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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정토회 활동 중 온라인에서 환한 미소로 저를 맞이했던 이혜경 님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혜경 님이 필리핀 민다나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움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이혜경 님은 더 맑고 온화했습니다. 어떻게 필리핀 그곳까지 이르렀는지, 그동안의 소식이 궁금했습니다.
미국 미시간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로 들었습니다. 암센터 연구원으로 일하며 생활이 바빠 정토회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2017년,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는 동네에서 차를 타고 가는데 어떤 건물 2층에 정토회 로고가 보였습니다. 그해 가을, 그 건물에서 불교대학 홍보 문구를 봤습니다. ‘일도 안 하고 시간도 많으니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마음공부 하는 것도 좋았지만, 환경 관련 내용이 너무나 와닿았습니다. 적게 쓰고 환경을 보존하는 삶의 가르침이 좋아 정토회에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한 후, 통일과 북한 사람을 돕는 데 관심 있는 제게 법당 총무님이 '통일 특별위원회'를 소개했습니다. 지금은 행복 본부에서 행복학교를 진행하지만, 당시는 통일 특별위원회가 오프라인으로 행복학교를 진행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만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행복 시민이 되어 동네 쓰레기를 줍는 등 행복하기 위해 모인 참가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참 좋았습니다.
영어 봉사를 하고 싶어 당시 서울에 있는 국제 연대팀과 연결되어 영어 자막 봉사를 했습니다. 그러다 국제지부와 해외지부가 생기고 이중 소속인 사람은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국제지부로 옮기면 청주 흥덕 법당 소속으로 활동하던 통일 특별위원회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한참 망설였습니다. 특별위원회에서 영어 행복학교 번역 개발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국제지부로 옮겼습니다.
수행과 영어 불교대학 진행은 집에서만 이루어지고, 퇴직으로 시간이 많아 문경에 바라지 봉사를 가고 INEB 봉사도 했습니다. 그러다 ‘공동체에 사는 것도 괜찮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딸린 식구도 없고, 또 남편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은 하라고 합니다. 아마 제가 없으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2018년 인도 성지순례 때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크게 감동하여 '아! 여기서 봉사하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은 성지순례단을 위해 태권도, 노래 같은 장기 자랑을 몇 달 동안 연습한다고 합니다. 기특한 장기 자랑도 보고, 학교 운동장에서 똘망똘망한 아이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지도 법사님과 정토회가 30년 동안 일구어 놓은 수자타 아카데미가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아버지가 교육자여서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크게 변화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인도는 기후도 좋지 않고 환경이 열악해 고민이었는데, 마침 필리핀 JTS를 알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은 견딜 수 있는 기후이기 때문에 선주 법사님께 "가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법사님이 "정기적으로 바라지 봉사를 먼저 해보라"라고 하여 작년 매달 한 번 4박 5일 바라지를 했습니다.
요즘은 바라지도 공양간에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바라지장이라는 수련 프로그램이 있어 공양간에서 일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채식을 해서 문경 공동체에서 먹는 음식들이 너무나 맛있고 좋았습니다. 그렇게 작년 문경에서 바라지장을 하면서 '공동체에서 적어도 내가 바라지는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평소 허리가 아프고 편두통이 있어 필리핀에 간다면 병원 가는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조금 망설였지만, 일단 약을 많이 챙겨 필리핀에 갔습니다. 다행히 필리핀은 영어권 국가로 병원에서 말이 통해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필리핀에 와서 컴퓨터보다 땅과 가까이 일하고 싶어 농사일에 지원했습니다. 상추, 쑥, 고추, 부추, 파 등을 재배하는 농장에서 필리핀 현지 스태프 두 명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공양주 역할로 공양 간에 필요한 식재료를 구입하고 그에 따른 식비 지출을 관리했습니다. 필요할 때는 외부 업무 통역과 영어 문서 작성도 도왔습니다.
필리핀 JTS는 시골 마을에 땅을 넓게 잡아 2미터 정도의 높은 벽이 쭉 둘려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담장이 위협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민다나오 특성상, 여자 봉사자가 많아 이런 큰 벽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리핀 JTS에는 농사, 운전, 차 수리를 도와주는 현지인 직원 5명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받는 활동비가 적어 '부당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활동가로 원해서 무료 봉사하지만, '이 사람들은 생활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적은 돈을 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편집자: UN 등 여러 국제구호기구는 현지인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하여 '지역 경제를 혼란케 한다.'라는 평가가 있어 JTS는 현지 평균 임금과 동등하거나 조금 상회하는 수준의 활동비를 지급합니다) 그래서 법사님과 상담 때 이 점을 건의했습니다. 법사님은 "내가 편하기 위해서는 '나는 여기서 막내다. 그중에서도 혜택받은 막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일하면 편할 거다."라고 했습니다.
때때로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지만, 생각해 보면 저는 여기에 나중에 와서 혜택받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내 눈에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들이 있을 때마다 ‘다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기고, “여기서 나는 가르침 받는 막내다.”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또한 열악한 상황에서 활동하는 젊은 활동가를 보면 기특하고 가족같이 느껴져 기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정토회에서 수행하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내 마음대로 안 되면 남편에게 따지고 화를 냈습니다. 지금은 남편이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도록 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답답한 마음이 들 때 ‘50년 넘게 살았는데, 따라 사는 것도 괜찮다.’라는 마음이 들면서 편안해졌습니다.
필리핀 JTS 센터가 있는 마을은 그런대로 우리가 도와줄 필요는 없는 마을입니다. 그러나 마을에 나가보면 녹슨 양철 지붕 집에서 장작을 때고, 방 한 칸에 다섯 식구가 사는 집이 많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족과 즐겁게 살고, 어디를 가나 아이들이 많고 동네마다 학교가 있어 교육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아, 내가 욕심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이 절로 듭니다.
직장을 다니지 않아 집에 있으면 특별히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을 하면 내가 큰 노력하지 않아도 적게 먹고 적게 쓸 수 있습니다. 환경을 덜 해치는 이런 생활이 굉장히 보람 있고 뿌듯합니다. 특별히 내가 좋은 일을 하지 않아도 여기 있음으로써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내년 봄이면 필리핀에 온 지 1년이 됩니다. 내년 2월에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여기서 계속 성장하고 싶습니다. 지구 환경에 조금이라도 해를 줄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보람차고 행복합니다. 자연 재해의 피해가 커지는 요즘, 앞으로도 적게 쓰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혜경 님과의 첫 번째 인터뷰는 우기인 필리핀의 갑작스러운 폭우로 끊겨버렸습니다. 두 번째 인터뷰는 시작도 하기 전에 천둥번개로 정전 상태가 되어 발전기를 이용해서 참여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든 것이 안정적인 내가 있는 곳과는 다르다는 것이 실감 났습니다. 많은 것이 불편하고 부족할 텐데, 그 점이 좋다는 이혜경 님의 이야기가 지금의 일상을 돌아보게 합니다. 더 가볍게 더 적게 쓰는 길로 나아가는 이혜경 님이 참으로 멋져 보입니다.
글_김경진(국제지부 북미유럽지회)
편집_김윤희(강원경기동부지부 용인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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