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09.15. 이스탄불
“내 선택 하나가 아이 인생을 망칠까 두렵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내며 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을 둘러보고 방콕으로 이동했습니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40분에 도보로 5분 거리인 톱카프 궁전 박물관으로 걸어갔습니다.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400여 년간 머물며 제국을 통치했던 곳입니다. 궁전 안에는 술탄의 방과 회의실, 부엌, 하렘, 이슬람 성유물실 등이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찬란했던 역사도 지금은 전시된 유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궁전 바깥에는 바다와 성벽이 함께 보이는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수백 년 전 건축된 해안 성벽 너머로 보스포루스(Bosphorus) 해협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궁전을 둘러본 후 정오에는 이우성 이스탄불 총영사, 김영훈 전 한인회장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1시 30분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이틀 동안 운전 봉사와 강연 준비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김영훈 전 한인회장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유럽 순회강연을 총괄하고 런던에서부터 이스탄불까지 동행한 국제지부 유럽모둠장 추희숙 님과 묘덕 법사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은 공항으로 들어가 출국 수속을 마치고 방콕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오후 4시 30분에 이스탄불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9시간을 이동하여 현지 시각으로 내일 오전 5시 30분에 방콕 공항에 도착합니다.

내일은 오전에 방콕 공항에서 JTS 박지나 대표, INEB 안챌리 님을 만나고 오후에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미얀마 만달레이(Mandalay)로 이동하여 지진 피해 구호 활동을 위한 답사 일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어제 이스탄불 한국 교민들과의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내 선택 하나가 아이 인생을 망칠까 두렵습니다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제가 내린 선택이 틀릴까 봐, 혹은 지금은 맞는 선택 같아도 미래에는 틀릴까 봐 걱정됩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선택을 미루거나, 선택해야 할 상황이 연달아 오면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미루거나, 누구에게 기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좀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싶어서 즉문즉설도 많이 듣지만, 지혜가 자라지 않는 것 같아 질문드립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면 질문자는 선택을 잘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들어가 보면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의 영역이고,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다시 말하면,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으며, 선택에는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책임이 따릅니다.

예를 들어, 돈을 빌렸다면 이자와 함께 갚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빌려 보고 나니 이자를 치르며 갚는 것이 후회가 된다면, 다음부터는 빌리지 않으면 됩니다. 이것이 학습이에요. 학습이 되었다면,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와도 조금 어렵더라도 빌리지 않겠죠. 즉, 원인을 지었다면 결과를 받아들이고, 결과가 싫으면 원인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수행에 대해 생각할 때 결과가 나쁠 것이 예상되니 원인을 짓지 않는다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인을 지었다면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수행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선택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나쁜 선택이라 말하는 것은 후회한다는 뜻이고, 후회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제 것에 대한 선택이면 자유롭게 할 수 있겠는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주는 것이 좋을까?’ 하는 점을 늘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중에 감당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아이에게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선택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삶은 현재 내 능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없는 능력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에요. 욕심을 부리니까 점쟁이에게 가게 되고, 불행을 자초하게 되는 겁니다.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20년 후의 사회에 대해 누가 정확히 알겠습니까? 만약 20년 후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떤 길이 최고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20년 후를 쉽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아이를 대신해 선택하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에요. 점쟁이에게 묻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인공지능 기술을 살펴보면, 정해진 논리, 기술, 지식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바탕은 계산이에요. ‘1 더하기 1은 2’처럼 정해진 논리가 먼저 개발되고, 그 바탕 위에 수많은 데이터가 축적되는 방식입니다.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은 반복되기 때문에 충분한 자료를 수집하면 예측과 대처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데이터가 가장 큰 자산이에요. 예전에는 땅과 자본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데이터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예측과 대처 가능성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민주사회에서는 데이터를 함부로 수집해 쓰는 것을 제한하지만, 중국은 국가가 무작위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구도 많기 때문에 풍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이 앞서갈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법이나 의학처럼 이미 정해진 분야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해지지 않고 예측이 어려운 막노동 분야는 대체가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어느 정도 속도로 일어날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조선시대를 보면, 산업은 주로 농업이었고, 출세의 길은 과거 제도였습니다. 서당이나 서원에서 공부하여 과거 시험을 봤죠. 그러나 조선 말엽 근대 학문이 들어오면서 소학교가 생겼지만, 주로 선교사가 운영했기 때문에 평민들이 다니고 양반들은 가지 않았어요. 양반 자녀들은 여전히 서당에서 공부하며 과거를 준비했고 사회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일부 소수는 근대화를 빨리 받아들여 혜택을 보았지만, 지배 계층 다수는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하며 계층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산업 사회에서 필요한 노동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노동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적·지식적 노동입니다. 근대의 학교 교육은 이러한 기술과 지식을 가르칩니다. 학교가 학문을 추구하는 경우는 아주 소수이고, 대부분은 산업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지식과 기술 노동을 대체하면 학교 시스템과 인간의 재능에 대한 평가 방식도 바뀌게 되겠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경험이 없어요. 부모가 자녀에게 자기 경험을 중심으로 지도해도 아이가 사회에 나갈 때 지금 부모가 가르친 방식이 유용할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학교 교육의 큰 문제는 교육 행정가, 선생님, 학부모 모두 미래의 변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교육을 연구한다는 점이에요. 모르는 사람들이 제안하니 혁신 교육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혁신 효과가 크지 않죠. 실패와 시행착오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엄마를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성적이 아니라 적응력입니다. 농사가 필요하면 농사를 배우고, 용접이 필요하면 용접을 익히며, 컴퓨터 기술이 요구되면 그것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오늘날 가장 가치 있는 능력입니다.

