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7.1. INEB 6일째, 고(故) 묘향 법사 영결식, 실상사,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활동
“마을과 함께 숨 쉬는 사찰, 그 안에 담긴 배움”

안녕하세요. 오늘은 INEB 스터디 투어 6일째 날입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고(故) 묘향법사님의 영결식에 참석하여 법문을 한 후 실상사로 이동하여 오후에는 INEB 정토회 방문단과 함께 실상사에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활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7시 30분에 3층 설법전에서 고(故) 묘향법사님의 영결식을 시작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먼저 가족들이 영가단에 헌화를 했습니다. 이어서 정토회 대표와 전국 법사단장이 차례대로 헌화했습니다.


다음은 정토회 결사행자 묘향법사님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많은 이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묘향법사님과의 이별을 아파했습니다.

이어서 유수스님이 영결식에 참석해 주신 대중을 위해 인사말을 했습니다.

“먼저 그동안 묘향법사님을 잘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유수스님은 순간 목이 메어 말을 멈추었습니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차분히 말을 이어 갔습니다.

“저도 묘향법사님이 스무 살이었던 대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지금까지 함께 활동을 해왔습니다. 오늘 참석해 주신 대중 여러분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은 사회자가 묘향법사님이 항암 투병 중 생전에 법륜스님에게 보낸 편지 글을 낭독했습니다.

“스님, 병원 창문 가득 오후의 밝은 하늘이 채우고 있습니다. 가로수들이 눈을 다 털어내고 왠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느낌입니다. 봄이 오나 봅니다. 옆 침대 아주머니, 대각선으로 계시던 할머니도 요양원으로, 다른 병실로 가시고 한적한 병실에 앉아 있으니 감사함이 밀려옵니다. 항암 쇼크로 정신없을 때도, 기력도 없고 물도 못 마셔 바짝 말라 있을 때도, 스님과 도반들이 끊이지 않는 위로와 응원을 보내 주셨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함과 존재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그동안의 제 삶을 돌아봅니다.

욕창이 생길까 봐 생각날 때마다 움직여 주는 도반, 한 시간만 지나도 몸이 뻣뻣해지는 통에 본인 몸의 두 배가 넘는 내 장골을 안아 올려 주는 도반, 먹을 수 있도록 목표를 맞춰 주는 주치의 선생님, 시간마다 체크하고 살펴주는 간호사님들, 모두가 감사하기만 합니다.

스님, 산책길에 나란히 걸음 맞추며 조깅하는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부럽지 않아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온전히 나에게 주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고 감사합니다. 똥 한 덩이 누고, 스텝퍼로 병실을 돌고, 산소통을 붙잡고 엉성한 운동이라도 해내는 지금의 내가 좋습니다. 멸치 같은 얼굴과 부러질 것만 같은 몸이라도 이 세상의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제가 정말 소중합니다. 오늘은 산소 줄도 떼고 죽 테스트를 합니다. 하루하루가 더없이 새롭고 소중합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이 기쁘고, 스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어서 묘향법사님의 편지를 받고 법륜스님이 보낸 답변을 사회자가 읽어 주었습니다.

“삶이란 지금 여기 살아 있는 것일 뿐입니다. 빚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한 몸의 손발일 뿐입니다. 법사님이 그동안 지은 공덕입니다.”

짧은 한마디 한마디가 깊은 울림이 되어 모두의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다음은 무변심 법사님이 추도사를 해 주었습니다.

“먼저 부모님께 우리 예쁜 묘향법사님을 잘 키워 보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덕분에 저희들이 묘향법사님과 함께 잘 살 수 있었습니다. 묘향법사님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아주 조용한 분이셨어요. 본인이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일을 맡겨도 필요한 일이면 그냥 했던 분입니다. 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지내셨지만 언제나 책임감을 갖고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하셨습니다. 병이 들어서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도법사님의 가르침을 아픈 몸으로도 실현해 나가는 분이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도 자신을 치료해 주는 간호사들과 주변 사람들을 늘 챙기셨어요. 돌아가시는 날까지 사람들을 끝까지 챙기셨던 부처님의 모습을 묘향법사님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환자가 된 상태에서도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묘향법사님이 몸으로 보여준 가르침 대로 앞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추도사를 들으니 묘향법사님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이어서 참석한 대중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부모님과 도반들을 위로하면서 묘향법사님이 걸어온 삶이 얼마나 뜻깊고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지난 삼십 년 동안 수행 대중으로서 우리와 함께 살아온 묘향 임혜진 법사님께서 더 이상 괴로움과 속박이 없는 열반의 길로 떠나시는 날입니다. 삼십 년을 함께한 정으로 보면 아쉬움이야 크겠지만, 법사님이 가시는 곳이 열반의 길이라면 우리가 지나치게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수행하는 과정에 있다 보니 집착을 온전히 놓지 못합니다. 그분이 가시는 좋은 곳보다 우리 곁을 떠나신다는 아쉬움이 더 커서 그것이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묘향법사님, 괴로움 없는 열반의 길로 편히 가소서

