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불법 만난 행운으로 괴로움이 없는
실천의 길을 발견하다

윤진 님은 어렸을 때 환경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던 아이였지만, 어떻게 하면 남보다 많이 갖고, 남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어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욕심과 냉랭함이 가득 찬 삶은 너무 괴로웠고, 매일 죽음을 떠올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불교대학,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꾸준히 수행하고 전법하면서 삶의 방향을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바꾸어나가고 있는 윤진 님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행복은 나누며 가꾸어 나가는 것

윤진 님
▲ 윤진 님

어린 시절 저는 지구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자가 될까, 보육원 원장이 되어 소외된 이웃을 도와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환경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어른이 되면서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지, 어떻게 하면 남을 이길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내가 휴지 한 장 덜 쓴다고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냉소로 휴지를 마구 뽑아서 쓰곤 했습니다. 내 집 살 돈도 없는데 기부는 무슨, 오히려 내가 받아야 한다며 코웃음 치기도 했습니다. 욕심과 냉랭함이 가득한 삶은 괴로웠습니다. ‘괴롭기만 한 것이 삶이라면 차라리 그냥 죽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매일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죽고 싶다’라는 생각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었지만, 어떻게 해야 지금과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과 싸우고 있을 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2년 전 불교대학을 시작할 때 강의 순서를 보며 도대체 왜 환경과 생명 존중, 평화와 사회가 주제인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 의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기억하는 불교는 그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불하던 어른들의 모습과 부처님께 “우리 자식들 잘되게 해 주세요!” 하며 복을 비는 모습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교대학이 시작되고 다양한 주제를 하나씩 배울 때마다 제가 알던 세상이 조금씩 흔들렸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크고 무한한지, 거대한 우주에서 나는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지를 자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할머니와 부모님의 노력뿐만 아니라 환경과 사회, 수많은 생명이 서로서로 어떻게 도우며 살아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생명이 없었습니다. 정치적 이념으로 세워진 북한이라고 해도 굶어 죽어가는 또 다른 티끌 같은 존재가 있다면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함께 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전대학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관세음보살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려진 채 죽어가면서도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와 같이 고통에 빠지는 이가 있다면 내가 반드시 그들을 도와 구제하겠다’라는 원을 세우는 모습은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가면서도 일체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그렇게 큰 원을 세우며 죽는 사람 이야기는 처음 들어서 관세음보살님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나도 남을 돕는 삶을 살아야겠다’라고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5년 인도성지순례(두 번째 줄 맨 오른쪽이 윤진 님)
▲ 2025년 인도성지순례(두 번째 줄 맨 오른쪽이 윤진 님)

오늘은 선약이 있습니다.

어느 날 스님의 법문 중 “이왕 시작했으면 하루라도 더 날을 채워 절반이 되게 하고, 그것에 더하여 100퍼센트를 목표로 해보라”라는 취지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차피 하기로 한 것은 최선을 다해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씀이지만,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수업의 모든 일정을 우선하는 계획을 잡았습니다. 수업이 있는 날은 어떤 제안을 받아도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이라는 선약이 있기에 거절했습니다. 내가 달라지고 싶어 선택한 공부인데, 회사 일과 친구와 약속을 핑계로 수업을 빠지거나 미룬다면 달라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각각 5개월 과정으로 불법을 공부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법을 익혔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할 때 도반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기도 하고, 새로운 관점을 들으며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봉사하는 진행자와 돕는이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자연스레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매일 조금씩 제 삶은 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니 내 마음이 편안하고, 부처님 법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괴로울 일이 없었습니다.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되니 나누고 싶어졌고, 바위처럼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제 인생이 조금씩 항로를 바꾸었습니다. 괴롭다며 자살을 생각하던 제가 매일 웃음으로 살게 되면서, 가진 것을 나누며 잘 쓰이는 삶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학생들과(맨 오른쪽이 윤진 님)
▲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학생들과(맨 오른쪽이 윤진 님)

놀라운 새벽 수행의 힘

불교대학 과정 중 천일결사 기도에 입재했습니다. 새벽 5시 기상은 제게 말도 안 되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모두 108배 기도 수행이 그렇게 좋다고 해서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해보자’ 하는 딱, 그런 심정으로 천일결사 맛보기에 참여했습니다.

