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12.2. 《사상계》대담, 대화문화아카데미 60주년 대화모임, 행복한 대화(11) 춘천
“결혼기념일도 안 챙기는 남편, 계속 참고 살아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월간 시사 잡지《사상계》 주관으로 신년 대담을 나누고, '대화문화아카데미' 60주년 기념 대화 모임에 참석한 후, 춘천으로 이동하여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의 올해 마지막 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오전 7시에 대화문화아카데미 6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열린 대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평창동으로 향했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한강을 건너 약 한 시간 만에 평창동의 대화문화아카데미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 명예 원장과 정성헌 한국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인사를 나눈 후 8시부터 곧바로 신년 대담을 시작했습니다.

신년 대담은 《사상계》의 편집 위원 한윤정 님이 질문하고, 세 분의 사회 원로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지난 25년간 겪은 변화와 앞으로 2050년까지 나아가야 할 정치·경제·생태·종교·시민사회·문명 전환의 방향에 대해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스님도 한국 사회가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의 대담을 마친 후 오전 10시부터는 장소를 옮겨서 대화문화아카데미 창립 60주년 기념 ‘세 의자’ 대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문화아카데미(재단법인 여해와 함께)는 1965년 설립 이래 생명 중심의 인간화를 지향하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르게 하려는 뜻과 마음을 모으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 사회 지식인들의 배움터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 명예 원장의 요청으로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노장청(老壯靑) 3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공통의 언어를 찾아보고자 마련된 자리입니다. 1세대에서는 법륜스님, 최재천 교수, 정성헌 이사장이 자리하고, 2세대에서는 조천호 박사, 하승수 변호사, 장하나 활동가가 자리하고, 3세대에서는 로잘린송 가수·다원 예술가, 윤은성 작가, 조해민 활동가가 자리했습니다. 그래서 대화 모임의 테이블도 삼각형 모양을 배치했습니다.

대화는 ‘기후 위기와 생명애의 길’을 주제로 세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향후 25년 우리가 마주할 현실, 나의 시대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미래를 위해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시작할 것인가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했습니다.

토론에 참여한 3세대가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오후 1시가 넘어서 대화 모임을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스님은 다음 약속이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대화문화아카데미를 나와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오후 2시에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2층 쉼터에서 미국 LA 정토회 회원인 이경택 님, 이승훈 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분은 지난 3박 4일 동안 전국에 있는 정토회의 으뜸절을 순례하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으뜸절 순례를 하며 느낀 점을 나눈 후 LA 수련원 불사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북한 이탈 주민 출신으로 북한을 연구하고 있는 김윤희 박사가 찾아와 스님에게 국수와 떡을 선물하고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북한 식량난이 한창이던 1990년대 기아의 참상을 몸소 겪고, 사회가 붕괴되어 가는 현실을 매일 일지를 쓰며 기록하신 분인데, 최근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았다며 스님에게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당시 (사) 좋은 벗들이 기록한 자료들 덕분에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며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김 박사님의 논문은 이번에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지난여름에 북한 국경변을 보았을 때 느낀 점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준 후 대화를 마쳤습니다.

연달아 미팅을 마친 후 오후 4시가 되어 서울에서 출발해 춘천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2시간을 달려 춘천 시내에 들어섰습니다.

스님은 빈틈없이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점심 식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도착하기 전에 식당에 들러 춘천 막국수로 간단히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한 후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KBS 춘천 방송 총국 공개 홀입니다. 강연장에 도착하자 많은 봉사자들이 곳곳에서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입장이 완료되고 저녁 7시 20분이 되자 KBS 춘천 방송 총국에서 기상 캐스터로 활동 중인 이원영 님의 사회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사전 공연으로 강원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인 정병훈 님이 ‘나는 반딧불’, ‘처음 본 순간’ 두 곡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러 주었습니다.

시작부터 강연장은 뜨거운 박수와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스님은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러 준 정병훈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무대 뒤편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서 사회자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스님을 소개하자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춘천 시민들을 향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자립’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벌레조차도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가고, 다람쥐나 토끼도 제힘으로 생을 꾸려갑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정작 자기 인생은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자꾸 남에게 도와 달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보면서 안타깝고 한심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함께 살 남편이나 아내를 구해 달라며 부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 ‘조금 부족한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산에 사는 짐승들도 짝을 구할 때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입시 브로커가 아닙니다.

