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성남지회
스스로 쌓아 올리는 공든 탑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중략)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는… 마음
내 마음이 그 바람을 흉내 낸다면 아마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의 《방문객》 중

성남지회 현은영 님과의 인터뷰는 위 시구가 그대로 재현되는 현장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판교에서 이천까지 먼 길을 온 주인공은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함께 왔습니다. 여리여리한 첫인상의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저는 흠뻑 빠졌고, 그 감동의 여운은 며칠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글로 다시 풀어낼 수 있겠다 싶을 무렵, 저는 중단했던 수행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여름 향기가 잔잔히 다가오는 길목에서 성남지회 현은영 님이 전한 이야기, 같이 들어보겠습니다.

아이와 갈등 속에 만난 정토회

저는 올해 3월부터 성남지회에서 모둠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사는 곳은 분당이며, 남편과 고등학생인 딸이 있습니다. 2년 전부터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은 어릴 때부터 개방적이고 독립적이어서, 보수적이고 원리원칙주의인 저와 많이 달라 갈등이 심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 집 근처 미술학원에 보냈습니다. 선생님이 “자, 여기에 팥빙수를 마음대로 그려봐요.”라고 말한 뒤 조금 후 그림 그리는 법을 아이에게 알려주면 "마음대로 그리라고 하셨는데, 이게 마음대로 그리라는 건가요? 마음대로 그리라고 하시면 제가 하는 것을 존중해 주셔야죠?"라며 대꾸하곤 하였습니다.

저는 아이가 제가 시키는 대로 따라오길 바랐고, 아이는 가지치기하듯 이것저것 경험해 봐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이가 튀는 행동을 하면 저는 그 점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아이가 ‘조용히, 없는 아이처럼’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아이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이는 친구에게 집착하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악의 상태에 치달은 적이 있습니다.

2023년 10월 정토사회문화회관 봉사(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현은영 님)
▲ 2023년 10월 정토사회문화회관 봉사(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현은영 님)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방과 후 수업으로 가야금을 배웠는데, 가야금 선생님이 “국립국악중학교에 보내면 어떨까요?”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때부터 국어, 영어, 수학, 청음, 발성 등 국립국악중학교에서 요구하는 아이의 성적을 만들기 위해 몰두했습니다. 가야금을 선택하려면 상위권 성적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외 등 당장 중학교 입시에 집중하다 보니 아이가 학교를 빠져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겼습니다. 친구가 소중한 아이였는데 친구를 만나기 어렵고, 본인의 선택이 아닌 선생님과 부모의 권유로 시작한 입시 준비에 아이도 참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이의 힘듦보다 눈앞의 입시에 성공해야 한다는 목표가 더 급했습니다. “네가 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 입시에 성공하면, 더 좋아질 거야”라며 아이를 채근하곤 했습니다.

여름방학에는 아이의 성적을 향상하고자 호텔에서 아이를 지내게 했습니다. 방음시설이 있는 곳에서 선생님에게 배우게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지원해 주는데 아이가 좀 따라야지’라는 조급함에 매를 들기도 했습니다. 잠든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문득 ‘이게 다 무엇을 위해 하는 짓이지? 미친 짓 아니야?’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다음날 다시 그 악순환을 되풀이했습니다. 아이의 숨 쉬고 싶다는 아우성이 들렸지만, 그것보다 입시 성공이 모두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입학에 성공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았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신이 아니라 사람이었어?

아이와의 갈등이 극에 치달으니, 마음이 정말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절에 다녔고, 부처님을 신으로 알고 있을 때여서, 아이의 합격을 위해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 유튜브에서 검색했습니다. 그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알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2022년 정토사회문화회관 봉사(왼쪽이 현은영 님)
▲ 2022년 정토사회문화회관 봉사(왼쪽이 현은영 님)

목표했던 중학교에 아이는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멍해졌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정토불교대학 소식을 듣고 입학하였습니다. 수업 중 천일결사 맛보기로 ‘21일 정진’을 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정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예불부터 시작해야 해서 매일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고 있습니다. ‘딸이 편안해졌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지금껏 수행을 이어 왔습니다.

아니, 전혀 안 바뀌었어!

