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영통법당
11월 4주차(1)
수원법당 '문여사네 딸들' 이야기

문여사네 딸들

안녕하세요?저는 수원법당 희망리포터 장은미입니다. 제가 이번에 쓸 기사는 저희 친정엄마와 세 딸들 이야기입니다. 저희 가족이야기를 소개하려니 좀 쑥스럽고 낯이 간질간질하네요. '문여사네 딸들'은 저희 가족 마음나누기 방 이름입니다. 친정엄마와 저희 세 딸이 모두 불교대학에 다니고 천일결사에 입재하기까지는 엄마 삶의 변화가 가장 큰 동기가 되었습니다.

어려서 기억나는 엄마는 늘 아프고 예민하고 그러면서도 저희에게는 악착스럽게 뭐든 척척 해주는 안정감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던 엄마가 정토회 불대 다니면서 조금씩 편안해지시더니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는 얼굴 표정, 목소리까지 우리엄마 맞나 싶게 달라지셨습니다. 엄마가 빨래한 듯 말끔히 다른 사람이 되시니 따로 어찌해라 말씀하지 않으셔도 셋 다 정토회와 불대가 궁금해졌습니다.

늘 마음이 너덜너덜한 걸레같은 느낌이었는데 그곳에 가면 정갈해질 듯하여 저와 둘째 동생이 올해 봄불대에 입학하고, 회사에 다니는 막내동생은 이번 가을불대에 입학해서 엄마는 경전반, 세자매는 불대, 모두 천일결사 입재까지 해서 수행 중입니다. 가족이 함께 거의 매일 마음나누기를 하니 전에는 10원 한 장에도 서운해하고 삐치고 다투었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어 좋습니다.

내년이면 환갑이시고 지병이신 간경변으로 편찮으신 엄마가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꼬박 정진하시니 젊은 저희가 어떤 핑게를 대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저희 셋은 여전히 어그적어그적 삐뚤빼뚤 거리며 엄마가 수행하시는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엄마께서는 부처님 제자가 힘들게 살 때 입던 옷을 숲속에 걸쳐놓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그 옷을 스승 삼아 보고 오고 보고 오면서 결국에는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십니다. 다시 힘들던 옛날로 가지 않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부지런히 정진한다 하시며.. 그래도 저희 셋은 엄마처럼은 아직 힘드네요. 그나마 소담스런 눈길에 먼저 발자국을 내어주신 엄마가 계셔서 엄마 발자국 위에 저희 발을 얹으며 수행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을 만나고 불법을 만나고 스승님을 만나고 도반이 되어주는 엄마와 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인연에 감사합니다. 먼저 지난 2014년 월간정토 8월호에도 소개되었던 저희 어머니 문윤선 보살님의 글을 싣고 제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어머니 문윤선 님의 이야기

2014년 7월 20일은 제게 매우 특별한 날이 될 것입니다. 저를 거듭 태어나게 해준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불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불행이 계속되던 날들제 어머니는 아들 둘만 낳고 아버지와 헤어지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뜻은 제가 나오면서 틀어졌습니다. 위에 오빠를 낳고 딸인 제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계획과 달리 딸이 태어나자 저를 버리려 했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온갖 구박과 갖은 학대 속에서 공포의 어린 시절을 보내야했습니다.어머니는 술 마시고 온 동네 사람이 다 알도록 아버지와 마을 길 한복판에서 싸우고, 맨정신으로도 한 번씩 저를 창고에 가두고 물어뜯고 때리고 죽으라고 칼도 던지고 뜨거운 밥솥도 던졌습니다. 이런 일은 자다가도 일어나서 저는 늘 긴장과 불안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견뎌야 했습니다.자라면서 저는 사람이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궁금했고, 이렇게 살 바에는 죽고 싶다는 마음이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중매가 들어왔습니다. 상대는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단지 어머니에게서 떠나고 싶어 도망치듯 결혼을 했습니다. 여우 굴을 피하니 호랑이 입에 들어간다더니 남편은 어머니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날마다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해 있거나 여자를 만났고, 크고 작은 싸움으로 집보다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그래도 저만 참고 살면 되는 줄 알고 그저 참고 살았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있어서, 아이들은 저처럼 불행하게 만들기 싫어서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남편의 신앙이 가톨릭인 것을 알고 함께 성당에 다니고 봉사활동, 피정, 신부님과의 상담도 해보았지만 남편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기가 있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당을 찾아가 굿이란 굿, 재란 재는 다 지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력하면 할수록 상황은 지옥 속을 헤매는 것처럼 저만 더 힘들고 지쳤습니다.

