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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일본 도쿄(東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일본의 원로 정치인들을 만나고, 일본인들과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5시 30분에 숙소를 나와 도쿄로 이동하기 위해 오사카역으로 향했습니다. 6시 8분에 오사카역을 출발하는 신칸센 기차를 타고 도쿄로 향했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는 활동가들도 스님과 함께 기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약 2시간 30분을 달려 오전 8시 34분에 도쿄역에 도착해 곧바로 약속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약속 장소에서 일본 정부 관계자와 만나 북한과 일본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방법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0시 30분에 미팅을 마치고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11시부터는 일본의 원로 정치인들을 만나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시대에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협력하면 좋을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 간의 관계 정상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스님은 일본어 통역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닛포리 써니 홀(日暮里サニーホール)입니다. 도쿄 닛포리역에서 도보로 약 2분 거리에 위치한 다목적 문화 공간입니다. 닛포리 지역 자체가 한국인 밀집 주거 지역이어서 한국 음식점과 가게들이 많아 강연을 홍보하기가 용이했다고 합니다.

강연장에는 많은 봉사자들이 강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봉사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대기실로 향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니와노 평화재단의 니와노 히로시 이사장, 오코치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그동안의 안부를 주고받은 후 두북수련원에서 농사지은 햅쌀을 선물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자 강연에 앞서 한일 수교 6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기념 축사를 했습니다.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수교를 맺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2000여 년 동안 한국과 일본은 서로 이웃하며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 세월 동안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불행한 과거 역사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과거를 넘어, 1965년에 관계 정상화를 이루었습니다. 지난 60여 년을 돌아보면, 한국과 일본은 서로 협력하면서 많은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항상 좋은 관계만 유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고 나쁜 부침을 여러 번 겪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러한 강대국들 사이에서 한국과 일본은 과거의 문제를 넘어 미래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상호 이익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올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과거라면 두 정부의 성격으로 봐서 국가 간 갈등이 심해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양국의 새로운 정부가 모두 한일 관계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두 나라의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온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어려운 분들은 한일 간 결혼을 한 분들일 것입니다. 그다음은 한일 관계에서 사업을 하는 분들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분들의 어려움이 없도록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기 전에 한일 관계 정상화 60주년을 축하하는 뜻에서 간단한 축하 인사말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니와노 평화재단 이사장님, 오코치 스님, 그리고 아스카 신용조합 이사님, 이렇게 세 분이 축사를 하러 와 주셨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이 자리에 참여해 주신 세 분을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앞으로 한일 관계가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2014년부터 법륜스님의 활동을 다양한 방면에서 응원해 온 아스카 신용조합의 윤건인 이사가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특별한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2014년 정토회 측에서 법륜스님의 특별 강연회를 열고 싶다며 저희에게 장소를 빌려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주셨습니다. 그 인연으로 스님을 처음 뵙게 되었고, 저희 아스카 신용조합 강당에서 강연이 열렸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저는 ‘즉문즉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너무도 편안하고 유머러스하며, 무엇보다도 알기 쉽고 명쾌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스님의 강연에 참석했고, 스님의 저서도 여러 권 읽으며 인연을 이어 왔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저는 금융 기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런 저에게도 스님의 말씀과 저서는 늘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올해는 특히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자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80주년이라서 매우 뜻깊은 해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륜스님께서 일상적인 삶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러한 국제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평화를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계신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활동이 더욱 확대되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음은 INEB(참여 불교 국제 연대)의 멤버인 오코치 스님이 축사를 했습니다.

