, 자유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때를 자유라고 하고, 기분이 좋은 것을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불행이 동반됩니다. 출가절 때 말씀드렸듯이 집(集)은 굴레와 안온함이 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집을 불살라버려야 해탈할 수 있습니다. ‘고’에서 벗어나려면 ‘락’마저 버려야합니다. 우리는 늘 ‘락’에 집착하기 때문에 ‘고’를 동반합니다. 열반은 ‘고’와 ‘락’이 모두 사라져서 고요적정한 상태를 말합니다. 더 이상 ‘고’와 ‘락’이 윤회하지 않는 상태입니다.‘열반’이라는 말은 고락의 사슬에서 벗어난 상태, 다시 말해 번뇌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수행자에게 수행의 목적은 ‘열반’과 ‘해탈’이어야 합니다.
윤회는 고와 락이, 행과 불행이 돌고 도는 것입니다. 고락의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고 윤회입니다. 여러분은 열반과 해탈을 증득하고 싶지 않겠지요? (웃음) 락이 없어지니까. 그래서 윤회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쾌락에 대한 중독성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습니다. 법의 가피를 받아 행복해져야 하는데, 이를 추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삶의 조건이 10배, 100배, 1000배 좋아졌는데, 고뇌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부처님께 물질을 달라고 그래요. 돈을 달라, 지위를 달라, 애를 낳게 해달라...... (웃음). 스스로 생각해봐요. 한심하지 않아요? 부처님이 다 해주면 자기는 뭐해요? 설사 부처님이 해주겠다고 해도 ‘아이고, 돈은 제가 벌게요. 부처님은 돈이 없으시잖아요’ 이래야 하지요. 그분이 우리에게 내린 선물은 번뇌를 벗어나 행복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금을 주셨는데 잡석만 줍고 있잖아요.
열반과 해탈은 지고한 행복과 지고한 자유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행복을 얻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자유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 뿌리인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가야 10년 하고, 20년 하고, 30년 하면 번뇌가 사라집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훨씬 더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더 가벼워졌어요? (네)
부처님께서는 성도하신 날에 열반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열반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을 언제 증득하셨습니까? 성도하신 뒤에 증득하셨습니다.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의 즐거움을 즐기셨다고 말할 수도 있고 열반락을 즐기셨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열반이라는 용어가 현실에서는 두 가지 의미입니다. 첫째, 부처님은 살아계셔도 열반적정 상태였습니다. 둘째,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열반의 상태가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심리적으로 완전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아프고, 배고프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칭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돌아가시자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고 한 것입니다. 반열반이라고도 하고 아무 흔적이 남지 않는 상태라고해서 무여열반에 드셨다고도 말합니다. 육신을 갖고 있을 때는 흔적이 남아있는 유여열반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이미 열반을 증득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는 (반)열반에 드셨습니다. 인간의 고뇌중 제일 큰 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부처님은 죽음에 대해 아무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며 바닷물이 출렁거리듯이, 봄이 오면 잎이 피고 가을이 되면 나뭇잎이 지듯이 삶을 그렇게 보셨습니다. ‘지옥 간다, 천당 간다’ 이런 말은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열반의 여정, 1년간을 기록한 열반경을 보면 죽음을 향한 삶이 일상생활과 똑같아요. 죽음 앞에서도 마음이 고요적정했습니다. 자기 죽음 앞에서도 고요적정한데 남의 죽음 앞에서 무엇이 두려울까요?
불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체가 사라지게 하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서 열반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일을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고락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실 즈음에 부처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살펴보면 죽는 것을 잠자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십니다.
예를 들어, 법륜스님이 죽었다 하면 내가 설령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어도 여러분이 안 울어야 제가 열반에 드는 것이 되는 거예요. 내가 설령 열반에 들었어도 여러분이 울면 열반에 든 게 아닙니다. 저의 죽음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때 아니룻다가 사념처관을 할 것을 제안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조용한 상태에 들었어요.
