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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제주지부 구로지회 용산모둠의 모둠장을 맡고 있는 이정숙 님의 밝은 얼굴을 줌 화면으로 만났습니다. 온라인으로 불교대학을 졸업한 저는 선배 도반들에게 오프라인 시절, 차례로 법당을 지키고 함께 라면을 끓여 먹던 재미나고 끈끈한 추억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습니다. 지금까지 모둠장 소임을 하며 모둠원의 활동을 이끌어 온 이정숙 님의 비결이 궁금하시다면, 함께 들어보실까요?

2013년 무렵 TV 프로그램 <힐링캠프>를 통해 법륜스님을 처음 알았습니다. 진행자들의 고민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너무 명쾌해서 이후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찾아보았습니다. 스님의 영상은 제가 지치고 힘들 때 많은 위로가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들과의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카카오톡으로 스님의 희망편지를 받아보던 중, 2018년 2월 희망편지와 함께 도착한 정토불교대학 홍보 문구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어떠한가?' 생각해 보니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가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걸까’라는 고민을 하던 차였기에, 2018년 봄 용산법당의 정토불교대학(이하 불대)에 입학하였습니다.
저는 충남 청양이라는 시골의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2남 4녀 중 막내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공사 현장에서 벽돌 쌓는 일을 했으며, 어머니는 농사와 살림을 하였습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은 책임감이 강하고 근면하며 성실하였습니다. 막내인 저는 부모님과 오빠, 언니들의 보살핌 속에 큰 어려움 없이 자랐습니다. 식구가 많다 보니 부모님은 항상 일이 많았고, 그 힘든 모습을 보면서 공부 잘하고, 말도 잘 들어 부모님의 기쁨이 되고 싶었습니다. 빨리 커서 부모님의 수고를 덜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남편은 회사 일과 정토회 일로 바쁜 저를 대신해 많은 집안일을 하고 아들 밥을 챙깁니다. 아침 일찍 서초 정토사회문화회관에 가야 할 때면 차로 태워 주기도 합니다. 아들은 가끔 자기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며 투덜대기도 하지만, 저에게 아프다고 하지 말고 적당히 일하라며 잔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보통은 아이가 생기면 최우선 순위를 자식에게 둔다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이다 보니 직장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육아휴직이 일반적이지 않아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느라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하고 즉석식품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아이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예민해지면서 저도 보통의 엄마들처럼 잔소리가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보면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잠시 그냥 내버려두기로 마음먹으며 잔소리를 많이 줄였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사춘기 시기도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가 어떻게라도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지만, 불대 공부를 하면서 건강하게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바쁜데 해야 할 일은 많았습니다. ‘이건 네가 하고, 이건 엄마가 하자’라고 아들과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지냈습니다. 외동이라 외롭다고 할 때면 "원래 인생은 그런 거야. 힘들면 너도 정토불교대학 다녀 봐"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아들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불대와 경전대학까지 2년을 공부하며 불법이 좋았고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졌지만, 뭔가 확신이 없었습니다. 2년 동안 만났던 법사님들과 선배 도반들은 화장하지 않았어도 얼굴이 맑고 편안해 보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불대 때부터 천일결사에 입재했지만 꾸준히 정진하지는 못했습니다. 무언가를 계속하지 않으면 법회 참여나 정진 모두 더 게을러질 것 같았습니다. 소임을 맡으면 책임감이나 의무감으로라도 하게 되니, 작은 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전대학에 다니던 당시, 용산법당은 활동가가 적어 법당 총무가 많은 소임을 중복으로 맡고 있었습니다. 너무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던 중, 저에게 자원 활동 담당이라는 첫 소임을 제안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며 큰 고민 없이 받았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정토회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도반들과 함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괜찮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는 격려와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는 선배 도반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약 4년 동안 모둠장으로서 모둠을 운영하며 확실히 알았습니다. 일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도반님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임을.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에서 진행자와 돕는이를 하면서 졸업생들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많이 자유로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뿌듯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의 시작과 함께 모둠장 소임을 맡았는데, 그만큼 부담감도 컸습니다. 불교대학 홍보부터 한 사람 한 사람씩 입학하는 과정, 입학 후 진행자와 돕는이들의 수고로 졸업해 모둠에 들어오기까지의 여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 모둠으로 들어왔으니, 학사에서 학생들을 챙기듯 모둠원들에게 정성껏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규 회원의 경우에는 한 번이라도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스크린 화면으로 다시 만나도 낯설지 않고 반가워합니다. 저희는 저녁 모둠으로, 모둠원 모두가 직장인이다 보니 여유시간이 서로 달라 오프로 한 번, 온라인으로 한 번, 한 달에 두 번 모둠활동을 합니다. 법회 때는 법문 나누기를 한 후 시간이 늦어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프 모둠활동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이런 나눔이 모둠원들과의 연결고리가 되기에 오프 모둠활동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모둠장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모둠원들의 수행을 지원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통방에 공지를 올린 후 신규 회원에게는 개별적으로 연락해 상세히 설명합니다. 내향적인 성향의 분들이나 법회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이 혼자서 수행의 끈을 놓지 않도록 <법륜스님의 하루> 기사 읽기, 금요일 <즉문즉설>, 일요일 <일요명상> 유튜브 등을 안내합니다.

매일 받아보던 똑같은 희망편지였고 정토불교대학 홍보 문구였지만, 제 눈에 딱 들어왔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제 연락으로 놓치고 있던 수행을 다시 할 수 있는 계기를 단 한 사람에게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둠장 소임을 하고 있습니다.
모둠원들의 호응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활동을 못 하다가 다시 나왔는데 아는 사람이 있어서 낯설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수행하기 싫었지만 모둠장의 권유로 참여해 보니 하길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고,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도반이 다시 법회와 모둠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도 만납니다. 덕분에 머무는 바 없는 마음에 대해 배웁니다. 앞으로도 헛된 바람 없이 꾸준히 마음을 내겠습니다.

이정숙 님의 수행 과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기'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수고를 덜려 애쓰고, 성인이 된 후에는 직장동료의 일을 도와주느라 자주 야근을 했다는 이정숙 님을 보며 '이타심이 진심인 분이구나, 정토회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둠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에서는 금강경 수업에서 배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應無所住 而生其心)’는 문장도 떠올랐습니다. 줌 화면으로 보는 이정숙 님은 맑고 편안한 얼굴이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제가 걸어가고 있는 이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도 도반들과 함께 ‘예’ 하고 가볍게 소임에 임하겠습니다.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글_구선우 희망리포터(대경지부 달서지회)
편집_최미영(국제지부 아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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