먼저 떠나가는 묘향 임혜진 법사님께 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법사님, 그동안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스무 살 앳된 얼굴로 새내기 대학생 시절에 부처님 법에 귀의한 뒤 오늘까지 삼십 년을 수행자로 살아오셨습니다. 법사님이 걸어오신 삶의 과정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추어 보면, 삶이란 본래 가려야 갈 수 없고, 오려야 올 수도 없는 줄을 아셨을 것입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간다고 할 때, 마땅히 아미타 부처님이 계신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곧바로 가셨을 것입니다. 또 온다고 할 때, 지난 삶처럼 중생이 지은 업연(業緣)으로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보살의 원으로 인연 맺은 가족과 친지, 친구, 많은 사람을 위해 이 땅에 보살로 화현하실 것입니다.

법사님만 생각하면 사실 우리가 이렇게 번다하게 장례를 치르고 49재를 지낼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에 떠나 보내는 아쉬움이 슬픔이 되어 가슴을 짓누릅니다. 그러니 법사님께서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재를 할 때마다 이곳에 왕림하시어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가족과 도반들을 위해 극락으로 가시는 길을 잠시 미루시어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로부터 ‘부모가 죽으면 땅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부모는 자식을 낳고 길렀기에 자식이 아무리 성장해 늙는다 해도 마음속에는 늘 어린아이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떠나 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묻는다고 말합니다. 오늘 묘향법사님의 어머니, 아버지 두 분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깊은 아쉬움과 슬픔으로 몸을 가누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어찌 말로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 자식이기에 여전히 품속의 어린아이 같겠지만, 사실 묘향법사님은 스무 살 성년이 되자마자 세상에 이끌려 살아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서 이 수행의 길에 들어서셨습니다. 삼십 년을 한결같이 수행 정진하며 세상 사람들의 안락과 이익을 위해 활동해 오셨습니다. 부모가 볼 때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세상에서 볼 때는 참으로 훌륭하고 고귀한 일을 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만 생각해서 아쉬움에 못 이겨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런 말로 부모의 마음이 쉽게 가벼워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압니다.

인류의 스승이신 부처님께서도 그 아버지 정반왕은 평생토록 부처님을 아들로만 생각했지, 부처님으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의 기쁨을 누렸지만, 정에 사로잡혀 눈이 먼 정반왕만은 죽을 때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그 사랑은 참으로 지극하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정에 사로잡혀 부처님을 보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에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지 못한 것입니다. 부처님 같은 아들을 둔 정반왕도 그 정을 끝내 여의지 못했는데, 어찌 보통의 부모가 자식의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반면교사가 됩니다. 정이라는 것은 세속적으로는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없지만, 해탈의 관점에서는 지혜의 눈을 뜨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됩니다. 그래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다시 마음에 새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내 자식이라 하나 이미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고, 법사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스승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범부 중생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한결같이 깨어 있던 수행자였습니다. 깨닫고 보면 갈 곳도 없고, 올 곳도 없겠지만, 간다고 한다면 그는 능히 극락세계에 가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좋은 곳으로 떠나는 묘향법사님을 기꺼이 가볍게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도반의 빈자리에서 배우는 수행

