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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30분부터 외부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모임이 있었습니다. 요즘 스님에게 최대로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 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긴장된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해서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며 지금의 이 난국을 타결할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십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는 서초법당에서 정토불교대학 특강 법문을 하셨습니다. 인간존중의 관점에서 환경문제와 복지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 정토불교대학 과정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을 특강으로 진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시면서 오전에는 환경, 오후에는 복지특강을 각각 2시간에 걸쳐서 해 주셨습니다.
“나의 삶은 주어져 있고 거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괴롭게 사는 길도 있고 행복하게 사는 길도 있습니다. 내가 만약에 좀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력은 안하고 잘 되게 해달라고 합니다. 잘 되고 싶어요 한다고 잘 되면 누가 노력을 하겠습니까? 잘되고 싶으면 잘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그만큼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인연과보를 말씀하신 겁니다.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과 연이 만나서 과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연과보라 합니다. 여기서 인이라는 것은 직접적 원인, 연이라는 것은 그 원인이 작용하는 주변 조건, 환경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인이라면 내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 이것이 연이예요. 똑같은 노력을 해도 주변 환경에 따라 성과가 더 날 수도 있고, 덜 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변화시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상구보리라고 한다면 내가 사는 주위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하화중생이라고 합니다. 전자의 목표를 성불이라고 하고 후자의 목표를 정토라 합니다. 불교대학에서 주로 배우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지면 좀 더 행복해지고 좀 더 자유로워지느냐는 것입니다. 기대를 낮추면 만족도가 커지고 기대가 높으면 실망이 커집니다. 내가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질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주변환경을 어떻게 할것인가하는 부분도 매우 중요합니다. 전체적으로 불교대학의 교과과정을 보면 자신의 마음가짐에 비중이 좀 더 많이 배정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특강으로 따로 배정을 해서 우리가 사는 이 주위환경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이것을 먼저 알고, 이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길인 것입니다. 이 주변환경이라는 것이 첫째는 자연환경입니다. 맑은 공기, 맑은 물, 깨끗한 음식, 살아갈 수 있는 쾌적한 환경들. 우리가 자연환경을 잘 보전해 나가는 것 그것이 내 삶에 왜 중요한지를 배우는 것이 환경특강입니다.
두 번째는 이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인간이 여럿이 모여 사는 사회 환경이 또 내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자연환경을 지구적인 문제라면 이 사회환경은 크게 넓히면 인류적인 문제입니다. 여기에 내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느냐. 더 좁혀서 우리나라로 돌아오면 지금 제일 중요한 게 우리들의 안전 문제입니다. 맑은 공기가 있고 풍부한 음식이 있다 하더라도 전쟁이 일어나면 삶이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평화문제, 남북대결의 근본은 분단에 있기 때문에 통일이 된다면 평화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가지, 환경, 복지, 통일이 특강으로 배정이 되어 있습니다.” 라며 불교대학 특강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오전에는 환경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환경문제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연기적 세계관 - 모든 것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연관되어져 있다 - 의 가르침이나 오계중 제1계인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마라’는 가르침에 있듯이 불자들이 중요하게 실천해야 할 사항이며, 현재 현대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입니다. 이러한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 연관되어진 존재라는 것을 알고,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빚어진 자연환경 파괴는 인간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어간다는 인식의 전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단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욕구에 끄달리지 않는 생활태도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행복, 인간의 행복, 후손들의 행복을 담보하는 생명을 위한 길입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으로는 먼저 소비를 줄이는 것이고, 두 번째가 폐기물을 재생, 재활용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검소하게 살자는 것으로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자자는 것이다. 검소하게 사는 이것이 수행자의 삶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일회용컵을 쓰지말자고 합니다. 이거 한다고 뭐가 달라집니까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시작을 해주고 모델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제로를 목표로 해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환경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만이 아니고 작은 실천부터 해나가야 합니다. 우선 절에 왔을 때만이라도 한번 실천해봅시다. 그러다가 집에서도 지키고 점차 나아가 우리 동네, 우리도시로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첫째는 음식물쓰레기부터 줄여 나갑시다.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음식물쓰레기의 양을 줄여서 현재 있는 처리시설만으로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정도가 가장 좋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만 전국적으로 5천억원 정도입니다. 여기서 20%만 줄여도 1천억원이니 이돈이면 북한 어린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둘째는 분리수거를 해봅시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을 해나갈 때 하나 밖에 없는 지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인식의 전환 뿐만 아니라 생활 태도도 바꿔나가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우리들의 환경인식에 대한 것과 우리가 실천해 나가야 할 부분까지 짚어주셨습니다.
