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유럽 순회강연 중 여섯 번째 강연이 이탈리아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밀라노(Milano)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2시에 기상하여 수행과 명상을 한 후 정토경전대학 입학식 생방송 준비를 했습니다.
베를린 현지 시각으로 새벽 3시,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 정각에 정토경전대학 입학식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9월 경전대학에 입학한 10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입학을 축하하는 공연을 함께 본 후 입학생들의 소감을 들어 보았습니다. 이어서 정토회 대표의 환영사를 듣고, 다 함께 스님에게 입학 기념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경전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경전 공부를 하면서 일상에서는 어떻게 수행의 관점을 잡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정토경전대학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지난 정토불교대학 과정을 되돌아보면, 입학할 때는 졸업까지가 까마득하게 느껴졌지만 막상 졸업하고 나니 불교대학 과정이 잠깐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꼭 졸업할 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졸업해서 보면 ‘졸업하길 참 잘했네!’ 하신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정토경전대학 공부를 시작하면 또 여러 가지 장애가 많이 생길 것입니다. 장애는 외부에서 올 수도 있고, 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정토불교대학에 다닌 경험을 떠올리면서 꼭 졸업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마친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어.’하고 돌아보면서 중간에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힘들 때는 졸업이 까마득하게 보일지 몰라도 나중에 지나고 나면 잠깐입니다. 정토불교대학이든 깨달음의장이든, 어떤 정토회 프로그램 하나를 끝까지 마쳐 보신 분이라면 그것을 통해 깨닫고 느낀 바가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이왕 입학하는 정토경전대학도 중간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졸업하시길 권유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정토불교대학에서 불교의 근본 사상과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는 시간적으로는 2600여 년의 세월을 겪었고, 공간적으로는 인도 북부 갠지스강 유역의 한 지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역사적, 사회적 영향을 받으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도 안에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고,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면서도 각 지역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불교는 그런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라고 봐야 합니다.
현재 한국 불교는 대승 불교와 선불교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경전대학에서는 불교의 역사와 더불어 대승 불교와 선불교의 핵심 사상을 공부하게 됩니다. 이런 공부를 하면서 또한 우리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 공부를 병행할 것입니다.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나누기가 점점 깊어질 것입니다. 근본 불교의 핵심이 연기(緣起)와 중도(中道)라면, 대승 불교의 핵심은 공(空) 사상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해서 직관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고정관념도 부정하고 다만 실재(實在)를 경험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런 것들을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근본 불교가 조금 간단명료하다면, 대승 불교는 조금 복잡합니다. 근본 불교가 조금 쉽다면, 대승 불교는 조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근본 불교는 아주 근본이 되는 초기 사상이라 단순하지만, 대승 불교는 장구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난 혁명 운동이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전대학 공부는 불교대학에 비해 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 부분을 고려해서 수업에 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경전에 대한 지식은 나의 깨달음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쓰일 수가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데에 매우 유용할 수 있어요. 나의 괴로움을 소멸하는 데에 지식은 별로 쓸모가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할 때는 매우 유용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법을 전하고 알리는 데 여러 가지 방식을 도입하면서 좀 더 효율이 높아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부분을 먼저 고려하셔서 중간에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정토경전대학의 핵심은 마음 공부가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현상적으로 보면 불교의 여러 역사적 사실이나 지식,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지만, 근본은 ‘마음 공부’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정토경전대학에 다니시면 좋겠습니다.
정토경전대학에서는 사회적 실천도 더욱 중요해집니다. 교과 과정 속에 오프라인 실천 활동이 많아지고, 여러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즉 실천적 경험을 쌓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실제 내 삶 속에서 직접 연습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토불교대학이 마치 운전 연습장에서 운전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면, 정토경전대학은 도로 주행 연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옆에서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운전할 것인가?’ 하는 공부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옆에서 차가 끼어들어도 내가 브레이크를 밟거나 운전대를 돌려서 대응하는 것처럼, 여러 장애가 생기더라도 정토경전대학에서는 그게 오히려 공부 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애를 두려움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으로 보시고,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잘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베를린에 와 있습니다. 이곳 시간으로 새벽 3시입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이렇게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홍서원으로 입학식을 마친 후 참가자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첫인사와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짐 정리를 한 후 아침 6시에 숙소를 나와 베를린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40분을 이동하여 베를린 공항에 도착한 후 운전 봉사를 해준 이희정 님과 기념사진을 찍고 공항으로 들어갔습니다.
