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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는 어제 일정이후에도 회관에서 밤새워 원고교정 작업을 해서 이제 원고교정은 다 끝냈다고 합니다.
오늘은 경기도 이천에서 ‘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개막식이 있었습니다. ‘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행사중 ‘국제도자학술회의’에 특별강연으로 스님께서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 약 100여명을 대상으로 ‘21세기의 공동체’ 라는 주제로 강의가 있었습니다.
“호주나 미국 같은 이민사회는 법률에 의해서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민사회에서는 사람의 정서나 감정이 중심이 아니라 법률에 의해서 질서가 유지되므로 공동체 붕괴현상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동체 붕괴현상은 국가나 사회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고 개인의 자기 정체성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오직 돈, 소비, 물질에만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공동체성이 붕괴되니까 사회 구성원간에 갈등이 심화될 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사이에도 갈등이 첨예해져 가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자연의 토대위에서 살아가는 것인데, 우리가 자연의 은혜위에 살아간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는 힘이 자연이 복원하는 힘보다 커졌습니다. 지금 인간이 포크레인이나 다이너마이트로 자연을 폭발시키면 자연이 스스로 복원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파괴가 일어나기 때문에 자연훼손이 심각합니다. 자연이 재생산이 안 될 정도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문제가 심각합니다. 환경 공동체는 인간 공동체가 아니라 생명 공동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생명 공동체가 파괴되면 인류문명이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결국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못에서 프랑크톤이 태양의 빛을 보고 자라고, 물벌레, 개구리, 뱀이 살아가고 있는데, 개구리가 볼 때 뱀의 위협속에서 살아야 하니 뱀을 제거시키면 개구리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하느님께 기도하거나 자기들이 힘을 모아서 뱀을 제거할 때, 일시적으로는 개구리가 번식하지만, 개구리 개체수가 일정 수 이상 늘어나면 생태연못의 물벌레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한순간에 개구리가 전멸합니다. 그러니 개구리는 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생태공동체로 볼 때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입니다. 개구리에게 있어서 일시적인 성장과 멸망에는 뱀이 필요 없지만, 개구리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서는 뱀이 필요한 것처럼, 오늘 인류 문명의 발전이 지속적인 번영을 하려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발전이라는 가치관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인류의 올바른 삶의 방향이라면 중국사람, 인도사람, 아프리카 사람들도 1인당 GDP가 2만불 , 3만불로 살아야 하는데, 그러면 지구환경은 존립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문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선진국이 계속 발전하려면 나머지 인류는 빈곤상태로 묶어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같이 공멸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선진국 국민부터 소비수준을 줄여야 합니다. 소비를 통해 만족을 얻고 기쁨을 얻는 이 문명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즉, 절대빈곤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빈곤을 퇴치해야 하고, 과소비하는 나라 사람들은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사람들은 아직도 경제 때문에 다 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식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GDP가 50만불이 되어도 경제 때문에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지구 공동체를 오래도록 유지하려면 더 이상 소비를 확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지구 저편에 있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우리 후손의 삶의 터전을 남겨두고 그 위에 우리의 소비를 적절하게 하는 환경 윤리적 관점 없이는 이제 더 이상 진리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인구의 20%가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인구의 20%는 절대빈곤 상태에 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유엔에서는 그들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개발자금을 각 나라 GDP의 0.7%를 지원하자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등 아주 일부국가만 GDP의 1%를 지원하고 있고, 미국은 0.3%, 한국은 0.1%를 지원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한민국은 지난번 선거에서 복지가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쓰면 된다는 생각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생존을 할 수 있도록 최저 생존을 보장하고, 그 이상의 문제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수입을 가져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나 노인들, 신체장애가 있어서 정상적인 경쟁을 할 수 없거나, 병이 들거나, 재난을 당하거나, 갑자기 실업이 되면 이를 도와주는 사회보장제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새 정부도 선거때 한 복지약속을 재정의 어려움을 느껴 복지수준을 낮춘다고 해서 지금 갈등이 되고 있습니다. 세금을 더 내고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하는데 또, 세금을 더 내기는 모두 싫어합니다. 우리가 세금부담을 좀 더 지고 빈곤층에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한 가지 길입니다. 이념적으로 논쟁하기보다는 공동체의 기본자세라는 입장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남북한이 적대관계에 있다보니 북한이 굶어 죽어도 미워하고 잘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세는 잘못된 것입니다. 북한 어린아이들에게 정치적인 관점을 넘어선 인도주의적 지원은 민족 공동체를 복원하는 길이고 세계시민의 자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간의 삶의 가치가 바뀌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고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개인의 변화, 즉 자기의 고통을 해결하고, 자신의 삶이 이웃과 공존할 때 보람이 있다는 면에서 인생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인류, 사람만이 아니라 지구, 생명 전체에 대한 통합적인 인식이 필요합니다.
