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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어느 날 회사 사장님이 “너 이번 주말에 뭐 하냐? 할 일 없으면 경주 다녀올래?”라는 제의를 했습니다. 대뜸 경주 여행이라니 좀 황당했지만, 가기로 했습니다. 알고 보니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경주 역사기행이었습니다. 그때는 법륜스님이 누군지 모르고 갔는데 역사와 불교에 대한 설명을 굉장히 잘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불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관심이 생겨 집에 와서 컴퓨터로 불교를 검색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사장님이 입학금을 내주며 불교대학을 권유했고 그때부터 정토회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군대를 마친 후 바로 직장을 다녔습니다. 당시 조명 시공하는 일을 했는데, 요즘은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20년 전에는 아침 8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했고 주말도 없었습니다. 일이 정말 힘들었고,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채우기 위해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결근하고, 일할 때는 짜증을 많이 냈습니다. 사장님이 볼 때마다 “인상 좀 펴라” 할 정도였습니다. 아마 사장님이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는 불교대학을 권유한 것 같습니다. 청주 불교대학을 입학한 후에는 법당으로 매일 가서 법문을 듣거나 봉사를 하고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법당에 매일 가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술을 마셨을 겁니다.
법륜스님이 쉽게 설명해 주는 법문과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일어난다.” 이런 말씀이 정말 신선했습니다. 지금까지 상대를 탓하거나 원망하기만 했는데, 그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법륜스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침 정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새벽 기상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후에 졸음이 쏟아질 때도 많았는데, 어느 날은 운전 중 깜빡 졸아 접촉 사고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정진을 꾸준히 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인상이 밝아졌습니다. 정토회와 인연을 맺게 해준 사장님과는 지금도 종종 통화하는 도반이 됐습니다. 사장님도 정토회 만나서 많이 변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새엄마와 함께 살았습니다. 친엄마는 다른 곳에 살았습니다. 그런 상황에 할머니는 “너희 엄마는 가출했다.”라며 친엄마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자주 했습니다. 엄마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들으며 유년기를 보내니 엄마가 미웠고 나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럴까. 나의 현실은 왜 이렇지?’라고 자책하며 스스로 많이 괴롭혔습니다. 새엄마와 5년을 살았는데 그 시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밥도 잘 챙겨주지 않고, 때리던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따뜻한 품속에서 자라지 못하고 폭력에 노출되어 자신감이 많이 없었습니다.
부정적으로 되풀이되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정토회에서 만난 정진이었습니다. 정진하던 어느 날, ‘아, 그 일은 나의 잘못이 아니었구나.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 왜 스스로 괴롭혔던 거지?’ 하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깨달음 이후 전보다 삶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알아차림의 힘은 서서히 쌓여갔습니다. 스님의 법문과 아침 정진, 도반들의 나누기, 즉문즉설을 반복적으로 접한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반들의 나누기를 들으면서 저만 어려웠던 현실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또 그것이 그렇게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청주 청년회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는데 함께 활동하던 도반들과 즐겁게 활동하고 서로를 지켜본 것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천안에 창립 법회를 열고, 1시간 40분 거리를 오가면서 불교대학을 6개월간 진행할 때는 하기 싫은 마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담당한 5명의 불교 대학생들을 꼭 졸업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청년 불교대학 진행을 맡으며 소속감을 느끼며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40세가 되니 청년부 소속에서 대중부로 옮겨야 했는데 적응이 어려워 방황했습니다. 그러면서 2017년부터 2022년 초까지 대학 입학과 전기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정토회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만 할 뿐 정진하지 않고 다른 목표에 더 집중하였습니다. 함께 청년 활동하던 도반들도 회향하거나 정토회 밖으로 나가면서 정진의 동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4~5년이 흐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10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공부가 안된다고 느껴질 때는 스트레스를 받고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이 서서히 나빠져 통풍도 앓았습니다.
