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정토행자상 수상자
나도 세상도 행복한, 장부(丈夫)로 살아가는 삶

지난 2-1차 천일결사 회향식에서 깊은 울림을 전하던 정토행자상 수상자들 기억하시지요? 이번 5월을 맞아 정토행자상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대상에 빛나는 백기순 님은 “어떤 삶이 수행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2008년 서초 법당 문을 처음 두드린 뒤 여러 소임을 거쳐, 지난 천 일간 사무처 처장으로 살아온 시간. 2013년 큰아들에게 신장을 이식한 뒤 수술실에서 눈을 뜨며 “남은 생은 세상을 위해 살자”고 다짐했고, 그 길로 정토회 활동에 온 삶을 바쳐왔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인터뷰는 서면으로 대신했지만, 그가 전해온 답은 여전히 따뜻하고 단단합니다. 그 삶 자체가 ‘수행’에 대한 하나의 응답처럼 다가옵니다.

대상 상장과 2010년 동북아 역사기행 중 백기순 님
▲ 대상 상장과 2010년 동북아 역사기행 중 백기순 님

Q. 정토행자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2-1차 천일결사 회향식에서의 수상소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A. 수상이 결정되었을 때 솔직히 부담이 있었어요. 2-1차에 들어 불교대학 입학생도, 입재식 참가자도 기대만큼 늘지 않아 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조금만 돌아봐도 현장에서 묵묵히 애써주신 분들이 훨씬 많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그 모든 분들께 상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토회가 도반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다 줄 수 없기에 지원 소임을 대표해 받으라는 뜻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 상을 받아 다시 도반들에게 전하면 되겠다고 여겼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하고 당당해졌어요. 이 상은 제 것이 아니라, 정토회 도반 모두의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대신 받았습니다.

Q. 백기순 님의 수행담은 정토행자의 하루에 한 차례 발행(‘23.03.24) 했습니다. 그래도 궁금하네요. 정토회와는 어떻게 인연 맺었나요?

A. 남편과의 관계가 힘들어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1995년쯤 홍제동 법당에서 법륜스님을 직접 뵙고, 법문을 테이프로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아버지를 미워하던 마음이 이해로 바뀌며 한없이 가벼워졌던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 법문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넷으로 법륜 스님을 검색하고 2008년 여름 서초 법당을 찾아갔어요. 그곳에서 ‘자녀를 위한 최고의 선물은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라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들을 위해 이것 하나 못하겠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남편을 향한 참회기도를 시작했어요.

2009년 불교대학에 들어가며 바로 모둠장과 집전 소임을 맡았습니다. ‘이 길만이 살 길이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어요. 남은 생은 정토회에서 수행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지요.

2025년 화성지회 향남모둠 모둠활동(맨 오른쪽 백기순 님)
▲ 2025년 화성지회 향남모둠 모둠활동(맨 오른쪽 백기순 님)

Q. 지난 천 일은 사무처 처장으로 활동했는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늘 쉽지 않았습니다. 2-1차 천일결사 기간 동안 해야 할 과제는 많았고, 모두 해내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저 할 수 있는만큼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어요.

가장 힘들었던 때는 2024년 말 상임 천준위가 발족된 이후였습니다. 2025년 6월 사무처 회원국장이 소임을 내려놓고 상임 천준위로 파견되면서 공백이 생겼고. 이를 제가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병가로 자리가 빈 사무처 교육국장 업무까지 겸임하게 되면서 부담이 크게 늘었어요. 그때는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 고 버텼지만, 결국 저까지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2024년 11월, 사무처 회원국 워크샵(정면 회색가디건 백기순 님)
▲ 2024년 11월, 사무처 회원국 워크샵(정면 회색가디건 백기순 님)

Q. 지난 3년, 봉사나 수행 과정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 장면은 없지만, 제 안의 '외면하는 업식'을 알아차린 점이예요. 그 업식은 '사람을 잘 믿고 의지하는 모습'으로 드러났어요. 귀찮거나 하기 싫은 일, 혹은 자신 없는 일이 닥치면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물러서는 제 모습을 사무처장을 하며 알았어요.

그 뒤로는 외면하고 싶을수록 관심을 더 기울이는 연습을 했어요. 그런 변화는 가족들이 가장 먼저 알아봐 주었어요. 그때 참 기뻤습니다.

Q. 정토행자상 대상을 받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누구인가요? 그분께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남편입니다. 저 때문에 마음 고생을 참 많이 했거든요. 가정적인 남편은 제가 정토회 활동에 전념하며 가정에 소홀했던 시간을 많이 힘들어했어요. 절로 출가할까 불안해하기도 했고, 직장을 다닐 때는 아침 일찍 나가 밤 11시, 12시에 귀가하자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이혼을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줬어요. 제가 직장도 그만두고 하루 종일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남편 덕분입니다. 경제적인 부분까지 책임지며, 집을 자주 비워도 이해해주었어요. 남편이 보살이에요. 사무처에 국장이 네 명인데 남편을 '사무처의 다섯번째 국장'이라 생각해요.

남편에게 “고맙다, 당신 덕분이다”라고 말했더니 픽 웃고 말더라고요. 언젠가 이 마음을 담아 삼 배를 꼭 올리고 싶어요.

2018년 통일특별위원회 회의(왼쪽 첫 번째 백기순 님)
▲ 2018년 통일특별위원회 회의(왼쪽 첫 번째 백기순 님)

Q. 정토회 활동으로 인한 가정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해요

A. 남편이 일정 부분 내려놓아 준 것이 가장 컸습니다. 세상을 위해 일하는 제 모습을 점차 이해하려 했고, 제가 수행하며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고 시댁과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정토회와 법륜스님을 신뢰하게 된 것 같아요.

