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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65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7강 수업을 하고, 막사이사이상 한국인 수상자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아침부터 봄비가 내려 대지를 촉촉이 적셔 주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15분이 되어 정토불교대학 오전반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는 160여 명의 입학생이 자리했고, 온라인 생방송 반에는 17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읽고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지난 시간에 불교의 가치관인 오계와 팔계에 대해 배웠습니다. 스님은 지난 강의를 다시 한 번 요약하며 계율을 지키는 의미에 대해 설명한 후 오늘은 선정을 닦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마음 작용의 원리가 담긴 십이연기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계, 정, 혜 삼학을 닦는 이유를 알기 쉽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불교가 인도의 다른 종교나 철학과 특별히 다른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연기(緣起) 사상이고, 또 하나는 중도(中道)입니다. 이 가운데 중도는 수행의 실천적 관점을 말한다면, 연기는 깨달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실상의 관점을 말합니다. 그래서 연기와 중도는 불교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기 사상 가운데에서도 ‘십이연기(十二緣起)’는 우리가 왜 계를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증득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가 아주 세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십이연기를 수행적 관점에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담배 피우는 습관을 예로 들어 십이연기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냥 피워 버리면, 그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니코틴이 혈액에 남아 다시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듭니다.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카르마로 형성되어, 또다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반복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반복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담배를 피우고 싶어도 안 피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욕망의 확대 재생산은 일어나지 않겠죠. 그러면 한 번 안 피운 것으로 끝날까요? 마치 땅속에 남은 잡초 씨앗처럼 몸속에는 여전히 담배 피우는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또다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가 일어납니다. 이럴 때 아무리 욕구가 올라와도 안 피우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몸에 밴 습관이 영원히 계속될까요? 아닙니다. 밭에 나는 잡초를 자꾸 뽑다 보면 점차 줄어드는 것처럼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망도 그 기세가 점점 약해집니다.
그래서 첫째, 피우고 싶어도 안 피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담배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두 번, 세 번 참다가 ‘에잇, 좀 일찍 죽으면 되지.’ 하고 나가서 담배를 피워 버립니다. 이처럼 욕망이 확 올라올 때는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제어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욕망은 처음부터 강하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담배 생각이 나거나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살짝 좋아집니다. 그러면서 점차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망으로 발전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질 때’를 알아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 순간을 알아차리면 제어가 되는 거예요. 하지만 한 번 알아차렸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습관이 남아 있어서 알아차려도 계속 일어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알아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을 놓치면 금방 또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망으로 가 버립니다. 하지만 그 기분이 드는 순간에 바로 알아차리면 욕망을 제어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아, 담배 피우고 싶다!’ 할 정도로 욕망이 커지면, 알아차려도 이미 참기 힘든 상태가 됩니다. 억지로 참으려고 하면 스트레스가 커지는 거예요.
그렇다면 담배를 피우는 습관은 처음부터 있었을까요? 담배를 죽어도 못 끊겠다는 사람은 전생부터 담배를 피웠습니까? 담배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전생부터 있었던 게 아닙니다. 너무 못 끊으니까 ‘아이고, 너는 담배가 천성이다.’ 하고 말하는 거죠. 맨 처음 담배는 어떻게 피우게 되었습니까? 습관이 있어서 피웠을까요, 아니면 습관이 없는데도 피웠을까요? 지금은 습관이 욕망을 자극하지만, 맨 처음에는 아무 습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담배를 피우게 되었을까요? 처음부터 담배가 좋았을까요? 그렇지도 않았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피웠든지, 좋은 줄 알고 피웠든지 했겠죠. 결국 어리석어서 그런 행위를 처음 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에 나쁜 줄 몰라서, 혹은 호기심으로 그냥 피운 거예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습관으로 이어지고, 그다음부터는 나쁘다는 걸 알아도 멈출 수가 없게 됩니다.