그렇다면 부처님 당신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쿠시나가라로 가셔서 죽음을 맞이하실 때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가족 단위로 마지막 친견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사람까지 친견하시고 열반에 드시려 할 때 이교도 수바드라가 부처님 만날 것을 청합니다. 아난다는 안 된다고 하고 수바드라는 ‘꼭 만나야 한다.’ 하며 옥신각신했어요.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그는 나를 귀찮게 하려고 찾아온 게 아니라 물을 것이 있어 찾아왔다.’고 하셨습니다.
수바드라는 부처님께 자기의 고민을 질문하기보다는 누구는 무얼 주장했고 등 수행자들 사이의 논쟁거리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집을 나와 출가해서 51년 동안 부지런히 정진했다.’고 하시면서 8가지 삿된 길과 8가지 바른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아난다여!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이다. 육신은 지금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 세상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처님이 살아계셨으면 세상이 더 나아졌을까요? 오히려 부처님이 돌아가시니까 제자들이 다 부처님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4월 초파일을 중요시하는데, 실은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에 부처님입니다. 세상 사람은 룸비니를 중시하지만, 수행자는 보드가야를 중시합니다. 부처님은 사르나트에서 첫 설법을 하셨기에 중생에게는 처음으로 부처가 출현한 것입니다. 설법을 안 하면 중생에게는 부처가 아닙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시면서 우리 모두가 부처의 길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참 열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수백의 싹을 틔우듯이. 우리 모두가 붓다로서 싹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성해야 열반절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들을 하나하나 보면 붓다가 아니지만, 모두 모으면 붓다입니다. 모자이크붓다예요. 여러분은 수행자이지 신자가 아닙니다. 부처의 길로 가는 수행자입니다. 옛날로 치면 어린애가 어려도 왕자이듯이 여러분은 부처의 길로 가는 수행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우리가 부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완전한 열반으로 가는 길이라며 부지런히 수행정진 할 것을 당부하며 열반재일 법문을 마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깨우쳐주려고 하셨던 일화는 들을 때마다 참 감동입니다. 내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당장 인상부터 찌푸려지고,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걸어도 대꾸조차 하기 힘들어지는데,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여여하셨던 부처님, 그것이 육체의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부처의 길로 나아가게 해주시려는 연민과 자비에서 나온 것임을 마음 깊이 느낍니다. 부처님께서 떠나실 때 울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어쩐지 눈물이 났습니다. 일부 제자들이 울다가 사념처에 들자는 아니룻다의 제안에 모두 사념처에 들어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는 대목에서도 어쩐지 울컥합니다. 우리도 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실 때 어떠한 마음일지, 또 그 자세는 어떠해야할지 부처님과 제자들의 모습에서 배워봅니다.
열반재일 법회가 끝난 뒤 점심 공양을 드신 스님께서는 원고교정업무를 보신 후, 오후 2시부터 다시 통일학교 제5강 강의를 하셨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강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후 1시부터 책상과 방석을 펴고, 조용하고 신속하게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앞자리부터 앉아 핸드폰을 끄고 수업을 기다립니다. 103명의 학생이 모두 앉고 오늘도 어김없이 2시 정각에 수업이 시작됩니다. 법상으로 올라가시는 법륜스님의 오른쪽 양말이 닳아서 발뒤꿈치가 살짝 비칩니다. 스님의 검소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로 강의가 끝이네요, 안 빠지고 듣는다고 수고하셨어요.”
라고 환하게 웃으시며 강의를 시작하십니다.
“어제까지 강의한 걸 돌아보면 첫째, 왜 이 시점에서 통일이 필요한가를 진단했고, 둘째 우리 민족의 뿌리에 해당하는 상고사 부분, 셋째 한반도로 민족사가 축소되어 지금에 이른 과정, 특히 나라를 일본에 뺏길 수밖에 없었던 근세 100년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 돌아봤고, 어제 분단 70년사, 남한과 북한이 어떻게 해서 현재의 지점에 이르게 됐는지 살펴봤습니다.
