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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 조직개편과 더불어 정토행자의 하루도 새로운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7월부터 한달에 한번은 편집진들의 글을 싣는 시간입니다. 한 편집자의 일상에서 알아차린 수행거리와 행복을 나누어봅니다.
알바를 마친 딸아이가 허겁지겁 들어온다
“엄마 어제 먹다 남은 LA갈비 남았죠? 저 구워 먹을게요.”
딸이 너무 배가 고프다고 서두른다
“엄마도 이제 막 저녁 먹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준비할테니까 너는 상추만 씻어놔.”
나도 분주히 손을 움직이면서 딸에게 상추 봉지를 건넸다.
근데 딸은 “근데 엄마 저 너무 피곤하고 더운데요, 좀 씻고 누워있을게요. 저녁 다 차리면 저 좀 불러주세요.” 하고는 휙 돌아서 가버린다.
'앗! 뭐지? 자기 배고프다고 서두르더니 누워있겠다고?'
얄밉다!!! 평소에도 조금 얄미운 딸이지만 오늘은 더 얄밉다. 갑자기 저녁을 준비하는 손이 느려진다. 배고픈 딸을 좀 골탕을 먹이고 싶다. 괜히 부엌 바닥을 닦는다. 지금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도마 소독을 한다. 최대한 천천히 찌개를 데우고 고기를 굽는다. 10분이면 준비할 수 있는 저녁상을 한 시간이나 걸려 차렸다. 딸을 불렀다.
딸은 배가 고파서인지 허겁지겁 식사했지만 기분 나쁜 티가 역력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교육적 차원에서 이 정도는 해줘야한다고 여겼다.
저녁 식사 후, 불교대학 스텝 소임을 위해 컴퓨터를 켰다. 부처님의 일생 중 마지막 부분 강의를 들어야 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부분이 나온다. 죽음을 앞두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타인의 곤란함을 걱정하셨던 부처님의 모습, 언제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면 남의 고통도 보이고, 남을 도와주기도 쉽다. 하지만 내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남의 고통보다. 나의 불편이 먼저 보인다. 근데 불편하고 아픈 정도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지금의 나는 아직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도 평소와 다름 없는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셨던 부처님.
스님도 강의에서 강조하신다. 독약임을 미리 알고 안 먹었다거나, 독약을 먹고도 멀쩡하게 살아나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 이것이 엄청난 기적이라고.
약간은 멍하게 강의를 듣고 있는데 순간, 너무나 속이 좁아터진 나의 모습이 딱 보였다. 얄미운 딸의 모습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는 나의 얄미운 모습이.... 그리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유난히 더웠던 저녁, 일을 마치고 배가 고파서 급하게 뛰어왔는데 (우리집은 좀 언덕에 있다) 엄마가 상을 차려준다니 조금 씻고 쉬고 싶었던 것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나? 남도 아니고 딸인데? 저녁 상 차리는 걸 도와주지 않아 섭섭했다면 일단 밥을 먹고 나중에 '아까 네가 도와주지 않아서 섭섭했다'라고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얄밉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내가 더 얄미운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사실 딸은 나를 많이 닮은 편이다)
다음 날 아침 수행 시간, 전날을 돌이켜 보니 그날 저녁 식탁에는 어른도, 엄마도, 정토행자도 없었다. 그냥 속 좁은 두 아이가 있었을 뿐. 순간의 사로잡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깨달은 나는 또 참회할 수 밖에 없었다.
글.편집_허란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지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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