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화성지회
나의 DNA 변천사
(정신질환 극복기)

첫 인터뷰라 내심 긴장하고 있는 저에게 문유미 님이 먼저 웃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저도 뭐 까먹으면 그냥 까먹었다고 할게요." 화성지회 그룹장, 의료인 정토회 법회팀, 행복시민 활동까지 여러 소임을 맡고 있는 그는 유쾌하고 밝았습니다. 그런데 그 밝음 뒤에 아주 오래되고 깊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쓸쓸한 잿빛 세상, 죽음을 곁에 둔 어린 시절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권위적이었고, 마음이 여린 어머니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았습니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어머님의 삶에서 남동생은 희망이자 햇살이었습니다. 반면 저는 잿빛 그늘 속에서 살았습니다. 집 밖에서도 비교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누구 딸은 반장이래, 누구 딸은 성적이 어떻대…." 그러면서 제 생각과 의견은 무시당했습니다.

가정에서 남동생과 차별을 겪고, 밖에서 동네 엄친딸과 비교당하며 저는 서서히 병들어갔습니다. ‘죽고 싶다. 이대로 잠들고 내일 눈 뜨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결국 중학교 때 손목을 그었습니다. 솟구치는 피가 무서워 엄마에게 달려갔습니다. 돌아온 것은 버틸 수 없는 아버지의 매였습니다.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2019년 2월 분당 법당. 불교대학 졸업 축하 공연(맨 앞 문유미 님)
▲ 2019년 2월 분당 법당. 불교대학 졸업 축하 공연(맨 앞 문유미 님)

불안한 어른, 불안한 결혼 생활

마음의 병은 깊어졌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으로 가득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다 만난 남편과 평생 의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은 남편 곁에는 무시무시한 시누이 셋이 있었습니다. 권위적인 유교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시댁과 시누이들의 폭언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임신 중에도 폭언을 들으면서 대꾸도 못 하고, 냉방에 홀로 있다가 울면서 설거지를 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항상 시댁 편이었습니다. 아이가 40도 가까운 고열로 당장 응급실에 가야 할 상황에서조차, 시누이와 통화 후 혼자 시댁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들을 향한 분노는 결국 저 자신을 태우고 아이들에게도 상처를 주었습니다. 큰아이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고, 저는 이를 악물며 이혼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법문 한 편이 귀를 열었습니다

정토회를 만난 것은 2016년, 부처님 오신 날에 들은 법문이 계기였습니다. 너무나 합리적이었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딱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길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입학하자마자 소임이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불교대학 담당, 팀장, 지원팀장, 온라인 진행자까지. 진행자가 갑자기 그만두면 제가 끝까지 메웠습니다. 그때는 소임을 그저 일로 생각해 번뇌가 많았습니다. 한편으로는 투덜투덜 불평하면서도 끝까지 해내는 제 모습을 보며, ‘이 끈질긴 마음도 나구나’ 싶었습니다.

2019년 4월 광교호수공원. 수원법당 불교대학 팀장 나들이(왼쪽에서 다섯 번째 문유미 님)
▲ 2019년 4월 광교호수공원. 수원법당 불교대학 팀장 나들이(왼쪽에서 다섯 번째 문유미 님)

무서운 보살님

법당 생활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뭐든 “안 돼요” 하는 나이 많은 도반이 있었는데, 그 도반이 지적하거나 가르치려는 느낌이 들면, 어린 시절의 상처가 다시 올라왔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을 준비하는데, 예불 중에 시끄럽다며 화를 낸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교대학 수업은 작은 방에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는 예불이 뭐길래 수업을 쫓아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달리 보였습니다. '작은 방'이라고 규정지은 것도 결국 저였고, 그 도반 역시 나름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마음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모두 달려왔습니다

2019년 7월 15일, 친구 일을 돕다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힌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시댁 식구들의 횡포에 아이들은 울며 두려움에 떨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는 남편 따라 죽고 싶었습니다.

2025년 12월 정토사회문화회관. 300일 특별정진 회향수련 사례담 발표
▲ 2025년 12월 정토사회문화회관. 300일 특별정진 회향수련 사례담 발표

그런데 그날, 수원법당 활동가들이 모두 달려왔습니다. 저는 참 시비 많고 모난 사람이었는데도, 도반들은 아무런 충고 없이 있는 그대로의 저를 봐주었습니다. 같이 울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도반, 장례식 사흘 내내 함께한 도반들, 천도재를 하며 동방이 땀에 젖도록 정성을 다해준 도반들까지. 법사님들도 함께해 주었습니다.

