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래지회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살았습니다

“도반님들, 저는 제가 뭘 잘못하는지 잘 몰라요. 제가 잘못하면 알려주세요”

우리 모둠장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어떨까? 이수정 님을 인터뷰하면서 문득 이와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난감할 수도 있고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모둠장 참 멋지다'라는 생각에 가슴이 뛸 것 같습니다. 도반의 소중함을 제대로 아는 한 모둠장 이야기, 따끈하게 들려드릴게요.

죽을 때까지 배운다

저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절에 가는 어머니를 따라다녔고, 초파일은 종일 밥을 얻어먹는 날인 줄 알았습니다. 2013년쯤, 집 근처에 있는 혜원정사의 불교대학을 다녔습니다. 우리 집 가훈이 “죽을 때까지 배운다”였는데, 그래서인지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신문에서 강연 안내를 보고 수정동 동구청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도 참여했습니다. 당시 사람이 엄청 많아서 계단에 앉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2020년 5월 연산동 연재 법당에서 마야부인 역할 하는 이수정 님(오른쪽)
▲ 2020년 5월 연산동 연재 법당에서 마야부인 역할 하는 이수정 님(오른쪽)

남편이 병으로 죽고,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2015년 가을, 버스 정류장에 붙은 정토불교대학 전단을 보고 동래 법당을 찾아갔습니다. 2019년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하던 중에 연산동에 연재 법당이 생겼습니다. 불교대학은 마쳐야 해서 동래 법당으로 가고, 다른 행사들은 가까운 연재 법당으로 다녔습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연재 법당이 1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초파일 행사 때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야부인이 되어서 못 해본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코로나 오기 전에 동북아 역사 기행도 다녀오고 인도 성지순례도 다녀왔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서 동북아 역사 기행이 인도 성지순례보다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다녔었는데, 이제는 전쟁이 나서 안타깝습니다. 모르던 역사를 배우며 눈물이 많이 났고, 우리가 대단한 민족이라는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인도에 갔을 때는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다들 자는데 옆에서 챙긴 걸 또 챙기고 하면서 민폐를 끼쳤습니다. 공부를 많이 안 하고 가서 그런지 말씀도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 처음이라 어려웠고 세 번 정도는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는 아이들이 반겨주고 행사하는 모습을 보며 스님의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바른 선생님을 만나다

정토회를 만난 후에는 그동안 제가 배운 불교가 기복 불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이 아플 때는 절에서 구병시식(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구하는 의식)도 하였습니다. 조상이 안 좋다는 말에 천도재도 지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담당 스님을 만나기로 한 날에 비가 많이 와서 스님이 오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탁 냈을 때 바로 진행하면 했을 텐데, 약속이 무산되고 나니 금전적 부담 등 이런저런 이유로 안 했습니다.

2020년 1월 첫 번째 인도성지순례(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수정 님)
▲ 2020년 1월 첫 번째 인도성지순례(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수정 님)

남편은 사촌 형님 아래서 직장 생활을 7년 한 이후로는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했습니다. 양복 입고, 주말은 쉬는 일만 하려 했습니다. 복덕방에서 신용정보 파는 일을 했는데, 바지사장을 시켜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본인 인감도장과 통장을 복덕방에 맡겨 대출받았습니다. 그 빛을 제가 1년간 법원을 쫓아다니며 대신 갚았습니다. 남편은 몸이 안 좋아 여러 가지 약을 먹었습니다. 약을 한 달간 못 먹었다고 했을 때, 도와달라는 신호로 알고 챙겨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죽고 나서도 시댁과는 잘 지내고 있지만, 남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런 중에 정토회를 만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토회에 와서야 완전한 불법을 만났습니다.

2021년 9월 두북봉사(가장 오른쪽이 이수정 님)
▲ 2021년 9월 두북봉사(가장 오른쪽이 이수정 님)

너무 모르고 살았습니다

저는 40살부터 지금까지 영업직 직장 생활을 계속해 왔습니다. 처음 본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속을 너무 드러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늘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속마음이 다 드러나서 손해 보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이제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고르는 지혜가 조금 생겼습니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딸아이가 무책임한 아빠 흉을 보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가 남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딸에게도 화풀이를 많이 해서, 아이가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딸이 저에게 하는 행동이 제가 남편에게 한 행동일 수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딸의 마음을 너무 모르고 살았습니다. 다 큰아이에게 성인 대접을 많이 안 해준 것도 후회됩니다.

딸을 어린이집에 보낼 무렵, 원장이 아이의 주관이 너무 뚜렷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얘기해서 안 보냈습니다. 정토회에서 공부하고 나니 제가 너무 옳다 그르다, 나쁘다 좋다는 관점에 치우쳐 아이에게도 영향이 갔음을 알았습니다.

2020년 2월 문경수련원에서 정회원 수련(오른쪽이 이수정 님)
▲ 2020년 2월 문경수련원에서 정회원 수련(오른쪽이 이수정 님)

전에는 딸이 문자나 대화 속에 험한 말을 많이 했습니다. 운전을 배우러 온 딸과 제가 대화하는 걸 들은 회사 직원이 "내 딸이면 귀싸대기를 때렸다."라고 할 정도로 심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정일사 할 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겠습니다.’라는 명심문으로 정진했습니다. 실천을 해보니 모든 게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딸아이 역시 제 말들로 불안했음을 알았습니다.