오늘 강의는 2가지인데 이런 우리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일만이 그 해결책이라는 통일한국의 비전에 대한 얘기고, 두 번째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함으로써 통일의 길로 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첫 번째 강의 시간에 이대로 내버려두면 통일 될 가능성이 10%도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전략이 있어야 할 지 알아 보겠습니다. 마지막 강의는 여기서 다 얘기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일단 대략의 틀만 잡고 다음에 활동하면서 구체적으로 더 잡아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
먼저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제일 중요한 게 경제력입니다. 가장 경제력이 큰 미국의 GDP가 17조 달러 가까이 됩니다. 중국은 9조달라가 넘어 미국의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10년 정도 지나면 중국이 미국을 앞지른다는 얘기도 있고, 실질구매력 기준으로 따지면 이미 중국이 미국을 앞섰어요. 미중이 경제력에 있어서는 거의 균형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일본이 약 5조에 달해 중국의 절반을 조금 넘습니다. 현재 미국의 절반이 중국이고, 중국의 절반이 일본이에요. 그 다음이 독일, 이 4개국이 경제력에 있어 초강대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한때 11위까지 올라갔다가 15위로 미끄러졌어요.
분단된 상태로는 더 이상 별 수가 없습니다. 새삼스럽게 노력한다고 경제성장률이 10% 넘고 이럴 수가 없어요. 죽기 살기로 해야 3% 유지하고, 안 그러면 더 떨어지게 됩니다. 만약 통일을 하면 우선 면적이 9만8천㎢에서 21만㎢로 2배 이상 늘어납니다. 인구도 5천만에서 7천5백만 명으로 늘어나지요. 남한만으로는 GDP로선 일본의 1/4밖에 안되고 영토는 1/3, 인구는 2/5밖에 안되는데, 남북한이 합하면 영토는 2/3가 되고, 인구는 절반이 넘습니다.
북한이 1인당 GDP가 현재 1천 달러밖에 안되지만, 통일되면 1년에 100% 이상 성장할 수 있어요. 한 10년만 노력한다면, 통일 한국은 세계 10위 권 안에 진입이 가능합니다. 경쟁상대가 이탈리아, 스페인 정도 되고 그것을 추월해서 최고로 올라가면 8위권까지도 가능합니다. 영국과 프랑스와 경쟁할 수 있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홍콩이나 싱가폴, 대만이 세계 10위 권 안에 들어가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는 통일만 되면 가능합니다.
일본은 정체국면에 들어섰는데 몸부림을 쳐도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는 질적 향상이고 하나는 양적 팽창을 해야 극복이 가능한데, 질적 향상은 창조력이 있어야 되는 일인데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양적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영토 확장입니다. 일본은 100년 전에 한 번 해봤어요. 한국을 합병하고 만주를 점령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전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일본이 갖고 있지 않은 하나의 가능성이 있어요. 일본과 달리 우리에게 창조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대중문화 분야입니다. 이른바 한류지요. 한국에서는 잘 모르지만, 밖에 나가면 동남아에서 기업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게 K-POP입니다.
두 번째, 양적 팽창에 있어 우리는 남의 나라를 무력으로 침공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통일입니다. 북한개발이 우리들에게 창조력을 키울 동안의 필요한 시간을 좀 벌어줍니다. 정책은 2가지로 가야합니다. 하나는 통일경제를 통해서 양적 팽창을 시키고, 다른 하나는 창조력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현재 북한은 중국에 값싼 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또 중국에 소비시장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중국의 동북3성 지역이 오히려 우리에게 노동력을 제공해주고 소비시장이 되어줄 것입니다. 한국이 발전하려면 첫째는 통일이 중요하고, 둘째는 통일된 한국은 중국 동북 3성지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룰 것입니다. 중국 안에 있는 다른 지역보다 한국이 기술도 앞서고 자본도 있고 영토도 가까우니까 경제협력은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새삼스럽게 영토를 차지하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옛 영토를 우리경제의 영향권에 둘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고 시베리아까지 협력하면, 환동해경제권을 형성하게 됩니다. 단순히 1+1이 2가 되는 게 아니라 3이 되고 5가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의 비전입니다.
