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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 민다나오 산간 오지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학교를 짓기 위해 답사를 시작한 지 4일째 되는 날입니다. 부키드논주의 원주민 학교 5곳을 방문하여 학교 건설 부지를 답사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4시 30분에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창밖은 아직 캄캄했지만, 곧 동이 트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명상을 했습니다. 5시 30분, 숙소에서 간단하게 커피와 빵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학교가 다섯 곳이나 됩니다. 일찍 출발해야겠네요."

JTS 활동가들도 서둘러 준비를 마쳤습니다. 새벽 6시, 어슴푸레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숙소를 출발해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렸습니다. 창밖으로 안개에 싸인 산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전 7시 10분, 까아뚜안(Kaatuan) 원주민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나무판자로 지은 임시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수줍게 인사했습니다. 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학생이 몇 명입니까?"
스님이 교장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52명입니다. 내년에는 더 늘어날 예정입니다."
마을 인근에 커피농장이 개설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스님이 장판이 깔린 교실 바닥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카펫이 깔렸네요. 다른 학교들과 달리 바닥상태가 양호합니다."
교실 배치를 논의하던 중 화장실 문제로 긴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교육청의 보건 담당자가 교실마다 화장실을 붙여야 하고 남녀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것이 원주민의 전통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화장실을 교실마다 남녀 구분해서 지으면 너무 많아집니다.”
“하지만 원주민 문화에서는 남녀가 반드시 따로 써야 합니다.”
“그러면 교실 밖에 따로 남녀를 구분해서 만들면 어떨까요?”
“이번 교육감은 화장실을 교실마다 만들라고 했습니다.”
한참 논의 끝에 교실 뒤에 화장실을 붙이되, 공용으로 만들고 필요시 남녀를 구분해서 쓰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스님이 직접 줄자로 부지를 측정했습니다. 최종적으로 28미터(7m×4칸) 규모로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8시 10분, 까아뚜안을 떠나 다음 학교로 향했습니다. 산길을 1시간 정도 달려 9시 15분에 끼누수한(Kinusuhan) 원주민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1,400미터의 고지대에 자리한 이 학교 주변으로는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대나무와 양철판으로 지은 임시 학교에서 76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학생이 1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교장 선생님이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왜 건물 위치를 정하지 못했습니까?"
"땅을 추가로 매입하려고 협상 중입니다. 그래서 확정을 못 하고 있습니다."
교실로 들어가 스님이 칠판 앞으로 나가 직접 분필을 들었습니다.

“땅의 모양으로 보아서 정규 교실 네 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다섯 칸으로 만들고, 부족하면 현재 쓰고 있는 임시 건물을 추가로 사용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칸막이로 공간을 분리하면 필요할 때는 열어서 넓게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자, 교육청 관계자가 호응하며 말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졸업식 같은 행사 때는 파티션을 제거해서 넓은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네요."

10시 15분, 교육청 엔지니어와 충분한 토론을 마치고 학교를 나왔습니다. 다음은 산미구엘 국립 고등학교로 향했습니다.

산미구엘(San Miguel) 국립고등학교는 2023년에 JTS가 지어준 학교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여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미혼모가 되는 일이 잦아지자, JTS가 특별히 고등학교 건립을 지원했던 곳입니다. 11시에 도착해 보니 학생 수가 급증해서 일부 고학년은 학교 뒤편 임시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추가 교실을 짓기 위해 부지를 답사했는데, 경사가 너무 심했습니다.