출국 수속을 한 후 오전 10시에 밀라노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1시간 40분을 비행하여 11시 40분에 밀라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을 나오자 밀라노에 거주하는 정토회원들이 마중을 나와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릴 곳은 밀라노 비아 클레리치 10번지에 위치한 치르콜로 필롤로지코 밀라네세(Circolo Filologico Milanese)입니다. 이곳은 1872년에 설립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어학·문화 협회 중 하나로, 다양한 강연과 문화 행사가 열리는 장소입니다. 오늘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공항을 출발하여 12시 30분에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들어서자 봉사자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대기실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 40분에 주 밀라노 한국대사관의 최태호 총영사 부부와 부총영사가 스님을 찾아와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나서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어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김애경 님, 최선영 님이 한국의 향수를 달래는 곡 ‘고향의 봄‘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러주어 참석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 주었습니다.
한국 교민 8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스님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말을 했습니다.
“제가 밀라노를 11년 만에 오게 됐습니다. 11년 전 즉문즉설에 오셨던 분, 손 한 번 들어보세요.”
많은 분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2012년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시·군·구와 전국의 대학들까지 약 300곳을 다니면서 즉문즉설을 했었습니다. 울릉도만 빼고 전국을 다 돌았어요. 그리고 2014년에는 한국 교민이 살고 있는 세계 115곳을 방문해서 즉문즉설을 했었습니다. 그때 1년 동안 매일 1개 도시를 다녔는데, 유럽에서도 30개의 도시를 다녔어요. 그때는 이탈리아에서 이곳 밀라노와 피렌체에도 갔었는데, 그 후로는 밀라노에 못 왔습니다.
독일에 강연을 가면 밀라노에서 오신 두세 분이 늘 참석하셔서 밀라노에도 와 달라고 요청하셨어요. 그래서 올해는 암스테르담과 밀라노 강연 일정을 특별히 넣어서 유럽에 오게 됐습니다. 다만 시간을 많이 못 내서 조금 전 12시에 도착했고 이 강의가 끝나면 바로 이스탄불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밀라노 일정이 짧게 잡힌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다섯 명부터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즉석에서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여덟 명이 다양한 인생 고민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이탈리아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적응이 어렵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잡으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4년 전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로 오게 되어 이곳에서 생활한 지 4년 차가 됩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되었고 신랑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결혼 하기 전까지 14년 동안 치킨 호프집을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인생을 열심히 살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씩씩하게 살아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이탈리아에 와서 살다 보니 예전처럼 씩씩했던 제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속상하고, 그런 제 자신이 싫습니다. 자녀도 없다 보니 예전보다 시간이 넘치고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고, 예전에 못 해본 일에 도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의욕이 생기지 않고, 자꾸만 소금물에 절인 배추같이 푹푹 꺼지고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작은 도시라 그런지 참 좋은 곳에 살고 있다는 마음이 안 생기고 정도 안 갑니다.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어요. 돌아가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고 씩씩하게 사는 거예요. 이 방법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지요?”
“그래도 조금 무섭기도 합니다.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아니까요. 하지만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닙니다.”
“질문자가 지금보다 경험이 없을 때도 사업을 시작해서 잘했잖아요. 나이가 조금 더 들었다 하더라도 사업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으니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두려움이 적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 능히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사업을 다시 시작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잖아요.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보면 모든 전략을 다 써보고 안될 때 마지막으로 취하는 전략이 도망가는 거예요. 전략이 36가지 있는데 마지막 36번째 전략이 바로 도망가는 전략이다 보니까 삼십육계(三十六計)가 도망을 뜻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 이 전략은 언제쯤 써야 할까요? 모든 전략을 다 써보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죽음밖에 없을 때, 즉 죽기 직전에 쓰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전쟁하다가 져서 승리할 길이 없을 때 도망을 갑니다. 전략이라는 게 승리를 위한 계책이니까 죽어 버리면 승리할 길이 없잖아요. 도망가는 건 당장은 패배이지만 다시 재기해서 전세를 뒤엎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맨 마지막 전략이 ‘후일을 도모하고 일단 살고 보자!’ 하면서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자연 생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들은 싸울 때 자기한테 불리하고 죽을 것 같으면 일단 도망을 갑니다. 도망가는 게 비겁한 게 아니에요. 그것은 생존의 한 수단이며 지혜로운 거예요. 죽는 것보다는 일단 피했다가 후일을 도모하는 게 훨씬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질문자에게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마지막 계책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망갈 쥐구멍은 있다는 말이에요. 유사시에는 도망갈 쥐구멍이 있으니까, 고양이가 아니라 뭐가 와도 한번 싸워 봐야 하지 않겠어요?”