첫째 통일 자체가 가져오는 이익이 있고, 통일을 해야 동북아경제공동체가 가능해집니다. 통일을 안 하면 불가능합니다. 북한이 가운데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제는 우리에게 기회도 되지만 위협도 됩니다. 우리 단독으로 여기에 대항하는 것은 어려워요. 우리의 높은 문명과 높은 기술력으로 중국과 상호협력 관계에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으려면, 한국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일본과 협력해야 가능해집니다. 일본과 우리는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모든 것이 중국보다 가깝습니다. 다만 과거사의 상처 때문에 원한이 깊어서 그렇지. 우리는 제일 가까운 북한과 가장 원한이 크고, 그 다음으로 가까운 일본과 원한이 깊습니다. 일본더러 사과하라고 자꾸 요청하고 있는데, 우리가 통일을 해버리면 과거 상처에 우리가 연연해하지 않게 됩니다. 일본에 피해의식이 없어져 별 신경을 안 쓰는 거죠. 이렇게 한일협력을 해나간다면 중국보다 상당부분 앞선 문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통일이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을 치유해준다는 말씀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경제력만으로는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없다고 창조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통일은 우리의 평화와 번영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고, 동아시아 번영에 핵심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본과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들의 이해관계에 끌려가서 이쪽 편을 들었다가 저쪽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중심을 잡고 협력을 끌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힘이 세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종의 캐스팅보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지요.
한중일에 동남아까지 하면 인구가 25억 가까이 됩니다. 그러면 세계 인구가 75억이니까 1/3에 해당한 인구가 여기 삽니다. GDP는 지금 세계의 1/4 정도인데, 얼마 안가면 1/3이 될 수 있어요. 동아시아는 앞으로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아시아 시대가 오려면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중국이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담당한다고 해도, 민주주의의 신장이라든지 인권 문제, 환경, 복지 등은 누가 이끌어야 할까요? 한국이 만들어 가야 합니다. 중국은 미국의 것은 자기네와 안 맞는다고 안 받아들이지만, 한국이라면 다릅니다. ‘한국도 하는데 우리가 왜 못하겠나’ 이러면서 따라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인권이 신장되면, 중국도 그렇게 되고, 민주주의도 그렇고 환경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한국을 경계하지 않으니까 가능합니다.
우리나라가 주변보다 더 창조력이 있고, 더 많은 이익을 주변 나라에 같이 나눠주면, 주변 나라 국민들이 몸은 자기 나라에 소속해있지만 마음으로는 한국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협력을 이끌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사명감을 가지고 아시아 평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통일한국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100년의 한을 풀 수 있고, 동북아시아공동체나 동아시아 공동체로 간다면 1천년의 한을 풀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3천년 만에 본래 가졌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나는 1%의 가능성이 있어도 투자하겠는데, 지금은 어때요? 이건 조금만 물꼬를 트면 그런 길로 나갈 수 있습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통일에 투자하겠는 스님의 말씀에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스님께서는 이어서 통일은 남한이 주도해야하고 남한이 주도하려면 남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한다고 하셨습니다.
“통일을 추동할 주체가 남한인데 남한 국민이 관심이 없으면 실현이 안 되겠지요. 보통 사람들은 통일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손해 보면서까지 통일을 하려고 하지는 않잖아요? 일단 자기에게 이익이 있어야 통일을 하겠다고 나서지요. 통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남한 국민의 요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남한 국민의 요구가 무엇일까요? 첫째, 국민들은 성장을 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이념을 떠나 경제이익이 됩니다. 둘째, 고른 분배가 필요합니다. 고른 분배의 중요 조건으로 하나는 경쟁이 공정해야 합니다.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사회 전반적으로 불공정이 굉장히 심합니다. 특히 재벌기업의 불공정이 심하지요. 그러니까 기업을 한 20개쯤 가지고 있는 재벌그룹 회장이 자기들 필요한 물건을 회사 하나를 만들어서 자기 손자에게 줍니다. 그리고 다 거기서 구입하도록 하면 금방 회사가 커집니다. 금방 키워서 주식 상장해버리면 엄청난 부자가 됩니다.