대학 입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 결과는 실력에 따라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 합격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결국 ‘실력은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붙게 해 주세요.’라는 뜻 아닙니까? 실력이 안 되는데도 합격한다면, 그것은 부정 입학이지요.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도 아닌데 말입니다. 결국 내가 바라는 소원을 이루려면, 내가 믿는 부처님이 부정 입학을 알선하는 브로커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입시 브로커가 있어서 돈을 받고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켜 주는 일이 있었죠. 지금은 모두 불법이라 들키면 처벌받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어도 쉬쉬합니다. 그런데 종교에서는 이런 행위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 와서 기도하면 합격한다.’고 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이는 곧 부정행위를 공식적으로 드러내 놓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심각한 모순이 드러납니다. 여러분의 욕망이 이루어지려면, 내가 믿는 그 존재가 부정한 존재여야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왜 믿고 따르겠습니까?

인도의 전통문화에는 파괴 신과 창조 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신을 더 많이 믿을까요?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파괴 신을 더 많이 믿습니다. 조금만 잘 보이면 나만 특별히 봐줄 것 같은, 그런 신이 좋게 느껴지는 거죠. 그래야 소원이 이루어지니까요. 이런 모습을 보면, 종교라 하더라도 사실은 인간의 욕망이 형상화된 것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끼나 다람쥐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데, 왜 유독 사람만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자꾸 누군가에게 의지하려 할까요? 그것은 욕심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강연의 핵심은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입니다.

물론 아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립해야 합니다. 사람이 동물과 비교해 조금 더 나은 점이 있다면, 바로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자립이 가장 기본이라면, 그다음은 자신이 자립한 후 남을 조금 도울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이런 행위는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의 특징입니다. 물론 남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돕지 않는다고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인생조차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끊임없이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은, 부족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누군가의 도움이 있으면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도와 주세요.’라고 먼저 요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인도의 수행자들도 걸식을 하긴 하지만, ‘밥 좀 주세요.’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 수행자가 아니라 거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조용히 서 있다가 누군가 음식을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주지 않으면 그냥 조용히 돌아섭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좋은 일을 하면서도 ‘제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니까 저를 좀 도와 주세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좋은 행위는, 남이 도와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형편에 맞게 묵묵히 해나가는 것입니다. 반면, 내가 하는 일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저도 돕고 싶습니다.’라고 나서는 것은 구걸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공감과 연대의 표현이지요.

그러니 너무 돈에 얽매이지 마세요. 흔히 ‘돈이 있어야 좋은 일을 하지.’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됩니다.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 흙 묻은 손 한번 닦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이에요. 이런 관점을 가지면 인생살이에 괴로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남 탓 말고, 자립하세요.

여러분의 결혼 생활이 힘든 이유도 결국은 ‘덕 보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남편 덕 좀 볼까?’, ‘아내 덕 좀 볼까?’ 하고 기대했는데, 막상 살아 보니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이 결혼을 계속 유지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심지어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면 ‘그만두자!’는 생각까지 하게 되지요. 하지만 자립하는 사람이라면 남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함께 사는 배우자로부터 ‘아내 잘 만났다.’, ‘남편 잘 만났다.’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다면, 여러분에게 ‘법륜스님은 스님으로서 참 괜찮다.’는 평가를 들어야지, ‘이런 스님도 다 있나?’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되겠습니까? 그럴 거라면 차라리 출가를 하지 말았어야지요.

여러분이 결혼해서 잘 사는 모습을 보면, 저도 옆에서 보고 있다가 ‘결혼 생활도 괜찮은데? 나도 한번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맨날 힘들다고 하소연만 하니, 제가 결혼을 하고 싶겠습니까? 가끔 세상사에 관심이 생길 때도 있지만, 즉문즉설을 하다 보면 저절로 올바른 수행자의 길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즉문즉설은 여러분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즉문즉설을 해보면 대부분의 사연이 비슷합니다. 스스로 결혼해 놓고는 남편이나 아내를 미워하고, 자기가 아이를 낳아 놓고는 아이와 못 살겠다고 하고, 자기가 시작한 사업인데 안 된다고 하소연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본인이 선택해 놓고는,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즉문즉설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왜 그럴까요? ‘결혼 안 하길 잘했다.’, ‘아이 안 낳길 잘했다.’, ‘직장생활 안 하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되니 저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웃음)

여러분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사는 것 같아요. 그저 산속의 다람쥐나 토끼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사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런데 자꾸 남에게 의지하려 하고,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려고 하고, 욕심을 부리고, 감정대로 행동하려 하니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세 명이 먼저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어서 현장에서도 추가로 네 명이 더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공감력이 부족하고 기념일도 안 챙기는 남편과 자주 갈등이 생긴다며 남편과 어떻게 하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결혼기념일도 안 챙기는 남편, 계속 참고 살아야 하나요?

