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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충북 영동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어제 제주도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성황리에 마친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숙소를 나와 제주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오전 8시 20분에 제주 공항을 출발해 50분을 비행한 후 9시 10분에 청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을 나와 종교인 모임을 하기 위해 곧바로 충북 영동으로 향했습니다.

11시 10분에 영동역에 도착하여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종교인 분들을 마중하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기차는 5분 연착하여 11시 35분에 영동역에 도착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신부님은 어디 가고, 스님께서 마중을 나오셨어요?”
“신부님은 지금 요리하느라 바쁩니다.” (웃음)
김홍진 신부님이 충북 영동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종교인 분들을 농장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소망을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드디어 오늘 그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다 함께 차를 타고 김홍진 신부님이 농사를 짓고 있는 농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스님이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야외에서 밥을 먹는 거 아니에요? 괜히 어르신들 모두 탈이 날까 봐 걱정이네요.”

영동읍에서 시골길을 따라 산속 깊숙이 들어가자 김홍진 신부님의 농장이 나타났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다행히 농장 한편에 조립식 판잣집이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바쁘게 음식 준비를 하다가 종교인 분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여기가 제 농장입니다.”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조립식 판잣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구석구석을 살펴본 후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 좋은데 딱 하나가 없네요.”
다들 궁금해하자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혼자 사는 티가 나잖아요.” (웃음)
한바탕 크게 웃으며 신부님과 악수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김홍진 신부님이 손수 음식을 요리하여 밥상을 푸짐하게 차려 주었습니다.
“오늘은 교령님이 식사 기도를 해 주시죠.”
신부님의 요청으로 종교인 모임의 좌장인 박남수 교령님이 식사 기도를 했습니다.

“한울님이 감응하옵시고, 스승님이 감응하옵시고, 조상님이 감응하옵소서. 오늘 오찬 회동은 존경하는 김홍진 신부님의 초청으로 산 좋고 물 좋고 기운 좋은 충북 영동으로 왔습니다. 손수 모든 음식을 준비해 주신 김홍진 신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앞으로 더욱더 화목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운을 이곳에서 받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이어서 음료가 나오자 신부님이 건배사를 했습니다.
“세상과 우리 모두를 위하여!”
식사를 하며 정겹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신부님이 이곳 농장을 소개했습니다.

“여기가 원래는 우사였어요. 땅 주인이 저보고 여기서 농사를 한번 지어보겠냐고 해서 한번 답사를 와 봤더니 너무 아늑하고 좋은 겁니다. 그래서 제가 퍼머컬쳐(Permaculture, 영속농업)라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해 보려고 여기서 실험을 해 보고 있는 중이에요. 3년 정도는 땅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좀 힘들지만 일단 땅이 만들어지고 나면 농약을 안 치고도 태평 농법(太平農法)으로 농사를 지을 수가 있어요. 지금은 땅을 만드는 과정이어서 직접 농사지은 것으로 대접을 못 했습니다. 내년부터 수확하게 되면 제가 농사지은 것으로 대접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전화가 안 터져요. 그래서 여기가 저에게는 해방구입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말은 태평 농법이라고 하는데 게으른 사람들이 하는 농사법 아니에요?” (웃음)

김대성 교무님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신부님이 스님처럼 산속에서 수행하며 살고 있네요.”
그러자 김홍진 신부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이 판잣집 이름이 홍진암입니다. 김홍진이 사는 암자예요.”

박남수 교령님도 웃으며 소감을 말했습니다.
“김홍진 신부님은 천주교의 큰 재물인데 높은 자리도 마다하고 여기 와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시니까 참 잘하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도자는 욕심이 없어야 하거든요. 욕심을 버리고 영동으로 와서 땅과 같이 사시니까 참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단점이 있는데 잡초를 좀 많이 매야 할 것 같아요.” (웃음)

농사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경조 주교님이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제가 법륜스님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스님은 땀 흘려 농사짓고, 가난한 나라에 직접 가서 사람들을 돕기 때문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스님이 대신해 주시는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연대하는 마음으로 스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주교님이 기도를 더 많이 해 주세요. 그래야 오래 활동할 수 있으니까요.”
이어서 본격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 통합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박종화 목사님이 요즘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갈수록 한국 사회가 극과 극의 대립으로 치닫는 것 같아요. 중간 지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심을 잡아 주는 원로들의 존재감도 없고요.”