마약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여러분은 마약을 안 한다고 해서 막 미칠 것 같진 않죠. 하지만 약간의 호기심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한번 해보면 어떨까?’, ‘다른 사람도 하는데 기분이 좋아질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죠. 이것이 바로 무명, 즉 어리석음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으로 시작하면 두 번, 세 번 반복되어 습관이 되고, 그때부터는 제어가 어려워집니다. 이 모든 일의 처음은 결국 ‘무명(無明)’입니다.
현재의 욕망에서 출발해서 그 뿌리가 무엇인지 과거로 거슬러 가서 살펴보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제어하는 것이 근원적인 처방입니다. 반대로, 지금 여기에서 욕망을 따르지 않고 멈추어서 미래의 고통을 예방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고 싶다.’, ‘하기 싫다.’ 하는 여러 욕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현재의 욕망은 과거의 결과물인 동시에, 그것을 따라가면 미래의 원인이 됩니다. 이 연결 고리를 끊는 길은 욕구가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입니다. 욕구가 일어난 것을 알아차렸다면 그것이 새로운 원인을 만드는 씨앗이 되므로 행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욕구가 시키는 대로 행하고 또 행하면서 습관을 강화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반복을 윤회(輪廻)라고 합니다.
윤회를 끊기 위한 첫 단계는 계율(戒律)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욕구를 따라가지 않는 거예요. 욕구의 출발인 ‘기분 좋음’이 일어나는 단계에서 알아차리면 멈추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림, 즉 선정(禪定)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우리에게 무명(無明)이 없었다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났겠죠. 예를 들어, 내가 담배를 피우는 업식을 모두 없앴다 하더라도, 어리석음 때문에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요. 그런데 지혜(智慧)를 증득하여 통찰력이 생기면, 더 이상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불교 수행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십이연기를 단계별로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한 후 강의를 마쳤습니다.
스님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사회자가 학생들에게 수행 연습 과제를 안내했습니다. 학생들은 다음 주까지 수행 연습을 부지런히 해보기로 하고, 조별로 마음 나누기를 이어갔습니다.
스님은 지하 1층 공양간에서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한 후 곧바로 12시 30분에 막사이사이상 수상자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중구에 있는 롯데호텔로 향했습니다.
오늘 행사는 대한민국과 필리핀 수교 75주년을 축하하며 막사이사이상 한국인 수상자들이 그동안 확대해 온 선한 영향력을 기념하기 위해 주한 필리핀 대사관과 막사이사이 재단이 공동으로 주관한 행사로, 정토회 국제연대팀도 함께 행사 준비를 도왔습니다. 행사의 주제는 ‘대한민국에서 정신의 위대함을 기리다’입니다.
행사장에 도착한 후 수잔 아판(Susanna Afan) 막사이사이 재단 회장과 델리아 알버트(Delia Albert) 전 필리핀 외무장관, 그리고 행사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테스 드 베가(Tess De Vega) 주한 필리핀 대사도 스님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주한 필리핀 대사입니다. 한국에 온 지 4년 되었습니다.”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조금 할 줄 압니다.” (웃음)
거제도 애광원에서는 100세의 노구를 이끌고 김임순 원장께서 고운 한복을 입고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원장님께 안부를 여쭈었습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말고는 다 건강합니다.”
“대단하시네요!”
스님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원장님께 존경을 표했습니다. 참석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행사 시작에 앞서 1시 30분에 리본 커팅식을 했습니다.
“원, 투, 쓰리!”
이어서 오늘 참석한 한국인 수상자들 모두가 취재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행사장에는 한국인 수상자들의 활동 내용이 다양한 사진과 글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전시물을 관람하며 수상자들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행사 시작 시간이 되자 스님은 휠체어를 탄 김임순 원장님을 앞자리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오후 2시 정각에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테스 드 베가(Tess De Vega) 주한 필리핀 대사가 환영사를 했습니다.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은 공공선에 헌신한 분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상입니다. 한국과 필리핀은 한국 전쟁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싸운 전우이며, 막사이사이상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행사는 단순히 축하를 넘어 협력을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필리핀 대사관과의 파트너십 덕분에 막사이사이 재단이 한국 수상자들과 관계를 재구축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테스 대사님은 이번 행사의 의미를 재확인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델리아 알버트(Delia Albert) 전 필리핀 외무장관이 개회사를 했습니다.
