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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 민다나오 답사 2일째입니다. 하루 종일 원주민 학교 4곳과 특수학교 1곳을 방문하여 학교 건설 부지를 답사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5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했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이었습니다.

6시 30분, 길가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첫 번째 학교로 향했습니다.

오전 7시 30분, 산페르난도(San Fernando) 군에 있는 루가원(LUGAWON) 원주민 학교 부지에 도착했습니다. 마티쌀룽(Matisalug) 부족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JTS 활동가의 말로는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주민들의 단합이 정말 좋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아침 햇살 아래, 마을 주민들이 공동 울력으로 대나무를 깎아 임시 학교 건물을 짓고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 부지를 살펴보던 스님이 물었습니다.

"땅 경계가 이렇게 꾸불꾸불하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지으면 좋겠어요? “
교육청 엔지니어가 답했습니다.
"도로와 평행하게 일직선으로 맞추는 게 좋겠습니다. “
스님과 JTS 활동가들이 여러 번 줄자를 당기며 이리저리 재어보았습니다. 땅이 꾸불꾸불해서 건물 방향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측정 결과 36미터가 나왔습니다.

"5개 교실을 정규 사이즈로 지으면 될 것 같습니다. “
JTS 활동가가 제안했습니다.
"화장실은 교실에 바로 붙여서 지으면 어떨까요? 요즘은 아이들 안전 때문에 그렇게 하더라고요. “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대신 부지가 조금 더 필요하겠어요. “
현장을 둘러보고 나자 마을 주민들이 직접 딴 코코넛을 내어주었습니다. 스님은 코코넛 물을 직접 잔에 따라주며 "이렇게 따라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다 따를 수 있다" 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시원하게 목을 축인 뒤 주민들과 정답게 기념사진을 남기고 마을을 나섰습니다.

오전 9시 10분, 할라피딴(HALAPITAN) 중앙초등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학교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복도가 지붕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교실 앞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특별한 분을 만났습니다.
"시각장애인이면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목요일에 의사 선생님도 오시는데, 그분도 시각장애인이세요. “
교육청 직원이 설명했습니다. 스님은 합장하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되겠네요. “
스님은 특수학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전체 장애 학생이 몇 명입니까? “
"시각장애인 4명, 청각장애 8명, 자폐 3명, 지적장애 8명 등 총 33명입니다. “
"교실은 몇 개가 필요합니까? “
선생님이 답했습니다.
"다운증후군, 시각장애인, 청각장애, 지적장애 각각 하나씩 4개가 필요합니다. “
스님이 제안했습니다.

"정규 교실 2개를 지어서 4개로 나누면 어떨까요? “
교육청 관계자와 JTS 활동가들의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교사가 3명밖에 없으니, 교실을 3개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
결국 3개 교실로 결정되었습니다. 스님은 직접 줄자를 들고 이곳저곳을 재며 가장 좋은 위치를 찾았습니다.


"장애인 학교가 너무 한쪽에 치우쳐 있으면 안 됩니다. 학교 중심에 있는 게 좋아요. “
교실의 위치와 크기를 가늠하는 사이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할라피딴 중앙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이동 중에 과일 가게에 들러 제철 과일을 샀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다음 답사 장소로 향했습니다.




오후 12시 20분, 퀘존(QUEZON) 군의 꼴람피온(KOLAMPYON) 원주민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10년 전 정부의 주거 개선 프로젝트로 지어진 집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절반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사탕수수 농장으로 일하러 간 부모들이 아이들만 남겨두고 떠났다고 합니다.


스님은 학생들의 현황이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현재 학생 수는 몇 명입니까? “
"지금은 87명인데 250명으로 늘어날 예정입니다. “
"왜 그렇게 늘어납니까? “
교장 선생님이 설명했습니다.
"7km 떨어진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여기로 옮겨올 거예요. 100미터 거리에 사립학교가 있었는데 내년에 폐교할 예정입니다. 사립학교를 다니는데 한 달에 300페소가 필요해서 많은 아이들이 못 다닙니다. “
부지를 측정하던 스님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250명이 되면 7개 교실이 필요하겠네요. 63미터가 필요한데... “
엔지니어와 함께 여러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7미터 × 9미터로 하지 말고 9미터 × 7미터로 방향을 바꾸면 어떨까요? “
"교실이 길쭉해지는데 괜찮을까요? “
한참 논의 끝에 스님이 결정했습니다.