“저는 1980년경 인도차이나 난민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부터 불자로서 국제 협력과 난민 구호 활동에 참여해 왔습니다. 그때부터 여러 인연을 통해 INEB과 함께 다양한 활동에 관여해 왔습니다. 일본에서는 불교에 대해 주로 장례식 등 의례 중심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INEB은 불교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법륜스님께서 종교를 불문하고 인간과 생명의 본질적 가치를 근간으로 사회와 함께 활동하고자 하는 실천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고, 나아가 더 큰 평화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실천적 활동을 여러분과 함께 이어 가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니와노 평화재단의 니와노 히로시 이사장이 축사를 했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는 오늘 이 법회가 열리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와 법륜스님의 인연은 2020년 제37회 니와노 평화상을 수여하게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법륜스님과의 인연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법륜스님의 삶은 매우 검소하고 소박합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하고 계십니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스님께서 올가을에 수확한 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스님의 활동은 그 검소한 생활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다방면에 걸쳐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스님께 평화상을 수여하는 사유에 스님의 모든 활동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법륜스님은 스스로의 삶은 검소하게 살되, 사회를 향해서는 풍요로움을 실현하고자 하십니다. 그 정신은 불교의 자비와 지혜에 근거한 것이며, 저희는 깊이 감명받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의 우호 관계가 앞으로 더욱 깊고 견고하게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평안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내빈들의 축사가 끝나자 '한사랑 한국 무용 연구소'에서 축하 공연으로 한국 무용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풍물 소리에 맞춰 경쾌한 율동이 흥을 돋우자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재능 기부로 공연을 해준 '한사랑 한국 무용 연구소' 단원들을 위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무대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일본어 자막과 함께 상영한 후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큰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스님과 통역사가 무대 위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대화 주제는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정합니다. 일반적인 강연은 강사가 주제를 정하지만, 즉문즉설은 청중이 주제를 정합니다. 여러분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손을 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주제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자, 그럼 누구든지 이야기를 꺼내 보세요.”
이어서 차례대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여섯 명이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해서 고민이라며 어떻게 아이를 교육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한 명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만 합니다. 제가 아이를 훈계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공부를 시키려다가 아이를 엄하게 대하고 말았습니다. 조금은 험악하게 대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가르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없는 스님한테 그걸 물으면 어떡해요. (웃음) 질문자는 어릴 때 뭘 좋아했어요? 텔레비전 보는 걸 좋아했어요? 만화책 보는 걸 좋아했어요?”
“텔레비전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그대로 놔두었습니까? 아니면 말렸나요?”
“말렸습니다.”
“부모님이 그만하라고 할 때 그만했습니까? 아니면 더 하고 싶었습니까?”
“더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잘 살잖아요. (웃음) 여러분 중에도 나이가 예순 살쯤 되는 분들은 아마 어릴 때 만화책을 많이 봤을 거예요. 너무 많이 봐서 부모님이 만화책을 뺏어서 불태워 버리는 일도 있었을 겁니다. 어떤 집은 아이가 TV를 너무 많이 봐서 부모가 TV를 부숴 버린 일도 있었을 거예요. 아이들은 원래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놀면서 지능이 발달하기도 해요. 그래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볼 때, 아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해야 합니다. ‘재미있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아이에게 말을 걸 때도 ‘왜 공부 안 하고 게임하니!’ 하고 짜증을 내기보다는, ‘그거 재밌니?’ 하고 부드럽게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가 아이를 엄격하게 대하는 이유는 아이의 행동이 못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에요. 그러니 아이에게 말을 걸 때 ‘그거 재밌니?’ 하고 가볍게 접근하는 것이 좋아요. 조금 더 지켜보다가, 아이의 정도가 조금 심하다 싶으면 그때 대화를 시도하면 됩니다.
‘아빠도 어릴 때 텔레비전이나 만화를 좋아했다. 그런데 아빠가 커서 보니까, 그것만 해서는 안 되고 공부도 해야겠더라. 지금은 게임이 좋지만, 나중에 커서 어른 역할을 하려면 공부도 조금 필요하단다.’
이렇게 아이가 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인정한 다음 ‘그래도 공부를 조금은 해야 한다.’ 하는 입장에서 대화를 하면, 저절로 아이에게 엄격한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아이와 상담할 때 ‘게임하지 마라.’ 하는 목표를 갖고 대화를 시작하면, 끝에 가서는 아이와 다투게 됩니다. 아이와 대화하려면, 먼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그래, 더 해라.’ 이렇게 말할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는 ‘아이와 대화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부드럽게 대한다고 여기지만, 이미 목표와 결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이는 대화한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볼 때는 그 결론은 절벽과 같습니다. 그건 대화가 아니에요. 부드러운 명령일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눈을 뜨고 하는 명상도 붓다의 가르침인지 궁금합니다.
97세 친정어머니를 돌보면서 직장도 함께 다니는 것이 힘듭니다. 스트레스 없이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한국인 남편이 집을 나간 지 3년이 되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노후에 자식과 함께 살아야 할까요? 혼자 사는 게 좋을까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고객의 일하는 방식이 틀렸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고객의 생각을 수용하고 같이 일을 해야 할까요?
더 질문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약속한 90분이 다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다음 일본 방문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무대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일본어로 번역된 스님 책을 한 권씩 들고 줄을 섰습니다. 스님은 한 명씩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오후 4시에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곧바로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해 관련 정부 관계자와 미팅을 진행하고, 저녁 6시에 다시 강연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대기실에서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7시가 되어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녁에는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닛포리써니홀(日暮里サニーホール)에서 열렸습니다.