“오늘 라몬 막사이사이 재단의 ‘위대한 정신의 만남’을 대한민국에서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순간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단순히 한국과 필리핀 외교 관계 수립 75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 뿌리를 두고 아시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온 개인과 단체가 함께 모여 봉사의 리더십을 발전시켜 온 것을 기념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재회는 단지 사람들의 재회가 아니라 이상, 혁신, 변화의 재회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분열된 사회에 다리를 놓고 희망의 흔적을 남기며 다른 이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 주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알버트 전 장관은 필리핀 최초의 여성 장관으로 필리핀 현지에서도 명성이 높다고 합니다. 막사이사이 재단도 한국 여성 지도자에게 주목해 왔습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제한됐던 1960~1980년대에만 세 차례 한국 여성에게 상을 수여했습니다. 한국 최초 여성 박사이자 여성 운동가 김활란 님에게 1963년에, 국내 1호 여성 변호사로 문맹자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펼친 이태영 님에게는 1975년 각각 상을 수여했습니다.
이어서 막사이사이 재단이 걸어온 길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역대 수상자들의 모습이 빠른 속도로 화면 속을 지나갔습니다.
다음은 실비아 김 님과 율리 레오노트 님이 축하 공연을 해주었습니다. 실비아 님은 필리핀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한국인 크리에이터이자 가수입니다.
축하 공연으로 행사장 분위기가 더욱 밝아졌습니다. 이어서 한국인 수상자들의 연설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2019년 수상자인 푸른나무재단의 김종기 님이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김종기 님은 1995년 아들이 학교 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자 또 다른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푸른나무재단(옛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을 설립하였고, 꾸준한 반폭력 캠페인으로 국내 학교 폭력 비율이 1995년 20%에서 2018년 3%로 낮아지는 데 큰 기여를 하신 분입니다.
“초기에는 정부와 교육 당국의 무관심, 재정적 어려움 등 수없이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막사이사이상이 제게 준 것은 한 사람의 변화가 어떻게 공동체를 바꾸는지에 대한 믿음이었고, ‘누군가 지켜보고 있구나.’ 하는 깊은 위로였고, 외롭던 여정을 함께 걸어준 모든 시민과 부모,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보내는 격려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전 세계의 다양한 국제기구, 기업, 시민 단체와 협력하여 더 많은 아이들에게 우리의 목소리와 프로그램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단순히 회고가 아닌, 새로운 연결과 연대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그 가치를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진정과 정성으로 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다음으로 2002년 수상자인 법륜스님이 ‘위대한 정신’을 주제로 연설을 했습니다. 모두 큰 박수로 스님을 반겼습니다.
