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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100회 강연 중 74번째 강연이 워싱턴주 시애틀(Seattle)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시애틀(Seattle)은 광역 도시권 인구가 약 400만명으로 미국에서 15번째로 큰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의 인구는 2011년 기준으로 62만명 정도로 미국 서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한국 교민은 유학생을 포함하여 약 5만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시애틀은 푸젓사운드만과 워싱턴호 사이의 좁은 지협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쪽은 올림픽 산맥이 위치해 있고, 아시아와의 무역을 위한 주요 관문으로 컨테이너 처리량으로 미국에서 8번째로 큰 항구입니다. 시애틀 지역에는 백인 이주자들이 처음 발견하기까지 4,000년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1853년에 두와 미시족과 수쿼 미시족 수장 씨애틀의 이름을 따 마을에 "시애틀"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 시애틀의 야경
벌목은 원래 시애틀의 주요 산업이였지만 세계 2차 대전 이후 보잉이 도시 근처에 대규모 공장을 지으면서 항공기 제조업도 도시의 주요 산업이 되었으며, 이후 새로운 소프트웨어 산업, 생명공학, 인터넷 회사 등 기술 중심지로 떠오르며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이 50,000만 명의 인구가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국립공원을 주위에 두고 있는 시애틀 주민들은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 되어 있으며 온화한 자연의 풍광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고 사는 미국에서도 몇 안되는 안전하고 친근한 도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아마존, T-Mobile US, 코스트코, 닌텐도, 엑스피디아닷컴 등 세계적인 굴지의 기업들이 자리 하고 있고, IT 업계 뿐만 아니라 생화학, 의료 산업의 많은 기업들이 속속 시애틀로 이주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시애틀은 음악도 잘 발전한 곳으로서 인디록과 인디댄스 음악으로 유명하며 다운타운에는 수많은 Jazz Club 이 있습니다.
▲ 오늘 이동 거리 : 캐나다 캘거리 -> 미국 시애틀, 1141km
[지도 보기] https://goo.gl/maps/f2Hwe
오늘은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캘거리에서 미국 워싱턴주 씨애틀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갈 때는 캐나나에서 미국 입국 수속을 다 마친 다음에 비행기를 타게 되어 미국에서 내릴 때는 이민국 수속 없이 국내선 비행기로 이동할 때처럼 내립니다. 오전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이나 미국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새벽 5시에 숙소에서 출발했습니다. 오선주님이 새벽부터 준비해준 죽과 음식으로 스님께서는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유신, 오선주 부부와 김미연님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면서 내년에도 다시 스님을 뵙고 싶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도 강연 준비하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다고 다시 한번 격려해 주시면서 캘거리 열린법회를 잘 만들어보라는 당부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오선주 강유신 부부와 김미연님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친 다음에 오전 8시 10분에 시애틀로 출발하였습니다. 실제 비행시간은 1시간 57분이나 조금 일찍 도착하였고, 또한 -1시간 시차로 인하여 9시경에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마중을 나온 김효경님과 함께 공항에서 시애틀 정토법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법당에 도착하여 장연경님이 준비해 준 아침식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캘거리 강연 얘기를 스텝진들과 잠깐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강연장으로 가기 전까지 법당에서 업무를 보시다가 5시 30분에 법당을 출발하여 오늘 강연이 열리는 Renton Community Center 내에 위치한 카고 씨에터(Carco Theatre)로 갔습니다.
▲ 오늘 강연장, Carco Theatre
스님께서 강연장에 도착하니 강연장 내외부에서 안내를 맡아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시애틀 정토회 회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도 눈을 맞추며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오늘 시애틀 강연에는 총 309명이 참석하여 강연장을 빼곡히 메워주었습니다.
