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4.15. 백일법문 58일째, 정토불교대학 6강
"정보의 양극화, 국론 분열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원인"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58일째 날이고, 정토불교대학 6강 수업을 하는 날입니다. 이제 서울 도심은 벚꽃이 모두 지고, 철쭉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주변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형형색색의 연등이 거리마다 달렸습니다.

오전 10시 15분이 되어 정토불교대학 오전반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는 180여 명의 입학생이 자리했고, 온라인 생방송 반에는 17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읽고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지난 시간에 불교의 가치관인 오계 중, 불살생 계율과 불투도 계율에 대해 배웠습니다. 스님은 지난 강의를 다시 한 번 요약해서 설명한 후 오늘은 오계 중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 계율에 대해 차례대로 설명하며 강의를 이어 갔습니다. 스님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오계를 지키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강조했습니다.

“오계(五戒)는 수행자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계율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
둘째,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함부로 뺏거나 훔치지 말라.
셋째,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과 욕설을 하지 말라.
다섯째, 술 먹고 취해서 남을 괴롭히지 말라.

수행자라면 최소한 이 다섯 가지만큼은 꼭 지켜야 합니다. 오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이름만 스님, 법사, 신도일 뿐이지, 진정한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오계는 우리가 괴로움이 없는 세계인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울타리 역할을 합니다. 계율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괴로움이 없는 세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계율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괴로움이 일어났다면 괴로움을 없애는 역할을 하고, 아직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괴로움으로부터 나를 지켜 주는 다섯 가지 울타리

오계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매우 필요한 윤리입니다. 다섯 가지에서 어느 하나도 뺄 게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 사회에서 이 다섯 가지 계율이 다 지켜진다면 형사 소송과 민사 소송을 합해서 대부분의 송사가 줄어들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범죄는 오계의 내용 안에 대부분 들어 있습니다. 첫째가 폭행과 살인이고, 둘째가 강도와 절도이고, 셋째가 성추행과 성폭행이고, 넷째가 사기이고, 다섯째가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주폭(酒暴)입니다. 범죄 행위의 대부분이 이 다섯 가지에 포함됩니다.

어두운 밤에 낯선 곳에 가면 짐승보다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과 단둘이 있더라도 그가 나를 해치지 않고, 나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나에게 성적인 추행을 하지 않고, 나에게 말로 사기를 치거나 욕설하지 않고, 술이나 마약에 취해서 나에게 어떤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으면 두려워할 일이 없습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해서 내가 가진 것을 주는 일이 있을 수는 있지만, 상대로부터 내가 원하지 않는 손실을 볼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계는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지켜야 할 계율입니다. 나에게는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가는 길이고, 타인에게는 손해를 끼치지 않는 길입니다. 이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나와 타인 모두가 편안합니다.

오계를 지키는 사람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에, 인격이 원만하고 바르며 착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런 사람을 ‘청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상 앞에 쌀을 갖다 놓고 꽃을 올리고 촛불을 켜는 것만 공양이 아닙니다. 수행자가 부처님께 올려야 하는 첫 번째 공양은 바로 나 자신의 ‘인격의 향기’입니다. 이것이 예불을 할 때 ‘계향(戒香)’으로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오계에 세 가지 계율을 추가한 ‘팔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후 강의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학생들로부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지난주 수업을 듣고 나서 많은 학생들이 서면으로 질문을 작성하여 올렸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식과 유전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인간의 정신 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예로 들어 업식의 작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업식과 유전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지난 수업 시간에 나라고 하는 실체인 아트만(Ātman)이란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계속 작용하고 있는 업식(業識)은 무엇인가요? 현상만 생각한다면 ‘업식’과 ‘유전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유전자가 몸의 기본 바탕이 되는 정보라면, 업식(業識)은 정신 작용의 기본 바탕입니다. 업식(業識)은 정신 작용에 있어서 거의 유전자와 같은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의 유전자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될 때 한 번에 결정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인공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적으로는 수정 후에 더 이상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업식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있습니다. 계속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고, 들어 온 정보의 일부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업식이 형성됩니다. 아주 미세하지만 계속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 업식과 유전자의 차이입니다. 지금 이 순간만 딱 멈추어서 말한다면, 몸의 유전자처럼 마음 작용 또한 쉽게 변하지 않는 바탕을 갖고 있는 것은 같습니다. 즉, 유전자와 비슷한 성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업식은 순간순간 조금씩 변화해 나갑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현재의 업식은 본래부터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고 대화하거나, 혼자서 컴퓨터나 핸드폰을 보며 얻은 정보를 통해 계속 변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을 할 때 자신을 한 번 살펴보세요. 마음이 고요해지는 명상을 주제로 한 영상을 많이 클릭합니까? 아니면 정치인을 욕하는 영상을 많이 클릭합니까? 선거철이 되면 상대편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영상을 많이 봅니까? 아니면 미담과 선행을 소개하는 긍정적인 영상을 많이 봅니까? 대부분이 네거티브 영상을 많이 볼 겁니다. ‘누구를 척결해야 한다.’, ‘저 사람은 나쁜 놈이다.’ 하면서 증오심을 유발하는 영상들의 조회 수가 높습니다. ‘누구를 사랑해라!’, ‘상대를 미워하지 마라!’ 이런 영상들은 인기가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우리의 현재 업식은 사랑보다는 증오심이 많습니다. 이런 기본 바탕에서 어떤 것이 탁 건드려지면 미워하는 마음이 훨씬 더 빨리 작동합니다. 인간이 본래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업식이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보의 양극화, 국론 분열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원인

그런데 이런 업식이 최신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면서 앞으로 엄청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전의 신문 기사와 방송 뉴스는 정론(正論) 보도가 핵심이었습니다. 진실을 알려 주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의 언론 보도는 사람들이 많이 보느냐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기자들의 능력도 기사의 조회 수에 따라 평가됩니다. 왜냐하면 조회 수가 많아지면 광고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개인 유튜브 영상 중에 조회 수가 많거나 댓글이 많이 달리는 영상이 생기면, 그것이 다음 날 아침에 기사화될 정도입니다.