한국 교민 35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저녁 7시가 되자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이 환한 웃음을 보이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여러분은 일본에 살고 있으니까 한국이 가까워서 외국에 사는 한국 교민으로서의 특징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호주 같은 곳에 사는 한국 교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국 생활을 이삼십 년 하다 보니 고향에 계신 늙은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가 다 되어 가는데, 가서 마지막 시봉을 해야 할지, 아니면 자기 일을 계속해야 할지’ 하는 고민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 점이 한국 안에서 받는 질문과 조금 차이가 있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여기서는 부모를 돌보지 않으면 불효 같겠지만, 막상 한국에 가면 부모가 갈등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며칠 부모님을 돌보다가 성격이 맞지 않아서 싸우고 괜히 왔다고 후회할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 너무 효자인 척하지 말고 본인이나 잘 살라고 말하죠. (웃음)
부모님이 마음에 걸리면 용돈을 보내 드리고, 자주 전화해 드리면 됩니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면 1년에 몇 번씩 방문하는 것이 고향에 가서 같이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님은 자식도 없고 혼자 사니까 그런 말씀하시는 것이지, 가족이 있으면 그러지 못해요.’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모님 곁에 가서 있어 보면 제 말이 대체로 맞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스님 말씀이 맞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농담으로 ‘저는 맞는 말만 합니다.’ 이렇게 말해 주죠. (웃음)
혼자 살면 외롭고, 둘이 살면 귀찮고, 바쁘면 쉬고 싶고, 쉬면 뒤처지는 것 같고,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 이야기든 세상 이야기든 무엇이든 좋습니다. 주제 제한 없이 자유롭게 대화해 보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차례대로 대화를 나누고 현장에서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열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오랜 해외 생활 끝에 찾아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고향 경주를 떠나 타향살이를 18년째 하고 있습니다. 경주에 살 때는 경주가 너무 좁고 작아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습니다. 서울에서 살다 보니 한국이라는 나라도 저에게는 좁게 느껴졌고, 해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당시 제게 가장 친숙했던 일본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막상 타향살이를 18년 동안 해 보니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집니다. 스님께서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시잖아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지 스님의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고향에 가고 싶으면 가면 되고, 여기가 좋으면 여기서 살면 되지, 왜 그런 고민을 해요? ‘둘이서 살면 귀찮고, 혼자 살면 외로운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는 질문하고 똑같습니다. 둘이 살면 부딪히니까 귀찮은 게 당연하고, 혼자 살면 외로운 게 정상입니다. 이런 경우에 제가 늘 하는 말이 ‘당신이 좋을 대로 하세요.’입니다.

수행이란 둘이 살아도 귀찮지 않고,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은 것입니다. 즉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하는 관점을 갖는 것이 수행이에요. 고향에 가고 싶으면 가면 되잖아요. 경주가 그렇게 먼 곳도 아닌데,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고민을 하나요? 가고 싶으면 잠깐 갔다 오면 되죠. 오늘 밤 2시 비행기를 타면 서울에 4시 반에 도착합니다. 서울에서 경주까지 KTX를 타면 2시간이면 가요. 경주에서 저녁까지 놀다가 저녁에 KTX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에서 새벽 2시에 도쿄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 아침에 출근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만 있으면 되는 일인데,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고향이 그립다.’는 소리를 하나요. 아무 일도 아닌 걸 갖고 괜히 문제를 삼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집이란 우리를 보호하는 안온한 곳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집은 나를 속박하는 굴레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성격을 다 갖고 있어요. 나를 보호하려면 바닥을 정리하고 벽을 세우고 위를 막아야 하죠. 위도 막히고 옆도 막히고 아래도 막힌 것은 바로 감옥 아니겠습니까? 즉, 집은 안온하고 보호받는 곳인 동시에 감옥이고 굴레라는 성격도 함께 갖고 있는 것입니다.