팔자를 바꿀 수 있는 정토회

지금은 동래지회 연산모둠 모둠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뭘 잘못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모둠원에게 “제가 모르니까 말 좀 해주세요”라고 합니다. 미안해서 말을 잘 안 해주지만, 들어서 고칠 수 있으면 고칩니다. 말해주면 참 고맙습니다. 회사에서도 조언을 해주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공감대 형성이 잘 안 되고 다른 사람 이야기에 꼭 초를 친다고 합니다. 예전에도 남편이 말할 때 들어만 주면 되는데, 조언한다고 ‘당신이 참으면 되지’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상대가 말하면 “그렇지?” 하고 맞장구를 치기도 합니다. 아직도 습관은 남아있지만 10년 공부한 덕에 ‘내가 옳은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팔자는 못 바꾼다고 하지만, 정토회에서는 팔자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10월 경전반 으뜸절 체험 천룡사에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수정 님)
▲ 2022년 10월 경전반 으뜸절 체험 천룡사에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수정 님)

나는 “정토 보살”

혜원정사 불교대학 20기들이 공부를 잘했는데, 그 20기 회장에게 정토불교대학을 소개했습니다. 그가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행복시민이 됐습니다. 최근에는 그만둘 거라고 하길래 ‘회비라도 내’라며 같이 웃었습니다. 혜원정사 분들도 다 법륜스님을 알고 있으니 초하루 친목 모임 때마다 정토회 관련해서 한마디씩 나눕니다. 모두 저를 정토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인도성지순례를 가고 싶다는 분도 있어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시켰는데, 졸업하고 다시 혜원정사로 돌아갔습니다. 회사 동료 1명도 정토경전대학까지 졸업했지만, 봉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같이 봉사할 사람을 찾아보지만 제 마음 같지 않습니다. 정토회 오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눈을 조금만 넓고 크게 돌리면 되는데, 수행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좀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다 내 마음이고, 그 사람들은 아직 자기만의 신앙방식이 있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5년 동래지회 모둠장 회의(아랫줄 맨 왼쪽이 이수정 님)
▲ 2025년 동래지회 모둠장 회의(아랫줄 맨 왼쪽이 이수정 님)

고마운 자녀들, 고마운 도반

이제는 별 어려움 없습니다. 딸이 한 번씩 “엄마는 아직도 집이 없냐?”고 타박하는 것 외에는 다 좋습니다. 딸은 가난하게 자라서 그런지 소유욕이 강합니다. 엄마를 안 닮아서 참 고맙고 다행입니다. 엄마는 우유부단하게 사는데 딸은 알아서 척척 해나가니 그런 건 제가 배우고 싶다고 말합니다. 딸은 호주에서 결혼해서 살고 있고, 아들도 호주에서 취직해서 잘 지냅니다. 제가 못 해줬는데도 아이들이 너무 잘 커서 참 고맙습니다.

정토회 프로그램은 다 좋습니다. 바라지장도 하고 싶고, 서원행자로 공부도 해보고 싶고, 깨달음의 장 돕는이도 하고 싶은데 나이가 걸립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한테 나이 들기 전에 다 해보라고 합니다. 도반이 ‘수행의 전부’라는 말씀이 늘 와닿습니다. 이끌어준 선배 도반들이 없었다면, 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스님이 "지금 여기 있는 분들도 있지만 없는 분들이 더 많다. 그분들 덕분에 정토회가 이뤄졌다"라고 한 말씀이 기억납니다.

2024년 2월 사시예불팀(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수정 님)
▲ 2024년 2월 사시예불팀(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수정 님)

현재 같이 가는 분들이 한분 한분 너무 소중한데 떠나는 사람이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저분이 내 거울이네, 저거 내 모습인데?' 하면서 같이 가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법사님이 수행, 보시, 봉사에 모범을 보여야 도반들이 따라온다고 해서 늘 저를 돌아봅니다. 나누기는 여전히 어려울 때도 있지만 덕분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마무리하며 나에게 한마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아직은 어렵습니다. 제가 요령이 없다 보니 그저 바쁘게 살아서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쉴 때는 쉴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말을 해봅니다. 그리고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저에게 칭찬을 너무 안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야박했던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살아왔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고 다독여 봅니다.

2023년 2월 두 번째 인도성지순례길에서
▲ 2023년 2월 두 번째 인도성지순례길에서


죽은 남편에게 미운 마음은 없었다는 이수정 님. 예쁜 아이 둘을 줘서 고마웠다는 말씀에 가슴이 찡했습니다. 이제는 삶이 편안해져서 지난 기억은 많이 아득해진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씩 정성껏 떠올려 이야기를 풀어주시는 마음이 참 감사했습니다.

이수정 님은 처음에는 좀 막막했지만, 속에 있는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방긋 짓는 미소에 제 마음도 포근해졌습니다. 잘 살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글_ 이정원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광명지회)
편집_ 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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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숙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저도 아직은 어려운데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

2025-11-12 17:59:27

정 명

잔잔하고 따뜻한 수행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정리해주신 이정원님, 윤정환님 수고 많으셨어요

2025-11-12 16:29:43

현광 변상용

간결한 글 속에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것 같네요. 그것과 다름이 없이 멋지게 살아오신 것 같구요.
많은 도움이 되는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2025-11-12 12: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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