“오늘 이 만남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아픈 소식도 전해 들었습니다.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의 진정한 벗이자 평화의 수호자였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갈등이 점점 심화되는 이 시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 같은 분이 더 오래 함께 계셨더라면 평화를 위해 큰 힘이 되어주셨을 텐데, 먼저 떠나심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늘 이렇게 한국의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들을 한자리에 초대해서 서로 인사하고 교류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막사이사이 재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한국과 필리핀 수교 75주년을 기념하여 필리핀 대사님과 전 외무장관님께서 함께해 주신 것도 매우 뜻깊고 감사한 일입니다. 더불어 한국 전쟁 이후 부모 잃은 고아들을 돌보시고, 이후에는 지적 장애인들을 위해 평생 헌신해 오신 김임순 원장님께서 백 세의 연세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축하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독재 체제를 극복하여 오늘의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길고도 험난한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언론의 자유, 국민 복지, 고아 보호, 사회 정의를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온 수많은 선각자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막사이사이상의 수여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결코 우리 힘만으로 이룬 성과가 아닙니다. 주변국들의 응원과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막사이사이 재단과 필리핀 정부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국 전쟁은 1953년에 휴전된 채 여전히 전쟁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북 간의 적대 관계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적대 관계에 놓인 두 국가나 집단 사이에서는 미움과 증오가 팽배하기 때문에 고통받는 상대를 돕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은 극심한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남북 간의 적대적 긴장 속에서도 우리는 그곳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 사회 내부에서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우리는 결국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중국 내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활동은 국내에서 큰 논란이 되고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럴 때 막사이사이상의 수상 소식은, 우리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국제사회에서 인정해 준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용기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도 남북 간의 갈등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많은 갈등과 분열을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한국 사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과거 이웃 나라들이 우리를 도왔던 것처럼 우리도 이웃 국가를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 평화, 인도적 지원 등 아시아 이웃을 위해 더 넓은 실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막사이사이 재단은 그동안 아시아 각국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인물들을 꾸준히 발굴해 왔고, 우리는 이들과 협력하여 함께 나아가고자 합니다. 단지 한국의 발전과 평화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수상자들과 함께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막사이사이 재단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필리핀 대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연설은 한국인 수상자들 중에서도 특별한 김임순 거제도애광원 원장님이 했습니다. 올해 100세를 맞이한 원장님은 수상 당시를 회고하며 말했습니다.
"이 상은 나만을 위한 상이 아니라 도움을 주신 수많은 분들을 위한 상입니다. 그들을 대표해 받았기 때문에 깊은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73년 전 수렁 속 아이들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평생토록 아이들과 함께하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왔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정직하게 살면 복이 있을 것입니다.“
원장님은 1952년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한국 전쟁으로 부모를 잃거나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 또한 전쟁으로 남편을 잃어 홀로 어린 딸을 키워야 할 때였습니다. 낯선 피란지 경남 거제에서 원장님은 사랑과 봉사라는 자신의 소명을 평생 지켜왔습니다. 모두가 큰 박수로 원장님의 당부에 화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962년 수상자인 장준하 선생의 아들이자 장준하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장호권 님이 연설을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한국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53년 4월에 ‘사상계’라는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 폐간될 때까지 무려 17년간 독재, 부정, 불의에 저항하고 민주주의 민족 통일을 위해 시민을 계몽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강제 폐간된 '사상계'는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폐간된 지 55년 만에 이번 달 4월 1일 자로 드디어 복간되었습니다. 오늘 막사이사이 재단이 이 행사를 마련한 것과 '사상계'가 복간된 것에 묘한 인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연설을 하신 분들을 모두 무대 위로 초대하여 공개 포럼 및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막사이사이 재단의 수잔 아판 회장님이 한국인 수상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스님에게는 고통받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만 명의 따르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최근 기후 위기와 정치적 갈등, 개인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스님은 짧게 대답했습니다.
“세상에는 항상 문제가 있어 왔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노력할 뿐입니다.”
청중석에서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분이 손을 번쩍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 다시 만난 수상자들과 앞으로 어떤 협력을 해나갈 계획인가요?”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이미 협력하고 있는 분들도 있고, 오늘 처음 인사를 나눈 분들도 계십니다. 공통된 관심사가 있다면 함께 협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꼭 수상자들끼리만 협력해야 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협력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누구든지 기꺼이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거제도 애광원 송우정 이사께서 한 말씀 보탰습니다.
