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성동지회
별거 아닙니다

오늘 소개하는 주인공은 서울제주지부 성동지회에서 경전대학 진행을 맡고 계신 박애숙 님입니다. 박애숙 님은 정토행자의 하루 인터뷰 제안을 받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인생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도반의 얘기에 용기를 냈다라며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경전대학 진행자 이외에 정토회 콜센터와 불교대학 예비 입학생 인터뷰 등의 소임을 맡고 있고, 또 작은 봉사를 조금씩 늘려가고 싶다는 박애숙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정토회와의 오랜 인연

10년 전쯤 친구를 따라 옛 서초 법당에서 영상법문을 들었습니다. 몇 번 따라다니던 게 인연이 되어 한 번은 혼자 갔습니다. 마침 간 날이 천일 결사 백일 입재 기도 신청하는 날이었는데, 무조건 이름부터 써서 신청한 후 충주 제천 체육관까지 도시락 싸서 따라갔습니다. 그때 회원 번호 받고 일단 회원이 되었지만, 직장 생활이 바빠 법당은 못 다녔습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바뀌면서, 절에 갈 때마다 삼배를 그냥 했는데 이참에 절하는 법을 좀 배우면 좋겠다 싶어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비교하는 마음, 잘하고 싶은 마음

아버지는 이북에서 혼자 내려오고 어머니는 일본에 있다가 해방된 후 돌아와, 두 분 다 남한에 기반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자녀 네 명을 연년생으로 낳다 보니 몸이 허약해졌고, 장녀인 저는 친척 집을 전전했습니다. 이모네 갔다 삼촌네 갔다 했는데, 그렇게 다녔던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의 시골 풍경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집니다. 그때의 추억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다니면서 언니 오빠가 있는 친구들, 부모가 선생인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몰랐는데, 저만 공부하고 지내느라 동생들이 어떤 공부를 하는지 봐주지 못했고, 그럴 생각도 못 했습니다. 형제들을 보듬어주지 못해 제일 미안하고 후회가 됩니다.

613발대식 후 동대문모둠 도반들과 함께(맨 왼쪽 박애숙 님)
▲ 613발대식 후 동대문모둠 도반들과 함께(맨 왼쪽 박애숙 님)

자랄 때는 크게 꿈이 없이 살았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고 또 맏이였기에 여고를 졸업하고 곧 취직을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동시에 학교를 더 다니면서 40년간 일했습니다. 그런데 직장 동기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학까지 마치고 집안의 후원을 받으며 사는 모습을 보면서 늘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교를 하다 보니 잘나지 못난 제 모습이 보였고, 부정적인 생각이 습관처럼 올라왔습니다. 잘하고 싶었고 또 잘살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니 저를 너무 크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직도 정확히 어떤 연유로 그렇게 부정적인 관점에 휩싸였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 꾸준히 정진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의지한 시절

남편을 일찍 여의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세상을 제대로 보는 시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돌아보면 핑계였을 뿐, 당시 다섯 살, 여섯 살 된 아이들에게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바깥에서 일만 했지, 엄마로서의 역할은 전혀 못했습니다. 집에 엄마는 없고, 아빠처럼 구는 어른만 있었습니다. 반면 직장 동료들은 부모가 도와가며 아이들을 챙기고 아이들은 순탄하게 잘 크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제가 생각한 대로 안될 때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지 잘 살 수 있는데 왜 저렇게 살까,' '앞으로 어떻게 사나,' 걱정하면서 괴로움인지도 모르고 괴로워했습니다.

2022년 친구들과 일본 여행
▲ 2022년 친구들과 일본 여행

정년 퇴임 후

정년 퇴임을 앞두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40년 동안 조직의 테두리 안에서 편하게 살아왔는데, 다른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막막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르게 사는 건지 모르겠고, 머리속이 복잡하니까 앞이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많이 보고 들었지만, 들을 때는 다 좋은 말씀인데 그대로 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마치고 <깨달음의 장>1에 다녀온 후에야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았고,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들은 잘살고 있는데 제 마음에 안 든다고 그 길이 잘못되었다며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번듯한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해 안락한 생활을 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독립적인 연구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은 다 잘 된 걸 보니, ‘애들이 나보다 열 배는 낫구나’ 싶습니다. 제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 길 잘 가고 있는 자녀들에게 괜히 시비걸었구나 합니다. 아이들의 부정적 질문에 화가 나고 서운했고, 잘 설득하지 못해 마음이 진정되지 않곤 했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생각만 옳다 주장하고 있구나’ 싶으면서, 안개가 가득 낀 듯한 머릿속이 맑아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옳다는 생각이 뿌리 깊고,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집착하고, 또 누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라는 업식을 알아차립니다.