스님도 이에 공감하며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국민 통합이 중요한 과제라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정작 해결 방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양당의 지도자들이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많은 정치인들까지도 침묵하거나 강경한 지지층의 눈치를 보는 정치가 되어 버린 형국입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여러 정치인을 만나 자제를 요청하면 대부분 개인적으로는 취지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각자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결국 상대를 공격하거나 저항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쪽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프레임을 내년 선거까지 끌고 가려 하고, 다른 한쪽은 현 정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해야 언젠가 여론이 자신들에게 유리해질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정쟁이 전략화되다 보니 주변에서 아무리 조언을 해도 설득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종교인 모임에서 성명서를 내고 나선다고 해서 과연 이 상황이 풀릴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섭니다.”
종교인 분들도 각자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대화를 할 수 있게 노력하는 끊임없는 과정인 것 같아요.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대립과 분열이 엄청났지만 결국 통합을 해냈잖아요.”

“얼마 전에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그들이 30년간의 내전 상황을 극복하는 데 어떻게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했는지 배웠던 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에는 우리가 스리랑카로 가서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화합을 이끌어내었는지 직접 현장을 보면 좋겠어요.”

“이런 분열과 대립은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대안이 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런 주제로 우리가 대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야의 대립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 대해 우려가 컸습니다. 다음 달 모임에서는 국민 통합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종교인 모임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다 함께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는 마당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뒤에는 ‘내 인생 가장 빛나는 오늘’이라는 글자가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기차 시간이 다가와서 서둘러 영동역으로 향했습니다.
“신부님, 잘 먹고 갑니다.”

스님은 신부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다음 일정을 위해 영동군을 출발하여 경기도 고양시로 향했습니다. 종교인 분들은 기차를 타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차로 4시간을 달려 고양시로 진입했습니다. 퇴근길에 차가 막혀서 강연 시작 전인 저녁 7시 20분에 강연장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덕양 행신 종합 사회 복지관입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 평생 학습·가족 상담·스포츠 센터 등 다양한 복지·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합 커뮤니티 공간인데 오늘은 이곳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강연을 준비한 행복시민들과 강연장을 찾아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인디 밴드 ‘요술 당나귀’가 재능 기부로 노래 두 곡을 신명나게 불러 주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천지인’ 두 곡을 연달아 부르는 동안 강연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무대에 오른 사회자는 KBS 장새별 아나운서였습니다. 재능 기부로 오늘 시간을 내어 봉사를 해주었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법륜스님을 맞이하겠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자 장새별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스님은 자리를 가득 메운 600여 명의 고양시 시민들에게 합장하고 인사를 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새마을 운동을 넘어 새 마음 운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날씨가 제법 춥지요? 요즘은 가을이 사라지고 여름에서 바로 겨울로 건너뛰는 듯합니다. 저는 오늘 정말 긴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에 제주에서 출발해 청주를 거쳐, 영동 지역에 잠시 들렀다가 이렇게 고양시까지 왔습니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길 위에 있었어요.

