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진주지회
합장을 하면 손이 떨렸습니다

꾸밈없이 순수하고 두터운 인정이 느껴졌던 김나은 님.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 기사가 되겠냐며 희망리포터를 염려합니다. 순박함이 특별함이고 무덤덤한 행보가 모자이크 붓다를 이룬 수행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2024년 10월 불법 인연 맺은 친구들과(오른쪽 첫 번째 김나은 님)
▲ 2024년 10월 불법 인연 맺은 친구들과(오른쪽 첫 번째 김나은 님)

공부가 하고 싶었던 장녀

경남 진주시 집현면이 제 고향입니다. 한마디로 시골이고 농사가 생업입니다. 먹고살기 참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2남 3녀 중 장녀입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진학 대신 집안일을 했습니다. 저는 농사와 집안일보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열다섯 살에 친구 집에서 식모를 구했고, 공부하자는 각오로 집을 나갔습니다. 집 나간지 삼 일째, 12살 여동생이 찾아왔습니다. “언니야, 집에 가자.” 냉혹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여동생과 함께 동생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했던 청소년기, 마음 깊은 곳에 소리 없는 갈망의 외침을 쌓았습니다. 저는 점점 말수가 줄었습니다.

2025년 봄 애광원 나들이 안내 봉사(오른쪽 첫 번째 김나은 님)
▲ 2025년 봄 애광원 나들이 안내 봉사(오른쪽 첫 번째 김나은 님)

고달픈 결혼생활

결혼하기 싫었습니다. 남자를 피했지만, 21살에 결혼했습니다. 자주 싸웠습니다. 매일 많은 양의 술을 마셨던 남편은 제 나이 36살, 첫째 14살, 둘째 9살 때 결국 간암으로 죽었습니다. 먹고살아야 했기에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오는 날을 보냈습니다. 트럭에 저와 이웃의 수확물을 가득 싣고 여기저기 나르고 팔면서 억척스럽고 강하게 생업에 몰두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 마음이 어땠는지는 더욱 기억나지 않습니다. 남편 죽고 쳇바퀴 돌아가듯 살아내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애달프고 고달파도 살아졌습니다. 오십 넘어 아이들이 자기 갈 길을 찾자, 한숨 돌리는 틈이 생겼습니다. 그제야 마음 깊은 곳의 외침이 들렸습니다.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2011년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죽림정사 사시예불  김나은 님
▲ 죽림정사 사시예불 김나은 님

불교 공부 해 볼래요?

"불교 공부 해 볼래요?" 대학교 선배가 가볍게 던진 말을 가볍게 받아 2017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시간 되니 ‘한 번 배워본다.’라는 마음으로 수업을 들었습니다. 좋다. 싫다는 마음 없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다녔습니다. 그리해도 가랑비에 옷 젖듯 불법이 스며들었습니다. 합장만 하면 손이 떨렸습니다.

졸업 때쯤 ‘통일기도 목탁 릴레이 24시간’에 목탁을 잡았습니다. 떨렸던 손이 어느새 떨림 없이 합장하고 탁! 탁! 탁탁탁~~ 목탁을 칩니다. 예불 소리를 냅니다. 둔감했던 저의 감각들이 깨어납니다. 살면서 밖으로 목소리 낼 기회가 없었는데, 예불 때는 제 목소리가 법당을 가득 채웁니다. 합장한 손이 왜 떨리는지? 어떤 감정인지? 모를 만큼 저의 삶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평안함은 남의 얘기였는데 다른 긴장이 마음을 깨웁니다.

정토회 일은 주어지는 대로 덥석 받았습니다. 목표나 목적 없이 때로는 부담도 모르고 정해진 것이니 그냥 한다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제가 도움 되는 일이면 책임감을 가지고 여장부처럼 움직였습니다. 농작물을 트럭에 싣고 팔 때 내 것 남의 것 가리지 않았던 것처럼 일이 눈에 보였습니다. 돌아보면 그 인연이 그저 고맙습니다.

2018년 깨달음 장 도반들과 (오른쪽 두 번째 김나은 님)
▲ 2018년 깨달음 장 도반들과 (오른쪽 두 번째 김나은 님)

용기 나지 않는 대화

불교대학에 다니며 수행 맛보기로 시작한 108배 정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덕분에 1~7차 천일결사 때 꾸준히 한다는 선물로 금강경 책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허리와 발목이 좋지 않아 명상으로 새벽 정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진을 통한 참회의 시간은 저에게 큰 공부입니다. 저는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돈 버는 것만 집중했습니다. 법문 듣고 도반들의 나누기를 들으며 새로운 생각이 드니 정진할 때면 딸과 아들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자식이 우선이었는데, 시간 갈수록 죽은 남편에게 먼저 참회합니다.

