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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옥 님은 신혼 때 두 번의 나팔관 임신으로 수술하게 되었고, 아이를 낳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깊은 상실감을 겪었다고 합니다. 불임 치료를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많은 돈과 시간을 쏟은 끝에 마흔한 살에 어렵게 딸을 출산하자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로부터 받은 게 참 많다는 생각에 봉사도 하였는데요. 정토회를 만난 이후에는 '세상에서 받은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미륵사에서 매주 수요일 사시예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당연한 것이라 여길 수 있는 일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보답하며 살아간다는 권순옥 님의 순하고 예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저는 전남 광주에서 남편, 딸과 함께 사는 가정주부입니다. 20대 중반에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했고, 선물같이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몸이 안 좋고 배가 아프면서 이상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나팔관 임신이었습니다. 수술 후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아이가 안 생기면 어떡하나,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2년 후 다시 임신을 했고, 우리 부부는 기뻤습니다.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라고 했는데, 이상 증상이 또 나타났습니다. 병원을 아홉 군데나 다녀봤지만, 원인이나 병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하고 2년 전 수술했던 산부인과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도 나팔관 임신이었습니다. 바로 이 병원으로 왔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내 몸을 방치한 채 여기저기 다니다가 오히려 병을 키우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팔관이 터져 수술을 받고 의사로부터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걱정을 많이 끼치겠구나! 미안한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당시에는 칠거지악이라는 옛날 사고방식이 있어서 아이를 못 낳으면 큰 죄라도 짓는 줄 알았습니다. 두 번의 수술은 제게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시댁이나 다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공허함과 왠지 모를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힘겹고 외로운 시간 속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시누이가 아는 절이 있다며 마음을 달래라고 소개해 주었지만,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이가 없어서 대를 이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대병원에 상담하러 갔더니 불임 환자가 많다면서 3년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있는 돈을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다가 내 나이 마흔한 살에 시험관 아기로 드디어 딸을 출산했습니다. 감격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동안의 서러움과 죄책감이 모두 씻겨 내려갔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고, 남편과 저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 많다는 생각에 문득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떤 것을 할지 찾아보다가 지역의 무료 배식 행사에 일주일에 한 번씩 참여하고, 다니던 절에서도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그 무렵 서울에 사는 지인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내주었고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 공부도 하고 싶었습니다. 나이 제한에 걸려 안 된다고 하면 상처받을까 봐 혼자 전전긍긍하다가, 정토불교대학은 나이 제한이 없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 날에 접수했습니다.
공부하면서 도반들과 함께 봉사하고 매일 새벽 법당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정토회 활동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법당에서 하던 소임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봉사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컴퓨터가 서툴러 온라인 봉사가 어려웠습니다.

아무 소임도 없이 내 집 법당에서 매일 새벽기도를 하고 수행 법회에 참여하니 몸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반면 허전함도 있었습니다. 그때 한 도반의 권유로 미륵사와 인연이 닿았고, 정토회에서 한 가지라도 봉사하려고 수요일마다 미륵사에 다녔습니다. 지회장님이 보리수 활동을 제안했을 때 “예”하고 가볍게 신청했고, ‘세상 빚 갚는다는 마음으로 여기에서 꾸준히 봉사해 보자’라는 마음이 자리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하면서 평소 몰랐던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성격이 급하고 책임감이 강합니다. 언제나 먼저 행동하면서 ‘별것 아닌데 아무나 하면 되지, 나 혼자 해도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늘 혼자 일하다 보니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제 행동이 함께하는 도반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보리수 활동하면서 법사님께 받은 첫 번째 명심문은 ‘작은 일도 도반과 함께한다’였습니다. 일상적이면서 가장 쉬운 것으로 정했습니다.
공양 시간에 제일 먼저 자리에 앉고, 공양 후 제일 늦게 일어나기를 연습했습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일어나려고 하면 도반들이 잡아주었습니다. 도반들의 도움으로 일어섰다 다시 앉기를 반복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히 연습한 덕분에 이제는 도반들에게 자연스럽게 맞춰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 내 선의가 때로는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알아차리기 전에는 ‘배려’라는 내 생각에 갇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급함은 여유로움으로 바뀌고, 여유로움은 편안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내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지 자주 살펴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수행 나누기를 하면서 도반들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졌습니다. 도반의 행동을 보고 ‘왜 그러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수행과 나누기를 하면서 ‘나와 다르구나’ 이해하게 되고, 이해가 되니 상대방을 인정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알아차림으로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일과 수행을 자연스럽게 실천했습니다. 스승이 되어주는 도반들 덕분에 내가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가깝다는 핑계로 가족에게 친절하지 못했습니다. 완벽주의 성향으로 가족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내어,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봉사하면서 소임 덕분에 가족에게 파도치는 마음이 생기면 탁 내려놓아졌습니다. 사시예불 소임을 하는데 ‘남의 기도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누가 보든 안 보든 한결같이 잔잔한 마음이 되어야지’ 하면서 스스로 채찍질했습니다. 경계에 부딪힐 때도 ‘앗’하며 바로 알아차리니, 감사함을 알게 되고 ‘소임이 복’임을 제대로 느끼고 있습니다.
정토회 미륵사에서 매주 수요일 사시예불을 담당하고, 천도재 소임과 7대 행사에 봉사하며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습니다. 평정한 마음이 유지되어 돌아보는 시간이 뿌듯하고, 값지게 느껴집니다. 매주 보리수 정진에서 유수 스님 법문을 비롯하여 각 지역 법사님들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또한 우리 지부 법사님께 일과 수행을 통해 알아차린 점과 미진한 점을 점검받고, 개인 수행 과제를 정하여 꾸준히 실천하며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수행자로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주 광주에서 무안에 있는 미륵사로 봉사하러 가는데, 별다른 불평 없이 대해주는 가족과 스승이 되어주는 도반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나이가 들어가지만, 몸이 허락하는 한 지금처럼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입니다. 정토회의 일원으로 도반들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글_김순옥(보리수 7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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