6시 30분 스님 소개영상에 이어 시애틀 교민들의 큰 박수와 환호 속에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에 오신 분들게 반갑게 인사를 건내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오더니 마침 비가 멈추었네요. 오시는데 조금 덜 불편하셨습니까? 어제와 그제는 벤쿠버와 캘거리에 강연을 했는데 날씨가 아주 맑았습니다. 시애틀이 거기보다 못한데요? 시애틀도 거기랑 기후가 비슷할 줄 알았거든요. (청중들 웃음) 날씨가 흐린데도 이렇게 많이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우리 교민들이 살고 있는 세계 여러 곳을 찾아서 115회 강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까마득하더니 벌써 오늘 74회째입니다. 절반이 넘었어요. 이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78회를 하면 2/3를 넘기게 되고 연말인 12월 18일까지 진행됩니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즉문즉설을 통해 마음이 가벼워지는지 그 원리를 설명해 주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즉문즉설이라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고뇌와 의문들을 여러분들이 구체적인 사실을 갖고 던지게 되면 저와 함께 대화를 해나가게 됩니다. 대화를 해나가면서 그 대화 중에 무겁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괴로운 마음이 조금 사라지고, 답답한 것이 조금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대화를 하면서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대화를 하면서 문제가 개선될까요? 그것은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주로 한 측면만을 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부모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한국사람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하는 것처럼, 한 측면에서만 사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사물의 전모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것을 우리는 편견이라고 말해요. 저와 대화를 하면서 앞면만 보는 사람에게 ”뒷면은 어때요?“ 하고, 옆면만 보는 사람에게 ”저쪽 옆면은 어때요?“ 하고, 윗면만 보는 사람에게 ”아랫면은 어때요?“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 다른 면을 보게 되면 그냥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집니다. 왜 그럴까요? 다른 면까지 보게 되면서 사물의 전모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아내의 입장만 가지고 있다가 남편의 입장도 생각해볼 수 있고,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의 입장도 생각해볼 수 있고, 한국 사람의 입장만 가지고 있다가 일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볼 수 있고, 기독교인의 입장만 가지고 있다가 불교나 다른 종교의 입장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전모를 볼 수 있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하고, 이 통찰력을 ‘지혜’라고 합니다.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마치 깜깜한 방에서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같아서 더듬어서 어떤 사물을 찾는데 이때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모를 보면, 즉 불을 확 켜서 보면 ‘아, 저기 있네’ 하고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통찰력을 갖게 되면 무겁던 마음이 금방 가벼워집니다. 그렇게 대화를 해가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문제지만, 저렇게 보면 괜찮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자기 입장에만 서서 생각에 사로잡히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거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별 것 아닌 게 참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될까요?” 하는 질문이나 “이것이 정말 있나요?” 하는 질문처럼 단순히 ‘되고’, ‘안되고’ 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도 어떻게 사물을 봐야 하는지의 관점에서 우리가 대화를 통해서 풀어가는 거예요. 일방적으로 설명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편안하게 얘기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시작해보죠.”