하루하루 버티고 사는 게 너무나 힘이 들어 결국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고, 결혼 생활 십 년이 되지 않아 일 년에 한 번씩 큰 수술을 받을 만큼 몸과 마음은 쇠약해졌습니다. 저의 병치레로 아이들이며 가정생활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와 다시 잘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남편의 술주정과 횡포는 더욱 심해졌고 급기야 남편은 딴 살림까지 차렸습니다. 게다가 사춘기가 된 아이들은 아빠를 피해 밖으로 돌며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횡포보다 아이들의 방황에 저는 더 가슴이 에였습니다. 참다못한 아이들은 급기야 아빠 없이 마음 편하게 살면 안 되겠냐는 말을 했습니다.그래도 아이들에게 아빠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참고 살았지만 견디다 못한 저는 결혼 이십 년 만에 이혼을 하고 아이들 셋을 데리고 산동네 단칸방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처녀 때 배운 미용기술이 있어 미용실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찌 알고 찾아왔는지 남편이 가게를 휘젓는 바람에 오래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식당도 해보고 선물가게도 해보았지만 가게마다 와서 휘젓는 통에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어서 나중엔 공사판 막일 등 닥치는 대로 이 일 저 일을 다니며 생활고를 해결했습니다. 남편 없이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아이들도 저도 마음 졸이지 않을 수 있음에 웃고 살았습니다.하지만 마음 한편에 어떤 불안함과 초조함이 이따금씩 올라왔습니다. 아이들도 대학에 들어가면서 다시 방황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남편만 없으면 될 것 같았는데 또다시 원인 모를 무엇이 저와 아이들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성인이 된 자식들은 마치 제 어머니처럼, 남편처럼 매일 술에 취해서 늦게 들어왔고, 이런 자식들을 보니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다시 매일 매일이 죽고 싶고 숨 쉬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 제발 눈뜨지 않기를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처님을 만났으나다시 성당에 다니면서 기도를 해보았지만 마음은 점점 돌덩이처럼 무겁고 감정도 무뎌져 죽어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려서부터 부처님이 궁금했고 절에 가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친척 언니의 소개로 작은 절에 찾아갔습니다. 처음 절에 나갈 때는 법문도 듣고 기도도 하면서 마음이 행복했습니다. 업장 소멸을 위해 3년 동안 절의 온갖 궂은일을 하라는 말을 듣고 그런 일들을 도맡아 하며 머슴처럼 지냈습니다.

하지만 재앙을 받지 않으려면 이것저것 하지 말라고 하는 제약들이 많았고, 그 모든 것을 피하려니 뭔지 모르게 마음이 답답하고 억눌린 느낌이 들어 스님과 상담도 해보았지만 스님이 도통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은 부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상식 밖의 일을 보면서 과연 정말 부처님이 저렇게 하라 하셨을까 의문이 들어 부처님의 일대기 책을 구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책으로 만난 부처님은 제 인생의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 절에서 배운 부처님은 신과 같은 존재로 두렵기만 한 분이셨지만 책으로 뵌 부처님은 제 곁에서 저를 일으켜주는 다정한 분 같았습니다. 건강이 나빠진 이후로 책 한 줄을 읽지 못했던 제가 부처님의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수 있어 저도 놀라웠습니다. 그 후로 부처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법륜스님의 책을 읽고 부처님과 똑같이 법을 설하시는 스님의 동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아 ‘깨달음의 장’을 신청했습니다.

어렵사리 신청한 깨장이었지만 저는 입구에서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법륜스님은 잘하시는데 정토회는 엉망이라고 생각하며 다시는 깨장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으로 와서 제 나름대로 기도하고 스님의 동영상 법문도 듣고 책도 읽었습니다. 마침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다그래도 궁금증이 가시지 않아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마침내 불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불대 졸업 조건으로 깨장을 가야해서 망설였지만 명상수련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여 다닐 결심을 했습니다. 불대 수업은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간경화가 발병한 이후로는 기억력이 많이 떨어져 말도 조리 있게 못하고 발음도 좋지 않았습니다.불대를 다니면서 많이 밝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곳의 저는 불안했고 초조했습니다. 곧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다시 아침에 눈 뜨는 것이 괴롭고,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산송장의 저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쯤 깨장 신청하라는 불대 담당자의 문자를 받고 망설이다 어차피 이리 살 바에는 죽더라도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깨장을 가게 되었습니다.깨장에서 저는 거의 정신을 놓고 죽을 것 같은 두통이 오고 온 몸이 매 맞은 듯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한 것도 아닌데 큰 고통이 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고 일어났는데 기적처럼 몸도 마음도 완전히 다 나아있었습니다. 정말 그 전의 불안 초조했던 저는 사라지고 새로운 저로 거듭 태어나 있었습니다.그 뒤로 연거푸 바라지 수련을 하면서 또 다른 저를 찾게 되었고 제가 왜 예전에 그렇게 죽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해졌습니다. 저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행복이 이제 저에게 충만합니다.