저 역시 변화를 겪었는데, ‘남편도 우리 활동가다’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활동가에게는 정말 정성을 다하는데 남편과 가족에게는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니 자연스럽게 정성이 담겼고, 그 마음이 남편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눈빛이 달라졌어요. 늘 1순위가 정토회였던 제가 가정도 소중히 여긴다고 느낀 것 아닐까 싶어요. 남편이 바라는 것은 '관심'이었는데, 오랜 시간 그걸 몰랐어요.

한번은 남편이 노후에 시골로 갈까 고민하길래 “당신이 원하는 곳이면 이 세상 어디든 함께 가겠다. 다만 회의할 수 있는 나만의 방, 잘 터지는 와이파이, 이동 수단(제가 운전을 못해요)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이 여자가 나를 떠나 절로 가진 않겠구나’라고 안심한 듯 보였어요.

지금은 집에서 활동하는 온라인 정토회 덕분에, 제가 집에 있다는 자체로 남편은 만족해합니다.

2018년 행복학교 부스에서(머리 꽃 백기순 님)
▲ 2018년 행복학교 부스에서(머리 꽃 백기순 님)

Q. 세상을 위해 일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남편이 그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보시나요?

A. 2013년 큰아들에게 신장 이식을 해주었어요. 수술실 들어가기 전 서약서에 사인을 하잖아요. 그때 ‘수술이 잘못되면 죽을 수 있지만, 살아 나온다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남은 생은 세상을 위해 살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수술이 끝나고 눈을 떴을 때 ‘살았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한국에서 태어났기에, 이 시대에 살고 있기에 아들도 나도 살아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의료 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고마웠어요. 오랜 세월 기술을 발전시켜 온 인류에게 고마웠어요. 그래서 남은 생은 이 빚을 갚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직장을 그만두고 회복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하루 종일 봉사를 했어요.

아침에는 주간 회의, 저녁 7시부터는 직장인 활동가들과 회의,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는 날이 이어졌죠. 결국 남편이 심하게 화를 냈어요.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게 뭐냐?”고 물었더니, 주 3일만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의외로 소박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저는 알았다고 했어요.

그 이후, 일주일에 사흘만 봉사를 나가게 되었는데, 하루는 식탁에 앉아 있던 아들이 설거지하는 제 뒷모습이 너무 슬퍼 보인다고 남편과 이야기하며 웃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 그렇게 보였나 봐요.

그 일을 계기로 저는 다시 자연스럽게 매일 나가게 되었고, 남편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어요. 남편이 저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았던 것 같아요.

2017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 2017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Q. 소임이 겹치면서 결국 본인도 병이 났잖아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극복했다기보다, 지금도 회복 중입니다.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완전히 낫기는 어렵고, 회복하는데 2~3년은 걸릴 거라고 해요. 그래서 몸 상태를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했죠.

한 달 병가를 냈다가 소임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마음에 복귀했는데, 한 달 만인 12월14일 회향식을 마친 뒤 상태가 더 나빠졌어요. 이후 대부분의 회의에서 빠지고, 최소한의 소통만 하며 2-1차를 간신히 마무리했어요. 함께해 준 도반들 덕분에 끝까지 올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어차피 남은 생은 세상을 위해 살기로 했기에 그 과정에서 오는 번뇌는 없었어요.

Q. 정토행자로 살아가는 건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 주신다면?

A. 장부(丈夫)로 살아가는 삶이지요.
나도 행복하고 세상도 행복하게 하는 삶,
더 이상 사랑 받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사람,
그래서 당당한 삶!

Q. 앞으로 3년, 어떤 기대와 목표를 가지고 계신가요?

A. 올해 화엄반 6기 행자로 4월 중순 입재식을 하고 1년 과정의 교육을 시작했어요. 이 기간에는 교육에 집중하며 몸을 회복하는 데 힘쓰고, 이후 주어진 소임을 이어가는 것이 저의 기대이자 목표에요.

요즘 사전교육을 받고 있는데, 제가 이렇게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각 자리에서 활동해 주시는 도반들 덕분입니다. 곳곳에서 묵묵히 봉사해 주시는 분들께 가슴 깊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2026년 3월 선유동 연수원에서 화엄반 행자 교육(윗줄 오른쪽 세 번째 백기순 님)
▲ 2026년 3월 선유동 연수원에서 화엄반 행자 교육(윗줄 오른쪽 세 번째 백기순 님)


백기순 님의 이야기를 전하며, 저 또한 삶의 의미와 수행자의 자세를 다시금 되새깁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수행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이어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가 많은 분들께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_김정은 희망리포터(서제지부 구로지회)
편집_곽도영(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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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정

편하게 가고 싶어 한 발 뒤로 물러선 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활동에 번뇌는 없었다 하니 수행자로서의 본보기로 여겨집니다. 활동 중 남편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너무 공감이 되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건강도 잘 회복해서, 교육 마치고 1년 뒤에 법사님으로 건강하게 돌아오시길바랍니다.인터뷰하고 글 써주신 분께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2026-05-06 13:55:02

손경희

잘 읽었습니다. 남편에게 진심을 담아 삼배를 하겠다는 말씀에 저를 돌아봅니다. 항상 고마운 마음은 있는데 무뚝뚝한 내 모습이 부끄럽네요. 백기순 님 같은 정토행자가 계셔서 제가 이만큼이나마 수행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본받겠습니다.

2026-05-06 13:46:16

광효

거센 파도가 몰려와도 한결같고 편안한 모습이셨는데 많이 편찮으셨군요ㅠㅠㅠ 화엄반 공부가 만만치 않으실텐데 건강 잘 살펴가시면서...

2026-05-06 13: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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