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4.7.1 동북아 역사 누비길 첫째날

오늘은 통일의병, 평화재단의 리더십 아카데미 출신들과 함께 하는 ‘2014 동북아 역사 누비길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른 아침 6시에 전국 각지에서 약 90여명이 인천공항에 모여 동북아의 중심지 심양으로 출발했습니다. 심양공항에 도착 후 창밖으로 보이는 산하의 모습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어릴 때부터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가는듯한 기분이 들어 설레이기도 합니다. 심양에서 첫 여정인 백암산성으로 가기 위해 2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가면서 버스 안에서 스님으로부터 심양과 백암산성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심양은 배달문명인 요하문명의 영향권에 있었는데 고조선시대에는 고조선의 땅이었고 그 뒤로 부여, 고구려, 발해, 거란, 여진, , , , 만주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가운데 동북아시아의 중심이었다고 합니다. 심양에서 백암산성으로 가는 길은 대련으로 가는 고속도로였는데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연개소문이 천리장성이 쌓았던 길이라고 합니다. 심양 부근 일대는 또한 철광과 석탄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제철 등 중화학 공업단지이기도 한데 자원이 달라서인지 울산의 석유화학단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백암산성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산과 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산하와 그리 다르지 않고 강원도의 힘이 좀 크게 느껴지는 정도일 뿐, 이국적인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의 모양만은 우리와 많이 달라 보입니다. 창밖 풍경을 보다 보니 고조선 시대, 고구려, 부여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타임머신이 있다고 꼭 가보고 싶을 만큼 궁금해집니다.

 


  

심양에서 출발한지 약 2시간 정도 되자 어느덧 왼쪽으로 멀리 백암산성이 보입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버스에서 내리고 스님이 앞장서서 올라가시면서 백암산성의 특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고구려의 성은 평지성과 산성이 짝을 이루는 것이 특징인데 백암산성은 천혜의 조건을 이용하여 최전방에서 고구려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백암산성이 뚫리면 바로 단동의 봉황성이 뚫리고 그 다음엔 압록강을 넘어 바로 평양성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백암산성은 군사상교통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백암산성의 한쪽 낭떠러지 아래 흐르는 태자하는 물이 많이 말라 곳곳이 바닥이 드러나 있지만 물살이 힘차게 느껴지는 한편 그 유유함이 든든해 보입니다. 백암산성은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성을 보호하는 덧성과 치, 그리고 독특한 축성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전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발굴 작업으로 드러난 남쪽 성벽에는 분명하게 덧성을 볼 수 있습니다.  

 

스님이 초기에 이곳에 오셨을 때는 고구려의 산성의 특징은 독특하며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다고 얘기 들었지만 지금은 요하 문명의 유적이 알려져 그곳에서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엿볼 수 있어 고구려가 요하문명 즉, 배달문명을 계승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천혜의 요새를 찾아내고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이용하여 적절하게 성을 쌓는 고구려인들의 지혜가 감탄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적의 침입을 발견했을 때의 병사의 심정이 상상이 되고 요동성이 무너졌을 때 너무도 힘없이 함락된 걸 보면 철옹성도 소용없고 지금 우리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집니다. 

 

백암산성이 있는 곳에서 평야지대가 끝나고 백두산까지 산악 지대가 계속되고 다음 여정인 홀본산성으로 가는 길은 고구려가 요동 정벌을 나갔던 길이기도 했고 반대로 이 길을 통해 3번의 침략을 당했다는 스님 말씀을 들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

   

다음 도착한 곳은 고구려의 첫 수도, 홀본산성입니다. 중국에서는 다섯 여신의 전설이 내려오는 오녀산성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길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약 20여년 전 스님이 북한 아사자를 돕기 위해 현장 조사하러 오셨을 때 우연히 이곳 홀본산성을 찾아오게 된 사연을 얘기해 주신 덕분에 스님은 숨이 차셨겠지만 우리들은 재밌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계단을 다 올라가서 숨을 고르며 서쪽 성문의 특성에 대해 설명 듣고는 전망이 좋은 망대에 들러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다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전망이 기가 막힌 장소가 나옵니다. 날씨가 맑으니 멀리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마치 백두산 천지와 견줄 수 있을 만큼 멋지게 펼쳐져 있어서 스님께서는 이번에 천지를 못 볼 수도 있으니 실컷 봐두라고 농담을 하셨습니다. 정말 천지와는 사뭇 다르지만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활한 경관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원래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환인 지역에는 고구려의 고분들이 많았는데 댐을 건설하면서 모두 수몰되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지만 물속에 있다고 해서 없는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어쩌면 지상에 있는 것보다 더 보존이 잘 될 수도 있다고 위안해 봅니다. 하지만 중국은 유적은 있되 역사가 없고 우리는 역사는 있되, 유적이 없다는 스님 말씀에 안타까움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좁고 매우 가파른 계단을 잔뜩 긴장하면서 내려가다 보면 말에 물을 먹였다는 음마지가 나오고 좀 더 내려가면 동문 성벽에서 공()자형 성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힘들게 왔는데 다 보고 가야 한다며 가파른 지형에 쌓아놓은 동문 성벽의 특징과 공자형 성문의 모습을 한 사람이라도 다 알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산을 내려가서는 박물관에 가서 방금 보고 온 홀본산성의 모습을 다시 설명해 주셨고 폐관 시간 때문에 서둘러 여기 저기 둘러본 후 박물관을 나오니 초생달이 우릴 반겨 주었습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빵 하나로 점심을 때운 일행은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하고 호텔로 이동 후 바로 가방만 로비에 둔 채 강의장에 모여 스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다들 피곤할 것을 예상하시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자리에 앉지 않으시고 맨 앞사람들 사이에 서서 사람들이 지루해 하거나 졸지 않도록 배려하시면서 강의해 주셨습니다.

