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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이구, 2층에도 많네요.
강연중에 못 쳐다 보더라도 양해바랍니다.
휴일날 강연을 해서 아침에 푹 쉬지 못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아침에 6시 25분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4.3평화공원을 참배하고 왔습니다.(박수)
어제는 천안에 강연을 하면서 독립기념관을 참배하였습니다.
일제시대 때 우리 국민이 겪었던 아픈 기억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아픈 그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또다시 그런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아픈 기억에 매달리면 마음에 한이 맺힙니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잘 기억하되,
그런 아픔들을 승화시켜서 다시는 그런 아픔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제시대 때는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모든 국민들이 그런 고통을 겪었습니다.
20만에 가까운 한국의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받았고,
20만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어 죽어갔고,
100만에 가까운 우리 청장년들이 강제징용되어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 고통들을 겪으면서도 계속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하였고,
그런 독립투사들의 공로로 독립과 번영의 대한민국을 이루었습니다.
제주도 4.3사건은 해방 후 우리가 통일된 독립국가를 건설하지 못하고,
분단된 상태로 혼란을 겪는 중에 좌우이념논쟁에 휩쓸려 국가공권력의
잘못된 사용으로 일어난 대량학살의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아픔을 딛고 일어나 다시는 이런 비극이 제주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제주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의 중심도시로 우뚝 서길 바랍니다.”
스님의 인사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
제주에서 이 정도 규모의 집회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848석인 큰 강연장인데 1540명이 참가해서 강연장의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제주지역 언론에서 제주도 강연 마치자마자 보도된 내용입니다.
『강연 이름을 ‘즉문즉설’에서 ‘인산인해’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날 강연이 열린 학생문화원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시사제주)
『그의 명성만큼이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열린 제주학생문화원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된 ‘즉문즉설’은 그야말로 ‘힐링캠프’였다.
고민들이 쏟아졌고, 스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의
명쾌한 해법을 안겼다.』(제주의소리)
질문이 쏟아졌고, 2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질문을 다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질문하려고 9시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질문도 못하고 간다는 어느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주도의 경우에는 다른 도시로 가서 질문을 할 수 없는 지리적 조건이기 때문에,
적어도 3시간정도의 강연시간을 잡고, 충분히 도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질문을 미처 하지 못한 분들께 죄송한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강연장의 대중들의 모습도 대단했지만, 희망지기와 희망봉사자들도 신이 났습니다.
스님이 제주도에 오시니, 얼마나 좋은가! 하며 얼굴에 기쁨이 한가득입니다.
강연을 준비한 어떤 희망봉사자의 글입니다.
“강연 시작은 10시 30분부터지만, 희망봉사단은 희망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강연시작하기 2시간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모두들 웃는 얼굴로,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움직인다.
희망봉사자들을 볼 때면, 언제나 힘이 솟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 속에는 늘 감동이 있다.
이번 강연을 통해 준비하는 시간의 기쁨과 설렘을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느껴본다.
제주는 한 달이상 지속된 가뭄으로 섬 전체가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된 가뭄으로 마음 또한 메말라지는 우리들 마음에
오늘 스님의 강연을 통해 말라있던 우리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실 소나기같은 말씀을 기대해 본다.”
스님이 제주도에 오니 공양대접하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라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올 해 강연 중에는 어떤 공양물도 받지 않겠다던
원칙대로 모든 공양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희망봉사단이 먹을 김밥 몇 줄을 얻어 들고,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로 향했습니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부근에 있는 원두막에 앉아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원주막 주변으로 벌써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아니, 지금 계절이 언젠데 벌써 코스모스가 이래 피어 있나?”
“참 예쁘다!”하며 감탄을 하십니다.
점심을 먹고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참배를 했습니다.
스님께 당시 역사에 대해서 이것저것 여쭤 봅니다.
스님은 삼별초에 대한 자세한 내용부터, 어떻게 이 곳 제주도에까지 와서
몽골에 항쟁하게 되었는지, 안내판에 적혀져 있지 않은 역사적인 내용들까지
하나 하나 알려 주십니다. 역사공부를 요즘 다시 하고 있습니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에서 강정마을로 향했습니다.
강정마을 불교청년회 부회장님의 안내에 따라 멀리 구럼비 부근 공사현장들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 평화센타로 가니, 법륜스님 오신다는 방송을 듣고
마을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이 정말 반가워하십니다.
여기서도 즉문즉설이 이루어졌습니다.
스님께 질문이 있으면 질문하라는 사회자의 말에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서 질문을 합니다.
민주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에 대한 울분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우리나라 정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첫째, 안보상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이 합당한가?
둘째, 제주도민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셋째, 이 곳 강정마을 주민들이 고향을 잃어 버리는 것이 경제적인 보상만으로 가능한가?
이 세 가지를 깊이 논의하고 면밀히 살펴서, 무조건 밀어붙이거나 투쟁만 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대화하고 토론해서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합당하게 풀어나가는
‘통합의 리더쉽’이 지금 필요한데
강정마을은 이러한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사업을 반대하시는 마을 주민들도
화가 너무 차 있으면 오래 지속적으로 해 나가지 못하므로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 나가려면 가슴에 있는 화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습니다.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얼른 서둘러서 서귀포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휴양지라고 하는 제주도에 와서도 스님은 바쁘기 그지 없습니다.
서귀포 강연장에도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여기도 사람이 많이 들어갈 수 있도록 좌석을 공간의 반정도만 깔고,
앞 쪽에는 바닥에 얇은 스티로폴을 쫙 깔았습니다. 그리고 무대에까지 앉아 강연을 들었습니다.
서귀포도 371석을 깔았는데, 760명이 앉고 서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질문이 바로바로 이어집니다. 서귀포에도 질문자가 거의 30대입니다.
강연장내에 열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모두들 초롱초롱 귀를 기울이며 스님을 바라봅니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합니다.
강연 후에는 스님의 오랜 도반인 법화사 주지 진우스님의 저녁 초대를 받고,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최근 불교계 사태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특별자치도 제주도에 와서, 제주도의 희망봉사단과
대중들의 뜨거운 열기를 더 많이 전달해주고 싶어 하다보니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희망을 가슴에 안고, 희망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음이 자랑스럽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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