불교대학에 다닌다고 해서 딸과 사이가 바로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고, 딸은 계속 어긋났습니다. 불교대학에서 배운 대로 ‘가르치지 말자’라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가르치고 있는 제가 보였습니다. 매일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그 안에는 딸과 가깝고 편안해지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기도를 통해 제가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불교대학 졸업할 즈음, 딸에게 “엄마 좀 바뀐 거 같지?” 하고 물었습니다. 제 물음에 딸은 “아니. 전혀 안 바뀌었는데. 엄마 이런 거, 왜 하는 거야?”라고 퉁명스럽게 답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 중 “어릴 때 주제 질문”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수업을 앞두고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절대 수업을 듣지 않겠다는 마음과 물러설 수 없다는 마음이 서로 싸웠습니다. 제 안의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것처럼 내면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래, 나 편하려고 공부하는 거야!’라는 용기를 내어 수업에 참여하였고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소풍가서
▲ 고등학교 1학년때 소풍가서

생모, 새어머니, 폭력적이던 아버지

생모는 젊은 나이에 언니를 임신하면서 대학에 가지 못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저까지 낳은 후에 집을 나갔습니다. 한창 젖먹이로 버려진 저는 젖동냥을 하며 증조할머니께서 키웠다고 합니다. 지금의 어머니는 생모가 아니고 제가 3살, 언니가 5살 때 오신 새어머니입니다. 새어머니는 새집에 억척스럽게 적응했습니다. 따뜻함이 없는 아버지가 섭섭하게 굴면 그 화살을 저희에게 돌리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등 무슨 이유가 있으면 집에 와서 저희를 마구 때렸습니다. 경전대학에 다니면서 제 이야기를 하니 수업 시간에 울음바다가 될 정도로 제 어린 시절은 매우 아픕니다. 생모의 따뜻함은 없었고, 아버지의 모진 학대, 새어머니의 무심함이 가득한 유년기였습니다. 특히 5살 무렵부터 학대받은 언니가 제일 많이 아팠습니다. 아버지의 손찌검은 참 지나쳤습니다. 어린 나이에 입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맞기도 하였습니다. 집안은 긴장감이, 언니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언제 아빠가 벌컥 화를 낼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살았습니다.

나를 지켜주던 엄마 같은 언니

정토회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언니가 자라면서 몇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마 죽지 못한 것은 저를 지켜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쁜 외모를 지닌 언니는 남자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남자 친구들에게 전화가 오기라도 하면 그날은 맞는 날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에게 언니와 제가 엄청나게 맞은 날이 있었습니다. 몸이 날아갈 정도였습니다. 언니 얼굴에 피가 흘렀지만 잘못한 일이 없는데 맞는 것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때리는 아버지를 막아서며 “당신이 뭔데 내 동생을 때리는 거야. 내 동생 때리지 마!”라며 저항하였습니다. 그때 제 귀에 꽂힌 “내 동생”이라는 단어에 언니가 저를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언니는 저에게 엄마 같은 존재입니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감사기도

이렇게 어린 시절 상처를 준 아버지였지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부모님께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버리지 않아 감사합니다’ ‘밥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반복하는데 속에서 화가 매우 많이 올라왔습니다. 감사하다는 마음보다는 억울하고 저항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도 법륜스님의 말을 듣고 그저 꾸준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래도 다른 사람 말고 나를 때려서 다행이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전과자가 되었을 텐데, 아버지가 전과자가 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안도감이 들면서 감사함과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감사하며 새벽기도를 마친 날 전화를 걸었습니다. 퉁명하게 받는 목소리에 20분이나 뜸을 들이며 전화를 붙잡고 “키워줘서 고마워”라고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어릴 때 그렇게 상처를 주었음에도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버지입니다. 그런데도 이 일을 계기로 1년에 한두 번에서, 매주 전화를 드리는 사이로 관계가 바뀌었습니다. 새어머니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화했습니다. “어머니 고생하며 키워줘서 고마워요.”라고 하니 수화기 저편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언니가 자신을 굉장히 원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늘 냉정하게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3일만 전화를 안 해도 안부를 궁금해하며 부모님이 전화합니다.

2024년 4월 JTS거리캠페인 홍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현은영 님)
▲ 2024년 4월 JTS거리캠페인 홍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현은영 님)