살다 보면 한 가지는 좋고 다른 한 가지는 아쉽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그 아쉬운 점만 붙잡고 불평하거나 신세 한탄을 하곤 합니다. 남이 가진 겉모습만 보고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나만 힘들게 산다고 착각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일이 다람쥐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들이 사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람쥐나 토끼도 야생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잘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크고 지혜까지 갖춘 사람이, 숲도 아닌 사람들 속에서 ‘못 살겠다.’고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결국 문제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마음입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뭐든 힘들고, ‘별것 아니다.’ 하고 보면 정말 별것 아닙니다. 세상을 조금 넓게 바라보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어떤 분이 ‘어차피 괴로울 거라면 왜 살아야 하느냐?’고 묻기에 제가 ‘그냥 사는 거죠.’라고 답했습니다. 다람쥐에게 ‘왜 사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겠어요? 태어났으니 사는 거지, 다람쥐가 사는 데 무슨 대단한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만은 살아야 할 ‘특별한 이유’를 꼭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사실 그런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사는 겁니다. 다만, 이왕 사는 거 굳이 괴롭게 살 필요는 없지요. 괴롭지 않게 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괴롭지 않게 사는 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행복으로 착각하지만, 즐거움은 반드시 괴로움을 동반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즐거움을 기준으로 삼으면 괴로움이라는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삶에는 즐거울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는 법이지요. 산에 사는 다람쥐가 특별히 즐거운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즐거워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저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특별히 즐겁지도, 특별히 괴롭지도 않은 상태, 그 상태가 바로 행복입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예요. 힘이 세다고 건강한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으면 건강한 겁니다. 이처럼 괴롭지 않다면 우리는 이미 행복한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살아간다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나누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바로 ‘행복학교’입니다. 사회 제도적으로는 노인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요양 시설을 개선하며, 실직하면 실업 수당을 지원하고, 주거가 어려우면 집을 제공하고, 아이들에게 교육비를 지원하는 등 사회적 안전장치를 더 촘촘히 마련해 나가야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이런 지원이 부족한 편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 행복도를 높이려면 민간 차원의 국민 운동도 필요합니다. 불교를 포교하거나 정토회를 키우자는 뜻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국민 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바로 ‘행복학교’입니다. 즉, 우리 스스로 행복도를 높이자는 취지입니다. 오늘 강연 역시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행복학교가 국민들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사회의 자살률을 낮추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행복학교는 종교를 초월해 오로지 삶의 행복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둡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민간에서도 이런 국민 행복 운동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강연도 무료로 진행합니다. 강의도 무료이고, 일하시는 분들도 모두 자원봉사자예요. 이 운동이 지속되려면 봉사자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홍보하고, 안내하고, 진행할 손길이 필요하죠. 오시는 길에 강연장 입구에서 안내하던 봉사자들 보셨지요? 이렇게 많은 봉사자 덕분에 이 운동이 유지됩니다. 앞으로 여러분도 이런 봉사 활동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만 바라보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제가 요즘 부탄에서 진행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도 같은 방식입니다.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 필요한 재료는 지원하지만, 집은 주민 스스로 짓도록 합니다. 잘 짓든 못 짓든 스스로 해 보는 것이죠. 시멘트를 주면 주민들이 직접 도로를 포장하고, 철망을 주면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농사를 짓습니다. ‘해 달라!’고만 하면 지원하지 않습니다. ‘지원만 해 주면 우리가 하겠습니다.’라고 해야 도움을 줍니다. 내 집은 내가 살기 좋게 만들고, 우리 마을은 우리가 살기 좋게 만들자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했던 새마을 운동과 비슷한 방식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새마을 운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새마을 운동입니다. 내 행복은 내가 만들고,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만들자는 것이지요. 이를 새마을 운동을 넘어 ‘새 마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괴로운 이유를 전생의 죄 때문이라고 탓하거나, 하나님의 벌이라고 여기며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벌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스스로 행복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부터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먼저 여섯 명이 차례대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어서 현장에서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성과 중심의 삶 속에서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져 마음의 평온을 잃어가고 있다며 경쟁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과 열정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운동선수로 살아오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삶이 성과와 결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늘 잘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을 증명하느라 애쓰다 보니, 마음의 평온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큰데, 그 욕심이 어느 순간 저를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경쟁과 결과 중심의 삶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열정과 조급함의 경계는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운동은 그만뒀어요? 아직 현역이에요?”
“아직 현역입니다.”
“그럼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겠네요?”
“네.”

