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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성지순례 날입니다. 오늘 일정은 어느 성지보다도 기대가 됩니다. 부처님의 수행과 성도, 교화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는 일정이기 때문입니다.
새벽 5시, 새벽예불을 마치자마자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밤새 만들어준 주먹밥을 받고 길을 떠납니다. 안개가 자욱한 칠흙 같은 어둠 속에 서로가 빛이 되어가며 부처님이 가셨을 그 길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오늘은 버스로 가는 게 아니라 도보 순례입니다. 부처님께서 네이란자라 강변에서 쓰러져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수자타마을, 우루벨라 가섭과 500명을 교화한 곳, 그리고 부처님의 성도지 보드가야 대탑입니다.
건기로 인해 바짝 마른 네이란자라 강 모랫길을 앞서 가는 도반의 발자국과 작은 후레쉬 불에 의지하며 45년을 길에서만 교화하시며 법을 전하신 부처님 당시를 상상해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니련선하 강 모랫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긴 순례단을 보니 1250명의 제자와 함께하는 부처님의 교화행렬과 지금 이 길을 가는 이들이 함께 오버랩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임이 자랑스러워집니다.
둥게스와리 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고 논밭 길을 지나는 여정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날이 희뿌옇게 밝아올 무렵 인도 JTS에서 건립 중인 명상센터 예정지에 도착하여 주먹밥으로 아침식사를 하면서 언젠가는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이곳 명상센터에서 인도 불교의 부흥을 위해 일하리라 발원해봅니다.
“부처님께서는 네이란자라 강 건너 전정각산의 고행림에서 6년간 수행을 하시다가 중도를 발견하고 산에서 내려오시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 이전의 생활이 욕망의 충족으로 얻어지는 쾌락을 맛보며 지내왔다면 출가 후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으로 그것 또한 욕망의 반응으로 살아오심을 알고 이 마저도 버리고 욕망을 다만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중도를 발견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게 됩니다. 네이란자라 강을 건너 목욕을 하다가 쓰러지셨는데 마침 소젖을 짜서 돌아오던 촌장의 딸 수자타가 이를 발견하고 우유에 쌀을 넣은 죽을 공양 올린 자리가 바로 이곳입니다. 그 자리를 기념하여 아쇼카 왕이 탑을 쌓았던 곳입니다. 그 죽을 드신 부처님은 그래서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쌓은 탑터 주위에 수자타 템플이 세워졌지만 현재는 힌두교 절로 남아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성도 직전 올린 수자타의 공양이 왜 불교 최고의 공양인지를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수자타의 공양이 중요한 것은 부처님을 위대하게 한 게 아니라 수자타를 위대하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인 줄 알고 공양을 올리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냥 길거리에 쓰러져가는 수행자를 정성스럽게 간호했는데 그 사람이 부처가 됐다는 것은 이 세상의 가장 천하고 작고 낮은 자가 부처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의 가장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하는 것과 같다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수자타의 공양이며, 수자타의 공양이 칭송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둥게스와리의 학교를 ‘수자타아카데미’라고 이름붙인 이유도 어쩌면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수자타의 후예일 것이고, 많은 순례자나 부처님마저도 그들의 공양을 받은 분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 공덕으로 우리들에게 불법이 전해졌고, 법을 받은 우리가 이곳에 와서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가 있으며, 수자타가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공양 올려서 살려서 붓다를 만들었듯이 우리도 버려진 아이들을 부처님을 공양하듯이 하자는 것입니다. 도와준다는 개념보다는 공양 올린다는 개념에서 수타타아카데미라 이름하였습니다.”
네이란자나 강은 두 갈래로 나뉘어 흐르는데 왼쪽을 모하나 강, 오른쪽을 네이란자나 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우루벨라 마을은 이 두 강 사이에 있으며 우루벨라 가섭이 500명의 제자와 함께 수행하던 곳은 지금의 모하나 강변에 있습니다. 이들은 불을 피워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불을 숭배하는 집단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60명의 제자들을 모아놓고 ‘모두 전도의 길을 떠나라’ 하고는 당신도 우루벨라로 가서 교화하겠다고 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에 도착하여 부처님은 우루벨라 가섭에게 ‘하룻밤 재워달라’고 했으나 여기는 잘 장소가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어디든지 좋다’고 했어요. 여기서 어디든지 좋다고 한 것은 네 맘대로 해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루벨라 가섭은 ‘남은 장소는 독룡이 있는 굴밖에 없다’면서 그곳으로 안내하며 내심 ‘오늘 젊은 수행자가 한 명 죽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죽은 줄 알았던 부처님이 멀쩡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우루벨라 가섭이 이 젊은 수행자가 보통이 아님을 알았지만 그래도 자기의 신통보다는 못하다고 여기고 360가지의 신통으로 내기를 했다고 해요. 그만큼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독룡이 살았다는 굴은 우루벨라 가섭이 이후 부처님 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코브라를 조각해 놓고 힌두교 사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우루벨라 가섭의 교화를 보면서 지식이나 재주를 많이 가진 이는 그만큼 법을 만나기 쉽지 않으며, 바꾸어 말하면 전법이 쉽지 않다는 의미이니 온갖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부처님께서 이미 그 길을 일러주셨으니 그분이 가신 길만 따라가면 되니 이 또한 감사할 뿐입니다.