“2002년에 태풍이 거제도를 덮쳐 한 마을을 통째로 휩쓸어 간 일이 있었습니다. 중증 장애인 시설인 애광원도 큰 피해를 입어 전기도, 물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법륜스님께서 이 상황을 들으시고, 이튿날 8톤 트럭에 생수를 가득 싣고 직접 거제도로 오셨습니다. 저희 원장님께서 ‘아니, 스님이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묻자, 스님께서 ‘당연히 와야죠.’ 하시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그때 가사와 장삼을 휘날리며 트럭에서 뛰어 내리던 스님의 모습은 현장에 있던 저희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법륜스님도 막사이사이상을 받으셨고, 애광원 김임순 원장님도 같은 상을 받으셨습니다.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정토회의 자원봉사자들이 중증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봄, 가을 나들이에 동행하며 꾸준히 지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막사이사이 재단이 만들어 낸 진정한 연대와 협력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법륜스님과 김임순 원장님의 협력 사례를 듣고 청중들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수잔 아판 회장이 공개 포럼과 질의응답 시간을 마무리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방금 소개해 주신 사례야말로 우리가 지향하는 협력과 연대의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이와 같은 협력이 계속되기를 희망합니다. 막사이사이 재단은 오랜 시간 동안 수상자들의 활동을 꾸준히 지켜보고 연구해 왔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봉사는 진정성이 있으며 ‘진짜’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상하신 분들과 막사이사이 재단, 그리고 다양한 기관들이 함께 협력하는 모습을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은 디지털 초상화 인계식을 했습니다. 디지털 초상화는 젊은 인도 예술가 아타르바 바라파트레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막사이사이상 65주년 기념 책자 세트에도 수록되었습니다.
스님도 디지털 초상화를 선물로 받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서 오늘 참석한 수상자 전원이 디지털 초상화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막사이사이 재단에서 주한 필리핀 대사관에 막사이사이상 65주년 기념 책자 세트를 선물했습니다.
“Thank you once again for joining us in this celebration. Together, let us continue to honor the past, shape the present, and ignite the future.”
(이 기념 행사에 함께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과거를 기리고, 현재를 만들며, 미래를 열어가는 길에 우리 함께합시다.)
행사를 마치며 막사이사이 재단 수잔 아판 회장이 폐회사를 했습니다.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언젠가는 한국인 수상자들의 이야기도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시아를 넘어서 전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큰 박수와 함께 막사이사이상 한국인 수상자 모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행사를 준비한 막사이사이 재단 실무자들을 격려하고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오후 5시가 되어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지하 공양간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박지나 JTS 대표와 파키스탄, 시리아, 미얀마 지진 피해 구호 사업에 대해 의논을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저녁반 7강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지하 대강당에는 직장을 마치고 달려온 160여 명의 입학생이 자리했고, 온라인 생방송 반에는 34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읽고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강의처럼 선정을 닦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십이연기를 수행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는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옛날 사람들이 쓰던 표현이고, 그들의 관점에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다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핵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담배 냄새를 맡으면 ‘아, 담배 피우고 싶다.’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같은 냄새를 ‘역겹다.’ 하고 느낍니다. 이렇게 ‘하고 싶다.’, ‘하기 싫다.’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불교에서는 ‘애(愛)’라고 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갈애(渴愛)’이고, 싫어하는 마음은 ‘혐오(嫌惡)’입니다. 신심명(信心銘)의 첫 구절에,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된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좋으면 무조건 해야 하고, 싫으면 무조건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좋아도 그것이 해가 되면 멈출 줄 알아야 하고, 싫어도 이익이 되면 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계율(戒律)입니다.
‘하고 싶다.’, ‘하기 싫다.’ 하는 ‘애’에서 비롯된 욕망을 따라 직접 행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취(取)’라고 합니다. 여기서 ‘취’는 행동한다는 뜻이에요. 다른 말로는 ‘행(行)’이라고도 합니다.
‘취’의 결과로 열매가 맺히는데, 이것을 ‘유(有)’라고 합니다. 업식이 형성되어 씨앗으로 남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식으로 미래에도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이것을 ‘생(生)’과 ‘노사(老死)’라고 합니다. 나고 죽는 것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애’가 일어나는 현상을 잘 관찰해 보면, 이것은 ‘느낌’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청국장 냄새를 맡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먹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먹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기분 좋은 느낌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청국장 냄새가 역겨워서 싫은 느낌이 일어납니다.