언니 덕에 내가 살고, 내 덕에 언니가 살아있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좋아졌지만, 언니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만 배려하는 언니를 보며 ‘이제는 언니를 놓아주어야 하는 건가? 내가 언니를 너무 붙잡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는 매일 통화하던 사이였는데 언니를 놓아주는 연습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한 달 정도 전화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화하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는 언니에게 “인제 그만 나를 돌보는 데 힘쓰지 마. 나에게 주는 동아줄 내려놓고 언니 편하게 살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되려 언니는 “네가 그 동아줄 놓으면 나는 못 살아. 네가 없으면 못살아. 모진 아버지 밑에서도 나는 네가 있어서 살 수 있었어.”라는 말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언니가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다. 언니의 늦은 귀가에 ‘아버지가 몹시 화가 날 텐데. 그럼 또 맞으면 어떡하지?’ 발만 동동 구르며 집에 들어오지 않는 언니가 원망스럽고 화가 났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분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깊은 밤 집에 들어온 언니를 보며 저는 화를 낼 수 없었습니다. 언니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짐작해 보면 언니는 그때 자살을 결심했다가 남겨질 저 때문에 다시 집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언니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보다 원망하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언니가 나를 지켜줘야지’ ‘언니가 나를 이렇게 속상하게 하면 어떻게 해!’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언니가 올해 초 다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소식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찾아갔는데, 또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이 마음의 정체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3월 〈나눔의 장〉에 가서 원망하는 마음의 실체를 알았습니다. 언니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도반을 만나 언니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원망의 마음을 해소하게 되었고 언니에게 전법을 하였습니다. 언니는 행복학교에 입학하여 수료까지 마쳤습니다. 언니가 정말 행복하기만을 바랍니다.

“엄마, 이제 정말 변한 것 같아”

경전대학을 다니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았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냉랭하게 대했던 날들이었지만, 이제야 아버지에게 온기를 드리며 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건 꾸준하게 실천한 실행력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감사기도에서 머물고, 전화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효과가 덜 했을 것 같습니다. 그저 법륜스님이 일러준 대로 의심 없이 성실히 실천한 덕분에 지금 편안함을 얻었습니다.

2022년 8월 구룡마을 수해 복구 봉사에서 딸과 함께(오른쪽이 현은영 님)
▲ 2022년 8월 구룡마을 수해 복구 봉사에서 딸과 함께(오른쪽이 현은영 님)

꾸준히 기도하니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감사로 바뀐 무렵 딸이 저에게 “엄마 변한 것 같아.”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딸을 바꾸고자 매일 기도할 때는 이루지 못했는데, 오히려 아버지에게 집중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니 생각지도 못하게 딸과의 관계가 극적으로 좋아졌습니다. 딸이 미국으로 유학하러 가기 전 편지를 주었는데 그 글을 읽고 또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진 것보다 딸에게 인정받는 느낌이 들고 편해지는 감정이 드니 진짜 정토회에서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방학을 맞이해 한국에 온 딸이 저에게 안겨 올 때,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때, 함께 손을 맞잡고 걸을 때, 울컥울컥 눈물이 올라오곤 합니다. 이 모든 결실은 정진의 힘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봉사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

어쩌다 모둠장을 하고 있습니다. 모둠장 자리가 내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 소임이 벅차기도 합니다. 6월 13일 만인 전법을 위해 온 힘을 쏟다 가도 미지근한 반응과 싸늘한 말투를 마주하면 마음이 내려앉곤 합니다. 한번은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중에 혼자 화장실에 가 구역질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소임이 벅차기도 합니다. 모둠장은 제가 원하던 소임은 아니지만 길이 막힐 때마다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회장과 통화하며 마음을 잡았습니다. 소임은 때로 벅차지만 저는 봉사가 정말 좋습니다. 딸과 구룡마을 봉사에 가거나 공양간 봉사를 할 때, 제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된 것처럼 즐겁고 자유롭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에너지를 뺏겨서 기진맥진 돌아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남는 힘을 봉사하는 데 씁니다. 저는 정말 지금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2023년 2월 인도성지순례
▲ 2023년 2월 인도성지순례


인터뷰하며 부럽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어쩜 이렇게 자유롭지? 어쩜 이렇게 홀가분하지?’ 그간의 모든 일이 지금 단단한 사람을 탄생하게 만든 하나의 복선처럼 느껴집니다. 현은영 님은 이 모든 수확이 다 수행 덕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제 머릿속에서 한참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요즘 다시 일찍 일어나 절하며 스스로 돌아봅니다. 멈췄던 수행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마법의 인터뷰! 저도 꾸준히 저만의 공든 탑을 쌓아나가고 싶습니다.

글_허수정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전체댓글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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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연

감동입니다. 사례를 듣고 꾸준히 열심히 수행하자 란 맘이 올라옵니다.. 화이팅!

2024-08-08 06:10:49

대정진

수행담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감동적인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둠장 소임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4-06-19 10:14:25

영이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앞으로의 인생은 행복할일만 남음이 보입니다.

2024-06-12 11: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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