이렇게 변한 저의 모습을 본 딸들은 각자의 힘든 상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천일결사에 동참해서 이제 나누기도 함께하는 ‘딸 도반님’들이 되었습니다. 딸들은 나이 먹은 엄마가 기도하고 달라지니 결혼해 각자 삶을 살고 있는 자신들에게도 힘이 되고 좋은 영향을 준다며 열심히 수행 정진합니다. 가끔 제가 수행이 게을러지면 딸들도 헤이해지는 것이 보입니다. 매일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행복한 삶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불대 수업에서 들었던 부처님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매일 아침 떠올리며 수행합니다. 그 제자는 거지로 헐벗고 힘들게 살다가 부처님을 만나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제자에게 거지 생활을 할 때 입던, 떨어진 옷을 버리지 말고 나무에 묶어놓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는 부처님이 시킨 대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굶지 않아도 되어 신나게 수행하던 제자는 점점 시간이 가자 굶더라도 예전에 마음대로 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제자에게 나무에 묶어놓은 옷을 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는 나무에 묶어놓은 옷을 보고 자신이 또 업식대로 하려는 것을 깨닫고 더욱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자는 자주 그곳에 가서 자신의 예전 옷을 보고 수행 정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매일 새벽마다 더 자고 싶은 생각, 하기 싫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 마다 그 제자 이야기를 떠올리며 예전에 눈뜨기 싫던 아침으로 돌아가기 싫어 바로 그 자리에서 싹 일어나 하루도 빠짐없이 수행정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매일 매일 눈뜰 때 제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새벽에 일어나 정진하는 제가 고맙고 대견합니다. 수행문에 있는 것처럼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찾던’ 제가 스승님을 알게 되고 부처님의 불법을 제대로 만나 이제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있는 그대로 ‘예’ 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딸 장은미 이야기 지금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제 마음을 한 번 살펴봅니다. 처음에 제 사례담을 나누자 하는데 앗! 하고 움츠리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제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 그러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만하고 안 하고는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과연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어쨌든 제가 시작할 때와 지금이 많이 달라져있고, 제 삶의 방향도 죽자고 달리는 방향에서 이젠 함께 살자고 걷는 방향으로 바뀌었으니 이건 이미 저만의 경험이 아닌 우리가 공유해야 할 자산이구나 싶어집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은 제가 스승님께 거저 받은 것이니 저도 나누어야 할 상황이 되면 응당 나눠야 함을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나누어봅니다.


불교대학은 처음에 저희 친정 엄마와 함께 2013년 가을에 왔습니다. 단순히 법륜스님이 운영하시는 문화센터의 불교강좌 정도로 생각하고 왔습니다가 수업만 듣는 것이 아니라 수행, 보시, 봉사를 해야 한다는 입학 설명을 듣고 돌 지난 젖먹이가 있어서 안 되겠다 냅다 꽁무니를 뺐습니다.그 후 다시 불대에 가야겠다 마음을 먹은 것은 평생을 늪에 사는 두꺼비처럼 축축하고 눅눅하던 엄마가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신 후 연꽃처럼 환하고 뽀송하게 피어서 돌아오신 것을 봤을 때였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격으로 돌아오신 엄마를 보고 ‘아, 뭔가 정말 다른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더 신기한 것은 엄마가 달라지자 다 성장해서 각자 가정을 꾸린 저희 세 자매들도 쪼그라들어있던 마음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착한 여자