이번 강의는 민족의 시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배달 문명은 동북지역의 모든 민족에 해당이 되는 거예요. 그 중 민족의 주류, 가장 장자가 우리 민족이다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민족 밑에 있다가 제일 먼저 독립해서 나라를 만든 게 선비족, 연나라, 그 다음에 제나라. 연나라는 3,4세기에 후연을 만들어서 고구려와 각축을 하죠. 그 다음에 흉노, 그 다음이 돌궐, 지금의 몽고, 그리고 거란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 몽골의 원나라로 이어지지요. 그러나 이쪽은 초원에 살기 때문에 우리처럼 단일국가라고 보기보다는 추장의 연합체 같은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어요.”

거란, 여진, 돌궐, 흉노 등의 민족은 우랄 알타이어계로 오히려 한족보다 우리에게 가까운 사촌 같은 민족이지만 미개한 오랑캐로 인식이 남아있는 것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영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민족과 이들의 국가를 모두 중국으로 인식하는 오류에 대해 지적해 주셨습니다.

  
  

민족의 시원에 대해 알아야 하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손에 잡히고 현재 볼 수 있는 건 고구려발해에요. 고구려 발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왔느냐 하면 부여에요. 부여의 뿌리는 조선이고 조선의 뿌리는 배달인데, 배달과 조선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적이 없는데 지금 요하 상류에서 이런 거대한 유물과 유적이 발굴이 되어 있어 중국과 협력해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하 문명은 중국과 우리 사이에 논쟁하기보다는 동아시아 문명의 풍요로움이라고 볼 수 있고 세계 문명가운데 가장 앞선 문명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해 간명하게 설명해 주시며, 국사시간에 배웠지만 잘 꿰어지지 않는 중원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핏 계속 중국 땅이었을 거라 생각되는 동북아시아의 땅이 실제로는 중국 땅이 아닌 기간이 훨씬 많았음을 일깨워주실 때 우리도 모르게 중국이 원하는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흠칫 놀라게 됩니다.

     

이 동북 땅은 원래 중국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동북지역 사람들이 중원을 점령한 게 더 많습니다. 고조선이 있었고 그 다음에 올라오면서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이게 다 중원의 주인이었어요. 그러나 대충 보면 북경지역을 경계로 해서 기력이 세면 내려갔다가 밀렸다가 이런 거예요. 역사기록을 할 때 동아시아 전체 역사를 알고 우리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항상 부족한 게 현재 우리 조선민족만 보고 하니까 역사가 왜소해 보이는 거예요. 크게는 문명사로 봐야 돼요. 동북민족과 남방민족이 세력을 겨루는 형세를 보고 동북민족 중에 누가 주도를 잡느냐를 봐야 합니다. 순서로 보면 다시 우리한테 기회가 온 거예요, 문명의 순환론으로 본다면.”


    

한국의 역사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중국의 역사를 함께 설명해 주시니 훨씬 역사가 입체적으로 다가오고 더 재미있었습니다.

11시가 다 되어서야 열기가 뜨거운 첫 날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내일은 집안의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보기 위해 4시 반 출발이라서 모두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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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립

수고하셨습니다.

2014-07-10 22:20:32

김용자

고생많으심나다

2014-07-08 16:45:27

불대생

우리 법륜스님은 길고 가파른 계단 올라가시면서도 설명하신다고 숨이 차셨겠군요..아...우리 스승님 힘들게 하지 마세요~~ 입재식날 멀리서 뵈도 입술이 다 터지셨던데.... 과로가 생활이신 우리 우리스승님...아프지마세요~ 우리 스승님! 우리법륜스님께 에너지 보냅니다~ 화이팅! 아프지 마세요!

2014-07-04 12: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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