공정하다는 것은 출발선상에서의 기회의 균등입니다. 둘째, 경쟁과정에서 룰이 공정해야 하고 집행도 공정해야 합니다. 셋째, 끝나고 나서 시상할 때 공평해야 합니다. 공평한 시상이 뭘까요? 운동회 하는데 상 줄 공책이 6권 밖에 없었다면 1등한테 3권 주고, 2등한테는 2권, 3등에게 1권 주면 남는 게 없지요.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못 받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요새는 먹고 살만해지니까 16권이 주어졌어요. 그럼 옛날 방식으로 1등 10권, 2등 4권, 3등 2권 이렇게 주기보다는 먼저 10명에게 다 1권씩 나눠주고 다음에 1, 2, 3등에게 나눠주면 1등은 4권, 2등은 3권, 3등은 2권을 갖습니다. 잘 하는 사람은 더 갖되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1권씩 갖는 것입니다. 1권씩 준다는 건 안전망 구축입니다. 이제 한국은 옛날에는 공책이 6권밖에 없는 나라에서 지금은 16권 정도는 되는 나라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공평한 분배에도 신경을 쓸 때가 왔습니다.”
운동회 때 저도 1등으로 달리다가 막판에 넘어지는 바람에 3등 밖으로 밀려나서 공책 한 권 못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운동회가 끝나고 어머니가 짜장면을 사주시는데도 어린 마음에 공책 한 권 못 받은 것이 어찌 그리 속상하고, 응원해주신 어머니께 미안하기도 하든지요. 운동회의 상으로 비유해주시니, 안전망에 대한 이해가 쉽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우리나라도 경제성장을 해서 지금은 공책이 16권으로 늘어났는데, 아직 일부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책을 1권씩 나눠주면 달리기를 아예 안 하는 사람이 생긴다며 반대하기도 합니다. 게을러진다고 하면서 노동의 윤리를 들어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성장에 따라 일정한 단계가 되면 복지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요구 때문에 복지수준을 한꺼번에 빨리 올렸을 때 비용문제가 발생해서 줬다가 빼앗는 일이 생기고, 그러면 저항이 생깁니다. 계산을 잘 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세금을 더 내고 복지를 받는 거니까. 모두들 세금은 더 내기 싫고 혜택은 더 받고 싶으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제도가 잘 못 된 것은 개선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세금을 더 내고 혜택을 더 받는 쪽으로 가야하는데, 고부담 고혜택으로 할거냐, 중부담 중혜택으로 할거냐, 저부담 저혜택으로 할거냐인데, 지금은 저부담 저혜택이니까 바로 고부담 고혜택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중부담 중혜택으로 가야합니다. 국가에서 이것을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나가 조세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재정정책입니다. 조세와 재정 두 가지를 통해서 경쟁사회에서 벌어지는 빈부격차를 조정해 주는게 복지정책입니다.
두 번째가 정치문제입니다. 북한은 지금 세습이라고 해서 지도자를 뽑을 권리가 국민에게 없습니다. 우리도 옛날에 그랬는데 6월 항쟁을 통해 지도자를 뽑는 권리를 쟁취했습니다. 그런데 뽑을 권리는 가졌는데 뽑힌 지도자가 임명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똑같이 권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문제가 생겼어요. 선거할 때 국민이 주인이라고 하는 건 딱 보름이에요. (웃음) 조금 더 길면 한 달이고. 그 기간에는 어떤 후보든 우리에게 와서 절하지요. 그 다음에는 만나자고 해도 만나기 힘들고 부탁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사람을 뽑는 권리만 있지, 뽑힌 사람이 민주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게 하는 제도를 안 만들어놨어요, 내가 머슴을 뽑는다고 뽑았는데, 종노릇은 내가 해야 하는 셈입니다.