당시 제 상황은 겉은 평온했지만, 속으로는 자기 말만 고집하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원망, 저만 혼자 참고 사는 것 같은 억울함, 저만 빼고 다 한통속인 것 같은 시댁에 대한 미움, 예쁠 때는 내 강아지였다가 말 안 들으면 ‘으이그, 유씨들!’이 되는 아이들. 항상 저에게 고마워할 줄 모르는 친정식구들에 대한 섭섭함 등 이런저런 감정들이 뒤범벅되어 들끓고 있었고, 그것이 이따금씩 바깥에서 건수가 던져지면 자글자글 끓는 찌개처럼 푹푹 뚜껑이 올라와 만만한 아이들에게 한 탕 두 탕 해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폭발력은 더 세졌습니다. 나중에는 화를 내면 화내는 제가 싫고, 저를 화나게 만든 상대에게 또다시 화가 나서 다시 또 화를 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스님이 말씀 하시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착한 여자가 바로 당시에 저였습니다. 겉으로는 항상 남편에게 존대하고 “네 알겠습니다.” 하면서 속으로는 ‘너 두고 보자. 나 없는 세상을 살아봐야 네가 정신 차리지.’ 이렇게 서슬 퍼런 칼을 벼르고 있었습니다.제 마음이 극한이었던 이때 큰아들은 아빠를 무척 미워했었습니다. 저는 아빠가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저를 비추고 있는 줄도 모르고 ‘쌤통이다.’ 했습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시작된 불대 수업은 정말 속 시원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실천적 불교사상을 배울 때는 ‘아, 그렇구나. 세상을 이렇게 보는 관점도 있었네. 나는 전혀 이런 관점에서 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어리석었구나. 아하! 아하!’하면서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젖 먹듯이 스님의 법문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배울 때는 부처님의 사랑이 어찌나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던지 감동의 여운이 일상생활에서도 가시지 않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열반에 드실 때인 ‘춘다의 공양’ 수업시간에는 중생을 향해 베푸신 그 크고 거룩하신 사랑에 감동받아 수업 중에 얼마나 얼마나 울었는지….지금 배우는 근본불교는 깨장을 가기 전에는 들으면서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알듯 말듯 스님 말씀 따라가다가 어느새 ‘에이, 모르겠다. 여기 있는 나는 그럼 뭔데? 내가 아무것도 아니면 왜 살지?’ 별별 생각을 다하며 반항하는 사춘기 아이처럼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깨장을 다녀오고 나서는 ‘아~, 이런 말씀이시구나.’ 끄덕끄덕 하며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정말이지 불대 수업 하나 하나 너무 소중해서 아이 놓고 1박2일 가야 했던 특강수업 빼고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담당자 소임을 맡아 불대 수업을 다시 한번 더 듣고 싶은 마음입니다.

봉사의 미묘한 힘이리 좋아하는 불대도 처음 들을 때는 수업 외에 해야 하는 것이 많아서 부담스러웠습니다. 아이가 셋인데, 야구하는 큰아이, 초등학교 갓 입학한 둘째, 손 많이 가는 돌 지난 막내, 가끔 신랑 회사 일까지 도와야 하는 처지라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니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상황에서 수업 외의 시간을 내는 것은 불가능이었습니다.그래도 봉사 시간을 채워야 하기에 처음엔 수업시간에 좀 일찍 와서 이름표 나눠주기 봉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호 서명 받기가 있어서 아이 데리고 나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큰 일이 아니어서 다음에 또 나가보고, 봉사 일감에 바느질 할 것 있으면 가져와서 하고 이렇게 제가 하기 쉬운 것부터 하다 보니 조금씩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제가 생각해도 언제 이리 정토회에 깊이 발을 담갔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이것저것 하고 있습니다. 천일결사 모둠장, 수원법당 희망리포터, 정토회 웹사이트 기획, 운영까지 그냥 제게 오는 것은 일단 “예, 하겠습니다.”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돌려드리지 하는 마음으로 했던 것이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이런 일들이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제 상처를 치료해주는 약이 되니 봉사의 힘이 미묘합니다. 집착을 돌아보게 해주는 수행또 하나 저를 바꿀 수 있던 것은 새벽마다 저를 돌아보는 수행입니다. 8-1차부터 시작한 백일기도는 처음에는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았고 매일 수행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나누기도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하고 좀 감추고 싶어서 하기 싫다가, 어느 순간에는 절을 많이 하는 것에 욕심이 나서 저를 돌아보는 것 보다는 절 자체를 많이 하는 것에 위안을 삼는 절중독? 현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계속 어찌어찌 하다 보니 제가 점점 보이고, 미친 줄 알고 있었던 주변 사람들이 그대로 보이면서, 미친 건 주변사람들이 아니라 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쳤다는 것이 보이니 또 수행하기가 싫어졌습니다. 있는 그대로 저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도망다니다가 또 엎드렸다가 그렇게 넘어지고 일어서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하다 보니 이제 저도 볼만하고 제가 힘들면 무엇에 집착해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수준에 왔습니다.