특히 무변심 법사님은 지리산에서 걸어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또 걸어서 화성까지 와주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한 명씩 꼭 안아주며 귀에 따뜻한 말을 건넸습니다. 이제 성인이 되고, 고3이 된 아이들은 그때의 따스한 촉감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시댁은 남편의 사망보험금까지 가져갔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도반들의 따뜻한 위로와 부모님의 헌신으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었습니다

오랫동안 앓았던 마음의 병을 치유한 비결은 정진과 도반입니다. 어느 날 법사님이 말했습니다. “문유미 님은 마음이 약한 것 같아요. 108배도 해보고 300배도 해봐요.” 이 말씀을 계기로 정진을 계속했습니다. 몸이 너무 아파 그만 잠들었던 단 한 번을 제외하고,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108배를 했습니다. 현재는 매일 300배를 600일 넘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2025년 4월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1080배 정진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1차 때는 힘들다는 생각에 잘 안 나갔습니다. 그러나 1차 시기 중 받은 심리 상담과 도반들의 격려 덕에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2차 때는 행복시민 활동으로 하루를 빠져 정근을 하고, 3차인 9월부터 12월까지는 한 번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2025년 11월, 1080배 개근 수상
▲ 2025년 11월, 1080배 개근 수상

‘오늘 여기서 죽어도 좋다.’ ‘이 피해 의식만큼은 나의 대에서 끝내겠다.' '아이들에게는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라는 그 마음 하나로 매주 나갔습니다. 1080배를 마친 뒤, 화성지회 분들과 천일결사 회향을 위해 오프라인으로 만났습니다. 담담히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울지 않았는데 도반들이 울었습니다. 쉬는 시간, 도반이 김밥을 내밀며 “1080배 하고 오니 배고프죠?”라고 말하는 순간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김밥을 먹는데 목이 메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토록 원했던 제 마음을 도반들이 행동으로 알아주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속 두꺼운 얼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유미를 만났습니다

정진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법륜스님께서 즉문즉설 중 다른 도반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는 말씀을 듣고, 저도 병원을 찾았습니다.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어린 유미’를 만났습니다. 어린 유미는 과거의 상처로 벚꽃잎이 어깨에 닿아도 총알이라고 생각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제가 어린 유미에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그거 벚꽃이야. 도망가지 않아도 돼."

그것은 법륜스님의 가르침인 ‘지금 내 마음 알아차리기’와 같은 뜻이었습니다. 그게 참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2025년 12월, 좋은이웃되기 일상 방문(왼쪽에서 세 번째 문유미 님)
▲ 2025년 12월, 좋은이웃되기 일상 방문(왼쪽에서 세 번째 문유미 님)

딸의 첫 월급

저에게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는 딸이 있습니다. 경계성 지능이라는 진단도 받았습니다. 제 화가 시댁이 아닌 딸에게 향하던 시절, 딸도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080배를 개근하던 어느 날, 딸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절은 제가 했는데, 딸도 좋아졌습니다.

그 딸이 일자리를 얻고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불판을 나르며 힘들게 번 돈 전부를 저에게 건넸습니다. 저는 그 돈을 JTS에 모두 보시했습니다. "네 돈 다 정토회에 드렸다."라고 하니, 딸이 웃었습니다. 저도 함께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딸은 행복학교와 불교대학을 다녔고,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DNA가 바뀌었습니다

요즈음 저는 욕을 하며 운전하는 버스기사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얼마나 힘들면 저러실까. 내리실 때는 조금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예전이라면 바로 민원을 넣었을 것입니다.

2025년 9월, 의료인 정토회 법회팀 평가회의(아랫줄 왼쪽 문유미 님)
▲ 2025년 9월, 의료인 정토회 법회팀 평가회의(아랫줄 왼쪽 문유미 님)

정진과 소임, 심리 치료가 함께 쌓여 이룬 변화입니다. 어린 시절에 깊은 상처가 있고 마음의 병이 있다면, 수행만으로는 다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 저도 지금은 이렇게 행복합니다. 제 불행의 DNA가 행복의 DNA로 바뀐 것, 기적이 있다면 아마 이런 변화일 것입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낮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번호키를 누르며 집에 들어오는 순간이 경이롭습니다. 아이들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부모님,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어 감사합니다. 하늘에 있는 우리 남편, 저랑 결혼해 주어 감사합니다. 덕분에 보물 같은 아이 둘이나 만났습니다. 시댁 식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참으로 화끈한 결혼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부디 당신들도 행복하길….

정토회는 안전한 놀이터

정토회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제발 발가락 하나만이라도 걸쳐 두길 바랍니다.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는 안전한 놀이터입니다. 저는 오늘도 말하다가 까먹고, 또 웃고, 또 정진합니다. 그 웃음 아래에는 아주 오래 살아남아 준 어린 유미가 있습니다. 그 아이를 이제야 꼭 껴안아주고 있는 어른 유미도 있습니다. 정토회는, 그런 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 곳입니다.

2026년 4월 19일 진위천 유원지, 행복학교 홍보 모둠활동(가장 오른쪽 문유미 님)
▲ 2026년 4월 19일 진위천 유원지, 행복학교 홍보 모둠활동(가장 오른쪽 문유미 님)


인터뷰 내내 저는 웃었습니다. 그만큼 문유미 님은 무거운 이야기도 가볍게 툭 건넬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에는 깊은 아픔이 있었고, 그 아픔을 뛰어넘은 진짜 변화가 있었습니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말투와 표정 뒤에는 오래 수행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이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글_박지훈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송파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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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2026-04-29 17:54:59

문미단

행복한 생활 응원합니다. 저도 행복하겠습니다

2026-04-29 15:30:47

김제은

어떤 상황이든지 가볍고 밝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DNA 가 긍정 DNA로 바뀌신 것 같아요~! 부모로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도반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감동적인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2026-04-29 13: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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