권력 행사 면에서는 중국의 지도자나 한국의 지도자나 사실 별 차이가 없어요, 권력이 너무 집중돼있어서 그렇습니다. 지금은 승자독식으로 권력을 다 차지해버리지만, 앞으로는 소수의견이 국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가야 합니다.”
스님께서는 분권과 지자체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중앙의 권력이 지방으로 가야하고, 하나는 국민의 다양한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들이 나와서 지지받는 만큼 의석을 갖는 다당제가 돼야하고, 연립정부를 세우는 방향으로 가야 정국이 안정된다고 하셨습니다. 지방 정부끼리 준 연방식으로 만들어야, 북한의 각지방이 연방에 들어오면 통일도 쉽고 민주주의 역사 발전에도 부합한다고 하시며, 지방자치의 예로 스위스를 말씀하셨습니다.
“스위스는 인구가 800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연방에 소속된 주만 26개예요. 모두 독자적으로 이뤄집니다. 스위스 전체가 잘 사는 것은 맞지만, 강연 가는 길에 시골로 돌아서 가봤는데 지방에 권한을 주고 자기네 삶을 자기네가 결정하니까 특히 시골이 깔끔하고 잘 삽니다. 물론 잘 사는 데가 있으면 못 사는 데가 있지 않겠어요? 그럴 때 중앙정부가 나서서 못 사는데 보조금을 더 주고, 잘 사는 데는 덜 주고 이러면서 격차를 줄여줘야 합니다. 각자 자기 동네가 알아서 하니까 격차가 날 수밖에 없지만, 격차가 덜 벌어지도록 조정해주는 것입니다.”
이어서 외교문제도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예로 들어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사례를 들어 어려운 문제도 쉽게 설명해주십니다.
“셋째, 외교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한국이 되면 전적으로 미국 편을 들어도 안 되고 중국 편을 들어도 안 되고, 중립이 되기도 어렵습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도 미국에 물어보면 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줘서 감사하다. 그런데 나가겠다고 하면 알겠다. 우리가 이 정도 사는데 아직도 도와달라고 하면 염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도 좋다. 이제 우리 안보는 우리가 지킬 게.’ 그러고 더 있겠다고 하면 ‘그래 있으려면 언제든 있어라. 우리가 과거에 신세를 졌으니 그정도야 못해주겠니?’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겠다고 하는 걸 바짓가랑이 잡고 당기니까 주둔비용을 우리더러 내라고 하는 거예요. 또 일부에서는 안 가겠다는 걸 발로 차내니까 기분이 나쁜 거예요. 반미도 친미도 답이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있으면 돈을 우리가 낼 필요도 없고, 가겠다고 하면 보내면 되는 거예요.
동아시아는 한미동맹이니 한중동맹이니 양자동맹으로 가면 계속 갈등이 생기니까 다자동맹으로 가면 됩니다. 주변 6개국이 공동으로 군사안보체제를 형성해서 간다든지 하면 됩니다. 이때 우리는 패싸움의 하수인이 되지 말고 가능한 협력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가 이런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통일로 가려고 해도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복지사회가 돼야 통일이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남한에 사는 사람도 가난하게 사는 걸 보고 북한 사람들이 ‘저 수준이라면, 우리가 통일해서 가봐야 저 취급을 받지 않겠나 ’하고 통일을 안 하고 싶겠지요? 그런데 남한에 가서 바닥에 있어도 지금보다 낫다고 하면 통합하자고 하지요. 힘으로 통일하려고 하면 북한 내부에서 저항이 일어나고, 또 중국이 그 저항을 도울 겁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나서서 통일하자고 하면 중국이 못하게 할 수 있을까요? 북한 정부가 중국의 하수인이 되면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북한이 자주권을 내세우고 있으니까 통일에 유리한 점이 있어요.”