"여기서 5개, 저쪽에 2개. 이렇게 ‘ㄱ’ 자로 7개 교실을 짓겠습니다. 가운데는 운동장으로 비워두고요. “
학교를 지을 위치를 최종 결정한 후 아이들, 선생님과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학교를 나왔습니다.

오후 3시, 키따오따오(Kitaotao) 군의 빨라숭안(PALASUNGAN) 원주민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1시간 20분이나 달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학교는 현재 125명이 다니고 있는데 곧 157명이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임시로 지어놓은 교실에 들어서니 대나무로 엮은 벽과 흙바닥, 그리고 나무판자로 만든 칠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임시 교실이라 해도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스님은 칠판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답사를 와서 이걸 봤으면 이것부터 빨리 해결해 주어야죠. 아무리 임시 학교지만... “
스님은 JTS 활동가들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이런 칠판을 보고 어떻게 바로 안 해줄 수가 있어요? 당장 해줍시다. “

그 사이 아이들이 몰려왔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학교를 새로 지을 부지를 살펴보러 갔습니다.



학교를 지을 부지를 살펴보던 스님이 중장비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여기는 포클레인으로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이 많이 필요해요. 축대도 쌓아야 하고, 군청에서 지원이 안 되면 어렵겠어요. “

스님은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며 제안했습니다.
"집 4채를 옮기고 여기 마을회관 뒤에 교실을 짓는 게 어떨까요? “
마을 대표가 답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집을 옮길 수 있습니다. “
스님이 약속했습니다.
"집을 옮기면 JTS에서 지붕 자재를 지원하겠습니다. “
박지나 JTS 대표는 집안을 둘러본 후 덧붙였습니다.


"주거 환경도 매우 열악합니다. 학교뿐만 아니라 주거 개선도 필요해 보이네요.”
전기가 없어서 밤에도 불을 켤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일행은 한국에서 가져온 태양열 전등 샘플도 설치해 본 후 마을을 나왔습니다.


오후 5시 30분에는 빠말라완(PAMALAWAN) 원주민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어 서둘러야 했습니다.

"학교를 어디에 짓고 싶습니까? “
교장 선생님이 마스터플랜을 보여주었습니다.

"12개 교실 계획이 있지만, 우선 4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
해가 저물어 가는 가운데 학교를 새로 짓고자 하는 부지로 향했습니다.
"저 아래 부지까지 얼마나 걸려요? “
"걸어서 3분입니다. “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은데 일단 내려가 봅시다. “
일행은 서둘러 경사진 길을 내려가 땅을 살펴보았습니다. 스님이 경사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경사가 있어서 중심을 약간 이쪽으로 옮기는 게 좋겠어요. “
엔지니어가 동의했습니다.
"6미터 × 6미터로 하면 경사 문제가 좀 줄어들 것 같습니다. “


어둠이 완전히 내린 후에야 답사를 마쳤습니다. 휴대폰에서 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차로 돌아왔습니다.