첫날, 기도를 마치고 출근하는데 머릿속에 뿌옇게 덮여 있던 안개가 걷힌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머릿속에 안개가 낀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108배와 명상을 하고 출근하니 안개가 걷힌 듯 머리가 맑았습니다. ‘설마 새벽기도 때문인가?’ 고작 108배를 하고 10분간 명상을 했을 뿐인데,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이 믿기 어려운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매일 이렇게 맑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꾸준히 새벽기도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가끔 빼먹기도 했지만, 불교대학 진행자님의 진심 어린 격려에 힘을 내고, 도반들이 늘 같은 시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니 제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맑아 회사에서 졸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환경을 통제하는 힘이 생겼습니다. 내면이 정리되면서 몸과 마음에 힘이 생겼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온갖 물건이 굴러다니던 집이 어느새 깨끗해졌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1년간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108배를 하며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명상하며 내 마음을 바라보는 알아차림이 되면서 제가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꾸준한 ‘알아차림’과 ‘고집 내려놓기’를 연습한 덕인지 사회생활에서도 짜증을 내려다가 멈추고, 설사 짜증을 냈더라도 ‘내가 이럴 때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구나, 고집했구나’라고 알아차렸습니다. 알아차림이 빨라지니 갈등 상황에서도 바로 행동을 수정하고 해소하는 방향으로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한 제 모습에 가장 놀란 것은 바로 저 자신입니다. 꾸준한 수행의 힘은 아주 미세했지만, 그 작은 힘은 조금씩 제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학생들과(가운데가 윤진 님)
▲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학생들과(가운데가 윤진 님)

부처님 발자취에서 삶의 방향을 찾다

불교대학, 경전대학, 천일결사 기도, 깨달음의 장, 4박 5일 명상 수련까지, 정토회 프로그램을 하나씩 밟아나가는 사이 불안하던 제 삶이 조금씩 평온해졌습니다. 이번에는 14박 15일 여정의 인도성지순례길에 올랐습니다. 첫날 수계식에서 수행자로서 잘 보내려는 경건한 마음으로 명상하고도 따뜻한 짜이와 간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에 이끌려 어느새 군것질하는 제 모습을 바라본 경험은 흥미로웠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법륜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책과 법문으로만 배운 부처님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태자로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 수 있음에도 괴로움이 없는 중도의 길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위대한 붓다가 되신 여정을 보며 제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돈이 없거나 회사를 못 다니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었습니다. 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버리고 여여하게 사신 부처님처럼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을 다 잃는다 해도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면서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내일이라도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괴롭던 출근길이 편안해지고, 당장 퇴사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출근하는 하루하루는 가벼웠습니다. 누군가의 평가나 시선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면서, 언제든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에(오른쪽이 윤진 님)
▲ 인도성지순례 중에(오른쪽이 윤진 님)

수많은 나를 마주한 여정

성지순례에서는 모든 여정이 수행이었습니다. 도반들과 단체생활을 하며 분별심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짜증이 나서 속상하기도 하고, 갈등 상황에서 회피하려는 성향과 자꾸만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정면으로 보면서 업식의 작용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어느 때보다 나를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라는 도반의 말처럼 끊임없이 저 자신을 마주하고 또 마주하면서 얼마나 나를 고집하며 살았는지 깨달았습니다.

법륜 스님이 “여러분은 한국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걸 누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실 때 ‘나는 집도 없고 월급도 나보다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스님은 내가 무엇을 누린다는 것일까?’라며 투덜대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난과 국가 시스템의 부재로 초등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는 인도 아이들 앞에 서고 보니 순례길에서 주어진 소박한 식사와 난방 시설 없는 잠자리는 차라리 호화로운 것이었습니다. 운 좋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이 온전히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인도 사람들의 굶주림 또한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검소한 생활로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난 사람으로서 이 땅의 모든 존재가 괴롭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생명과 존재에게 입은 공덕을 회향하고자 정토회 가르침에 따라 수행, 보시, 봉사하며 잘 쓰이는 삶을 살겠습니다. 불법 만나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할 것이 넘쳐나는 제 삶은 지금 충분히 풍요롭습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5월 호에 수록된 청년수행톡톡입니다.

글_윤진(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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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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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윤

우와 새싹님이다~~
처음 정토회 수업 따라가며 초발심이 확 타올랐다가 지금은 좀 사그라든 상태에서 읽으니 나를 돌아보게 되고
더욱 더 글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넘 멋있어요~~ !

2025-12-29 13:29:02

손경희

잘 읽었습니다. 도반님의 글에 많이 공감하면서 내년에 있을 성지순례길에서 마주할 나의 업식 또한 기대해봅니다 . 소중힌 경헠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2025-12-29 11:35:10

김미정

솔직한 수행담에 나누어줘서 고마워요😁
우리 꾸준히 정진해서 자유롭게 살아요~

2025-12-29 10: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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