복지사회와 통일을 연결시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스님 말씀에 저도 모르게 기쁜 마음이 되어 얼굴이 환해집니다.
“통일의 의지를 갖고 자신감으로 북한을 포용해줘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사회를 통일지향적 사회, 한국 사회가 더 선진적인 사회로 가도록 추진해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통일지향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통일지향적인 정부를 어떻게 구성할까요? 결정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권리 행세를 안 하고 있어요. 권리 행세를 굉장히 잘못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조선총독부에 대항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민주화운동 할 때 독재정부에 대항해서 감옥에 갔어요. 그런데 통일지향적인 정부를 선택하는 투표를 한다고 우리가 죽을 일이 있나요? 감옥 갈 일이 있나요? 그런데 이것도 안하려고 합니다.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입니다. 나라의 주인이 우리예요. 그런데 아직도 대한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의병은 총 들고 하자는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최선이면 좋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도 좋다, 차선이 없고 차악과 최악밖에 없다면 둘 다 꼴 보기 싫다고 외면하지 말고, 차악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이 순간의 최선입니다. 이게 주식투자에서 손절매예요. 손해보고도 판다, 적게 손해 보고 파는 게 이익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헌법 전문을 다시 읽어보세요, 통일지향이 국가의 가장 큰 목표가 되어있어요. 국민이 먼저 각성하고, 각성한 국민이 그런 정부를 구성해서 난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것을 할 사람이 바로 통일의병입니다. 총을 안 들어도 됩니다. 생각이 똑바르면 됩니다. 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2시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았는데 아무도 졸지 않고 집중해서 듣고 있었습니다. 명상이 끝나고 몇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창의력과 자본주의의 창의력에 대한 질문, 스님 말씀은 이상적인데 현 상황에서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 통일지향적인 정부를 구성하고 다당제와 지방분권 등이 언제쯤 될지 막막하다는 분 등 세 명의 참가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헌법 개정이 핵심입니다. 현재 이미 국회의원들 중 3분의 2 이상이 지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역사 속에서 혁명적일 때 헌법을 개정해왔기 때문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지역주의를 개선하고, 비례대표를 지역에 주는 제도, 석패율제는 중앙선관위에서도 개선책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올해가 개헌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 딱 한 가지 문제는 국민의 지지를 못 받고 있다는 거예요. 많은 질문이 있겠지만 다음 시간에 기회가 되면 더 하기로 하고,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4월 7일에는 통일학교 마지막 수업으로 경주역사기행이 있어요. 벚꽃이 아주 좋으니 도시락 싸들고 오세요.”
스님 말씀에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네”라고 대답합니다. 수업이 끝나고 모둠별로 마음나누기를 했습니다.“구체적 대안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헌법 개정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일이 눈에 들어왔다” “통일학교 5일 연속해서 듣는 게 처음에는 부담이었는데 끝나니 아쉽다. 확실히 통일에 대한 관점이 잡혔다.” “지금 상황에서 가능할까 싶지만 열정을 가지고 통일 학교를 진행해야겠다.” “통일의병 하나하나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열의에 불탄다. 할 일은 명확한 것 같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행할 것인가 방법을 찾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나눴습니다. 끝으로 지난 4일간 103명의 수업모습을 찍은 영상을 보며 수업을 마쳤습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탄성이 나왔고, 환한 연꽃 같은 모습을 보는데 뭉클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는 웃음이 가장 큰 무기인 환하게 웃는 통일의병입니다.
통일학교 강의를 마친뒤 스님께서는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두북수련원으로 향하셨습니다. 10시 30분경 경주IC를 통과 한 후 경주보문단지 벚꽃 야경을 보고 두북 수련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내일은 청년 경주역사기행이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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