법회를 마치자마자 스님께서는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겸해서 백학순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역시나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오후 2시부터는 정토회관에서 결사행자모임이 있었습니다.
다시 4시부터는 문수팀 행자교육이 진행되었습니다.
5시 30분에는 평화재단에서 계속적으로 안보전문가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오전의 환경특강에 이어 복지특강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늘 다룰 주제는 이 인간사회에서 우리 삶이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회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실천활동을 해야 하느냐입니다. 사람이 왜 혼자 안 살고, 둘이 살고, 셋이 살고 그럴까? 혼자 사는 것보다는 같이 사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냥을 할 때는 같이 하는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데, 그 수확물을 나눌때에는 경쟁관계가 됩니다. 이것이 사회가 갖는 두가지 특성입니다. 사회는 이 두가지 성질이 다 있는데 어느 것이 더 근본이고 바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협동하는 게 우선입니다.
예를 들면 혼자서 사냥을 하면 토끼 한 마리만 잡게 되는데, 둘이 사냥을 하면 토끼 세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세 마리를 잡아서 둘이 나눌 때 조금 더 가지려고 더 잡은 한마리를 가지고 다투게 됩니다. 정확하게 나누면 한 마리 반씩 가지게 되는데, 최대로 가지게 되면 두 마리가 됩니다. 그걸 넘어가면 이 협력관계가 깨져 버립니다. 그래서 최소로 가질 수 있는 것이 한 마리입니다. 한 마리도 못 가지게 되면 다음부터 같이 사냥하러 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이 다툼은 무한정이 아니고 한 마리와 두 마리 사이가 쟁점이 되고 경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넘어서면 협력이 깨어지게 됩니다. 상대편에게 한 마리 이하로 가면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상대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 사회입니다. 인간사회의 윤리라는 것은 같이 살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지 함께 살지 않으면 윤리가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배우는 계율이라는 것도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누구나 마음껏 자유를 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남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릴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까지입니다. 여기서 인간사회의 윤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환경 윤리도 마찬가지로 적용한다면 자연으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자연의 복원력을 넘지 않는 범위까지여야 합니다. 그걸 넘어버리면 자연이 파괴됩니다. 이익추구가 한계를 넘어버리면 공동체를 파괴해버리기 때문에 자기에게 심각한 손실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건 우리의 존재가 사회적 존재로서 단독자가 아니고 함께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연기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경쟁을 하는 건 좋지만, 그 경쟁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경쟁을 할 때는 첫째 경쟁이 공정해야 합니다. 출발 선상에서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똑같이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 게임룰도 공정해야 하지만 심판도 공정해야 합니다. 그 결과에 있어서도 공평해야 합니다. 공정과 공평의 차이가 뭐냐? 옛날에는 10명이 출발해서 1,2,3등을 정하고 1등은 노트5권, 2등은 3권, 3등은 1권만 주고 나머지는 안 주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1등 5권, 2등 4권, 3등 3권 그리고 나머지 7명에게도 각각 1권씩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평한 것입니다. 똑같이 나눠주는 게 공평한 분배가 아닙니다. 지금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자기 능력만큼 성과를 가져가는 이 시스템 하에서도 무한 경쟁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그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높아집니다.