“예, 맞습니다.”
“만약 도망갈 길이 없으면 싸우면 안 돼요. 잘못하면 죽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도망갈 길을 우선 봐 놓고 여차하면 도망간다고 생각하면 나머지는 겁날 게 없어요. ‘할 때까지 해보자!’ 이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까지 일부러도 오는데, 이왕 왔으니까 여기서 뭐든 한번 해보면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생활해 보니까 자꾸 기가 죽어요.”
“왜 기가 죽는데요? 언어장벽 때문인가요?”
“예.”
“이탈리아어를 못하는 건 당연한 거지요. 기가 죽는 건 언어 장벽 때문이 아니라 욕심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산 지 4년밖에 안 되었는데 현지인처럼 말하려고 하는 것은 가능한 건가요, 가능하지 않은 건가요?”
“예, 조금 어렵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렇게 되려고 하잖아요. 외국인이 4년 만에 현지인처럼 말할 수 있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두 바보인가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곳에 살아도 현지인보다 언어가 조금 서툰 것은 질문자가 감수해야 할 약점이에요. 그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어가 조금 부족하지만 실력이 조금 낫다든지, 사람이 재미있다든지, 다른 기술이 있다든지 하면 채용될 수가 있거든요. 언어가 약간 부족한 것이 꼭 불리하게만 작용하는 건 아닙니다. 그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서 다른 장점을 보충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몰랐던 재능이 더욱 개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첫째, 말은 그냥 손짓, 발짓하면서 되는 대로 하면서 살면 됩니다. 그러면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인가요?”
“스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제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흔들립니다. ‘모두 때려치워 버리고 가자, 내가 아쉬울 게 뭐가 있냐!’ 하다가도 ‘이렇게는 안 된다. 왔으니 한번은 해보자!’하며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제가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왕 왔으니까 한번 해보자고 마음 먹는 것이 마음을 다잡은 것이지, 또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요? ‘쥐구멍은 있으니까 호랑이가 와도 일단 한번 싸워 보고, 도저히 안되면 그때 도망가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그게 마음을 다잡은 것입니다.”
“저는 무언가 대단한 마음이 있나 했습니다.”
“인생에서 대단한 길은 없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어도, 싫으면 환속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왕 스님이 되었으니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옷 벗으면 되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이렇게 살고 있어요. 이탈리아까지 왔으니, 여기서 무엇을 해보고 싶습니까?”
“저는 학교엔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지만, 공부는 안 하는 스타일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랬습니다. 공부 쪽으로는 재능이 없어서, 어머니가 예습·복습이라도 제발 하라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어떤 학교에 다니나요?”
“이탈리아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쳤고, 9월부터 야간 고등학교에 다닐 예정입니다. 그곳이 유일하게 이탈리아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지금 공부해서 박사 되는 게 목표가 아니잖아요.”
”예, 이탈리아 말을 배우는 게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성적에 구애받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은 학교 안 가고 동네 사람들과 대화만 해도 언어 실력이 늡니다. 학교는 조금 더 체계적으로 배우려고 다니는 거지요. 열성만 가지고 다니기만 하면 언어는 저절로 됩니다. 질문자는 학교에서 1등 해서 상 받고 싶나요?”
“아닙니다.”
“그러면 그냥 놀이 삼아서 다니면 됩니다. 따로 할 일도 없고 심심하니까요.”
“맞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돕니다.”
“우선 학교에 등록해 놓고, 졸업해서 명문대에 가거나 1등 할 게 아니니까 그냥 재미 삼아 다니면서 언어를 배우고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됩니다.”
“그러면 지금 하는 대로 그냥 하면 될까요?”
“아니지요. 그것만 해서 되나요? 질문자처럼 장사도 잘하고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은 학교만 다니는 것으로는 만족이 안 됩니다. 무언가 하나 더 해야지요.”