현재 학교에서는 한 가지 전문 기술만 가르치기 때문에, 그 분야에 일자리가 없으면 배운 지식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스님들이 절에서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절에서 목탁치고 염불하며 제를 지내고 축복하는 법을 배우지만, 승려를 그만두고 밖에 나가면 써먹을 곳이 없어요. 지금 교육 시스템도 비슷해서,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사회에서 살리지 못하면 대부분 졸업 후 전공과 관계없는 다른 일을 찾습니다. 자격증이 필요한 전문 분야도 인공지능에 빠르게 대체되고 있어,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20년 후 어떤 일이 대세가 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하려면 훈련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학교에 100퍼센트 출석하고 성적을 잘 받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들과 대화할 때 정답을 알려 주기보다는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각자의 의견을 듣는 방식이 좋습니다. 선생님은 ‘그것도 일리가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하면서 아이들을 지도해야 합니다. ‘이건 틀렸어.’, ‘그건 맞아.’ 하면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방식은 모방 교육이에요. 옳고 그름처럼 답이 있는 교육은 모방 교육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서구를 모방하며 옳고 그름을 배웠습니다. 창조 교육은 정해진 답이 없어요. 삼성도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모방에서 나온 최첨단일 뿐입니다. 그래서 위기가 오는 거예요. 2등이면 따라가면 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다 보니 우리가 맨 앞에 서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해야 하는 시점이지만, 교육 시스템은 그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질문자가 아이를 창조적으로 교육하겠다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르친다고 해도, 아이가 정말 창조적으로 될까요? 사실 아이는 창조라는 이름으로 엄마가 짜준 것을 모방하게 됩니다. 창조는 야생성과 비슷합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스스로 깨닫고 자각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이런 점에서 창조는 불교 수행과도 닮았습니다. 선불교에서는 고정관념을 부정하고 항상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롭게 생각할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이런 불교의 가르침이 창조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기본적인 질서와 규율은 가르치되, 나머지 사상이나 이념, 공부에 대해서는 먼저 아이의 생각을 듣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에 모순이 있으면 지적해 주는 방식으로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 공부를 안 한다면, 그건 모순이잖아요. 이런 모순을 지적해 줘야지, 무조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모순이 있으면 ‘공부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대신에 대학에 갈 생각은 안 해야 한다.’라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집에서부터 자기 선택에 책임지는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가 미래학자도 아니잖아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질문자는 밥해 주고 옷을 빨아 주는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아이에게 맡기거나 학교 선생님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아이가 물으면, ‘요즘은 세상이 빠르게 변해서 엄마도 잘 모르니까, 네가 한번 생각해 봐라.’라고 대답해 주면 충분합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절대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제가 약간 창조성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 덕분입니다. 제 어머니와 아버지는 무학이셨어요. 공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잔소리한 적이 없습니다. 건강 걱정과 밥 챙겨주는 것 외에는 다른 도움을 주지 않으셨어요. 저는 중학교에 가야 할지, 어디로 갈지를 선배, 친구와 의논하며 결정했습니다. 부모가 잘 모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시도하며 스스로 해낼 수 있었던 것이죠. 만약 부모가 대학까지 졸업하고, 모든 선택을 책임지고 결혼까지 관리했다면, 어떻게 자녀가 창조적이고 주체적이며 자주적일 수 있겠어요? 젊은이들에게 아무리 창조적이고 자주적으로 되라고 말해도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지금까지 늘 강아지 키우듯 틀 안에 가두어 키워 놓고 갑자기 자주적이 되라고 하면 아이들은 반발합니다. 그럴 때 저는 아이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맞는 말이네.’ 하고 다시 대화합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너무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저는 엄마들에게 늘 아이를 대강 키우라고 말합니다. 밥 챙겨 주고, 필요 이상으로 야단치지 않고, 크게 어긋나면 질서만 잡아 주면 됩니다. 어릴 때 야단치는 것은 심리적 억압이 될 수 있어요. 아이가 해 달라는 것을 다 해주면 버릇이 나빠집니다. 유학을 보내 달라고 하면 형편이 될 경우 보내 주면 되지만, 형편이 안 되면 ‘유학 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엄마는 돈 없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우리 집에서 무슨 유학을 가?’라고 야단을 치지 말고 ‘네가 유학 가는 것은 좋지만, 형편이 안 되는 걸 어쩌겠니? 네가 할 수 있으면 해 봐.’라고 말하면 돼요. 아이가 ‘그것도 못 해줘? 그럼 왜 낳았어?’라고 해도, ‘나도 원해서 낳은 건 아니야. 생긴 걸 어떻게 하겠어. 키워야지.’ 이런 식으로 너무 꼬치꼬치 대응하지 말고, 웃으면서 살짝 대응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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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에 대한가르침. 감사해요.

2025-09-18 07:05:07

정태식

“선택에는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책임이 따릅니다.
사람들은 수행에 대해 생각할 때 결과가 나쁠 것이 예상되니 원인을 짓지 않는다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인을 지었다면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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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에는 의무가 따르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정당한 과보입니다.

2025-09-18 07:00:03

이수미향

감사합니다

2025-09-18 06: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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