복지는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는, 먹지 못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니까 먹는 것은 해결되어야 합니다. 간단한 질병에 죽는 것, 콜레라, 이질, 결핵 이라든지 이런 건 공동책임을 져야 합니다. 배고픈 자는 먹어야 하고, 병든 자는 치료받아야 하고, 어린 아이는 제 때에 치료받아야 합니다. 비록 적대국가라 할지라도 이 권리는 주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지입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굶어죽는 문제, 병들어 죽는 문제, 어린아이가 기초교육을 받는 문제는 종교와 관계없이, 인종에 관계없습니다. 마땅히 사람으로서 보호 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이런 의식이 없으면 여러분들은 인류애가 없는 사람들이고, 세계 시민이 아닙니다. 인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북한이 우리 민족이기 때문에 돕자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제3세계 구호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의 복지로, 구호의 의미에서의 복지가 아니라 인간이 행복하게 살 권리로서의 복지입니다. 어린 아이의 교육이 부모 책임에서 공동 책임으로 나아가고 있고, 초등학교 무상교육에서 중등학교 무상교육으로 가고 있습니다. 유치원도 지원하고, 아이를 낳으면 지원하는 제도도 생겼습니다. 이것 자체가 개인의 책임을 넘어서서 공동으로 책임져 주는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매일 자기가 쓰는 돈 가운데 우선적으로 천원은 먼저 내놓고 생활해 봅시다. 1달러 미만의 수입을 갖고 사는 인구가 지구의 70억 인구중 5분의 1이고, 연소득 2만달러 이상을 갖고 사는 사람이 세계인구의 5분의 1입니다. 2만달러 이상의 사람들이 1달러 미만의 사람들을 한 사람씩 그 생명을 책임져줘야 됩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이 책임을 다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아침에 기도할 때 하루 천원을 내기로 한 겁니다.
인간 삶의 기본은 자기가 노력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려면 세가지가 갖춰져야 합니다. 기회의 균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공평이고 이것은 사회 정의에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입니다. 실업 당했다고 갑자기 삶이 뒤바뀌는 일은 없게 해야 합니다. 이런 안전망을 구축해 놓지 않고 유럽같이 노동의 유연성이라며 갑자기 짜르고 하면 안됩니다. 실업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늙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데 연금수당 준다니까 걱정이 없어지고, 갑자기 해고되면 어떡하나 싶은데 실업수당 받을 수 있어서 걱정이 없고. 이런 식으로 안정망이 구축되면 삶이 훨씬 여유로워집니다. 이렇게 되면 게을러지지 않나 하는데, 이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사회적 보장제도도 외국에서 했다고 무조건 따라하면 안됩니다. 이걸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세금을 많이 내야 합니다. 이렇게 런 안전망들이 구축이 되어서 생존 문제가 불안해지지는 않게 하는 것입니다. 경쟁을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한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 이런 사회를 복지사회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의 복지는 생존권 보장의 복지와는 개념이 다릅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는 이것이 마땅한 권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금을 내는 것은 의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저부담 저혜택에서, 지금 고혜택으로 너무 빨리 가려고 하는데 그렇게 가면 안됩니다. 고부감 고혜택으로 가려면 고부담의 저항을 느낍니다. 중부담 중혜택,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 수준에서 맞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서 세금은 소득에 따라서 누진세로 내야 합니다.
이렇게 복지에 대해서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불교의 자비사상, 상구보리 하화중생 할 때 하화중생 한다는 것이 복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앞서가는 시대정신과 들어맞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환경에 대한 인식도 생기고, 복지에 대한 생각도 넓어지고, 통일에 대한 생각도 커져야 합니다. 이래야 불교가 비전이 있지, 절에 삼십년을 다녀도 꽉 막힌 사람이 되면 불교가 사회적 리더십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서 여러분들이 불교를 공부하는 중에 이 문제를 이해하시고 실천도 하셔야 합니다. 통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매일 아침 하루 천원씩 넣고 출근을 하셔야 됩니다. 이런 실천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스님께서 설해주신 환경과 복지에 대한 법문으로 이리저리 분산되어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어느때부턴가 놓치고 있던 것을 다시 다잡게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께서는 내일부터 미국방문 일정으로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강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해외에서 스님의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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