"5미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스님이 측정 결과를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필리핀 JTS 노재국 대표가 과거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3년 전 이 학교를 지을 때 여기 평탄화 작업만 3개월이 걸렸습니다. 군인들이 와서 2월부터 시작했는데 5월에야 겨우 끝났습니다."
"계단식으로 교실을 배치하면 어떻겠습니까?"
스님이 아이디어를 냈지만, 엔지니어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지붕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해집니다. 또한 성토한 땅에는 건물을 지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자연 지반(natural ground)에 지어야 안전합니다.”
건물을 멀리 떨어뜨려 평평한 곳에 배치하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교장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들이 운동 삼아 걷기 좋습니다."
11시 50분 부지 답사를 마친 후 학교에서 준비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5분 거리에 있는 깔라빳(Kalapat) 원주민 학교로 이동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자 갑자기 안개가 짙어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쓰고 부지를 둘러보던 스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왜 땅을 평평하게 안 하고 이렇게 삐딱하게 해 놨습니까?"
JTS 활동가가 난처한 표정으로 설명했습니다.
"작년부터 군인들이 와서 부지 정리를 시작했는데, 1년 동안 작업한 게 이 정도입니다."
"왜 이렇게 진행이 안 됩니까?"
"비 때문입니다. 3일 연속 비가 안 와야 그레이더로 땅을 고를 수 있는데, 계속 비가 와서..."
스님이 차량 진입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학교 물건이나 책상을 운반하려면 차가 들어와야 하는데, 이렇게 건물을 배치하면 차가 돌 공간이 없습니다."
활동가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해당 부지가 학교용으로 적절하지 않아 이전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습니다. 만약 이전이 어렵다면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낮 12시 30분, 쏟아지는 빗속에서 답사를 마치고 마지막 학교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2시간 가까이 달려 오후 2시 20분에 바웅온 중앙초등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임시 교실 3개를 빌려 장애 아동을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교실이 몇 개 필요합니까?"
"선생님은 3명인데 교실은 4개를 원합니다."
"왜 선생님보다 교실이 더 많이 필요합니까?"
"사회 적응 연습 공간이 하나 더 필요합니다. 특수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특수 학교를 지을 곳을 둘러보는데 박지나 대표가 건물 위치를 새로 제안했습니다. 모두가 그곳이 좋겠다고 동의하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박 대표님, 오늘 밥값 했네요.”
스님은 그 위치에 말뚝을 박고 줄자로 크기를 측정한 후 아이패드에 배치도를 그렸습니다.


"교실은 7미터씩 4칸으로 하고, 복도는 1.5미터, 지붕은 비를 피할 수 있게 2미터까지 내려오게 합시다."
학교에서 준비한 과일로 목을 축인 후 오후 3시 10분에 학교를 나왔습니다.


오늘 답사가 일찍 끝나서 JTS센터로 들어가서 숙박하기로 했습니다. JTS 현지 활동가 미오의 아내가 이틀 전에 돌아가셨다고 해서 센터로 가는 길에 조문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오후 4시에 미오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 안에는 필리핀 전통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스님과 JTS활동가들은 조용히 해탈주를 염송했습니다.

미오가 눈물을 흘리며 다가왔습니다. 그는 2005년 알라원 마을에 학교를 지을 때부터 20년간 JTS와 함께한 필리핀 JTS의 산 증인입니다. 그의 아들 제롬도 필리핀JTS에서 운전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한 달간 폐질환으로 고생하다가... 그저께 눈을 감았습니다. 마지막에 아이들을 잘 돌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스님이 미오의 손을 잡았습니다.
"고인이 편안하게 가셨기를 바랍니다."

스님은 필리핀JTS 전 대표 이원주 님과 현 대표 노재국 님과 함께 모은 장례비를 전달했습니다. 조문을 마치고 오후 4시 20분에 JTS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진 후 저녁 6시에 JTS 활동가들과 함께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이 끝난 후 필리핀JTS 활동가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특별한 손님도 있었습니다. 필리핀 JTS에서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김영애 님의 남편 김승진 님이 JTS 센터를 방문하여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 오랜만입니다."
김승진 님은 대학 시절부터 스님과 인연이 있었고, 정토회 대의원도 했으며, 현재는 문경 정토수련원의 예초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와주어서 고맙습니다. 영애 님이 여기서 수고가 많습니다."

이어서 필리핀JTS 활동가 최은실 님이 정성껏 준비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해가 저물자 트렐과 도동 부부가 JTS 센터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미오의 집에 조문을 갔다가 스님이 왔다 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찾아온 것입니다.