“저는 결혼한 지 1년 된 새댁입니다. 남편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말을 툭툭 내뱉는 스타일이라 연애할 때부터 자주 다퉜습니다. 그래서 심리학과 MBTI(성격 유형 검사)도 공부하며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서운할 때마다 ‘남편이 T형(사고형)이라 그렇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랬어요. 그런데 서운함을 말해도 남편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혼자 애쓰다 화가 쌓이면 결국 참다 못해 막말을 하며 크게 싸운 적도 많습니다. 며칠 전 결혼 1주년이었는데, 저는 꼭 챙기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기념일에 꼭 뭘 해야 해? 친구들은 아무도 안 챙기던데...’ 라고 해서 또 심하게 다퉜습니다. 남편은 이런 기념일에 별 의미를 두지 않지만, 저는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계속 갈등이 생깁니다. 그냥 제가 참으면 될까요? 참고로 제 언니는 결혼 후 스님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이혼하지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저도 스님 말씀을 들으며 잘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목표가 너무 높아요.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기보다, 우선 안 헤어지고 사는 무난한 결혼 생활법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 행복까지 바라면 욕심이에요.

지구 인구가 약 80억인데, 그 가운데 자기 생일을 알고 챙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 모르거나, 알아도 안 챙기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만 해도 생일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나이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아이들 나이는 대략 추정해서 정해 주고, 이름도 지어 주죠. 아이 엄마가 대개 열여덟 살에 첫째 아이를 낳으니, 아이 셋을 낳았다고 하면 두 살 터울로 낳았다고 계산해서 나이를 정해 줍니다. 그러니 생일이란 게 세상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남편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아 깜짝 놀랐습니다. (웃음) 남편에게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질문자처럼 기념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을 만나니 그 성향이 문제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에요. 기념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면 아무런 갈등도 없었겠죠.

제가 자란 시골에서는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선물 주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죠. 그런 건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환경에서도 어머니는 여섯 아이를 낳아 잘 길렀어요. 물론 아버지가 워낙 무뚝뚝하셔서 가끔 한탄하긴 하셨지만요. ‘아이고, 사람이 무정해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하시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아버지는 나무를 해 오실 때도 불 때기 좋은 나무보다는 가시 많은 나무를 해오셨어요. 그러니 어머니가 얼마나 불 때기 어려우셨겠어요. 그래서 ‘저 양반은 죽으면 가시덤불로 덮어줘야겠다.’라고 하실 정도였죠. 그런데 알고 보니 아버지는 산의 나무를 잘 자라도록 일부러 좋은 나무는 안 베어 오신 거였어요. 시골에서 아내를 위해 불 때기 좋은 나무를 해 오는 남자도 있었지만, 그건 남의 산에서 베어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산림을 훼손하게 되죠. 그러니 무엇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것뿐입니다. 누가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저 같은 사람은 가까운 가족보다 공적인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편입니다. 남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도,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소홀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공공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가족에게 불만을 사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든, 군사 독재를 하든, 사회 부조리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 가족만 위해 사는 사람을 무조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남편이 질문자의 요구에 맞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문제 있는 남자라면 질문자처럼 똑똑한 여자가 4년이나 만나고 결혼까지 했겠어요? 여러 면에서 괜찮으니까 결혼한 거죠. 연애할 때는 겉으로 보이는 면을 중시하다가, 결혼하고 같이 살면 생활 습관이나 성격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서 보면 괜찮아 보여도, 가까이 살면 단점이 크게 보이는 거예요.

정말 생활적으로 잘 맞는 남자를 원한다면, 지금 이혼하는 게 나아요. 아이 생기고 이혼하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쉽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밖에서 보기에 괜찮은 남자라면, 내가 바라는 대로 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 게 좋습니다. 쉽게 말해, 매일 똑같은 날인데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뭐가 그리 특별하겠어요?”

“방금 스님이 하신 말씀이 남편이 저한테 하는 말과 너무 똑같아서 순간 남편인 줄 알았어요.” (웃음)

“정서적으로 안 맞는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남편이 문제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결혼 생활이란 서로 맞추는 것입니다. 맞춘다는 건 상대를 존중하고,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겁니다.

