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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했습니다. 저의 수행담을 말해야 하니 그간 얻은 수행의 공덕을 떠올려 봅니다. 우선 저는 남 앞에 서기를 주저했습니다. 늘 많이 떨었습니다.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나누기를 할 때도 그랬고, 법당 시절에 사회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소임을 계속하니 남 앞에 설 일이 많아 연습이 되었습니다. 부담이 점점 옅어지고 떨림도 줄었습니다. 10년 전 직장 회식에서 건배사 차례가 돌아오면 떨렸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나 사장이나 똑같지’라고 생각하면 건배사도 잘 됩니다. 물론 여전히 떨릴 때가 있지만, 빨리 알아차립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싶구나. 내가 지금 다른 도반보다 잘나고 싶구나.’라고 말입니다.
직장에서 문서를 검토하다 생긴 일입니다. 저는 규칙에 맞지 않는 부분을 규칙에 맞도록 수정해서 제출하고 싶었습니다. 작성자에게 규칙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쳐 달라고 부드럽게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작성자가 “그걸 왜 고쳐야 해요? 그냥 지워요.”라고 큰 소리로 되물었습니다. 수정을 요구한 제가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무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화가 난 것을 알아차려도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스멀스멀 올라온 화를 집까지 들고 왔습니다.
퇴근 후, TV를 보는데 출연자 8명의 MBTI가 모두 달랐습니다. 그때 번쩍하고 알았습니다. ‘사람은 다 다르구나. 나는 계획적으로 규칙에 맞게 일을 하는 스타일이고, 어떤 사람은 즉흥적으로 썼다 지웠다 하며 일을 하는 스타일이구나. 자기주장이 강하고 말투가 단단한 것은 그 사람의 습관이지 그가 나를 화나게 할 생각은 없었구나. 그는 단지 수정보다 삭제를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여겼던 것이구나.’
이 깨달음은 익숙한 내용이었습니다. <즉문즉설>에서 수십 번 반복해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바로 그 법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 삶에서 맞닥뜨리자, 벗어나는 데 하루가 족히 걸린 것입니다. 수행하면 느려도 결국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면 갈등의 실체가 한 꺼풀 벗겨지며 환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비로소 제 안에 지혜로 자리 잡습니다.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수행해야 공덕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법문에서 아무리 ‘무아(無我)’를 배워도 일상에서 수행해야 ‘아, 정말 나라고 할 게 없구나’하는 반성이 자기를 덮치는 순간을 만납니다.
"수행해야 바뀐다."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2014년입니다. 딸이 제 말을 참 안 들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널브러진 딸아이의 옷가지와 그릇을 치우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매일 화를 냈습니다. 너무 미웠습니다. 딸의 전화를 받는 제 모습을 보고 동료들이 “왜 아이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라고 지적할 정도였습니다. 그 무렵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법문은 들었지만, 수행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배 도반들이 제게 ‘수행해야만 바뀝니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어느덧 고3이 된 아이에게 잔소리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려고’ 2015년 1월 1일부터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단박에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한 꺼풀 한 꺼풀, 한 단계씩 벗겨지니 아이가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오래 걸렸지만 아이는 10년 전의 엄마보다는 지금의 저를 좋아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 워크숍을 가도 동료들에게 말합니다. “나 내일 새벽에 108배 해야 해. 내가 거실에서 잘게.” 친정에 가도 말합니다. “나 아침에 108배 한다.” 계속 그렇게 했더니 지금은 아버지가 정토회 화상 회의할 자리도 만들어 줍니다.
아버지 생신에 정토회 일이 겹쳤습니다.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정토회 일이 있어 생신 잔치는 참석 못 해요. 대신 다음 주에 혼자 가서 축하할게요. 죄송해요.” 아버지는 웃으며 "그거는 밥도 안 먹고 하냐?"라며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법륜스님 말대로 관점을 잡고 수행하면 주변에서 다 도와줍니다.
물론 일이 많아지고 이처럼 고민스러운 선택의 순간이 잦아지면 ‘아, 좀 너무하지 않아?’라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흔들리는 퇴근 버스에서 이어폰을 꽂고 전국 모둠장 회의에 참석하는 내 모습을 보며 생각합니다. ‘그래도 수행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이걸 좋아하기 때문이지’라는 답을 얻습니다. 진짜 싫으면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수행을 그냥 계속하면 수행이 좋아지고, 수행하는 내 모습도 좋아지나 봅니다.
매일 수행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도반의 공덕이 필요합니다. 천일결사를 담당하면서 혼자 토요일에 법당에 나와 다음날 행사를 준비할 때였습니다. 겨울이라 춥고, 혼자인 데다 이것저것 챙길 게 많아 짜증이 났습니다. ‘왜 나 혼자 다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짜증이 무르익을 무렵,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 이전에도 누군가가 이 일을 했구나!’
부끄러워 울어버렸습니다. 수많은 도반의 공덕으로 제가 그동안 천일결사 수행도 하고 불교대학도 다녔음을 알았습니다. 그깟 행사 준비물 몇 개 챙기면서 화내는 제 모습이 부끄러워 엉엉 울었습니다. 눈물을 쏟고 나니 또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작년에 나눔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맨날 하는 나누기인데, 더 별것이 있을까? 싶어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가는 김에 ‘내 맘 밑바닥까지 꺼내 보자’라고 다짐했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작아서 ‘치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은’ 마음의 걸림까지 다 내놓았습니다. 다 말하니 ‘내 마음에 이런 것도 있었네?’라고 알아차렸습니다. 나누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내놓은 만큼 가벼워지고,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고통스럽고, 마음이 미래에 있으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의 스토리를 짜며 망상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정토회 나누기는 ‘지금 마음’을 나눕니다. 덕분에 연습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 기도할 때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 이렇게 저렇게 합니다’라고 지향을 삼습니다. 일이 닥치면 그때 선택하고, 그 순간 주어진 조건을 동원하여 해결하면 됩니다. 미리 짐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혹시 누군가 결사행자 하라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신숙희 님이 웃으며 답했습니다. “지금의 제 깜냥으로는 당연히 결사행자가 될 수 없지요. 저 같은 사람이 결사행자를 하면 안 됩니다. 다만 '가봐야 안다.’라고 답하고 싶어요.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전에는 훨씬 더 이기적이었어요. 아마 무의식에 다 남아있을 거예요. 그런 제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기적이기 때문에, 제가 또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수행을 끊임없이 하고 놓치지 않는다면, 나중은 모르지요.”
인터뷰_남궁천진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노원지회)
글_이승준(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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