"스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트렐과 도동은 20년 전 토니 대주교의 소개로 만나 함께 민다나오 오지를 누비며 학교를 지었던 동지들입니다. 도동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의사가 6개월간 고지대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지난번에 여기서 하루 잤는데 혈압이 190까지 올라갔습니다."
안부를 주고받은 후 필리핀JTS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트렐이 현재 필리핀 민다나오의 교육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필리핀 전역에 3,000개 이상의 학교가 부족합니다. 더 큰 문제는 신규 교사들을 오지에 보내고, 경력이 쌓이면 도시로 빼내가는 것입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요즘 부키드논주 교육청의 롤렌과 에드윈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충분히 이해하고 책임감 있게 진행하고 있어요."
도동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이 JTS 활동을 잘 이어 가고 있어서 안심입니다."
대화 말미에 스님이 인도네시아 상황을 전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아체에 큰 홍수가 났습니다. 사망자만 1,000명이 넘는데 정부 지원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인도네시아 아체로 이동하여 긴급 구호 물품을 나눠 주는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트렐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전 세계가 어수선합니다. 트럼프의 정책으로 필리핀도 국제 NGO 지원이 많이 끊기고 있습니다."
스님이 두 사람에게 당부했습니다.

"빨리 건강을 회복하세요. 20년 전 우리가 밤 12시까지 회의하던 그때처럼, 6개월 후에 다시 만나 함께 일합시다."
저녁 8시 30분, 손님들이 돌아간 후 스님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필리핀 민다나오 답사 마지막 날입니다. 깔라수얀(Kalasuyan) 원주민 학교와, 살라간타 퀴숨빙(Salaganta Quisumbing) 원주민 학교를 답사한 후, 평가 회의를 하고 인도네시아 아체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민다나오의 뜨거운 햇살 아래, JTS 활동가들과 현지 교육청 담당자들의 노력으로 아이들의 배움터가 조금씩 그 모습을 갖춰 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속도는 더디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JTS의 방식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작년 10월 진주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일을 시작한 지 1년 반쯤 된 스물아홉 살 직장인입니다. 요즘 이 길이 제 길이 맞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예전에 꿈꾸던 일을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데, 월세도 내야 하고 할부금도 내야 해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예전의 꿈과 현실이 어긋나는 것 같은데, 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까요?”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다고 하니, 지금은 그냥 직장에 충실히 다니는 게 좋겠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제가 뭐라고 답하겠어요?
‘출가해서 스님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장손이라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결혼도 했고, 직장도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도 아직 어린데 지금 출가하면 아내는 울 것 같고 부모님은 걱정하실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물으면 저는 분명히 말할 겁니다. ‘그냥 집에서 잘 사세요.’라고요. 출가를 결심했다면 집이 어떻고, 나라가 어떻고, 아내가 어떻고, 아이가 어떻고 하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이 많아질수록 결단을 내릴 수 없지요. 어느 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훌쩍 떠날 수 있을 때 비로소 결심이 서는 겁니다.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굳이 꿈이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전기세도 내야 하고, 계산해야 할 게 많은 상황이라면 당장은 지금 직장에 잘 다니는 편이 낫겠습니다.
꿈이 가수라면 직장을 다니면서 취미로 노래를 하면 되고, 화가라면 틈날 때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운동선수가 꿈이라면 아마추어로 즐기면 되지요. 예를 들어 직업은 따로 있지만 취미로 노래를 부른다고 해 봅시다. 무료로 노래를 들려주다 보면 ‘잘 부른다’는 소문이 나고, 생일 잔치나 모임에 불려 다니며 차비 정도의 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이 월급의 절반쯤 된다면 ‘이 정도면 밥은 먹고살 수 있겠다.’ 하는 판단이 설 겁니다.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가수를 해도 늦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나는 가수가 되겠다!’며 굶어도 좋다는 각오로 뛰어드는 길도 있고, 생활을 유지하면서 취미로 시작해 점점 지지를 얻으며 본업으로 바꾸는 길도 있습니다. 혹은 끝까지 취미로 남겨둘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취미로 노래하다가 마흔, 쉰이 넘어서 가수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국 질문자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처럼 직장을 다니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꿈을 취미로 이어 가다가 그 수입이 본업의 절반을 넘는 순간 결단을 내리는 길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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