고향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향은 안온한 곳이죠. 고향을 떠나면 나그네라고 하잖아요. 나그네는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쓸쓸합니다. 그런데 고향에 있으면 눈치를 봐야 합니다. 부모님도 계시고 형님도 계시고, 이웃도 있어서 간섭이 많아요. 그래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질문자는 경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도쿄로 왔을 겁니다. 고향을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에 비례해 외로움이 커집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면 반대로 굴레도 커져요.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친구 아들이 결혼한다며 경조사비만 한 달에 몇 십만 원이 들어갑니다. 외면하면 욕을 얻어먹습니다. 여기에 있으면 괜찮지만, 고향에서는 서로 다 아니까, 옷을 어떻게 입어도 말이 나오고, 차를 가지고도 ‘그 집 아들 돈 벌었더라.’, ‘그 집 아들 망했나 보더라.’ 이렇게 온갖 얘기를 합니다. 고향이란 이런 속박과 안온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거예요.
속박이 싫어서 나오면 외로우니 또 다른 집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집에 들어가서 살면 또 속박이 느껴져서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나게 되죠. 이렇게 이 집 갔다 저 집 갔다 하면서 옮겨 다니는 것을 ‘가출’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집이 안온한 곳인 동시에 나를 속박하는 곳이라는 본질을 깨닫고 돌아갈 집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출가는 자신이 떠나온 집과 돌아갈 집을 불살라 버리는 거예요. 저는 ‘출가’를 했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살아도 괜찮고, 질문자는 ‘가출’을 했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살아도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는 행위는 같아도, 본질은 다르죠. 어디를 같이 비교하려고 하나요?” (웃음)

“명쾌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가한 사람은 둘이 있으면 둘이 있어서 좋고,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좋습니다. 가족과 있으면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여서 좋고, 혼자 있으면 귀찮지 않아 좋습니다. 일본에 오면 일본이 좋고, 한국에 가면 한국이 좋아야 합니다. 시골에 가면 시골이 좋고, 히말라야에 가면 불편한 대신 공기 좋고 물 좋고, 도시에 오면 공기 나쁘고 물 나쁘고 사람이 많지만 편리합니다. 모든 곳에는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기 오면 저기 생각나고, 저기 가면 여기 생각나는 거예요. 처녀 총각 때는 결혼하는 게 소원이지만, 결혼하고 나면 혼자 사는 게 부러워 보입니다. 젊을 때는 나이 든 게 좋아 보이고, 나이 들면 또 젊은 게 좋아 보여요. 젊을 때는 맨날 나이를 올려서 ‘내가 형님이다.’, ‘내가 누나다.’ 그러는데, 나이 들면 어때요? 맨날 나이를 깎습니다. (웃음)

늙으면 늙어서 좋고, 젊으면 젊어서 좋은 것이니, 그때가 좋은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는 나이 든 걸 부러워하고, 나이 들면 젊은 걸 부러워하죠. 나이 들어서 젊은 걸 부러워하지 말고, 젊을 때 젊은것을 즐기면 좋지 않을까요? 결혼한 뒤에 혼자 사는 걸 부러워하지 말고, 혼자 살 때 혼자 사는 걸 즐기는 게 낫지 않을까요? 헤어진 뒤에 남편이나 아내를 그리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주면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그게 잘 안 되니까 여기 온 거겠죠.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금 여기에 깨어 있기’입니다.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의 나에 대해 알아차리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가장 좋을 때예요. 어제는 어제가 제일 좋았고, 오늘은 오늘이 제일 좋고, 내일은 내일이 제일 좋습니다. 밥 굶는 날은 다이어트에 좋고, 밥 먹는 날은 배불러서 좋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긍정적인 사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대다수는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모셔야 한다고 힘들어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립다고 웁니다. 어떻게 해도 늘 문제인 거예요. 있으면 있어서 문제고, 없으면 없어서 문제예요. 한국에 있으면 일본 가는 게 소원이고, 일본에 오면 고향 가는 게 소원이라고 합니다. 이걸 경상도 말로 뭐라 그러는지 알아요? ‘디비 쫀다’고 해요. 질문자는 디비 쪼지 마시고, 여기서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세요. 경주에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세요.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그리워하지만 말고, 그리우면 직접 가 보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IT 개발자로서 AI가 발달함에 따라 직업을 잃게 될까 두렵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내가 하는 선행이 정말 타인을 위한 것일까요? 이타적인 성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요?
조선학교보다 한국학교에 딸아이를 보내고 싶습니다.
막말을 하고 상대를 고치려는 남편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좋은 사람과 헤어져서 너무 괴롭습니다.
어리석은 육아를 반성하고 아들에게 사과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무슨 말이 좋을까요?
스스로를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들이 섭섭합니다. 이렇게 키우는 게 맞을까요?
인력이 부족하여 요양원에서 하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죠?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되는 걸 아이가 힘들어합니다.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질문에 대해 모두 답변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재미있으셨습니까?”
“네!”