함께 수행해 온 대중 여러분, 묘향법사님은 부모님 품에서 태어나 스무 살 성년이 될 때까지 가족과 인연을 맺고 살았습니다. 성년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면서 불법과 인연을 맺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동체에 들어와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불법과 인연을 맺은 지 햇수로 30년, 공동체에서 생활한 지도 25년이 넘었습니다. 이제는 가족과 함께한 날보다 공동체에서 우리와 새로운 가족으로 살아온 날이 더 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수행자로서 도반으로 함께 살아가지만, 아직 완전히 집착을 버리지 못해 걸림 없는 수행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법사님과 맺은 여러 인연 속에 우정이 쌓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함께 원을 세우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묘향법사님은 정토회 법사님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젊은 분 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정토회의 2차 만일을 이끌어갈 중심 일꾼으로 기대받던 분이기에 여러분의 아쉬움이 더욱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연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큰 목표를 세우고 함께 하기로 약속했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인연이 도래하면 따라야 합니다. 가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겨울이 오면 받아들여야 하고, 봄의 따스함이 아무리 좋아도 여름이 오면 그 계절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 누구도 인연이 맺어지고 흩어지는 도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법사님이 가시는 길은 좋은 길이며, 살아 계시는 동안 그 존재만으로도 행복을 마음껏 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아쉬움은 남지만, 이제는 법사님이 다 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기꺼이 이어 맡아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에 집착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꼭 육신을 버려야만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라, 이 육신을 지닌 채로도 열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법사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그 향기 속에서 우리는 이 소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세속적인 정으로는 도저히 떠나 보내기 어렵고 헤어짐의 아쉬움도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행자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도리를 늘 가슴에 새기며, 이러한 떠남과 헤어짐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속에 남은 아쉬움과 끈끈한 정을 오늘 단박에 놓지 못하더라도, 49재를 지내며 하나씩 인연의 끈을 놓아 가길 바랍니다.

법사님이 계실 때는 그 자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법사님이 떠나고 보니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묘향법사님뿐만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도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우리는 종종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이 떠나고 빈자리가 생겨서야 도반의 소중함을 느끼지 않도록, 지금 내 옆에 있을 때 그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묘향법사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교훈을 수행으로 되돌려 우리 모두 더 큰 수행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법문을 들으며 대중은 묘향법사님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분들의 소중함을 다시 새길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묘향법사님이 출판국장 시절 자원봉사를 하면서 만난 인연인 임원영 님이 추도사를 해 주었습니다. 평소 묘향법사님이 이모라고 부를 만큼 서로 깊은 정을 주고받은 분입니다.

“혜진이는 살아가는 내내 맑은 수행자였고, 죽음이 바로 앞에 다가왔어도 담담히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투병 생활 중에 보여준 여여한 모습은 저에게 금강경 1분의 가르침을 그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 혜진이, 보은행, 오이천사, 묘향법사님…. 가신 그곳에서 조금만 쉬시다가 나와 같은 중생에게 다시 빛으로 돌아와 주세요. 묘향법사님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립니다.”

다정했던 묘향법사님을 떠올리며 추도사를 이어 갔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함께 동고동락하며 활동해 온 공동체 박영숙 님이 다정한 미소를 잊지 않았던 묘향법사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1997년 여름, 저는 법륜스님의 간절한 호소에 마음이 움직여 북한 동포 돕기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현장에서 묘향법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는 매주 부산역 앞에서 함께 거리 모금 캠페인을 하며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냈습니다. 이후 좋은 벗들에서 함께 근무할 때도, 다른 부서에서 근무할 때도 법사님은 언제나 저에게 가장 편안한 도반이었습니다. 법사님은 짧은 생을 살다 가셨지만, 우리는 남은 삶을 법사님의 몫까지 더하여 살아가겠습니다. 묘향법사님, 이제 남은 일은 우리에게 맡기시고 부디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묘향법사님이 생전에 좋아하셨던 노래인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와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두 곡을 추모의 마음을 담아 불렀습니다. 노래가 울려 퍼지자, 장내는 다시금 숙연해졌습니다.

노래 가사 하나하나에 묘향법사님과의 추억이 떠올라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모두가 하늘에 계신 묘향법사님이 기쁜 마음으로 들어 주기를 기원해 보았습니다.