“그렇다면 성과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죠. 힘들면 그만둘 수도 있고, 계속할 수도 있어요. 20년이나 했으면 됐지, 뭘 더 하려고 해요? 아직 돈을 많이 못 벌었다는 건가요?”
“제가 좋아서 하는 운동인데, 직업이 되다 보니 신경을 더 쓰는 것 같습니다.”
“성과를 내면 명예도 생기고 돈도 벌죠. 그런데 처음 시작할 때는 돈 때문에 한 건가요? 재미있어서 한 건가요?”
“재미있어서 시작했습니다.”
“인기를 끌고 싶어서 한 건가요? 재미있어서 한 건가요?”
“재미있어서 했는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기와 돈이 따라온 것 같습니다.”
“그렇죠. ‘재미있어서 시작했다.’라는 관점을 유지하면 조급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는데, 그 결과로 인기와 돈이 생긴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인기와 돈에 집착하니까 재미는 사라지고 부담만 쌓이는 겁니다. 말하자면 주객이 전도된 거죠. 초심으로 돌아가 보세요. 그때는 운동해도 아무도 돈을 주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운동하면 돈도 벌고 인기도 생기죠. 지금 질문자는 결과물인 인기와 돈에 집착하고 있는 겁니다. 재미있어서 하다 보니 성과가 따라왔는데, 이제는 성과에 집착하니 재미가 사라지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만 남은 것이죠. 그 집착을 내려놓고 다시 재미의 관점으로 돌아가는 게 좋습니다.”

“물론 잘해야 상금을 벌 수 있지만, 만약 인기와 돈을 좇는 게 목적이었다면 현역을 그만두는 게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운동 자체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만 노력에 비해 결과가 잘 나오지 않으니 힘이 듭니다.”
“운동이라는 게 계속 연습한다고 해서 기록이 끝없이 올라갈까요? 일정 수준까지는 올라가지만, 나이에 따라 내려가는 시점이 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운동한 지 20년째면서도 성과가 계속 올라가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40년, 50년 해서 나이 60이 되어도 기록이 계속 좋아지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이에 따른 한계도 있고, 어린 선수들과 경쟁해야 살아남으니까요.”
“그럼 이미 인기와 돈을 얻었는데, 후배들이 본인보다 인기가 좀 많으면 어때요. 후배들이 잘하는 걸 기쁜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쁘지 않다면, 결국 그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싶기 때문이겠죠. 저는 질문자가 현역에서 굳이 은퇴하지 말고, 놀이하듯 가볍게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운동은 어차피 해야 하는 거잖아요.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질문자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전성기에 100만 원을 받다가 지금은 50만 원을 받으면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10만 원 받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때는 10만 원을 받아도 너무 좋았을 거예요. 100만 원을 받다가 50만 원이 되니 힘든 것이지, 사실 50만 원은 10만 원의 다섯 배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처음처럼 즐기듯 운동을 계속하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한때 성적이 어땠다.’ 하는 과거 기준을 붙잡고, 그보다 더 올리려는 마음은 욕심일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을 내려놓고 가볍게 즐기며 해보는 게 좋습니다.”
“운동선수이다 보니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과정에 충실하면 자연스럽게 결과가 따라온다고 믿고 있지만, 막상 경기에서 긴장하면 노력 대비 결과가 잘 안 나올 때가 있습니다.”

“긴장한다는 것 자체가 결과에 너무 집착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예를 들어 음식을 생각해 봅시다. 재료를 사고 요리해서 먹으면 최종 결과물이 뭘까요? 똥입니다. (웃음) ‘똥 누고 뒤도 안 돌아본다.’라는 말 아시죠? 왜 뒤를 안 돌아보겠어요? 이미 재료를 고르고 요리하고 먹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에너지를 다 누렸기 때문입니다. 똥은 그저 찌꺼기일 뿐이에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운동하면서 연습하는 즐거움, 기량이 오르는 성취감, 몸이 건강해지는 변화, 이 모든 과정이 이미 삶입니다. 마지막에 남는 성과, 즉 상금·인기·기록은 결국 똥과 같은 것이죠. 지금 질문자는 그 똥에 집착하고 있는 셈입니다. ‘왜 이렇게 묽지?’ ‘왜 이렇게 적지?’ 하고 걱정하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이미 과정에서 삶의 모든 가치를 다 누린 겁니다.
예전에 한 예술가가 20년 동안 만든 흙 작품을 집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이 물에 잠기며 작품이 모두 녹아 버렸습니다. 울고불고하던 그에게 제가 ‘너는 지금 똥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과물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인생의 관점에서는 그것도 결국 내가 살아서 남긴 찌꺼기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상패, 메달 같은 것도 다 똥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합하고 운동하는 그 자체가 삶입니다.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의 과정을 즐기세요.