“아르바이트도 조금 하고 싶습니다. 남편 외벌이로 살고 있는데, 제가 아직은 젊어서 돈 버는 걸 완전히 포기할 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자의 생각에 남편이 동의를 할 것 같나요?”
“남편은 굳이 일은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 조금 더 정을 붙이고 살려면 하루에 4시간 정도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생각이에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질문자의 생활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서툴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조금씩 용돈을 벌면 되고, 경제적으로 부족한 건 없지만 이곳에 정을 붙이고 싶다면 돈 버는 일보다는 성당이나 봉사 단체에 가서 봉사하는 게 좋습니다. 봉사를 하면 긴장감도 훨씬 덜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저 동양 여자는 생긴 건 이상하게 생겼어도 사람은 참 착하더라.’ 이렇게 인심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복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복을 지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돈이나 음식을 베풀든지 봉사를 해야 해요. 예를 들어, 이 집 저 집 청소를 해주거나, 성당이나 지역 봉사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봉사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먼저 심어 두는 겁니다. 돈을 벌거나 공부를 잘하려고 할 때 언어 실력이 부족하면 무시당할 수 있지만, 아무 이해관계 없이 봉사하고 도와주려 할 때는 언어 실력이 부족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목수 일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일을 할 줄 몰라도 봉사를 할 때는 망치도 갖다 주고 나무도 갖다 주고 필요한 걸 챙겨주면 기술 없다고 탓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무료로 와서 해주는데 누구든지 좋아하지요. 이렇게 하면 열등감도 없어지고, ‘우리 동네에 동양 여자가 왔는데 사람이 참 좋더라.’ 하는 좋은 이미지도 얻을 수 있어요.
이렇게 3년 정도 봉사를 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두면, 나중에 질문자가 사업을 시작할 때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모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개업하면 사람들이 경계하면서 ‘음식이 맛없네.’하며 온갖 시비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먼저 이렇게 봉사하면서 복을 지으면 이미지 개선이 되어서, 개업할 때 홍보 효과가 커지고 호응도 좋습니다. 이런 방식은 자본도 별로 안 들고, 사람들한테 저항감도 안 주고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항상 어떤 일을 할 때는 복을 먼저 지어야 해요. 당장 먹고사는 게 어렵지 않다면 이것이 제일 빨리 현장에 적응하는 방법입니다. 현장에서 바로 사업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경쟁 상대로 여기기 때문에 긴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먼저 봉사로 관계를 쌓아 두면 그런 긴장을 줄일 수 있어요.”
“예, 잘 알았습니다. 스님.”
“학교는 재미 삼아 다니고, 봉사 단체에 가서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다 보면 말도 익혀지고 복도 쌓게 됩니다. 그렇게 한번 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진로와 성취, 가정과 인간관계, 생활 적응과 AI 의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이에 하나하나 답변하며 청중과 소통했습니다.
오후 3시 50분이 되어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청중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정토담마스쿨을 졸업한 프린스 님이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프린스 님은 그동안 온라인 공간에서만 스님을 만났는데 스님을 직접 뵙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봉사자들은 고마움과 뿌듯함을 나누며 자리를 정리하고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쌍둥이 딸들이 어릴 때 법륜스님의 법문을 많이 들려 주었는데, 이제는 딸들이 저를 부추겨 함께 강연에 오고 봉사까지 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스님께서는 저의 이탈리아 생활에 등대와 같습니다. 밀라노에서 스님의 강연에 참가하고 봉사까지 하게 되어 무척 행복했습니다.”
“유튜브로만 편안하게 스님을 보다가 직접 강연장에 와서 봉사를 해보니 정말 많은 분들이 애쓰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스님은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야 해서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오후 5시에 밀라노 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운전 봉사를 해준 장미연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공항으로 들어갔습니다.
출국 수속을 한 후 저녁 7시 25분에 밀라노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스님은 휴식을 취했습니다. 비행기는 2시간 25분을 이동하여 밤 10시 50분에 아테네 공항을 잠시 경유했습니다.
내일은 밤 12시 50분에 다시 아테네 공항을 출발하여 현지 시각으로 내일 새벽 2시 20분에 튀르키예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 후, 유럽 순회강연 중 일곱 번째 강연을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1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하기 싫고 힘든 일을 꼭 해야 할 때, 어떻게 마음을 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