이어서 상주를 대표하여 묘향법사님의 동생분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누나가 처음 절에 들어갔을 때는 ‘왜 저렇게 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영결식에서 여러분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 보니까 누나가 여러분들에게 사랑도 많이 주고, 사랑도 많이 받으면서 지냈던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나가 하고자 했던 일들은 여러분들의 손에 의해서 계속 진행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인을 편안하게 보내 드리고자 다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평소 묘향법사님이 좋아하셨던 가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부르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인의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해탈주를 삼독한 후 삼배를 하고 사홍서원으로 영결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고인의 가족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한 후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가족들과 도반들은 버스를 타고 화장장으로 이동하고, 스님은 차를 타고 INEB 스터디 투어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지리산 실상사로 향했습니다.

아침 9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3시간 30분을 이동하여 12시 30분에 실상사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INEB 참가자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실상사 회주인 도법 스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한 후 차를 마시며 담소하였습니다. 오늘 프로그램을 어떻게 진행할지 의논한 후 행사가 열리는 선재집으로 향했습니다.

한편 INEB 참가자 스님들은 오전에 실상사 공동체 탐방 시간을 가졌습니다. 실상사 농장, 산내 여성 농업인 센터, 목금토 공방, 화림원, 실상사 작은 학교, 한 생명, 숨단지 발효 연구소를 차례대로 둘러본 후 선재집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선재집에 모여 실상사에서 근무하는 활동가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실상사 주지 승묵 스님이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가 하는 일을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살아가는 한 몸, 한 생명, 생명 평화 공동체,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실상사를 중심으로 농장, 작은 학교, 생명 평화 대학, 숨 단지 발효연구소, 한생명(지역 활동 단체) 등을 함께하며, 마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공동체 수행의 날을 운영하며 울력과 공부를 함께 합니다. 유기농 재배, 손 모내기, 김장, 생태 화장실 운영 등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있고, 실상사 작은 학교, 생명 평화 대학, 방과후학교, 어린이집 등 다양한 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유 경제와 생태 문화를 실현하기 위해 리사이클숍, 살래장(마을 장터), 자전거 작업장, 여성 농업인 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상사 사부대중 공동체는 농사에 기반한 수행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리산 만일결사’라는 이름으로 2020년부터 10,000일 동안 생명과 평화를 중심으로 한 문명 전환 운동을 진행 중에 있으며, 기존의 탐욕과 차별, 죽임의 문명을 넘어, 살림·평등·공존·깨달음의 문명으로 전환하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실상사는 특별한 수행법이 아닌, 삶과 일이 곧 수행이 되는 생활 수행을 중시합니다.”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의 철학, 조직 구성, 실천 활동, 문명 전환 운동, 불교 수행관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다음은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이 실상사 사부대중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더 바람직한 불교, 더 나은 내일을 모색하기 위해 멀리 지리산, 그리고 이 실상사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지금 실상사에서 불교적인 대안을 고민하며 사부대중 공동체를 더 완성도 있게 운영해 보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실상사가 자리 잡은 산내면 마을 공동체도 함께 가꿔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가?

이 지점에서 저 자신에게, 그리고 오늘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 사부대중 공동체를 지향하는가?’ 또는 ‘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가?’, ‘무엇 때문인가?’, ‘누구를 위해서인가?’ 이런 질문을 내어 놓으며, 먼저 ‘무엇 때문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제 뒤쪽, 여러분이 바라보는 위쪽을 보시면 ‘생명 평화 무늬’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생명 평화 무늬는 지금 이곳의 내 생명이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유·무형의 것들과 서로 참여하고 관계 맺으며 이루어져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길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 함께 평화롭게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결국 하나입니다. 부처님은 그 길을 ‘지혜와 자비의 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우리가 실상사에서 사부대중 공동체를 지향하고, 산내면 마을 공동체를 함께 꿈꾸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적으로는 지혜와 자비의 삶을 우리 삶 속에서 실현해 보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데 좋은 도반의 인연으로 꽃 피워지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법륜스님이 오늘 자리를 마련해 준 실상사 공동체 대중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INEB 참가자 스님들을 한 명씩 소개했습니다.

“실상사 사부대중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희 INBE 스님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분들도 농촌 지역에 사찰을 두고 있어서, 이곳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부분 한국에는 한 번씩 방문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입니다. 지금은 견학하며 각자의 활동을 발표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실상사 방문은 처음이지만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 따뜻하게 환영해 주시고 안내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각국에서 온 스님들을 한 명씩 소개하자 실상사 공동체 대중이 큰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다음은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은 실상사에서 하는 일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을 했습니다.