서두 발언부터 오늘 웃음이 나오며 가볍게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총 8명으로부터 질문이 있었고 강연 시간도 3시간이 되었으며, 후반부로 가니 스님께서도 힘이 드시는지 목소리가 갈라지는 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높은 열기 속에서 집중되고 즐겁고 재밌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학자금을 갚아야 해서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학력이 높고 나이도 많고 경력도 특정분야여서 잘 뽑히지 않아 고민인 분,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극심하게 사춘기를 겪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게임만 하고 있는데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새로 사귀게 된 남자 분이 있는데 그 분의 딸이 조울증이 심해서 함께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보니 결혼하기가 망설여져서 고민인 분, 또 다른 한분은 질문을 하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문답 속에서 이미 답을 얻었다”고 하면서 스님께 감사 인사만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욱 했다가 빨리 가라앉는 것 때문에 여자친구와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데 스님의 유튜브 동영상을 볼 때는 마음이 다스려지지만 막상 일이 닥쳤을 때는 화를 내게 되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삼재에 들었다고 하는데 삼재가 정말 있는 건지 궁금한 분,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유독 인간만이 높은 지능을 가지게 되고 고도의 문명을 이루게 되었는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6번째로 질문한 아이가 심성은 착한데 싫증을 잘 내고 자꾸 다른 방향으로 튀려고 해서 걱정이 된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께서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자기 수행을 어떻게 해나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저는 유튜브를 통해 즉문즉설을 접하면서 ‘아, 내 성질이 더럽구나’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지금도 화가 나면 화가 난 것을 캐치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성격이 있는 것은 어렸을 때 완벽주의자인 아버지 밑에서 속박을 받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아들 둘과 딸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둘째가 저와 너무나 닮았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는데 저와 너무 같다보니까, 제가 어렸을 때 제 아버님이 저를 조금 다르게 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에 많은 시도를 하는데도, 자식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더니, 제가 튀던 방향으로 자꾸 튀는 것입니다. 아이가 심성은 착하고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저와 같이 욱하는 것이 있고 어떤 길로 가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튀려고 합니다. 어떤 것을 하던지 사람들이 놀랄 만큼 잘하지만 일찍 싫증을 느낍니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튀려고 하고요. 제가 어떻게 해야 제 아들이 제가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좀 더 밝고 나은 길로 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질문자부터 먼저 살펴봅시다. 질문자도 아버지 밑에서 조금 어려웠지만 어쨌든 다 컸고 결혼까지 해서 아이를 셋이나 낳아서 잘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들도 질문자처럼 잘 살 것입니다”
“제가 아이에게 항상 얘기하는 게 사람이 한번 태어났으면 적어도 남에게 해는 끼치지 말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라고 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좋지만 어떻게 세상이 내가 원하는대로 다 그렇게 됩니까. 질문자도 질문자의 아버지가 볼 때 마음에 안 들었잖아요. 자기가 볼 때 자기 자식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 자식도 자기처럼 잘 살 겁니다. 인류 역사에서 늘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들 하는 짓을 보고 다음에 나라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산업화 세대가 민주화 세대의 젊은이들을 볼 때 저것들이 크면 나라가 세상이 망할거라고 했잖아요. 또 그 사람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서 “저것들 의식도 없고, 저것들이 크면 나라가 망하겠다” 합니다. 물론 그렇게 변해서 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지나친 우려예요.
질문자는 반대로 생각해야 돼요. 아이가 걱정을 해도 “야, 걱정하지 마라. 아빠가 젊었을 때 너보다 더 했는데도 이렇게 살지 않느냐,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너도 잘 살거다” 오히려 이렇게 격려를 해주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녀석이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마” 합니다. 아들에게 “야, 너 그렇게 집에 와서 공부도 안 하면 학교 성적은 어떻냐?”하면 “아빠, B 이상 받아. 걱정하지 마” 그래요.”
“그것 봐요. 아이가 질문자보다 낫네요. (청중들 웃음) 오히려 질문자가 아이를 그렇게 격려해줘야 돼요. 질문자가 본인의 아버지와 똑같잖아요, 계속 아이를 문제 삼잖아요. 아이가 자기를 문제삼을 때 마저도 아빠가 “괜찮아 괜찮아. 내 친구 보니까 공부 잘한다고 꼭 잘 된다는 보장 없더라. 아빠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하고 놀고 다녔어도 너도 낳고 잘 살잖아”하고 격려를 해주는 게 좋아요. 그러니까 고치려고 하지 말고 자기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아이에 대해서도 긍적적으로 보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먼저 긍정적으로 봐줘요.”
“그것만이 길입니까?”
