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오디오북
오디오북-선광법사님 세 번째 이야기

"내가 스승 복이 많아요" 하시며 활짝 웃는 선광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법 비 받는 바가지'를 바로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웁니다. 소임 속에서 스님과 법사님, 도반, 그리고 대중을 만나고, 그들을 스승 삼아 깨우친 법사님의 행복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JTS거리모금. 제일 오른쪽이 선광법사님
▲ JTS거리모금. 제일 오른쪽이 선광법사님

아버지가 날 인정하지 않았다

서초법당 총무 소임을 하던 시절, 사람들이 “왜 총무님은 화를 내야 할 때 안 내고, 안 내야 할 때 화를 내냐.”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살펴보니,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조금만 들어도 화가 나서 참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도반이 권해 〈나눔의 장〉에 갔는데 수련 중에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글방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다른 학생들한테는 잘해주시면서, 제게는 연필 한 자루도 안 주셨던 것이 상처가 되었습니다. 수련 내내 "아버지가 날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날 인정하지 않았다." 이 소리만 했습니다. 묘덕법사님이 "허보살은 꼭 녹음기 틀어놓은 것 같아요." 하셨습니다.

그렇게 3일째 되는 날, '나는 자식이니 따로 주시지 않았구나! 아, 아버지가 날 자식으로 생각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만 하면서 〈나눔의 장〉이 끝났습니다.

제가 뭘 하는 게 있다고요

하루는 문경에서 무변심법사님이 "총무님, 수고 많으세요." 하시니 "언제요. 제가 뭘 하는 게 있다고요."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몇 번 그러니까 법사님이 "총무님, 저 물 한 잔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정수기가 층마다 있는데 왜 물을 달라고 하실까? 아, 내가 뭘 또 놓쳤구나. 혼나겠다.' 이 생각을 하며 접견실에 물을 놓고 나오는데, 무변심법사님이 저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총무님, 잠깐만요."
"법사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총무님은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안 받으세요."
"제가요? 언제요?"
"조금 전에도."
"조금 전엔 한 일이 없는데요. 법사님과 인사밖에 안 했는데요."

법사님이 보시기에 제가 총무 소임 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수고하는데, 수고한다 하면 한 번도 그걸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수긍이 갔습니다. "아, 맞네요." 하고 그 이후로 누가 "수고하십니다."라고 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받았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한참 계시더니, 그 말을 한 번 더 뒤집어 보면 "아, 내가 잘났는데 그까짓 게 뭐 수고한다고."라는 밑마음이 있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냥 한 번 생각해보세요." 하셨지요. 그 화두로 6개월이 지나갔습니다. 아무리 봐도 아닌데 억울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기도를 하는데 '그 일은 항상 하는 일인데, 뭘 수고한다고.' 하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아, 법사님이 이 마음을 보셨구나.'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경험해갔습니다.

입재식에서 법사님들과 함께.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선광법사님.
▲ 입재식에서 법사님들과 함께.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선광법사님.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이렇게 총무와 상임부장 7년, 사무국장 1년을 하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첫 해에는 두북 정토마을이나 문경 정토수련원에 월요일에 내려갔다가 토요일에 집으로 돌아오는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문경은 새벽 4시, 두북은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 프로그램에 맞춰서 밤 9시 반까지 움직였습니다. 개인 시간은 없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일수행도 있고, 하루 두 번씩 불교대학과 경전반 내용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무변심법사님이 제 담당 법사님이었는데,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처럼 다리 아픈 사람들은 절을 하려면 자리가 넓어야 하는데, 자리가 좁았습니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내 다리가 이러니 오전 오후 수업할 때만 의식을 간소하게 할 수 있도록, 절을 안 하고 서서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담당자가 아침에 '알았다' 그랬는데 저녁에 공부할 때까지 답이 없었습니다. 무변심법사님께 말하니 "아까 담당자한테 얘기했어요."라고만 하셨고, 그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만 해당되는 건데,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대답을 안 하는데 물어봐주면 어때서' 하며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요청대로 안 해주시니 공부하러 가서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끝나고 무변심법사님과 나누기를 했습니다.

저는 불편하면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금방 나타났습니다. 무변심법사님께 '내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얘기했습니다. 대화를 하며, 조금 소화가 된다 싶어서 법사님이 끝내려고 하면 “그래도 그렇지.”하면서 또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를 세 번을 했더니 무변심법사님이 정색을 하고 앉으셨습니다. 순간 '아, 내가 또 뭘 놓쳤구나.' 내 생각에 빠져서 그것만 고집하다가, 법사님께서 가부좌 틀고 허리를 펴고 앉으시니 그때야 '아차!' 했습니다.

“내가 왜 행자님이 물으면 뭐든지 대답을 해줘야 합니까?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할 수도 있죠.”라고 하시는데 순간 탁 깨쳤습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내가 물어봤는데 왜 안 해줘?'가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저를 자유인으로 만들어줬습니다. 내가 물어봤을 때도 그렇지만 상대가 물어봤을 때 내가 하기 싫은 것도 해당되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이야기하기 싫으면 전에는 피해 다녔는데, "나 그거 이야기하기 싫은데?" 그러면 상대도 빨리 단념했습니다. 그걸 놓으면서 관계 속에서 정말 많은 것들이 놓아졌습니다.

낭독_고정석
글,사진_인천경기서부지부 희망리포터
편집_온라인.홍보팀

전체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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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han

잘 들었습니다.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2020-01-29 18:03:40

월광

오디오 북으로 다시 들을 수 있게 해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법사님 고맙습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선배법사님들 참 고맙습니다. 부족한 저희들 이끌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반님들 참 고맙습니다. 일체중생 자연의 은혜에 참 고맙습니다.

2020-01-03 21:59:54

정선혜

감동입니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12-26 21: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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