좋고 싫은 느낌이 생기기 이전 단계에서는 무엇이 일어날까요? 바로 ‘감각’이 일어납니다. 외부의 냄새나 모양 같은 대상과 나의 감각 기관이 접촉하면서 감각이 일어납니다. 외부의 냄새나 모양 같은 대상이 명색(名色)이고, 나의 감각 기관 여섯 가지가 육입(六入)입니다. 명색과 육입이 만나 감각이 일어나는 것이 촉(觸)입니다. 이 감각이 식(識)과 결합할 때 긍정적이면 기분이 좋아지고, 부정적이면 기분이 나빠지며, 그도 저도 아니면 무덤덤한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느낌이 일어나기 전 단계에서 눈과 빛이 만나는 시각, 귀와 소리가 만나는 청각, 그리고 촉각 등의 감각이 선행되는 것입니다.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아도 반응은 각기 다릅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목욕탕에 들어가면서 ‘아, 시원하다.’ 하는데, 아이는 ‘앗, 뜨거워!’ 하고 나가버립니다. 물의 온도는 같지만, 그에 대한 느낌은 서로 다른 것이죠. ‘따뜻하다.'는 말에는 ‘따뜻한 감각’과 ‘좋다는 느낌'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뜨겁다.’는 표현에는 ‘싫다는 느낌'이 덧붙어 있는 거예요. 비슷한 예로 ‘시원하다.’에는 ‘기분 좋음’이 결합 되어 있고, ‘앗, 차가워!’에는 ‘차가움’과 ‘기분 나쁨’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감각과 느낌은 한 단어에 결합하여 쓰이기도 하고, 분리되어 쓰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목욕탕에 들어가면서 ‘시원하다.’ 할 때는 감각과 느낌이 분리되어 있죠. 하지만 대부분 감각과 느낌은 결합하여 사용됩니다. 우리가 손으로 뭔가를 만지면서 ‘아, 부드럽다.’ 할 경우, 이 말 속에는 부드러운 감각과 기분 좋은 느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부드러운 감각에 기분이 좋으면 그것을 계속 만지고 싶어집니다. 이것이 욕구입니다. 다른 말로 갈애라고 합니다.
감각이 다르면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감각에도 느낌이 다른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식(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업식, 습관, 카르마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반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識)’이 첫 번째 씨앗입니다. ‘수(受)’는 싹이고, ‘애(愛)’는 꽃이며, ‘유(有)’는 열매입니다. 씨앗으로부터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이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며 반복됩니다. 이것을 ‘행(行)’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전에, 과거에 이런 과정을 거듭해 온 것을 압축해서 행(行)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행위의 출발점은 어디일까요? 알지 못함 또는 어리석음입니다. 이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합니다. 무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수도 없이 반복해서 행한 것이 현재까지 쌓인 '식(識)’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한 번 행해지는 것이 현재입니다. 현재의 행위를 분석해 보면, 현재의 행위는 과거의 결과이면서 미래의 원인입니다. 즉 ‘과(果)’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인(因)’의 역할을 합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의 삶이 과거를 이어받고, 미래를 생성합니다. 매일의 삶이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똑같이 보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며 업식이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면서 조금씩 보이지 않게 변해 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자신에게 해로운 행위는 의도적으로 멈춰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선정을 닦는 것의 핵심은 ‘고요한 가운데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느낌은 찰나의 순간에 미세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매우 집중해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서 유학 갔다 온 얘기를 듣거나 남자 친구를 자랑하는 얘기를 들었을 때 부러운 마음에 기분이 나빠집니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호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느낌이 ‘수(受)’입니다. 수는 감각이 일어난 다음에 생깁니다. 몸에서는 약간의 열기를 느끼고, 호흡은 미세하게 가빠집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반응을 감지하지 못하죠. ‘내가 지금 기분이 좋구나.’ 또는 ‘내가 지금 기분이 나쁘구나.’ 하면서 그 반응이 일어날 때 바로 느낌을 알아차리면, 거기서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많이 나빠진 상태에서는 멈추고 싶어도 잘 안 됩니다. 멈춘다고 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래서 미세한 알아차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몸도 안 움직이고, 생각도 멈추고 있으면 호흡이 부드러워집니다. 호흡이 부드러워지면 미세한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릴 때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연습이 되면 남과 이야기하고 행동할 때 자기 마음이 어떤지, 카르마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느낌에서 감정으로, 감정에서 행위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 밭에 자꾸 잡초가 나는 것을 관찰하다 보면 이 밭에 어떤 씨가 많이 떨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업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거예요. ‘잘나가는 사람을 만나보니 내가 질투심이 있구나.’, ‘학교 얘기를 해보니 내가 학벌에 열등의식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내 업식이 어떤지 알 수 없어요. 