도자기를 만들 때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흙을 잘 다져야 합니다. 잘 섞이도록 잘 다져야 하고, 잘 구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라지거나 부서집니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결국은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전통적인 공동체가 붕괴되고 인종, 민족, 신앙, 이념이 다른 사람이 모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적인 소수자와 장애인도 함께 다양하게 섞여서 살아갈 때 과거에 연연해서 피부색, 성별, 종교에 의해 차별한다면 더불어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이제는 자기 에고를 내려놓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흙반죽이 잘되어야 하는 것처럼 서로 잘 어울려야 합니다. 그러나, 반죽만 잘된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서 높은 온도에서 이것저것이 다 녹아서 하나가 되는 용융과정이 있어야 하듯이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체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불교와 기독교를 뛰어넘는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생명과학에서 토마토와 감자가 열리는 감토가 나타나는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종교와 과학이 분리되면 안됩니다. 진리는 종교적으로 보나 과학적으로 보나 일치되어야 합니다. 물질문명을 연구하는 사람도, 정신문명을 알아야 하고, 의학도 양의와 한의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강의하면 기독교인이 80%라서 그 사람들이 이해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고등학생에게는 불교의 인연과보를 뉴턴의 제2법칙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수처작주라고 해서 어디에서라도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서든 주인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부터라도 적게 쓰고 아껴 써야 합니다. 맥도날드에서 냅킨을 푹 가져가서, 한두장 쓰고는 안 쓴것도 같이 쓰레기통에 버려 버립니다. 결국은 이런 것들이 쌓여서 지구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제국의 멸망을 보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소비가 생산보다 많아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25곳에 강연을 했다고 하니 미국의 인상을 묻길래, 제가 30년 미국을 다니면서 보니 미국이 늙어간다는 것과 미국이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동남아등 개발도상국들은 갈수록 개선되는데, 미국은 공항에 가면 나를 잠재적 범죄인으로 본다는 것이 역역하게 느껴졌습니다. 미국의 시큐리티 경비가 점점 늘어나는데 이런 방식이 과연 옳은 안보인지, 여기에 드는 경비의 십분의 일이라도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면 오히려 더 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미국에 대적할 적은 아무도 없는데 미국 안에서 그렇게 웅크리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점점 이것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카드키가 없으면 엘리베이트도 못타게 되어 있는등 공동체가 점점 붕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희망은 있습니다. 지난 수백년간 싸우던 유럽의 나라들이 각자 나라의 개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은 인류의 또 하나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일본의 행동을 보면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는 자세는 아닙니다. 중국도 국가주의가 지나치고, 남북한도 적대관계가 지나칩니다. 아시아가 경제성장 비중이 커지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의 태도로 볼 때 인류문명을 이끌어 갈 자세는 아닙니다. 적어도 문명의 미래를 열어가려면 적어도 북한의 잘못된 행동은 비판하지만 그런 북한마저도 포용해서 중국, 일본, 한국이 서로 협력하여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아름다운 도자기가 만들어 질려면 흙을 잘 섞어 다지고 난 후 뜨거운 불에 구워 모두 녹아서 하나가 되듯이 도자기를 구우면서도 우리 인류가 마치 아름다운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자세를 함께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스님께서는 물질만능주의로 가는 것을 경계하시며 다함께 잘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세계 문명을 주도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강의가 끝난 후 호주에서 오신 분은 한국의 도자의 역사가 깊은데,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 왜 그런지, 어느 정도가 가난하다고 할 수 있는지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중에 스님을 알아보고 와서 인사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도자기 전시장을 둘러봤습니다. 각나라 도예가들이 출품한 작품들을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제11회 통일체육축전이 있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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