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세종지회
보고, 알고, 사랑하고

박미란 님과 리포터는 도반입니다. 늘 경쾌하고 쾌활했던 박미란 님을 근 3년 만에 화상 인터뷰를 통해 다시 만났습니다.

지회 지원 담당과 홍보 꼭지를 맡아 빈 곳을 찾아 채워주는 박미란 님은 정토회 활동 속에서 나를 보고, 알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족의 반대도, 응원도 모두 디딤돌로 삼은 주인공의 단단한 수행담 소개합니다.

법 만난 인연

남편은 가난한 집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본인 외에 가족들에게는 조건 없이 주는 선물 같은 남편이자 아버지입니다. 남편은 바르고 곧은 성격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해 헛된 낭비와 사치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저 또한 경제적 자립을 위해 남편과 뜻을 같이해 절약하며 살림을 일궈 일찍 집을 장만했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정토 불교대학 홍보 화상회의 후(왼쪽 박미란 님)
▲ 정토 불교대학 홍보 화상회의 후(왼쪽 박미란 님)

딸과 아들이 성장해 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되자, 저를 위한 취미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문화센터를 몇 년 다니다가 문득 ‘내가 나이 들면 뭘 하고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홍보 현수막을 보고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심각한 사연을 말하는 질문자에게 유쾌하고 간결하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스님의 말씀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습니다. 스님의 유튜브 법문도 듣고 책도 읽어 보며, 즉문즉설 강연을 계속 찾아 다녔습니다. 세종으로 이사를 온 후에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중도'와 ‘사성제’ 등 불교 교리가 너무 좋아 남편과 아이들과 산책하며 불교대학에서 배운 내용을 이야기하면, 가족들도 공감해 주었습니다.

2018년 불교대학을 졸업하면서 이 좋은 법을 만나게 해준 인연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봉사해 준 도반들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했습니다. '다른 이들도 이 법을 만날 수 있게 봉사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진짜 할 사람이 없어 봉사 제안이 나한테까지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거절하지 못하니 소임이 하나둘 늘어났고, 할 일도 점점 쌓였습니다. 지원 담당과 실천 활동 꼭지, 경전대학 진행까지 맡다 보니 집안일을 거의 할 수 없었습니다.

물 마시는 것부터 모든 것을 가족에게 맞춰 주며 살다가 갑자기 집안일에 손을 놓으니 가족들은 몹시 못마땅해했습니다. 제가 가족들을 길들여 놓고 갑자기 나 몰라라 내팽개친 모양이었습니다. 남편은 “사이비에 빠져서 니 엄마가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는 저럴 수 없다”며 걱정했습니다.

문경 연수원 계곡에서 도반들과 함께(맨 오른쪽 박미란 님)
▲ 문경 연수원 계곡에서 도반들과 함께(맨 오른쪽 박미란 님)

소중한 내 법당

딸이 취직 준비로 서울에 올라가 방이 비었습니다. 화상회의나 도반들과의 전화는 부부 방 옆에 붙어 있는 딸 방에서 했는데, 오랜 시간 하하 호호 시끄럽게 떠들다 보니 어느 날 남편이 당장 딸 방에서 나가라며 쫓아냈습니다. 남편은 직장 스트레스로 집에 오면 좀 편히 쉬고 싶은데, 도반들과 소통하며 크게 떠드는 소리가 불편했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창고 방으로 옮겼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지저분하고 먼지 나는 곳에서 어떻게 기도하고 회의를 해?’ 싶은 마음에 너무 막막했습니다. 부부 방에서 거실로, 딸 방으로, 다시 창고 방으로 옮겨 다니며 집안에서 유랑자가 된 것 같아 몹시 억울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닐 때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인도에서 지낸 16박 17일 동안 자고, 먹고, 씻는 일이 사는 데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디서 자면 어때? 거실은 너무 편하고, 딸 방은 침대가 있어 더 좋고, 창고 방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 마음이 이해되어 방문에는 계란판을 붙이고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했습니다. 남편 눈치가 보여 난방도 냉방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름에 명상 할 때는 너무 더워 죽을 맛이었지만 ‘이것도 수행이다’라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이제 창고 방은 저만의 공간이자, 일하고 기도하는 제 소중한 법당입니다.

2018년도 인도 성지순례(왼쪽 박미란 님)
▲ 2018년도 인도 성지순례(왼쪽 박미란 님)

마음은 늘 왔다리갔다리

제가 화도 잘 내지 않고 “여보, 미안해. 내가 할게, 지금 빨리 할게” 하면서 남편이 원하는 걸 바로 챙겨 주다 보니, 아내가 정토회 다니면서 조금 변했다는 믿음이 생겼나 봅니다. ‘정토회 활동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변해가는 모습은 또 괜찮다’ 이런 마음인 것 같습니다.

가족 여행 스케줄을 정할 때 남편이 "당신 정토회 일정이 어떻게 돼?" 라며 먼저 물었습니다. 제 일정을 먼저 챙겨 주는 남편의 말은 감동이었습니다. 지금 남편은 포기할 건 포기하고, 봐줄 건 봐주며 저를 인정도 해 줍니다. 저는 이런 남편에게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원망을 보다

어릴 적,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혼자 집에 있었던 때였습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즈음 창고에서 작두를 만지다가 발등을 찍었습니다. 제가 우는 소리에 동네 아줌마가 피가 솟는 발을 동여매 주었습니다. 저는 혼날까 봐 걱정을 많이 하면서도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안아 주며 '어떻게 하다 다쳤어?' 라고 위로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아프고 겁먹은 저를 마구 때렸습니다. 일이 너무 고되고, 사는 것이 버거워서 그랬다는 사실은 커서야 알았습니다.