땅속에 무슨 잡초의 씨가 있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알아차림을 통해, 첫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둘째, 자기 업식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너 욕심이 많더라.’ 이런 말을 들으면 ‘응, 내가 욕심이 많지.’ 하고 대답합니다. ‘너 짜증을 잘 내더라.’ 하는 말을 들으면 ‘응, 내가 좀 그렇지.’ 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이런 지적을 받으면 자기방어하기 바쁘죠. 그다음에 연결되는 말은 대개, ‘내가 무슨 욕심이 많아?’, ‘내가 언제 짜증을 냈다고 그래?’ 이런 말들입니다. ‘나만 그래? 너는 안 그래?’ 이렇게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이것은 마치 잡초가 무성한 밭 주인이 ‘내 밭에 뭐 그리 풀이 많다고 그래? 너희 밭에는 없냐?’ 하고 반응하는 것과 같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정작 자기만 모릅니다.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남이 하는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내가 나를 더 모르면 남에게 조종당하기가 쉽습니다.
내가 내 감정과 마음을 알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면, 남이 뭐라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너 어제 화를 많이 내더라.’ 하면 ‘어제 내가 깜빡 놓쳤어.’ 하고 대답하게 되고, ‘너희 밭에 풀이 많더라.’ 하면 ‘응, 나도 알고 있어.’ 하고 대응하게 됩니다. 수행자라면 적어도 남이 나를 아는 만큼은 나도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게 됩니다. 욕심과 분노, 질투가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도 그저 가만히 보고 있을 뿐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은 화도 안 내고 대단하다.’ 하겠죠. 내가 ‘화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똑같죠.’ 이렇게 말해도 오히려 겸손하다고 칭찬을 할 겁니다. 하지만 남들은 몰라도 나는 내 마음을 압니다. 남이 나를 칭찬해도 그건 그들이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제대로 보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칭찬하든 비난하든 개의치 않고, 남의 말에 놀아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명상을 하는 이유도 자기를 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명상은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명상한다고 앉아서 아픈 데만 신경을 쓰고, 커피 마시고 싶다는 생각만 계속하면 명상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아란 무엇인가?’ 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것도 사색이지 명상이 아닙니다. 명상의 핵심은 ‘알아차림’입니다. 나의 감각과 느낌, 감정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를 악물고 용을 쓰면서 망상을 피우느라 시간을 다 보냅니다. 그것도 아니면 졸고 있죠.
긴장을 풀고 있어야 반응이 그대로 일어납니다. 긴장하면 반응이 묻혀 버려요. 그래서 편안한 가운데 다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고, 오직 호흡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호흡에 의한 감각만을 알아차리라는 뜻이 아니에요. 움직일 때는 동작과 자세에 대한 감각, 느낌,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몸, 느낌,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명상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첫 단계로, 몸에 대한 알아차림 중에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연습합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는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이렇게 열두 가지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수행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십이연기를 수행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그 속에서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증득하는 길이 드러납니다.”
오늘은 선정을 왜 닦아야 하는지, 어떻게 선정을 닦을 수 있는지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지혜를 증득해 나가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로 하고 7강 수업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사회자가 학생들에게 수행 연습 과제를 알려준 후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66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한 후 주간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주제로 열리는 평화 연구 세미나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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