운동선수나 배우, 가수처럼 경쟁과 평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부러워 보여도, 정작 본인은 그만큼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늘 긴장 속에 살기 때문이에요. 그 과정에서 즐길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쉽지 않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평범하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내 삶을 내가 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의 시선이라는,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대중의 관심에 휘둘리다가 그 환상이 깨지는 순간, 삶이 아주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대충 하라는 뜻은 아니고, 항상 ‘연습하듯이’ 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스님 말씀 덕분에 삶의 방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남편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자주 받고, 다양한 방법으로 남편의 변화를 시도했지만 달라지지 않아 답답합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과의 관계를 더 건강하고 평온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딸이 자해·흡연을 하는데 대화조차 단절되었습니다.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아이를 건강하게 돕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아버지와의 갈등 이후 3년째 대화가 끊어진 채 아버지가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단절된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시어머니의 말과 행동에서 ‘나는 가족이 아니다.’ 하는 섭섭함이 계속 쌓여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런 감정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바라보고 풀어 가면 좋을까요?
30년 넘게 술을 마시는 남편이 건강을 잃어 가면서도 변화가 없고, 매일 그 모습을 보며 본인의 마음도 지쳐 갑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분노 사이에서 어떤 태도로 이 상황을 대해야 할까요?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별일 아니다.’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인생의 많은 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일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깨달음은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이 ‘해결책 찾기’를 더 큰 깨달음으로 착각합니다. 사실은 해답을 찾는 것보다, 애초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더 큰 깨달음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제법이 공(空)하다.’고 하지요. 그런데 ‘제법이 공하다.’고 하면 굉장히 깊은 법문처럼 들리는데, ‘별일 아니다.’라고 하면 스님이 왜 저런 소리를 하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아무리 ‘별일 아니다.’라고 말해도, 여러분에게는 여전히 큰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가 별일 아니라 말한다고 해서, 바로 별일 아닌 일이 되지는 않아요. 저는 다만 여러분이 스스로 ‘아, 진짜 별일 아니구나.’ 하고 깨닫도록 돕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대화할 뿐입니다. 결국 본인이 스스로 별일 아닌 줄 알 때 비로소 그 일이 별일이 아니게 됩니다.

인생에서 큰일이라고 느낄 때도,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냥 두면 되겠네.’ 혹은 ‘내가 사과하면 끝나는 일이구나.’ 하고 길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조금 유머를 섞어 바라보면 훨씬 가볍게 느껴집니다. 너무 심각하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큰 문제 같아도, 자세히 보면 별일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없는 안개나 귀신과 같습니다.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도 풀어 보면 ‘얼핏 보면 있는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없다.’라는 뜻입니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깨어 있는 상태이고, 얼핏 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괴로움 없이 살아가려면 이런 관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관점을 갖고 매일매일 더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청중이 책을 한 권씩 손에 들고 스님에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스님, 제 이름도 써주시면 안 될까요?”
“내 이름은 내가 쓰고, 당신 이름은 당신이 쓰세요.” (웃음)
많은 분이 길게 줄을 섰지만, 스님은 빠른 속도로 사인을 해나갔습니다. 스님 덕분에 인생이 행복해졌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청중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고양시 행복시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고양 강연 잘 끝났다. 행복학교 가자!”

강연을 무사히 마친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밤 10시가 되어 고양시를 출발한 스님은 차로 1시간을 이동하여 밤 11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주간반 수행법회를 한 후, 오후에는 ‘기후 변화와 북극 항로’를 주제로 열리는 연구 세미나에 참석하고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수행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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