“그러니까 제가 묻잖아요. 질문자도 질문자의 아버지가 볼 때에는 질문자가 문제아였는데, 그래도 미국까지 와서 애 셋이나 낳고 살잖아요, 그렇죠? 그렇듯이 사고도 치고 하겠지만 아이도 크면 여자 친구 만나서 아이 낳고 잘 살 거예요. 내 자식이라고 딱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까도 얘기 했잖아요, 자기 성질도 못 고치는데 남의 성질을 고치겠어요? 그것도 남을 닮은 것도 아니고 질문자를 닮은 건데요. (청중들 웃음)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피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그렇게 살아 놓고 아이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은 그렇지만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앞에 질문하신 분처럼 학자금을 빌려놓고 부담스럽다고 해도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새벽마다 일어나서 아이의 방 앞에서 108번을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108번 절 할 때 ‘아이고, 훌륭하다. 그래도 넌 나보다 낫다’고 절을 하는 것이면 몰라도, 지금 절 하는 것은 아이가 변하기를 원해서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아이를 변화시키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절을 하든지 금강경을 외우든지 무엇을 하든지 ‘이렇게 하면 아이가 바뀔 거다’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남을 고치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아, 내가 이 성질을 가지고 사니까 아이도 그대로 닮는구나’ 해야 합니다. 내가 일찍 고쳤으면 아이가 닮지 않았겠지만 이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해갈 수 없으니까 그냥 받아야 합니다. 아이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던지 ‘아, 내가 지었으니 그냥 내가 감당할게’ 하면서 기꺼이 받으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더 이상 업을 안 지어야겠다고 하면 자기 성질을 고치는 것부터 해야 됩니다. 성질이 일어날 때마다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지지라니까요. (청중들 웃음) 안 그러면 절을 3,000배 하던지요. 그렇게 해서 자기에게 변화가 일어나야지 아이를 바꾸려고 하면 안 됩니다. 아이를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질문자는 아버지를 닮아가는 거예요. 바꾸려고 하는 것 자체가 아버지를 닮아가는 길이고, 아이는 거기에 똑같이 자기처럼 반발하면서 본인의 아버지를 또 똑같이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표현을 안 하고 마음만 가져도 무의식적으로 표현이 돼서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럼요. 질문자에게 고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이건 해결이 안 됩니다. 그걸 버려야 해요.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렸듯이, 질문자는 질문자의 아버지가 볼 때에는 문제아였지만 지금 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의 평균은 되잖아요. 성질이 우락부락해서 그렇지 괜찮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이도 괜찮을 겁니다.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나기를 바라면 안돼요. (청중들 웃음)
아이는 그냥 놔두고 본인부터 고쳐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보면서 확실히 인연과의 도리를 깨달았잖아요. ‘아, 이건 안되겠다’, ‘나부터 공부해야겠다’ 이렇게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면 자기를 고치는 것부터 해야 됩니다. 아이는 딱 놓고요.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더 심해집니다. 자기도 늙어보니 아버지와 똑같아졌는데 자식에게도 큰 걸 바라시면 안 됩니다. 어머니를 보면 옛날 외할머니와 똑같습니다. 콩을 심으면 잎이 나서 자라고 할 때에는 콩은 온데 간데 없는데 나중에 열매가 달리는 걸 보면 심을 때의 콩하고 똑같이 돼요. 달리 길이 없습니다. 너무 절망적인가요? (청중들 웃음)
아니예요. 얼마나 좋아요? “자기도 잘 살듯이 아이도 잘 살거다, 그러니까 놔라“ 하면 ‘뭐, 나도 잘 사니까 애도 잘 살겠다, 스님 말씀 맞네’ 하고 탁 놔버리면 될 일인데 뭘 그렇게 놓지 못합니까. 나는 사과지만 너는 배가 되라고 하면 그게 어떻게 됩니까?”
“저는 사과지만 아이는 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없다니까요. (청중들 웃음) 그러니까 미리 성질을 고쳐서 장가를 가던지, 아니면 장가를 가지 말던지 하지 그랬어야죠. (청중들 웃음)
아이는 괜찮아요, 본인만 변하면 아이는 괜찮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대로 두세요. 본인이 괜찮듯이 아이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게 조금 문제다 싶으면 아이를 고치려고 하지 말고 자기부터 먼저 고치세요. 자기가 고쳐지면 ‘아, 나도 고쳐지니까 우리 아이도 고쳐지겠다’ 할 수 있어요. 어른인 자기도 못 고치는데 어떻게 아이가 고치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담배피우던 것도 제 의지로 끊었고요.”
“지금 담배 피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성질 내는 것이 문제잖아요.”