논과 밭이 어우러진 둑길을 지나는 긴 행렬, 이른 새벽의 도보순례여서 몸은 무겁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마을과 밀밭을 지나 부처님께 공양올린 수자타의 집터에 이르렀습니다. 수자타의 공덕을 기려 큰 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드디어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곳, 보드가야의 대탑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 일부는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을 준비하여 앞서 나가고 나머지 일행은 가사를 수하고 긴 행렬을 이루어 대탑에 이르렀습니다. 얼마 전 티벳 승려들의 참배시 대탑에서 폭발사고가 있어 검문이 좀 삼엄합니다. 우리는 대탑을 돌며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고 탑의 4면을 빙 둘러 에워싸고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과 사시예불을 올렸습니다.
참배객이 많아 오래 머물 수 없어 명상원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스님으로부터 보드가야 성지에 대한 설명에 이어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설하신 경전을 다함께 합송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들 보드가야 하면 부처님께서 깨달은 곳으로만 알고 있지만 이곳은 부처님의 수행, 성도, 교화를 함께 하신 중요한 곳입니다.
특히 부처님의 전법 교화에 있어 중요한 곳입니다.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에서는 60명을 교화한 데 비해 이곳 우루벨라에서는 1천 명을 교화하셨습니다. 그것도 일반인이 아닌 수행자 집단의 교화를 통해 당시 대국인 마가다국의 왕을 교화하는데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가섭 3형제와 함께 왕사성으로 갔기 때문에 빔비사라 왕을 쉽게 교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하신 전정각산과 부처님께서 사르나트에서의 전법선언 후 대규모로 교화를 하신 우루벨라도 모두 보드가야를 중심으로 위치해 있습니다.
순례 일행은 차량별로 나뉘어 법사님의 인솔아래 찬찬히 보드가야 대탑을 다시 참배하고 개인별로 기도명상을 하며 짧지만 성도지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보냈습니다.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부처님 성지순례는 마을마다 다니면서 나이 드신 분들에게 불교 성지에 대한 전설이나 구술을 받아 성지순례지도를 새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인도 성지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일본에서 정리한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불확실한 부분도 있고 해서, 그래서 앞으로 인도와 한국 청년 108명과 함께 한 달 정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그 일을 마음껏 해보고 싶어요. 인도가 산업화가 되면 전설이나 구술이 모두 없어지기 때문에 그 전에 해야 하는데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여기저기 청년 아닌 어른들도 함께 하고 싶다며 아우성입니다. 대중의 요청대로 우리 손으로 부처님 성지를 다시 쓰는 그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순례 일정이 진행될수록 스님의 성지에 대한 애정과 한 인간으로서의 부처님에 대한 재조명, 그리고 그 법에 대한 귀의도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우리의 삶은 늘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열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부정해도 안 되고, 한계 속에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인간에게 희망이 생기는 겁니다.
여기서 부처님이 성도하심은 인간이 가진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 희망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를 두고 어떤 분은 우주가 한 번 생기는 거보다 더 귀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하다는 데 희망이 있는 게 아니라 이 한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붓다께서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순례에서 이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나이, 직업, 남녀, 지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존재임을 자각한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희망적인가. 비록 눈물을 흘리지만 이에 젖지 않고, 슬픔을 느끼지만 빠지지 않고, 화를 내고 괴로움에 몸부림치지만 이에 메이지 않고 일어서서 도전하고 나아갈 수 있는 거, 죽음이 다가올 때 호흡기를 끼고 몸부림 치기보다는 때가 되면 미소 띠고 죽을 수 있는 삶, 이런 삶을 가지면 좀더 복되지 않은가. 부처님 법을 만났으면 지위, 학벌, 남녀, 더 나아가 성격이나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루를 살더라도 자기 자신을 만끽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세상에 유용하게 쓰이고 생을 마칠 수 있으면 복되지 않은가.
이것이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피가 아닐까. 이보다 더 큰 선물을 우리가 이 세상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부다가야 대탑에서 붓다가 되는 것을, 단순히 능력적인 면에서 보지 말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다시 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수행, 성도, 교화하신 보드가야 순례를 마치고 숙소인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하여 저녁에는 <수자타아카데미의 오늘>이라는 주제로 현재 활동상에 대한 현지 활동가의 프리젠테이션과 스님 강의가 있었습니다.
내일은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0주년 행사가 있습니다. 행사 후에는 둥게스와리 지역의 마을 방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