오후 6시 30분, 인근에 있는 시누다(SINUDA) 중앙초등학교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며 오늘 답사를 정리했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제는 JTS의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육청이 건설을 책임지고, 우리는 자재만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
교육청 담당자가 답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전담 엔지니어를 배치하고 교육청에서 책임지겠습니다. “
밤 8시가 넘어서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방안의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스님은 공용 공간으로 나와 원고 교정 작업과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5개 학교를 답사하며 각 지역의 교육 현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싸방(SABANG) 원주민 학교, 끼바웨(KIBAWE) 특수학교, 끼따오따오(KITAOTAO) 특수학교, 복복(BOC BOC) 특수학교 등 4곳을 추가로 답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작년 10월 부천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왕따로 인한 안 좋은 기억이나 강박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 5년 넘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잊고 살아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잘 살아야 한다’라는 강박으로 이어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강박이 저를 더 열심히 살게 만들지도 않고, 오히려 게으르게 만들어서 스트레스가 큽니다. 그때의 좋지 않은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충분히 슬퍼해라’ 하셨어요. 그런 방법이 좋을지, 아니면 예전처럼 없는 일인 양 지내는 것이 최선인지 궁금합니다. 또 다른 방법을 추천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담배 피우는 게 건강에 좋아요, 안 좋아요?”
“안 좋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담배를 안 피우는데 친구 다섯 명이 담배를 피운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애들이 ‘담배 안 피우는 저 친구하고는 놀지 마’ 그러면서 나를 왕따 시켰어요. 그럼 왕따 당했다고 슬퍼해야 할까요? 아니면 ‘나는 담배 피우는 인간들과는 안 놀아’ 하면서 내가 그 친구들을 왕따 시켜야 할까요?”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저도 미숙한 부분들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왕따를 당했다는 경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그 무리에 끼고 싶었다’는 마음이 함께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좋아 보였고, 그 안에 속하고 싶었기 때문에 배제되었을 때 더 큰 상처가 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그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부러울 만큼 가치 있는 존재였을까요?
제 이야기를 하나 해 보겠습니다. 저 역시 불교계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외면받고, 이해받지 못했던 경험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그들이 나를 왕따 시켰다’기보다는, ‘내가 그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의 방식이 제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서 술을 마시자거나, 소비를 즐기자거나, 제 가치관과 맞지 않는 제안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절하는 것이 손해이거나, 뒤처지는 일이라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기준에 맞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겼습니다. 골프를 치러 가자는 제안을 사양한다고 해서 인생에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모두 상대의 잘못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나도 모르게 그들을 부러워했던 마음’, ‘그 무리에 속하고 싶었던 기대’가 함께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부러운 삶이라면, 그 선택을 해 보면 됩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부러워만 한다면 그 간극에서 괴로움이 생깁니다.
‘너와는 함께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아팠던 이유도, 단순히 거절당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관계 안에 머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환경 속에서 과연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멀어짐이 배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더 맞는 길을 지켜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불교계 안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던 시기에, 오히려 다른 종교인들과 더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무님, 교령님 등 종교는 달랐지만, 사람으로서 진지하게 삶과 사회를 고민하는 분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된 것입니다. 또 국내에서 제 활동이 여러 제약을 받을 때는 시선을 해외로 돌려, 국제 구호 활동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불교계 안에만 머물렀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종교 간의 만남과 협력이, ‘종교 간 이해를 넓혔다’는 평가로 이어졌고, 국내 활동이 막히면서 해외로 나가게 된 구호 활동은 ‘국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는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저는 막사이사이상의 ‘평화와 국제 이해 부문’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배제되었던 경험이 오히려 새로운 길을 열어 준 셈입니다. 만약 그때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면, 그런 인연과 경험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질문자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라는 뜻입니다.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상처가 남았다면, 물론 그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무리에 속하고 싶었구나’, ‘그들을 부러워했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기대가 있었기에 거절당했을 때 더 아팠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볼 수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그렇게까지 부러워할 대상이었을까요? 그들과 어울리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나에게 맞지 않는 가치나 행동을 배우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관점을 바꾸어 보면, 그 경험을 전부 불행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그때 그 길로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지도 생깁니다.
상처는 한 번 생기면 마음속에 습관처럼 남아 오래 지속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기억을 억지로 없애려 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아팠는지, 그 안에 어떤 기대와 집착이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이해가 생기면, 과거의 경험은 더 이상 나를 묶는 족쇄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통찰로 바뀔 수 있습니다."