넘어지면서도 이렇게 계속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하는 도반들의 힘이 컸습니다. 수행맛보기를 함께 했던 도반들과 저는 지금도 새벽에 카톡으로 기상 알림을 하고 함께 나누기를 하고 있습니다. 도반들의 나누기에서 깨우치고 도반들의 따뜻한 기다림에 넘어졌다가도 일어나고 이젠 어떤 친구들보다도 마음이 잘 통해 참 좋습니다.

얼마 전 깨장을 다녀오고부터는 하루의 특별히 힘든 이벤트였던 정진이 평범한 일상으로 넘어왔습니다. 전혀 다른 인격으로 변하신 엄마를 보았기에, 깨장을 가기 전까지는 엄청난 마법을 부리는 요술방망이처럼 생각하며, 깨장이 저를 송두리째 바꿔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부푼 기대를 하며 갔습니다. 하지만 깨장은 없던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고 저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었습니다. 제게 깨장은 수련원에서 마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시작해서 지금 계속 진행 중인 삶인 것 같습니다.

행복의 비결 세 가지이리 돌아보니 불대를 다닌지 아직 채 일년도 되지 않았는데 평생을 살아온 것보다 올 한해 더 긴 생을 산 것처럼 배우고 느낀 것이 많습니다. 언제 폭발할지 몰랐던 제 화는 이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휘휘 바람만 한 번씩 일뿐…. 그 전처럼 미친 여자가 되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제 좋을 때는 남편이었다가 싫을 때는 이웃집 아저씨려니 했던 남편은 이제 항상 남편으로 있고,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저만의 특별한 아이들의 남다른 행동들도 이제는 저를 닮아 그러려니 하며 제 거울삼아 키우고 있습니다. 남의 불행 위에 쌓는 줄도 모르고 높이 높이 크게 크게만 쌓았던 저만의 알량한 행복도 이젠 이웃과 함께 나눌 방법이 무언지 생각해보고, 혹시 저도 모르게 남의 아픔 위에 무언가를 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꾸 묻고 돌아보는 저를 봅니다.

불대에 와서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수행, 보시, 봉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달라진 저를 봅니다. 마치 대학 수석의 학습 비결이 “국영수를 중심으로 꾸준히 복습했습니다.”인 것처럼 행복의 비결은 단순한 이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진리는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랑비에 옷 젖듯 차근차근 손잡고 끌어주신 스승님과 선배님들, 도반님들과의 인연에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이대로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후배 도반님들도 저와 함께 이 기쁨을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연등 만들기 봉사를 하고 있는 문윤선 보살님
▲ 부처님 오신 날 연등 만들기 봉사를 하고 있는 문윤선 보살님

수원 기획법회 준비 모임. 맨 오른쪽이 장은미 보살님~^^
▲ 수원 기획법회 준비 모임. 맨 오른쪽이 장은미 보살님~^^

영통불사 모임. 왼쪽 두 번째 문윤선 보살님 & 오른쪽 다섯 번째  장은미 보살님~~
▲ 영통불사 모임. 왼쪽 두 번째 문윤선 보살님 & 오른쪽 다섯 번째 장은미 보살님~~

가을불대 입학식 축하공연~ 앞줄 오른쪽 첫 번째가 장은미 보살님(품에 아기는 귀여운 막둥이), 그 옆이 둘째 동생입니다^^
▲ 가을불대 입학식 축하공연~ 앞줄 오른쪽 첫 번째가 장은미 보살님(품에 아기는 귀여운 막둥이), 그 옆이 둘째 동생입니다^^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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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화(법등행)

두분의수행담너무감명받았습니다^^♡
저도정토행자라서 더많이배우고베풀고 봉사하는사람이되도록노력하겠습니다~~~

2016-02-24 04:55:38

현광

정말 감동입니다. 수행의 의미를 깨우쳐줘서 고맙습니다. _()_

2016-02-22 22:23:36

오보살

정토지서 문보살님 글보고 어떻게 저런인생에서 다시 연꽃을 피셨나 기가막히며 감동받았는데 이토록 훌륭한 세자매 얘기까지 들으니 너무 좋고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이게 바로 정진의 힘이지요 고맙습니다 정진의 힘을 보여주셔서요

2014-11-27 1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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