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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인터뷰 시간보다 조금 앞서 들어온 김지은 님이 제게 인사를 건네며 이것저것 가볍게 물어보았습니다. 주인공의 다정함에 빠져 하마터면 제 본분을 망각하고 인터뷰를 당할 뻔했습니다. 북미지회에서 불교대학 입학 신청자 인터뷰와 반 담당 소임을 2년째 맡고 있는 김지은 님을 만났습니다. 밝고 단단한 모습 뒤에 오랜 성찰과 변화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김지은 님의 수행담 들어보겠습니다.

코로나 시기, 우연히 해외 거주자를 위한 행복학교 온라인 프로그램 안내를 보았습니다. 행복학교? 재미있겠는걸! 평소 뭐든 새로운 것을 좋아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습니다. 첫 수업에서 "행복이란 괴로움이 없는 상태"라는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행복이란 뭔가 짜릿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었기에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이리저리 찾아다녔습니다.
법문에 따르면 저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파랑새가 곁에 있는데, 그걸 모르고 파랑새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음을 행복학교 첫 수업에서 깨달았습니다. 또 ‘틀이 다르다’는 의미의 ‘틀다름’도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제 마음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틀다름을 깨달으니 사람은 모두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학교를 함께 졸업한 몇몇 도반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한다고 해서 저도 2021년 가을학기에 입학했습니다. '성주괴공', '생주이멸'을 배웠던 날 또 한 번 '아, 이거다' 싶었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광고 문구처럼 저는 관계나 사랑은 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아이 없이 남편과 둘만 지내다 보니, 이 사랑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이 우주도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흩어지고 또 새로 생겨나는데, 모래알보다 작은 존재인 인간의 감정이 변치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나 사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습니다. 남동생이 태어난 지 백일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떠났고, 남동생과 저는 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젊은 시절 절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식사 후에는 그릇을 물로 씻고 그 물을 마셨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역지사지라는 말을 처음 배웠습니다. 할머니와의 살가운 기억은 없습니다. 동생은 어리기도 했고 손자이기도 해서 잘 챙겨주셨는데, 제게는 늘 호통을 치는 호랑이 할머니였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밖에 놀러 나가려 하면 동생이 제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그럴 땐 동전 하나를 쥐어주며 가서 딱지를 사 오라며 따돌리고 도망갔습니다. 놀다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에게 혼이 났습니다. 어른들은 저를 볼 때마다 어린 동생을 잘 챙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너무 싫었습니다.
'왜 나는 나일까? 왜 나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모르고, 다른 사람은 나의 아픔을 모를까?' 겨우 여덟, 아홉 살 아이였는데도 그 당시 저는 이런 의문에 빠졌습니다. 열한 살이 된 해, 아버지는 재혼했습니다. 새 동생도 생겼습니다. 새어머니에겐 친자식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전처의 아이가 둘 있는 집에 왔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분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기에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손해 보는 게 싫었던 저는 결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자는 결혼하면 손해 보고 무시당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각오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규모 있는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영어를 배우라며 회사에서 보내준 어학당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미국 사람입니다. 한국 생활을 경험하러 왔다가 저를 만나 한국에 눌러앉았습니다.
결혼하고 5년쯤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미국에 있는 시어머니는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2006년,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시어머니가 살던 인구 9만명 정도 되는 작은 도시로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전산 관련 일을 했지만, 그곳에서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간호사로 취업이민을 온 한국인을 만났고, 그분의 추천으로 간호학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12년째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몇 년 후 시어머니도 돌아가셨고, 이 작은 도시에 계속 머물 이유는 없었지만 굳이 다른 곳으로 갈 이유도 없었습니다. 직장과 집을 오가는 안정된 생활이었지만 왠지 사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50세가 되던 날, 이대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직장 일을 시간제 근로로 줄이고, 뭔가 다르게 사는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불교대학 시절, 한국에 있는 진행자가 해외지부 학생을 챙기는 게 참 고마웠습니다. 미국 학생들이 소통방에 질문을 올리면 한밤중인데도 바로 응답을 해주는 진행자가 참 놀라웠습니다. 경전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진행자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세심히 보살폈습니다. 받은 게 정말 많았고, 몰랐던 걸 많이 배웠습니다. 스스로 바뀌고 편해진 만큼, 받은 만큼이라도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경전반 졸업 후 바로 전법회원 신청자 교육을 이수하고 2023년 봄 전법회원이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를 거쳐 지금은 3학기째 불교대학 반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법을 배우고,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 3시인데도 북미 수업에 출석하는 열정을 보인 학생이 기억납니다. “세금을 잘 내고 있는데 왜 따로 남을 도와야 하냐”며 따지던 분이 차차 마음을 내며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는 이들이 바로 자신임을 알겠다고 하셨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처음 진행할 때는 머릿속이 하얗고 뒷목이 경직되곤 했습니다. 학생 이름을 잘못 부를까 봐 걱정이 되어 컴퓨터 옆에 학생 명단을 붙여놓았습니다. 문자로 소통할 때도 어떤 어투로 해야 하는지 걱정했습니다. 잘못 말해 오해의 소지가 생기지 않을까 불안했습니다. 마음 나누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때의 불안은 다 잘해야 한다는 저의 과대망상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부족한 저를 인정하고, 뭘 좀 잘못해도 가볍게 넘기는 편입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처음 진행하는 도반들이 “학생에게 이런 식으로 말해도 괜찮을까요?” 하고 반 담당인 제게 묻곤 합니다. 도반의 모습에서 예전의 제 모습을 떠올립니다. '척척 잘하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잘한 게 아니라, 하면서 배우면서 해 온 거였구나. 모두에게는 다 처음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년 초 까지는 시간 선택제로 일할 때라 무리가 없었는데, 작년 5월부터 회사 사정이 바뀌어 전일제 근무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힘들 때도 있지만, 제가 풀어야 할 과제이겠거니 하며, 이번 3월 학기 불교대학 북미 서부지역 반 담당도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대학까지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는 동생을 보면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 하지 않냐"라고 잔소리하는 게 누나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달리 보니 동생도 저렇게 살고 싶어서 저럴까 싶었습니다.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저는 여섯 살까지 어머니와 같이 살았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 아이도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저만큼 잘 살고 있는 게 다행이고, 동생이 가정을 꾸리지 않고 혼자 사는 것도 어찌 보면 다행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서로 소 닭 보듯이 하던 남매였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서니 동생도 마음이 풀렸는지 이제는 서로 오가며 자주 연락하고 지냅니다.