‘남편이 스님과 비슷한 면이 있네. 내가 스님을 좋아하니, 남편도 싫어할 이유 없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질문자의 남편과 성향이 비슷한데, 오늘 강연 들으러 오신 분들은 다 저를 좋아하잖아요? 왜냐하면 저와 같이 안 살기 때문이에요. 가까이서 며칠만 살아 보면 다들 힘들다고 할 거예요. 저는 한 곳에 머무는 경우도 드물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돌아다니니까요. 가족이라면 ‘집에 안 들어온다.’, ‘몸을 못 챙긴다.’, ‘아플까 걱정된다.’ 하면서 불만이 많을 겁니다. 부모님 입장이라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겠죠.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크게 문제 삼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약간 떨어져서 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질문자도 남편을 조금 떨어져서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욕심이에요. 무난한 결혼 생활을 목표로 잡으세요. 무난하게 살려면 자꾸 내 요구를 앞세우면 안 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에요. 남편이 경제적 피해를 주거나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자잘한 요구를 못 맞춰 주는 것뿐이에요. 오늘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 보니 ‘아, 내가 저런 여자 안 만나기를 정말 잘했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질문자 같은 여자와 결혼했으면 제가 문제 있는 남자가 되니까요. (웃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남편 입장에서는 저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세요. 그렇다고 참고 억누르면 안 됩니다. 참는 건 수행이 아니에요. 참으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는 괴로움이 되어 결국 폭발합니다. 그래서 막말이 나오는 거예요. 참지 말고 이해해야 합니다. 한번 그렇게 살아 보고,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때는 같이 못 사는 거죠. 어떡하겠어요?”

“감사합니다.”

“내가 원하는 부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 부모님을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내 기대만큼 나를 충분히 챙겨 주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준 게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기본적으로 고마운 분들이에요. 기대에 못 미쳤을 수는 있어요. 그래서 불만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다 보니, 내 기대에 못 미치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저는 이렇게 혼나면서 기분이 좋은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제가 언제 혼냈어요? 그저 남편의 성향이 저와 비슷하다고 했죠.”

“법륜스님을 좋아하는 만큼 남편도 좋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건 너무 나갔어요. 좋아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그저 싫어하지만 않으면 돼요.”

“무난하게 잘 살겠습니다.”

“예. 무난하게 그냥 삽시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아들이 주식·스포츠토토로 도박 중독과 빚을 안게 되었습니다. 엄마로서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프리랜서로 미래가 불안하고 경쟁에서 뒤처질까 걱정이 큽니다. 불안한 시대에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단체 생활이나 동호회에서 나이가 어리니까 먼저 사과하고 참으라는 것은 가스라이팅이 아닐까요? 이해와 배려의 경계는 어디인가요?

  • 자영업을 하는 남편이 경기가 안 좋아 일거리가 없어지고, 밖으로 나돌며 가족들을 냉랭하게 대합니다. 최근에 아들마저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변화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직장에서 진짜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몸이 아플 정도입니다. 교묘하게 저를 이용하고, 마지막에 자기가 다 한 것처럼 꾸며서 너무 얄밉습니다. 또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마쳐야 할 시간이 되자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했습니다.

기준만 낮춰도 인생이 가벼워집니다.

“기준을 탁 낮추면 언제나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저 밥 먹고 살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이렇게 마음의 기준을 낮추면, 사실 세상에 별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칠십이 넘은 나이에 해외로 순회강연을 다니니까 많은 분들이 걱정하세요.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엔 걸어 다녔는데, 지금은 비행기 타고 차 타고 다니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공항에서 하루 이틀 자더라도 에어컨, 히터 잘 나오고, 화장실 있고, 물도 잘 나오니까 괜찮습니다. 남들이 볼 땐 궁색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보는 사람의 기준이지 제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삶을 자꾸 경제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면서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항상 부족함과 불만만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그런 기준을 조금 내려놓아야 행복해질 수 있어요. 결국 ‘돈! 돈! 돈!’에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한 박자 늦추고, 기준을 조금 낮추면 입가에 미소가 돌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깁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청중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받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 오늘 강연 정말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책 사인회를 마치고 강연을 준비한 춘천 행복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신나고 재미있게! 춘천 강연 수고했다!”

봉사자들은 해맑은 웃음과 우렁찬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춘천 강연이 2025년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의 마지막 강연이었습니다. 그래서 춘천 행복시민들이 한 해 동안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신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축하 케이크를 전달했습니다.

“법륜스님, 고맙습니다.”

케이크를 받아 든 스님에게 행복시민들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은 케이크를 다시 봉사자들에게 건넸습니다.

“모두 수고 많았어요. 이 케이크는 여러분들이 나눠 드세요. 저는 서울까지 가야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와 밤 10시에 춘천을 출발하여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 밤 11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한 후 오후에는 국회의사당 사랑재에서 ‘국민 총 행복의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

0/200

정의웅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2025-12-05 06:55:49

길상화

감사합니다

2025-12-05 06:41:18

보리심

김윤희 박사님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셨다니 노고가 많으셨겠네요 축하드립니다. 평소 최재천 교수님 유투브채널 '아마존'보면서 동물을 연구하시는 분인데 어쩌면 사회에 대해서 법륜스님처럼 이렇게 자세히 말씀해주실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함께 하시는 모임이 있는줄 오는 처음 알게 되었네요~^^

2025-12-05 06:05:35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