대화가 되지 않던 남편, '그 시절 남자들은 다 그렇다.'라고 모두 남편 탓으로 생각했습니다. 법문 듣고 알아차렸습니다. 남편의 성장 과정을 알면 대화를 못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부모님은 서로 원수처럼 지냈고, 남편은 부모님에게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그 사정을 헤아려 제가 먼저 말 걸고, 물어보고, "같이 밥 먹자, 어디 가자" '빈말이라도 자주 할 걸'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랬다면 남편이 혼자서 술만 마시기보다 '뭐라도 같이 해서 좀 더 살다가 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남편도 저도 억눌린 마음으로 살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대화도 하지 않았음을 헤아립니다.

2018년 불교대학 졸업식(가운데 김나은 님)
▲ 2018년 불교대학 졸업식(가운데 김나은 님)

참회 시간에 떠오른 장면이 있습니다. 그날도 남편과 크게 다투었습니다. 화가 너무 났습니다. 홧김에 둘째만 데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오니, 집에 남아 있던 아홉 살 딸이 엄마를 보고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눈물이 고이고, 마음의 응어리가 있습니다. 저는 한 달 만에 집에 와서도 딸은 안중에 없고, 남편에게 원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법문 듣고 수행하며 그때의 딸을 생각합니다. 아직 딸과 대화할 용기가 없지만, 간절한 참회와 함께 '언젠가 대화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소임으로 마주한 말들

저는 친구들에게도 표현을 잘 못합니다. 그런 저의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멀뚱멀뚱 보고만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할 때 거절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거절하지 못한 것이 또 다른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둠장이 되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는 말을 제가 합니다. 마냥 어렵더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소임 덕분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의견을 내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묻기도 합니다. 남편에게 못했던 말을 모둠장이 되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아 두루두루 하면서 놓쳤던 나를 찾습니다.

닥치면 다 한다 해도 막상 소임과 마주하면 만만치 않습니다. 올 상반기, 모둠장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미리 봐야 할 문서를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이게 뭐야, 갈수록 왜 이리 어렵지?' 과제도 많고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잠적할까? 확 도망갈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므로, 마음을 바로잡았습니다. 도반이 힘이 되었습니다. '같이 하자' 다독이고 부추기며 서로 없으면 안 되는 필요한 존재가 되면서 부담스러운 마음의 짐이 녹았습니다. 내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들어주는 도반들에게 믿음이 생깁니다. 믿으니, 혼자 못하는 건 도와 달라는 요청도 합니다.

2018년 6월 경주, 통일의병교육(앞줄 가운데 김나은 님)
▲ 2018년 6월 경주, 통일의병교육(앞줄 가운데 김나은 님)

수행 정진은 알아차림의 연습입니다. 저를 표현하는 건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콩나물이 자라듯 저 또한 성장하고 있습니다. 콩나물 통에 물이 빠져나가면, '이렇게 해서 콩나물이 자랄까?' 의문이 들지만, 계속 물을 주면, 콩나물은 금세 자랍니다. 저 역시 정토회에서 하는 것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표현하고 대화를 나누며 편안한 감정을 느낍니다.

푸근한 세상으로

정토회를 만나기 전, 뭐랄까? 저는 고양이 앞의 쥐였습니다. 한마디로 겁쟁이였습니다. 지금은 어지간한 일은 '다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많이 넓어졌습니다. 살기 위해 억척스러웠던 제가 수행을 통해 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푸근하고 너그럽게 세상을 바라봅니다. 허리와 발목이 좋지 않아 절은 못하지만, 아침마다 운동하며 몸을 돌봅니다. 몸을 돌보는 저를 너그럽게 봅니다. 이 모두 불법을 공부한 덕분입니다. 그렇구나! 알아차림의 힘입니다. 저는 이제 편안합니다.


함께 어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존재라고 느낄 때 힘이 난다는 김나은 님. 꾸밈없이 이대로 좋은 나로 나이 들고, 계속 정토 행자로 살고 싶다고 합니다. 희망리포터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하는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글_허승화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사하지회)
편집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전체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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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미

십여년을 함께 해도 깊은 속사정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글로 이렇게 만나니 도반님이 큰 존재입니다.
고맙습니다.
곁에 계셔서 든든합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가요~^^

2025-06-25 16:34:41

대정진

속 깊은 나누기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5-06-25 15:14:48

서정

고마운 마음입니다!
모둠장님 화이팅익니다!!^^♡

2025-06-25 13: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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