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보리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리수 봉사자분들은 작업복을 입고 정토사회문화회관 곳곳을 다니며 꼼꼼히 안전 점검을 하고 계시겠지요.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내가 지금 누리는 이 깨끗하고 편안한 환경이 부지런한 누군가의 손길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과연 어떤 분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공덕을 매일매일 쌓고 계시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내가 잘 사는 길

저는 어릴 때부터 곱게 나이 들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면 막연했습니다. 그러다 정토회에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를 알게 되었고, 보리수 봉사를 실천하면서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잘 쓰이는 것이 잘 사는 길이고 곱게 나이 드는 것이라는 걸요.

“나랑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이 지어지면서, 저는 남편이 방재실에서 봉사하기를 바랐습니다. 정토행자가 아닌 남편은 소방과 전기에 관련된 자격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쓰이면 좋겠다"라고 강력하게 권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거절했습니다.

보리수 봉사 중(이두경 님)
▲ 보리수 봉사 중(이두경 님)

남편은 전근을 많이 다녔고 그때마다 아이들은 전학해야 했습니다. 큰아이가 고등학생일 때는 전라도 광주에 살고 있었는데, 전학할 수가 없어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침밥을 못 해주게 되자 저는 그 시간에 아이를 위해 절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성철스님의 예불대참회문으로 108배를 하고, 경전을 독송하고, 가족에게 감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송광사에 가서 새벽 예불을 드렸는데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템플스테이도 하고 바라지도 하러 다녔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기복신앙이었습니다.

지금은 정토회 법사가 된 언니가, 어느 날 제 남편에게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라고 권유했습니다. 알겠다고 했던 남편이 갑자기 회사 일로 못 가게 되는 바람에 제가 대신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 놓기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들을 처음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예전에는 마음 나누기가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많았던 어느 날, 기도 밴드에서 ‘나눔의 장’에 다녀온 도반의 기도문을 무심코 읽게 되었습니다. ‘나랑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마음속으로 따라 해보았습니다.

그 순간 꽁꽁 얼어 있던 마음, 원망, 미움이 한순간에 녹아내렸습니다. 남편이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술을 자주 마시는 남편이 이해되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큰 소리로 한동안 울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없지만 한 생각 돌이켜 남편을 이해하니 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유수스님과 함께(맨 왼쪽이 이두경 님)
▲ 유수스님과 함께(맨 왼쪽이 이두경 님)

보리수 봉사

수행법회에서 보리수 홍보 영상을 보았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지나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마음이 잘 맞았던 도반이 보리수 봉사를 함께 하자고 하길래 고민 없이 같이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세탁기가 고장 나도 고칠 생각을 못하고, 전등이 나가도 갈아 끼우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법사님과 면담 후 보리수 2기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방재실 업무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았다면 아마 보리수 봉사를 시작할 용기를 못 냈을 것입니다.

저는 소방 분과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보리수 업무 중 소방 업무가 제일 간단하다고 하지만 소방 분과는 현직 소방관, 소방 감리인 등 자격증을 갖춘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정말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되나?’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우리 분과장인 김은주 도반이 저에게 ‘그 자리에 있기만 하면 된다’라고 하여 소방 분과에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보리수 봉사를 위해 회관에 도착하면 보리수 티셔츠와 작업용 조끼를 입고, 명찰을 달고 보안카드를 목에 건 후 자유롭게 지상 15층에서 지하 5층까지 회관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살펴봅니다. 건물 관리에 필요한 공부도 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공양간 배수 장치 청소나 정화조 거름 장치 청소 등을 할 때 더럽다고 분별했지만, 이제는 그냥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도 덩달아 개운해집니다.

보리수 도반들과(가운데가 이두경 님)
▲ 보리수 도반들과(가운데가 이두경 님)

보리수 인연으로 만일결사 회향 공연에도 참여했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도반들과 만나 합창과 안무 연습을 하면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보리수는 매주 금요일에 법회가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법사님의 수행 점검이 있습니다. 그렇게 아침 기도와 일 수행을 해가면서 저에게 큰 변화가 왔습니다.

눈뜨면 겨우 시작하던 아침 기도를, 이제는 정해진 시간에 빠지지 않고 하며, 일과 중의 1순위로 삼고 있습니다. 또 지난 일이나 다가올 일보다 매 순간 지금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경계에 부딪혀 출렁거리고 시비 분별심이 나기도 하지만 예전보다는 더 빨리 알아차립니다. 할까 말까 망설이지 않고 즉시 해봅니다. 넘어져 주저앉아 원망하면 걸림돌이고, 딛고 일어나 탐구하는 자세로 나아가면 디딤돌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심문은 내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보약입니다’, ‘관점을 바꾸어봅니다’, ‘다름을 인정합니다’ 등과 같은 기도문으로 매일 정진하고 있습니다.

1차 만일결사 회향식 축하공연 리허설 중(맨 앞 오른쪽이 이두경 님)
▲ 1차 만일결사 회향식 축하공연 리허설 중(맨 앞 오른쪽이 이두경 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정진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공덕 속에 내가 살고 있었구나!’ 알게 되었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잘 회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회관에 와서 소화기를 닦고 소화전 눈금이 정상 범위에 있는지 살펴보며, 이렇게 정토행자가 되어 잘 쓰일 수 있다니 참 좋습니다. 제가 잘 쓰일 수 있게 해준 우리 ‘보리수!’ 감사합니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일 수 있도록,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도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8월호에 수록된 보리수 2기 이두경 님의 수행담입니다.

글_이두경(보리수2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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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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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향숙

꾸준히 수행하는게 쉬운게 아닌데요
꾸준히 수행하면 많은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4-02 06:05:28

이경선

봉사하시며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 보살님을 뵈면
참 멋있다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볼때마다 좋은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4-03-20 18:29:34

이복순

늘 한결 같이 따뜻하신
형님!
도반님!
같은 정토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24-03-20 15: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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