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김보미 님은 백일출가 기간 동안 아버님의 부고라는 급작스러운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문경으로 돌아와 백일출가를 무사히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묵었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도 자연스럽게 풀어냈습니다. 항상 남을 탓하며 살아왔던 청년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가볍게 내어 놓는 데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조용히 응원하는 마음이 듭니다.
2017년 종로법당 청년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정토회와 인연이 닿았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마음공부를 시작하였고, 불교대학 졸업 이후로 경전대학, 불교대학 담당자, 경전대학 스태프, 청년 정토회 복지팀 봉사 등을 하며 지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와서 백일출가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2022년 회사를 그만두면서 지금이 기회다 싶어 신청했다. 당시 정토회 활동가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분별심이 많이 나서, 그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백일출가 입방 전 만 배를 하면서 처음에는 ‘할 수 있다’, ‘백일출가 너무 기대된다’ 등 긍정적인 마음으로 절을 하다가, 무릎이 아프고 힘들어지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여기 왜 왔지?’ 등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밑 마음에 있던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도 올라왔다. ‘엄마 때문에 정토회를 오게 되고 이렇게 힘들게 만 배도 하게 되었다’고 엄마를 탓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장애나 어려움에 부딪히면 그것을 넘어서려고 하기보다 누군가를 탓하며 회피했었다. 백일출가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행자님들과 함께할 때, 내가 실수하거나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일 때 행자님들을 탓하는 마음이 들었다. ‘모두 행자님들 때문이다. 이 행자님은 이게 문제고, 저 행자님은 저게 문제다’라고 생각하며 일에 대한 책임을 행자님들에게 돌렸다.
마음 나누기 시간에 행자님들에 대한 불만을 나누기하며 문득 ‘내가 이런 마음의 패턴이 있구나. 항상 탓하며 살아왔구나’ 하고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부모님 탓, 환경 탓, 상대 탓하며 살아온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싫어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는 순간에도 나는 항상 부모님과 환경 탓을 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렇게 누군가를 탓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남을 탓하며 그 순간을 외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변화도 발전도 없이 흘러가 버릴 뿐이었다. 이런 업식을 알아차리니 부정적인 마음과 탓하는 마음이 들 때, ‘내가 또 이렇게 마음에 끌려가는구나!’ 하고 알아차려졌다. 남을 탓하는 게 아무 소용 없는 것임을 아니,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과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44기 백일출가 동기는 총 5명이었다. 나 이외의 4명은 전부 자녀를 둔 보살님들이었다. 처음에는 나보다 인생을 오래 산 분들이니 잘 따르기만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나는 학생 때도, 사회생활 하면서도 늘 묻어간다는 느낌으로 지냈다. 나서기보다 누군가의 옆에서 따라 행동했고 다수 쪽으로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래서 삶을 평탄하게 살아온 것도 있다. 눈에 띄지 않은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적당히 눈치를 봐가며 살았다. 이런 나의 업식은 백일출가에서도 이어졌다. ‘이 행자님은 이런 분이구나, 이런 걸 싫어하는구나, 저 행자님은 이런 성격이구나’ 하며 다른 행자님들의 눈치를 살피고 거기에 맞추며 행동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 외 모든 시간을 행자님들과 함께해야 했다. 다른 행자님들을 매 순간 살피고, 눈치 보고, 긴장하니 밖에서 적당히 눈치 보며 살던 것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체중이 5kg 이상 빠질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행자님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때 많이 힘들었다. 특히 공양간에서 행자님들 서로의 업식이 부딪치며 큰 소리가 나왔고, 나누기 시간에도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말들이 이어졌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찌할 바 몰랐고, 그런 상황이 싫었다. 예전부터 친구 사이나 회사, 가정에서 갈등이 있을 때, 나는 항상 가운데서 이쪽과 저쪽의 말을 듣는 중립적 입장이었다. 어릴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아빠 험담을 하거나 아빠가 엄마에 대한 불만을 얘기할 때가 종종 있었다. 부모님이 서로 화가 나서 얘기할 때면 내가 중간에 나서서 말리고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생각으로 갈등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다. 갈등이 해결되고 다 잘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는 불안과 애쓰는 마음이 들었다. 돌아보면 갈등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인식했던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애쓰곤 했다. 백일출가에 참여하며 사람들과 함께하고, 갈등 상황에 놓였을 때 그 마음을 분명히 보니, 나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백일출가 중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영향을 끼친 큰일이 두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이다. 태풍피해 복구를 위해 두북수련원에 갔을 때였다. 새벽 예불을 마친 뒤 갑자기 백일출가 스태프가 나를 불렀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이야기였다. 그 길로 스태프와 함께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서울의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하지만 병원에 가는 중에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아버지는 길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쳐 뇌출혈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서울로 가서 장례를 치렀다. 그때 일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백일출가를 이어갈지 아니면 포기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백일출가를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 다시 문경으로 돌아갔다. 법문에서 들은 베사카 부인의 손자 이야기와 어느 여인이 겪은 아들의 죽음 이야기를 떠올리며 아버지 생각에서 점점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버지 일을 겪으니 ‘삶이란 것이 진짜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법륜스님이 ‘아침에 일어나서 108배를 하며 오늘도 살아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하루하루 살아있는 게 기적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구나 싶었다. 나는 평소 감사함을 모르고 살았다. 늘 원망과 탓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이 일을 통해 지금 이렇게 살아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였다.
초등학교 1~2학년쯤 엄마가 아빠와 돈 문제로 다툰 후 집을 나갔다. 엄마가 돌아온 후에도 아빠와의 관계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아빠와 싸운 뒤 나에게 약 먹고 죽어버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후 우연히 엄마의 가방을 들여다봤는데, 그 안에 수면제가 여러 개 있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가 저 약들을 먹고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항상 엄마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엄마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불안했다. 엄마의 기분이 좋아졌으면 해서 엄마의 말을 잘 들었고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았다. 엄마의 기분이 내 기분이 되었고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이후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누군가 기분이 안 좋거나 싫은 내색이 보이면 불안했고,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애를 썼다.
백일출가 와서도 다른 행자님들의 눈치를 보며, 싫은 내색을 보이는 행자님을 보면 불안하고 피하고 싶었다. 그때 엄마와의 일이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고, 상처가 되어 지금까지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법사님께 이 일을 이야기했더니 이것을 엄마에게 얘기해 본 적이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단 한 번도 이 일을 엄마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미 지난 일이고, 엄마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그리고 이야기해서 바뀔 건 없다는 생각에 말을 안 했다. 그러나 백일출가를 끝내고 재입재하겠다는 나를 엄마가 말리셨을 때 트라우마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 그때 그 일이 트라우마가 돼서 지금도 힘들다며 눌러놓은 감정과 외면했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백일출가하면서 거기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고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들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울면서 몰랐다고 하셨고, 내 마음을 받아주셨다. 표현하니 시원했다.
앞으로의 나의 수행과제는 감정을 쌓아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 눈치 보는 마음이 앞서 상대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하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말은 안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감정이란 좋고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있는 그대로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게 가볍게 사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좀 더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그리고 '무언가 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한다' 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편하게 살아보려 한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이 많아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좀 더 가볍게 생각하고 행동하여 그 결과도 가볍게 받는 연습을 하고자 한다.
100일은 나를 돌아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백일출가로 금방 내가 변화하진 않았지만, 내 업식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받아들여 전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앞으로도 높은 이상을 내려놓고 지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현재에 깨어있어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가벼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글_김보미(백일출가 44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27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