“성격도 부인으로부터 ‘니 성질 많이 죽었다’ 소리 듣거든요. (청중들 웃음)”
“그래요. 성질 많이 죽었지만 아이를 낳을 때 그리고 어릴 때 이미 씨앗을 뿌려놨잖아요. 지금 자기가 고쳐져도 아이에게는 이미 심어져서 자랐기 때문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부인이 볼 때 ‘아이고, 우리 남편 죽을 때가 다 되어가나? 완전히 개과천선했네. 천성이 바뀌었네’ 이 정도로 자기가 확 바뀌면 그 다음에는 아이한테도 자신이 생깁니다. 내가 바뀌면 ‘고쳐라’ 가 아니라 ‘아이가 지금 저래도, 언젠가 좋은 법 만나면 나처럼 바뀔 수 있겠다’ 하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지금은 ‘그래, 내가 뿌린 씨앗이니까 어떻게 하겠어’ 하고 아이를 고치려고 하지 말고, 아이를 볼 때마다 ‘아이고, 나 때문에 니가 고생한다. 아빠 성질이 그래서 너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어 보세요. ‘나도 잘 살듯이 너도 그런대로 잘 살거다’ 하고 긍정적으로 보세요. 그래도 부모로서 조금 아이가 부족하다 싶으면 자기가 자기 성질부터 먼저 고쳐보세요. 그렇게 해서 고쳐지면 우리 아이도 가능성이 있겠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고, 자기가 안 고쳐지면 ’아이고, 어른인 나도 안 고쳐지는데 어린 애가 어떻게 고치겠나‘ 하고 오히려 이해하는 마음을 낼 수 있어서 이 문제는 저절로 풀립니다. 고쳐져도 풀리고, 안 고쳐져도 풀려요."
“앞으로 긍정적으로 보려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말만 긍정적이면 안돼요. 속에서 고쳐야 됩니다. 오늘 딱 저와 얘기하는 동안에 ‘아, 아이도 괜찮다, 나도 괜찮다’하고 놔야 돼요.”
“(큰 목소리로) 지금부터 저도 괜찮고 아이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들 박수)
‘괜찮다’ 하는 질문자의 자신감있는 목소리에 청중들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줍니다.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문답을 통해 보다 더 전모를 파악하게 되고 마음은 가벼워집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이 갖는 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질문자의 답변에 이어서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첫 번째, 남을 고치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생긴 대로 인정하고 사세요. 두 번째, 나도 너무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과보를 받으십시오. 마지막으로, 과보를 받기 싫으면 고치는데, 고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고치려고 하는데 안 고쳐지니까 조급해서 자기를 학대해요. ‘아, 나는 문제다’ 하면서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다 괜찮아요. 자기 스스로 자기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다 고만고만하게 괜찮아요. 우선, 자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조금 더 개선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 도전해보세요.
도전을 해보겠다고 할 때에는 우선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의식이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면 시간이 흐르면 습관이 되기 때문에 무의식화 됩니다. 그러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두 번째, 아주 강한 충격을 줘서 무의식에까지 영향을 주면 변화가 조금 빨리 일어납니다. 첫째, 강하게 주면 속도가 조금 빨라지고, 둘째, 약하게 주되 꾸준히 해나가야 됩니다. 이것은 물리학의 법칙과 똑같아요.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데 멈추게 한다고 합시다. 이것을 멈추려고 강한 힘을 주면 빨리 멈춰지고, 약한 힘을 주면 계속 밀리다가 한참 가서 멈춥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고, 멈춰있는 물체는 계속 멈춰 있으려고 하는 것이 관성의 법칙이죠. 그렇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를 멈추거나 멈춰 있는 물체를 움직이려면 그만큼의 힘을 가해야 합니다.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 속도의 변화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힘(f)과 속도변화(a)는 비례관계에 있다, 즉 F=ma라는 속도 가속도의 법칙이 나오잖아요. 이것과 꼭 같습니다. 이 세상의 원리라는 것은 법칙이기 때문에 그것이 물질에서 작용하는 법칙이나 생명에 작용하는 법칙이나 정신에 작용하는 법칙이나 다 같은 법칙이예요. 불법이라는 것은 원래 법칙을 이해해서 그 법칙에 의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복을 비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만약 나일 강 하류 쪽에 어떤 사람이 산다고 합시다. 거기에는 비가 안 옵니다. 그런데 저 상류쪽에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난다고 합시다. 그 조짐을 알면 급할 때는 우선 피해야 합니다. 아무리 농경지가 있고 집이 좋아도 급하면 일단 몸을 피하고 살아야 돼요. 그리고 다음에 예방을 할려면 제방을 미리 쌓거나 안전한 데 집을 짓거나 해서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자신의 카르마, 즉 업식을 알아서 이미 지은 인연의 과보는 수용해야 하고, 이런 과보를 받기 싫으면 조금 힘들지만 이것을 바꿔야 합니다. 바꾸려면 꾸준한 노력이나 강력한 태클 두 가지가 필요해요.