  • 실상사 공동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 새로운 사람이 왔을 때 거쳐야 하는 과정이나 비용을 내야 된다든지 하는 절차가 있나요?

  • 실상사 작은 학교의 교육 내용이 연령대별로 어떻게 되나요? 입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요?

  • 실상사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있나요?

  • 정부가 도움을 주는 것이 있나요? 귀농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계획이 있나요?

  • 실상사에서 승려가 아닌 재가자 중에서도 법사가 된 사람이 있나요?

  • 쌀농사를 많이 짓는다고 했는데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는 게 있나요?

  • 쌀 요거트를 만들고 있는데 실상사에서 최초로 개발한 것인지,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기술이 있나요?

네 시간 동안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사찰이 지역사회와 어떻게 협력을 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후 5시 30분부터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간단한 다과와 음료로 요기를 한 후 보광전에서 실상사 상주 스님들과 함께 저녁 예불을 했습니다.


실상사 경내에 종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지자, 하루의 분주함이 잠시 멈추고 모두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보광전을 나오니 선재집 위로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스님의 진행으로 오늘 실상사를 방문한 소감과 서로의 궁금한 점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실상사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했습니다.

“실상사는 1200년 된 전통 사찰입니다. 국가에서 보호하는 유물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주변이 널찍하니 참 좋지요?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보통 산속의 절들과 달리 평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통 사찰인 실상사에는 원래 스님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도법 스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먼저 실상사 스님들부터 새로운 자세로 수행해야 한다고 판단하시고, 스님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결사 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어쩌면 여러분과 같은 문제의식으로 조계종단을 혁신하고자 한 시도였습니다. 스님들이 새로운 수행 기풍을 일으켜야 종단이 바뀐다는 관점에서 이곳에서 결의를 다지고 수행하는 결사 운동을 펼치셨습니다.

동시에 근본 불교인 테라바다 불교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테라바다 불교를 연구하는 스님들이 이곳에 머물며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한국의 테라바다 경전 대부분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주로 한문본을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팔리어를 직접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곳에 오신 것도 깊은 인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을과 함께 숨 쉬는 사찰, 그 안에 담긴 배움

이곳은 또한 선불교가 한국에 처음 도래한 사찰이기도 합니다. 주변 마을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자 귀농 학교를 세우고 귀농 운동도 시작한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많은 귀농자가 정착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전통 사찰이 지역에 있지만, 지역 주민들 속에 뿌리를 내린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특히 이곳에서 더 배울 점이 있을 듯합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시고, 앞서 말씀하신 내용을 토대로 질문하거나 여러분의 고민을 나누시면 실상사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 온 분들이 조언을 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각국에서 온 스님들이 오늘 실상사 공동체를 탐방하고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눠 본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사방을 둘러싼 산과 고즈넉한 환경, 전통 사찰의 유물들, 스님들의 예불 모습 하나하나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조건 발생의 연기법(Paticcasamuppāda)’과 같은 개념이 이곳 공동체에서는 매우 단순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 녹아 들어 있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런 형식의 불교 실천은 우리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 담마난다 스님(스리랑카)

“우리 지역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절을 짓고 스님을 모시는 구조인데, 이곳은 그 관계가 더 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실상사에서 보여준 공동체의 가치와 철학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 콩신 스님 (태국)

“요즘 젊은이들은 절에 오지 않습니다. 학교 수업, 사설 학원, 게임, 휴대폰 등으로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2012년부터 ‘담마스쿨 재단’을 만들었고, 불교의 가르침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불교만 가르치려 한다며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곳 실상사는 그런 오해를 넘어서 공동체와 조화롭게 연결된 좋은 모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키티사라 스님 (미얀마)

“우리나라에서는 스님이 농사에 참여하거나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드문데, 실상사에서는 스님들이 지역과 함께 논을 가꾸고 학교를 운영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캄보디아에서 젊은이들이 ‘진짜 시민, 진짜 불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배우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 소비치아 스님 (캄보디아)

“처음에 여러분이 나눠준 자료를 보고는 너무 추상적이라 실현 가능할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둘러보며 실천된 모습을 보니 ‘이건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라오스에서는 오계(五戒)를 지키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처럼 실제로 성공한 사례를 보니 우리도 분명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 사야데지 스님 (라오스)