“네. 그런데 학창 시절이다 보니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어리석은 거예요? 지혜로운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거라고 생각은 드는데요.”
“그래요. 그때는 어렸고, 어리석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겁니다. 담배 피우는 것이 멋있어 보이고, 거칠게 행동하는 것이 강해 보이고, 그런 것들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부러워했던 거예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 돌아보면, 그것이 결코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오히려 그러지 않은 것이 잘된 일이었지요.
저는 어릴 적에 쌀이 부족해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칡뿌리를 캐 먹고, 도라지를 캐 먹고, 찔레를 따 먹으며 지냈고, 저녁을 굶고 잠드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먹었던 것들이 전부 자연 그대로의 건강식이었습니다. 또 학교가 멀어서 매일 걸어 다녔는데, 워낙 많이 걷다 보니 다리가 단단해져 사람들이 축지법을 쓰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걸음이 빨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남아시아나 부탄 같은 곳에 가서 구호 활동을 하면, 현지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곤 합니다. 농사도 알고, 생활 전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들 하지요. 그럴 때 저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가난한 집에 태어나 조기 교육을 제대로 받았습니다.” 실제로 보면, 그런 삶의 경험이 책으로 얻은 지식이나 학위 여러 개보다 훨씬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왕따를 당했던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아이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왕따를 당했다고 울 때, 무조건 불쌍하다고 보호의 대상만으로 보지 말고, 왜 그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무엇을 부러워했던 건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진짜 도움이 됩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로하거나 달래는 말을 자주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계속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미숙해서 상처를 입었다면, 그것을 부정하지 말고 “그때의 나로서는 그럴 수 있었다”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입은 상처’ 임을 자각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이 진짜 가치 있는 삶인지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의 경험으로 인한 후유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 삼아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안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과거는 더 이상 발목을 잡는 기억이 아니라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밑거름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원래는 깊이 묻어두고 있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해도 원래 게을러서 열심히 하는 게 힘든 편이에요.”
“열심히 살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 자체가 이미 잘못된 생각일 수 있습니다. 토끼가 열심히 산다고 말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토끼는 그냥 자기 방식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래도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꼭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기준이 있으니, 그에 못 미치면 스스로를 두고 ‘게으르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를 보고 게으르다고 말하는 경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가 열심히 산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소는 소답게 살아갈 뿐입니다. 열심히니 게으름이니 하는 말은 자연의 기준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잣대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자신을 몰아붙이며 열심히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이 오히려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그저 자기 형편에 맞게,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살아가면 됩니다.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합니다.”
“그런데 취직도 하긴 해야 하잖아요.”
“당연히 취직을 해야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출근하고, 일 마치면 집에 오면 됩니다. 그게 열심히 사는 건가요? 그냥 사는 거예요. 소가 열심히 풀을 뜯어요? 아닙니다. 그냥 뜯을 뿐이에요. 아침에 눈 뜨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 눈 뜨기 싫으면 죽으면 되는 겁니다. 세수하고 밥 먹고 직장 가는 게 뭐가 그리 힘든 일인가요? 물이 없어서 세수를 못 할 때를 생각해 보세요. 세수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눈이 아파서 못 뜰 때를 생각해 보세요. 눈이 떠진다는 건 감사한 일이잖아요. 아침밥을 먹을 재료가 있다는 것도, 밥을 지어먹을 수 있다는 것도 다 감사한 일입니다. 결국 이건 다 생각의 문제예요.”
“그래도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능력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돼요.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하잖아요. 대충대충 직장 다니면 됩니다. 회사에서 나가라 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나가면 되죠. 눈치 볼 필요 없습니다. 남이 볼 땐 괜찮은데, 본인은 항상 ‘제가 부족합니다’ 하면서 결핍을 느끼는 거예요. 그건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대강대강 살아도 잘 살아요. 나중엔 스님보다 더 오래 살 걸요.” (웃음)
“못난 제 모습을 보면 너무 자존감이 떨어져서,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열심히 살고 싶으면 살면 됩니다. 담배 피우고 싶어도 건강에 안 좋으면 끊듯이, 열심히 살고 싶은데 안 되면 그냥 열심히 안 살면 돼요.”
“그런데 못하는 제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힘겹습니다.”
“질문자는 원래 잘난 게 아니에요. 왜 착각하나요. 눈이 두 개 있죠?”
“있어요.”
“코 있죠?”
“네, 있어요.”
“입도 있고, 귀도 있잖아요. 그만하면 됐지요. 눈은 보라고 있고, 코는 숨 쉬라고 있고, 귀는 들으라고 있고, 입은 먹고 말하라고 있습니다. 다 제대로 기능하죠?”
“네, 제대로 기능합니다.”
“그럼 됐습니다. 콧대를 세운다고 숨이 더 잘 쉬어져요? 눈을 크게 뜬다고 더 잘 보여요? 턱을 깎는다고 밥이 더 잘 먹혀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니까 괴로운 거예요.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냥 지금 이대로 살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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