어머니를 다시 만난 건 성인이 되어서였습니다. 어머니는 이혼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예술가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스물아홉 살에 이혼하고 쭉 혼자 살아서 그런지 자기 주장이 강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쭉 떨어져 지냈기에 다시 만났다고 갑자기 끈끈한 정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네 딸은 엄마한테 선물하는데 너는 왜 안 하니”라고 하며 살갑지 못한 저를 나무라는 어머니가 불편했습니다.
어머니가 일본 생활을 접고 귀국하려 하며 제게 짐 정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일본에서 함께 지내며 사사건건 고집하는 어머니와 충돌했습니다. 하루는 큰마음 먹고 어머니에게 힘든 제 마음을 나눴습니다. 어머니는 “내 딸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충격을 받았다고 했고, 그 후 연락을 끊었습니다.
모녀의 인연으로 만났지만 이어지지 않는 인연에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살고 저는 저대로 잘 살면 됩니다. 동생을 통해 어머니 안부는 전해 듣고 있으니, 나중에 어머니가 힘들다고 연락이 오면 가서 도와드려야지 하는 마음입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많이 먹는 게 속상해 잔소리하고 괴롭혔습니다. 살펴보니 제 문제였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술을 좋아해 남편과 술친구로 지내며 좋았는데, 정토회에서 불법을 공부하며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같이 마실 때는 그렇게 좋다고 해놓고, 이제 제가 안 마신다고 술 마시는 남편을 문제 삼았습니다.

밑마음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습니다. 혈혈단신, 미국에서 남편과 둘만 사는데 저러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남편을 위한 게 아니라 제 불안 때문에 괴롭혔던 겁니다. 이제는 “당신 좋아하는 술 힘 닿는 데까지 드셔 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배신자라며 저를 놀립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제가 정토회 활동을 하는 것에 반감이 심했습니다. 사이비 종교라고도 하고, 모든 걸 같이 하다가 함께 하지 못할 때가 생기니 서운해 했습니다. 요즘은 남편도 마음을 좀 돌이킨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제가 정토회 활동을 계속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백일출가 가고 싶다 하면 “나 죽으면 가라”고 하고, 정성껏 기른 머리카락을 기부하려고 해도 “나 죽은 후” 라고 못 박는 건 여전합니다. 나중에 은퇴하면 인도 지바카 병원에서 봉사하고 싶은데 그것도 남편 죽은 후에나 하라고 할 테니 남편이 먼저 가면 할 일이 많아 슬퍼할 틈이 없을 것 같습니다.
부정적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을 일으킨 제 자신이 싫어 스스로를 괴롭히던 버릇도 버렸습니다. 한국에 사는 친구가 아파트를 샀다 하면 사고 싶지도 않은데 질투가 났고,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는데도 친구가 곧 출산한다고 하면 질투심이 올라왔습니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 자체가 정말 싫었습니다. 저는 질투심을 일으키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습니다. 지금은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 하고 딱 알아차리면 그 마음이 금방 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려서부터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며 철학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가위는 물건을 자르기 위해 만들었지만, 인간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므로 삶의 목적이나 존재의 이유가 처음부터 부여되어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말씀을 법륜스님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내 삶의 목적은 내가 찾는 거구나.' '지금 이 순간, 오늘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제 존재의 이유임을 이제는 잘 알겠습니다.
인연도 제 마음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항상 변합니다. 그러니 그것은 그대로 두고, 저는 그때그때 필요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가볍게 하겠습니다. 매 학기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면 잘 맞아들이고 졸업하면 잘 보냅니다. 지금은 반 담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다른 분이 맡으면 그때 넘겨 드리면 됩니다. 부담스러울 게 없습니다.
예전에는 감정 기복이 커 긍정적이었다가도 갑자기 비관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즐거웠다가 우울했다가 하기도 했는데 정토회에서 수행하면서 그런 기복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대체로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오늘도 잘 살겠습니다
주인공은 인터뷰 덕분에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마무리 인사를 했습니다. 몇몇 화상 모임에서 김지은 님을 얼핏 뵈면 순정 만화에 나오는 새초롬한 고등학생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단둘이 만나 얘기를 나눌수록 단단한 삶의 결이 느껴졌습니다. 저보다 한참 어린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또래여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김지은 님이 추천해 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 독서 후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_김영아 희망리포터(해외지부 북미지회)
편집_ 곽도영(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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