그런데 여러분은 꾸준히도 안 하고 또 강력하게도 안 하잖아요. 조금 하다가 ‘에이,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안 그래도 사는데’ 이러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고쳐지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에게 자학증상이 일어나는 것은 노력은 안 하고 쉽게 고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남에 대해서는 안 고쳐진다고 비난하고, 자기에 대해서는 ‘나는 문제다’ 하면서 자학하는 것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자세 때문에 남을 미워하거나 자기를 미워하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안 고치고 이대로 살아도 괜찮아요, 아시겠어요? 다만 가끔 짐승보다 못할 때가 좀 있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짐승보다 못한 부분만 개선해주려고 합니다. 짐승보다 나은 부분은 선택해서 하시면 되고, 그렇지 못한 작용들, 예를 들면 자살을 한다던지 괴롭다던지 보복을 한다던지 하는 것들은 짐승들에게는 없거든요. 짐승은 배고프면 먹으려고 하고, 자기 음식 양보 안하려고 하는 것들은 있지만, 자기 생존을 위한 것을 제외하고는 미워해서 해치는 일은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마음 작용의 이치를 알고 개선해야 합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다들 정말 좋았다고 하면서 “질문자들의 질문은 본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님의 답변 하나 하나가 다 본인들에게 대입이 될 수 있어서 많은 것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답변 후에 스님께서 짤막짤막하게 해주는 정리말씀이 너무 좋았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분은 “스님께서 마지막 질문자에게 해주신 말씀이 너무나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 참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3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왔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행사장에 오신 많은 분들과 인사도 하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사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준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타코마 강연과 오늘 시애틀 강연의 총괄을 맡아서 행사를 진행한 시애틀정토회 주상휴님께는 사인한 금강경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타코마, 시애틀 강연 총괄을 맡아주신 시애틀정토회 주상휴 총무님
그리고 이번에 나온 영문 기도책 초벌 번역을 해주신 정토회 해외지부 번역팀의 송호성님, 박현수님께는 사인한 영문 기도책을 감사의 표시로 드렸습니다.
▲ 번역봉사를 해주신 박현수님(왼쪽), 송호성님(오른쪽)과 시애틀정토회 주상휴 총무님(가운데)
그리고 자원봉사자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수고하셨다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할 것을 부탁하시고 숙소로 이동하셨습니다. 숙소에 돌아오니 10시 15분이 되어서 이후 내일 일정에 대해서만 간단히 얘기를 나누고 스님께서도 오늘 일과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주미숙님이 숙소로 오셔서 스님 건강을 체크하고 약도 처방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행사 뒷정리를 마치고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그저께 타코마에서 강연을 준비했던 것을 경험으로 좀 더 여법하게 안내를 했던 것 같다” 며 보람있어 하였고, 어떤 분은 “자기를 고집하는 모습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할 수 있었고, 이런 것이 일과 수행이구나 경험해서 좋았다” 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분은 “타코마 강연에 오셨던 분이 전화를 해서 자원봉사 하는 분들의 맑고 행복한 모습에 감명을 받아 정토회에 나오고 싶다고 문의를 해왔다” 면서 뿌듯해 하였습니다. 또 어떤 분은 “행사를 할수록 서로 단합되고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4번째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75번째 강연은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미국 포틀랜드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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