“불교가 지역사회와 하나 되는 방식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도 이런 모델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님들이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이 모습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 폭반 스님 (캄보디아)

“저희 절이 있는 시골 지역에서도 빈곤과 부채 문제, 환경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곳에도 그런 문제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 구성원들이 검소하고 물질을 좇지 않다 보니,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전통 한의사가 공동체에서 무료로 진료하는 모습에서도 공동체의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 프라윈 스님 (태국)

INEB 참가자 스님들은 실상사 공동체가 보여준 지역사회와의 유기적인 관계, 그리고 지속 가능한 실천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각자의 지역에서도 이러한 모델을 참고해 불교 공동체를 새롭게 구성해 보고 싶다는 의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소감 발표가 끝난 뒤 실상사 공동체의 운영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다시 이어 갔습니다.

담마난다 스님은 남방 불교 문화에서 스님과 재가자 사이의 큰 거리감을 문제로 지적하며, 실상사에서는 어떻게 그것을 허물었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도법 스님이 답했습니다.

“순례를 하며 만난 사람들과 진정성 있게 마주하는 과정에서, ‘같은 종교인이냐?’보다 ‘얼마나 진심으로 만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 절에서라도 평등이 생활이 되도록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프라윈 스님은 농민들이 빚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언급하며 실상사의 대응을 물었습니다. 이에 정웅기 운영 위원장이 "이곳 농촌에도 물론 빚을 진 사람이 있겠지만, 실상사에 와서 빚 문제로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없습니다."라고 답하자, 법륜스님이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실상사 구성원들이 검소하게 살기 때문에 주민들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돈을 빌릴 때는 자기보다 경제적으로 나아 보이는 사람에게 말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웃음)

사야데지 스님은 공동체 내에서 의료 활동이 있는지를 물었고, 이에 실상사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전통 한의사여서 매주 진료를 하며 공동체 구성원과 마을 주민을 돌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대화가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실상사와 정토회의 차이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한국에는 ‘집이 많이 낡으면 고치기보다 새로 짓는 게 더 쉽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치는 일이 새로 짓는 것보다 돈도 더 들고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예요. 예를 들어, 정토회는 새로 지은 사례입니다. 반면에 실상사는 고친 사례입니다. 사실은 고치는 게 훨씬 더 어렵습니다. 고치면서 전통을 지키고 주민과 함께하며 불교의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일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제 생각에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환경과 문화에서는 새로 짓기보다는 고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불교를 잘 고쳐주신 실상사의 도법 스님과 사부대중 여러분께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도법 스님도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제가 지난 30년을 지켜보며 늘 한 가지를 아쉽게 생각해 왔습니다. 만약 한국 사회가 20년 전부터 농촌 문제에 더 주목했다면 지금 같은 상황을 막아내고, 더 바람직한 길을 함께 열어갈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당부드립니다. 더 늦지 않게 여러분도 여러분의 나라에서 대안을 함께 찾아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이야말로 여러모로 가장 바람직한 길이 될 것입니다.”

아쉽지만 밤이 깊어서 여기서 대화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오늘 실상사를 방문한 INEB 참가자 스님들은 '불교가 이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라는 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실상사를 나온 스님은 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 오전에 서울에서 수행법회 생방송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은 실상사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오전에 실상사와 교류 시간을 더 갖기로 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밤 12시가 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INEB 스터디 투어 7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INEB 참가자 스님들과의 대화 시간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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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화

꽉 찬 스님의 하루 감사히 보았습니다.
내가 머무는 곳이 수행처이고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부처님임을 알며
생활하겠습니다.
묘향 법사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2025-07-04 12:14:54

김민영

묘향법사님, 감사합니다.

2025-07-04 12:04:26

월광

스님의 하루팀분들! 영상팀분들! 스님! 도법스님과 실상사 가족분들! INEB에 함께 하신 분들! 묘향법사님과 가족분들 일체중생 자연의 한량없는 은혜속에 오늘도 살아있어 스님의 하루를 읽을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법사님의 따뜻한 사랑 잊지 않고 함께 평화롭게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결국 하나! ‘지혜와 자비의 길’ 에 작은 힘 보탭니다.

2025-07-04 11: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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