2022년 정토사회문화회관 도량청정 봉사(맨 왼쪽 박애숙 님)
▲ 2022년 정토사회문화회관 도량청정 봉사(맨 왼쪽 박애숙 님)

소임을 통해 자라나는 긍정

지금도 일상생활 속에서 부정적인 마음이 여전히 먼저 올라옵니다. 잘해야 하고, 남에게 잘하는 것만 보여주고 싶고, 못하는 일은 핑계를 만들어 면하려고 합니다. 제 생각과 다르면 분별심이 일어나고, 그게 부정적인 생각임을 금방 알아차리지도 못합니다. 생활하면서 제가 툭툭 던지는 그런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됨을 한참 뒤늦게 깨닫습니다.

또 소임이 주어지면 '왜 내게 이런 소임이 주어졌을까'라는 생각 전에 일단 부정적인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한 번은 새벽 공동정진 영상 봉사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영상이 끊어지고 소리가 안 나면서 당황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후 익숙하지 못한 소임이 오면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함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소임을 꾸준히 하면서 점점 제 마음을 살펴볼 수 있었고, 소임에 대한 생각도 차츰 가벼워졌습니다. 요즘은 새로운 소임을 맡으면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혹은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듯이 성장해나가며 배우고 있습니다.

2019년 남산에서 친구들과(가운데 박애숙 님)
▲ 2019년 남산에서 친구들과(가운데 박애숙 님)

몸은 괜찮은데 마음이 하기 싫어하는구나

천일결사에 입재해 기도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108배가 엄청 힘들었습니다. 절을 하면서 발가락부터 발목, 무릎, 손가락, 손바닥까지 안 아픈 데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어깨까지 아파왔습니다. 하지만 일단 엎드려보고 일어날 수 있으면 일어났습니다. 계속 아파도 계속 하다보니 신기하게도 열 번이 넘어가니까 아픈 통증이 없어졌습니다. 분명히 너무 아파 못할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다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절을 하면서 ‘몸은 괜찮은데 마음이 하기 싫어하는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3년 하면 나를 알 수가 있다는 말씀을 붙잡고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를 했고, 이제는 기도한 지 3년이 넘었습니다. 예전에 몰랐는데 요즘은 ‘이런 게 그거였구나’ 하는 것들이 좀 많아졌습니다.

2022년 5월 태안 여행 중
▲ 2022년 5월 태안 여행 중

별거 아닌 줄 알면

전체적으로 보면 저는 잘살아 왔고, 아무 문제 없습니다. 별거 없고,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삶이니까, 그냥 자유롭게 살면 됩니다. 여태껏 저는 '자유'라는 단어에 대해서 별로 생각을 못 해봤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자유롭게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온전한 자유를 느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별거 아닌 건 줄 알면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박애숙 님의 잔잔한 목소리에 인터뷰 내내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나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수행자의 모습에 많이 배웠습니다. 학사 진행자 봉사는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궁금했는데 간접경험을 통해 큰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글_김정은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구로지회)
편집_이혜수(서울제주지부 성동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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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안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24-10-28 08:21:05

무량광

용기내어 사례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둠의 도반님이 인터뷰한 글이라 더 꼼꼼히 읽게 되네요
같은 마음으로 공감이 많이 됐어요.
머리로는 늘 별거 아니라고 되뇌어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별거라면서 불쑥 올라올 때가 많은데, 울림을 주는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09-27 17:23:52

김진령

응원합니다~^^
저에게또다른울림을주네여~^^
감사합니다~^^

2024-09-26 1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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