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인도성지순례는 거대한 공부의 장

최윤영 님은 인도성지순례를 하며 오롯이 내 업식을 보는 데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도반들과 삼삼오오 짝지어 다니지 않고 되도록 혼자다니며 육체가 힘들 때 올라오는 마음과 상대의 행동에 따라 올라오는 마음에 집중했는데요. 성지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함께 사는 친정아버지에게 불쑥불쑥 화가 올라오는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미워했던 친정아버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설렘과 불안감이 공존한 준비 과정

인도성지순례는 처음이라 설레었습니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부처님이 걸식하며 전법하러 다니신 길을 따라가며 체험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먹고 자고 씻는 등 일련의 의식주를 최소화해야 하는 것, 고작 22인치 캐리어에 16일간 생활할 짐을 싸는 것, 집과 직장을 오래 비우는 것 등이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출발 전날에야 부랴부랴 짐을 싸고, 다음 날 새벽 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정토회 회원들이 모여 인원을 파악하는데 그제야 ‘순례하러 가는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최윤영 님
▲ 최윤영 님

분별심은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일어났습니다. 좌석을 사전에 지정하지 않아 두 남자 사이에 앉게 되었습니다. 9시간 동안 두 남자 사이에 끼어 비행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뒷줄에 여자 두 분 사이에 남자 한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뒷줄 남자에게 “거사님, 자리 좀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양해를 구했더니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이 배려심도 없고 이기적이다’ 싶어 화가 났지만, 곧 ‘저분도 사정이 있어서 거절했겠지’라고 돌이켜 이해하니 편안해졌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하다

인도 델리 공항에 도착한 후 버스를 타고 15시간을 달려 사르나트에 갔습니다. 히터가 나오지 않아 너무 추웠고, 오들오들 떨면서 버스에서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사르나트 숙소인 캄보디아 절에 도착하니 이제 따뜻한 곳에서 무릎 펴고 잘 수 있겠구나 싶어 고마웠습니다.

캐리어와 공용 물품을 버스에서 내리고 숙소로 올리는 과정에서 짐이 너무 많아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런 저와 다르게 짐을 가볍게 챙긴 법사님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면서 인생을 힘들고 무겁게 사는지 알았습니다.

드디어 그 유명한 강가강(갠지스 강)에 도착했습니다. 기뻤습니다. 많은 힌두교인이 강에서 목욕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시체를 화장해서 뿌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좋은 것, 죽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결국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됨을 알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집착을 내려놓고 인생을 가볍고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만난 밝게 웃는 학생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델리 등 다른 지역에서는 구걸하는 어린이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 학생들은 구걸하지 않고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는 점, 해맑은 모습으로 순례객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동했습니다. 수천 명의 아이들 인생을 스님이 바꾸셨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오랜 세월 스님이 닦아놓은 길을 저는 따라만 가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쿠시나가르에서 탑돌이를 하였습니다. 이 좋은 법을 가르쳐주신 부처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났습니다. 네팔 탄센에서는 흰 눈이 쌓인 히말라야 산군 너머로 일출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가난한 인도 마을 곳곳을 걸으면서 ‘내가 얼마나 풍족한가!’, ‘더 가지려고 욕심 내며 얼마나 불평하는가!’, 화장실이 없어 야외 숲속에서 볼일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형식에 얽매여 자연스러움을 잃고 많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가!’ 생각했습니다. 많이 소유하는 것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라는 스님의 말씀이 때로는 잔소리처럼 들렸는데 이제는 솔선수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도성지순례에서(앞줄 가운데가 최윤영 님)
▲ 인도성지순례에서(앞줄 가운데가 최윤영 님)

내 업식을 이해하고 아버지를 이해하다

인도성지순례를 하며 내면의 제 ‘꼬라지’를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짝짓지 않고 혼자 다니면서 제 마음을 보고 싶었습니다. 육체가 힘들 때 드는 마음, 상대가 한 행동을 보면서 올라오는 마음 등을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 좋아하는 업식이 있어 쉽지 않았지만, 어렵게 시간 내서 온 만큼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삽니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아버지가 혼자 지내는 것이 불안했는지 “너와 같이 살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저는 주말 부부이고, 대학생 딸이 있으나 아들은 집을 나가 살기 때문에 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이지만 어른을 모시고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시는데 나는 왜 아버지를 보면 괴로운 걸까?’ 하고 늘 고민했습니다. 예전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불쑥불쑥 올라와 괜스레 화가 나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독자로 귀하게 자라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려와 사랑이 부족합니다. 요양병원에 있는 어머니 면회도 잘 안 갑니다. 저희 삼 남매 모두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직장 일도 피곤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 없이 항상 누군가 옆에 있어 숨이 막혔습니다. 친정아버지이기 때문에 남편과 자식들에게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맨 오른쪽이 최윤영 님)
▲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맨 오른쪽이 최윤영 님)

성지순례 명심문인 ‘모든 분별심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를 되뇌며 제 업식을 보았습니다. 제 업식을 이해하니 상대의 업식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이유 없이 화가 나는 것도 제 업식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과거를 원망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며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집착하며 이기적으로 살아온 업식을 녹여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성지순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며 저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 감사했습니다.

스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원망하며 평생을 괴롭게 살았을 것입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다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무지를 깨우치고 감은 눈을 뜨게 해주신 스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수행자이지만 방향을 잃지 않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묵묵히 한 걸음씩 걸어가겠습니다. 언젠가는 부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불교대학 학생들과 함께(뒷줄 가운데가 최윤영 님)
▲ 불교대학 학생들과 함께(뒷줄 가운데가 최윤영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5월 호에 수록된 인도성지순례 소감문입니다.

글_최윤영(인천경기서부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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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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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구

지금 마음은 편안합니다.
왜냐하면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2025-12-08 13:04:24

손경희

잘 읽었습니다. 저도 내년에 성지순례 가기에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최윤영 님 글이 제 마음 같아 공감 많이 했습니다. 소중한 경험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2025-12-08 10:22:22

오희선

^^ 최윤영님 덕분에 성지순례가 참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글로 만나니 또 기쁩니다 ^ 성지순례 때 함께 한 게 엊그제 같네요~ 다음에 또 같이 가요~ 함께 해서 고마웠습니다 ^^

2025-12-08 08: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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