“어떤 문제든 ‘내 마음에 안 든다.’는 관점에서 보면 전부 다 문제입니다. 남편도 문제고, 부모도 문제고, 아이도 문제고, 세상도 문제예요. 그런데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남편이 짜증을 내는 것도 그 사람의 성장 배경을 살펴보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고, 아이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자세히 보면 별문제가 아닙니다. 고양이는 고양이처럼 행동하고, 개는 개처럼 행동하는데 ‘왜 둘이 다른 행동을 하지?’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둘은 종류가 다른 동물이에요. ‘아, 그래서 개는 저렇게 행동하고 고양이는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아무 문제가 아니에요. 무슨 일이든 조금만 자세히 보면 별일이 아닙니다.
저와 대화를 나눠 보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듯이 힘들었던 일이 지금은 별일 아니게 느껴지시죠? ‘별일 아니다.’ 하는 것을 유식한 말로 하면 바로 ‘공(空)’이에요. 반대로 얼핏 보면 무슨 큰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색(色)’입니다.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죠? 한문으로 써 놓으면 괜히 어려운 얘기 같지만 별거 아니에요. 얼핏 보면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 모든 문제가 다 그렇습니다. 흥분해서 보면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별일 아닙니다. 지금은 대단한 문제 같아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별일 아니에요. 그래서 제일 큰 깨달음은 ‘별일 아니다.’ 하고 아는 것입니다. 남자친구가 떠났을 때는 큰일 같겠지만, 시간이 지나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옛날 그 일은 별일이 아니게 되잖아요.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것을 처음부터 별일 아닌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여러분은 꼭 실컷 괴로워하고 난 뒤에야 별일이 아닌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별일 아니다.’ 하고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오늘부터 집에 가셔서 ‘별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일’을 잠깐 숨을 고르며 가만히 살펴보세요. 이 일을 1년 후에 돌아보면 어떨까? 2년 후에 돌아보면 어떨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었다면 내가 어떻게 바라볼까? 이렇게 가만히 살펴보고 나면 다 별일 아닙니다. 남편이 죽으면 별일일까요? 시집 한 번 더 갈 수도 있으니 좋잖아요. 안 가더라도 혼자 살면 얼마나 좋아요? 그렇다고 그 사람보고 죽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본인이 알아서 죽는 걸 우리가 어쩌겠어요? 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다 일어날 만한 상황이 돼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 일어나면 물론 좋겠지만, 이미 일어나 버린 걸 어떡하겠어요?

그러니 먼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세요. 이것을 ‘평정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차분히 들여다보면 다 별일 아님을 알게 됩니다.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라는 관점에서 여러분이 자기 인생을 바라보면, 이민 생활이든 결혼 생활이든 다 잘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꾸 ‘나는 특별해야 한다.’ 하면서 인생을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인생은 단순합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일하고, 점심이 되면 밥 먹고, 밤이 되면 자고, 그러는 게 인생입니다. 다람쥐와 토끼도 다 그렇게 사는데, 왜 사람만 특별하려고 해요? 그래도 다람쥐와 토끼보다는 사람에게 재밌는 일이 더 많습니다.
삶에 재미를 붙여 보세요. ‘참 신기하네.’, ‘정말 재미있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십시오.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게 좋을까요?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게 좋을까요? 평생 한 직장을 다녀도 되지만, 여기저기 바꿔 다니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왜 한 가지 일만 하다가 죽으려고 합니까? 이 일도 해 보고, 저 일도 해 보고, 여기서도 살아보고, 저기서도 살아 보세요.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럴 형편이 되면 그것도 괜찮다는 겁니다. 저는 같은 방에서 이틀을 자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에요. 매일매일 떠돌이 생활을 합니다. 구경을 많이 할 수 있으니 좋잖아요. 이 집에도 가 보고, 저 집에도 가 보고, 이 방에서도 자 보고, 저 방에서도 자 보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늙어서 못 다니게 되면 그때는 한 방에서 가만히 지내면 됩니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여러분의 삶도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밤 9시가 넘었습니다.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과 눈을 맞추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도쿄, 파이팅!”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도쿄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한 후 탑승구 앞에서 업무를 보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2시에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인천 공항에 도착한 후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박진도 교수와 미팅을 하고, 오후에는 순천으로 이동하여 김민해 목사님이 운영하는 '사랑 어린 마을 배움터'에 들러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광주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열 번째 강연을 이어 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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