문경수련원 대웅전 앞마당에 연등 구조물 설치 봉사를 하면서 다시 정토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불교대학 수업을 다시 들을 좋은 기회가 와서 수행도 함께 시작했습니다. 오프라인으로 정토회에 적응한 저에게 온라인 수업은 낯설고 불편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만나고 부딪쳐야 얻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가져서인지, 온라인에 적응이 잘 안 됐습니다.
그래도 문경으로 봉사 가서 숲 향기를 맡거나 옛 도반을 다시 만나면 정말 행복했습니다. 문경에 가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가 풀렸습니다. 다행히 전기 기술이 있어 정토회에서 잘 쓰였습니다. 정토회 밖에 있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수행하지 않으니 건강이 나빠지고, 금전적으로 지출도 많고, 성격도 더 나빠졌습니다. 다시 돌아와 아침 정진을 하고 불교대학 진행을 맡으며 전기 봉사를 하는 지금이 더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3월에는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봉사도 다녀왔습니다. 민다나오 JTS 센터에 가보니 전기 시설이 많이 미흡했습니다. 안전에 대한 낮은 개념, 잦은 정전, 누전에 대한 설비 등 보수해야 할 부분이 많아 작업을 도왔습니다. 할 일이 참 많았는데 다 마무리 짓고 오지 못해 아쉬운 마음입니다. 2025년에 다시 가서 일을 마무리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최근에 문경수련원에 낙뢰가 떨어져 낙뢰 보호기를 설치하고 왔는데 문경에 다녀올 때마다 에너지를 얻습니다. 가진 기술로 잘 쓰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제 과거를 돌이켜 보면 엄마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많습니다. 할머니는 엄마가 가출했다고 습관처럼 말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엄마는 다시 돌아오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어릴 때 저에게 엄마는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저를 버렸다고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미워했고 다시 만나도 잘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정토회 활동 덕에 엄마와 대화를 시작했고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남편, 시어머니와 한집에 살 때, 집보다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때가 더 마음이 편했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오면 그날은 폭력이 없어서 안도했다는 말을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구박을 받으며 힘들게 살던 사정을 들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라며 이해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와 함께 살았습니다. 지금은 매일 엄마가 사는 시골집에 가서 함께 저녁 먹고 제가 사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엄마를 만나고 같이 대화하는 일상이 정말 좋습니다. 아버지는 요양원에 있어 안쓰럽기는 하지만 사실 아직 참회의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을 향한 기도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시골집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편안하고 충만해집니다.
본업, 시골 벼농사, 불교대학 진행, 각종 정토회 활동, 전기 봉사 등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여러 일이 겹칠 때는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바쁠 때 ‘봉사활동을 내려놔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정토회를 떠나 있을 때의 내 모습을 돌아보고, 현재 내려놓고 싶은 마음도 알아차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지만, 정토회에 잘 쓰이는 것이 뿌듯합니다. 또 요즘은 주변을 이해하는 마음이 많이 생겼습니다. 화가 벌컥 일어나기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마음이 전보다 커졌습니다. 또 과거에는 자책하는 마음이 많았는데 지금은 ‘안되는 건 안 되는구나. 안돼도 편안하게 잘 살 수 있구나.’합니다. 이렇게 저를 괴롭히지 않고 잘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다 내 마음이다.”라는 기도문으로 아침마다 정진합니다. 상대방보다 먼저 내 마음을 바라보자 매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늘 남을 탓하던 제가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지금은 저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엄마와 관계가 좋고, 형제끼리 우애 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무엇보다 정토회 활동을, ‘열심히 보다는 꾸준하게’ 하고, ‘간단명료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인터뷰 내내 정토회에 대한 애정과 활동에서 느낀 뿌듯함이 전해졌습니다. 정토회를 통해 엄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돌이켜 사랑을 느끼고, 자신에 대한 자책을 돌이켜 받아들임을 이루어 낸 윤태욱 님. 그렇게 받은 가피를 봉사로 되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시시 웃으며 조근 조근 이야기를 들으니 자장가를 듣는 듯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오늘도 정토회 어디서 인가 봉사하는 윤태욱 님이 그려집니다. ‘간단명료’하게 잘 살고 있을 그 모습에 제 마음도 미소 짓습니다.
글_허수정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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