어느 날, 제 마음이 너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 부정적이고 무거운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 곰곰이 들여다보니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마음을 어머니 탓으로 돌리자 원망이 생겼습니다. 누구보다 자식을 위해서만 사셨던 어머니였는데도 말입니다. 어머니와 사이가 좋았던 제가, 나이 들어 힘 빠진 어머니를 이제 와서 원망하고, 거기에 죄책감까지 더하니 몸과 마음이 모두 무거웠습니다.

2019년도 동북아 역사 기행
▲ 2019년도 동북아 역사 기행

착하기만 했던 딸이 한 번도 내지 않던 화를 내자 어머니는 많이 당황해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말다툼이 늘다 보니 어머니는 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고 했고, 저도 '내가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며 서로 잘한 것만 반복해서 내세웠습니다.

고생하며 키워 준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잘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습니다. 명상도 하고 법사님과 상담도 해봤지만 앙금은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나눔의 장1>에서 제 이야기를 나누며, 어머니와 틀어진 관계를 풀 실마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가여운 어머니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머니가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어머니와 외삼촌을 먹여 살렸기에 어머니도 어려서부터 일을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어머니는 힘든 시간을 보내며 늘 주변 사람의 따가운 시선에 주눅이 들었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지금도 어머니는 때때로 주변을 살피고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대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결혼하면서도 아무 것도 받지 못한 부모님은 오직 일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댈 곳 없이 숨죽여 살아온 어머니의 숨가쁜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웠고, 결혼 후에도 억척스레 살아야만 했던 어머니가 가여웠습니다. 미소를 잃은 채 하루하루 살아내기 위해 경계하고 의심하며 억척스러운 모습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2019년도 JTS 빈곤퇴치 운동(맨 오른쪽 박미란 님)
▲ 2019년도 JTS 빈곤퇴치 운동(맨 오른쪽 박미란 님)

할 수 있는 만큼

어머니는 다른 형제들보다 저를 믿고 많이 의지하며, 힘들거나 괴로울 때면 전화를 자주 했습니다.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 맺힌 한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해 몇 시간씩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하는 말은 좋은 말이나 밝고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제게도 어머니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눔의 장>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잘 해야지’라고 굳게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는 일은 힘들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친정을 가면 어머니가 이웃들의 시시비비를 따질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부딪치지 않으려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끝까지 들어주는 남편이 고마웠지만, 차라리 친정에 안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싶어, 때가 되면 또다시 친정에 갑니다. 부딪쳐 가며,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저도 어머니도 함께 지키고 싶습니다.

부딪칠 때 나를 본다

기분이 좋고 행복할 때는 제가 저를 잘 보지 못합니다. 봉사를 할 때도 저 자신은 보지 못한 채, 일이 좋아 일만 했습니다. 한 번 맡으면 3년은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에 부쳐도 맡은 일을 그만두지 못하니, 봉사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는 에너지가 바닥이 났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라앉고 나서야 비로소 저를 보았습니다.

2018년도 인도 성지순례 부처님 진신사리 앞에서
▲ 2018년도 인도 성지순례 부처님 진신사리 앞에서

‘너 고집 진짜 세구나’, ‘너 진짜 화 많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어머! 순식간에 마음이 확 돌아가네’ 이런 저를 보며 많이 놀랐습니다. 제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교대학 졸업 후 열심히 봉사했고, 분별심이 날 때는 300배도 많이 했으니 수행이 깊어졌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 퇴행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봉사는 분명 즐겁고 행복했지만, 저를 보지 않으면서 하는 봉사는 점점 더 커지는 행복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이건 분명 과정이고, 좋은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라는 걸 알기에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이 제일 좋다

과정이니 ‘이걸 좀 고쳐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습니다. 화가 확 올라올 땐 일부러 일을 천천히 하거나, 화상회의 화면을 잠시 끄기도 했습니다. 일은 조금 늦게 진행해도 괜찮지만, 도반에게 준 상처는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매년 하던 명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잡념이 많아지고, 눈만 감으면 제멋대로인 호흡을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 쉬어 가자’ 싶은 마음에 명상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봉사는 도반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가 재미있고 즐거워서 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까지 모두 살피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 오롯이 제 마음을 살피고, 저를 되돌아보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게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 줍니다. 힘들 때 저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아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박미란 님은 인터뷰 전, 옛일이 잘 기억나지 않아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 지 막막하다고 했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는 일은 주변 도반에게 물어보기도 했답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이번 인터뷰가 지난 날을 돌아보며 미처 보지 못했던 마음까지 환히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고 해서 고마웠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애써 인터뷰에 응해 준 박미란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글과 편집_곽도영(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1.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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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 변상용

불법에 대한 내공? 이해도가 굉장하시네요 다 읽고 난 한 줄 소감입니다.
이런저런 상황에서도 오뚜기처럼 넘어지지 않고 바로 일어서실 수 있단 게 훌륭하시네요.
첫 문단의 소개글처럼 단단한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2026-01-21 13:28:23

김진희

감동적인 사례담 감사합니다
함께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흐르며 함께해줘서 더욱 감사합니다

2026-01-21 12:43:42

대정진

박미란 님의 수행담을 읽으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덕분에 대한의 날씨지만 거뜬하겠습니다.

2026-01-21 12: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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