갈수록 유튜브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정토회처럼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기보다는 유튜브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 가서 노동을 하기보다는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서 대박을 내는 일에 뛰어듭니다. 돈을 버는 수단으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조회 수를 높이려면 포지티브한 주제를 많이 다루어야 할까요? 네거티브한 주제를 많이 다루어야 할까요?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하려면 자극적인 주제를 다루거나 네거티브한 영상을 많이 올려야 합니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인 알고리즘이 작용합니다. 알고리즘은 조회 수가 많은 동영상 중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 동영상을 연관 동영상으로 추천합니다. 알고리즘이 노출해 주는 영상만 보다 보면 점점 더 비슷한 주제의 영상만 보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네거티브한 영상을 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집니다. 누군가 정보를 통제하지 않는 민주 사회에서도 마치 독재 체제처럼 상대편을 증오하는 정보에만 계속 물들어 가는 것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할 것 없이 상대편에 대한 혐오와 갈등을 일으키는 영상의 조회 수만 계속 늘어가고, 이것이 바로 정보의 양극화와 국론 분열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공 지능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상생활에 AI를 활용하면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앞으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당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모두 자기가 선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여러분은 유튜브를 열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노출해 주는 것 중에서 선택해서 보는 것이지, 알고리즘이 노출해 주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의도적으로 검색창에 주제를 입력해서 찾아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일반적으로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들을 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중에 몇 개의 영상을 선택해서 열어보는 것입니다. 이런 선택은 아주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선택일 뿐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정보를 통제하는 독재 국가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범위가 정해져 있는 울타리 안에서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요? 독재 국가의 사람들은 자기가 제한된 범위의 정보를 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이 누군가가 울타리 쳐 놓은 범위 안에서 정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내가 모든 정보를 다 섭렵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즉, 여러분의 업식이 상업적인 목적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에서는 여러분의 업식에 맞춤형으로 정보를 제공해서 상업적인 이익을 취하기도 하는 겁니다. 안 그래도 업식은 개인마다 굉장히 주관적인데, 신문, 방송, 유튜브, 디지털 기술이 가세하여 업식을 편향된 쪽으로 더욱 강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업식이 강화되면, 제가 하는 말에도 자기 업식과 맞지 않으면 반발심이 강하게 생깁니다. 십여 년 전에 제가 여러분의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를 했을 때의 반응과 지금의 반응을 비교해 보면, ‘아, 그동안 사람들의 업식이 굉장히 강해졌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반응이 즉각적이고 강렬하게 나타나거든요. 같은 정토회 회원인데도 한쪽은 제가 12.3 비상계엄이 헌정 질서를 부정하는 불법 행위라고 했다며 정토회를 탈퇴하겠다고 나오고, 다른 한쪽은 제가 이런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의 권한을 일부 분산하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면서 기분 나쁘다고 정토회를 탈퇴하겠다고 합니다. 헌법을 개정하자는 게 뭐 그렇게 비난을 할 일인가요? 이것은 한 방향의 정보에만 사로잡혀 있어서 사고가 굳어지다 보니 일어나는 일입니다. 마치 어떤 명령을 받은 사람처럼 자기도 모르게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명령을 받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시청하는 유튜브 채널이 세상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자꾸 보게 되면 점점 한쪽으로 경도되어 가는 거예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스님이 양쪽의 입장은 서로 다를 뿐이라고 이야기해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현상은 더욱 강해집니다.

물론 디지털 기술이 이런 현상을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업식이 디지털 기술과 결합을 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처음에 총을 만드는 기술을 발명할 때는 누구를 죽이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살상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공 지능 기술 또한 지금은 미래 문명을 앞당기는 열쇠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이 얼마나 클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인류가 핵폭탄이나 바이러스성 전염병, 혹은 운석의 충돌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측을 했었어요. 요즘은 기후 위기가 더 큰 위협으로 등장했죠.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인공 지능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위험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인공 지능 기술은 유용하면서도 위험합니다.

최근에는 딥페이크 기술로 합성한 동영상이 많은 부작용을 일으켰죠. 이런 기술을 활용해서 법륜스님의 동영상을 만들면 얼굴도 똑같고 목소리도 똑같기 때문에 여러분은 법륜스님이 했다고 다 믿을 수밖에 없어요. 법륜스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발언을 하는 동영상이 나올 수도 있는 겁니다. 과학 기술은 이렇게 편리함과 부작용이 동시에 나타날 소지가 있는 거죠.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정보에 대해 항상 팩트 체크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정보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 신문도 하나만 보지 말고 반대 성향의 신문도 읽어야 합니다. 우선은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균형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유전자는 육체의 기본 바탕이고, 업식은 정신의 기본 바탕입니다. 그러나 업식은 끊임없이 변해 갑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보의 제한으로 인해 업식이 굳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일한 정보만 계속 접하면 업식이 한쪽으로 굳어지고, 정보가 바뀌면 업식도 바뀝니다.”

스님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사회자가 학생들에게 수행 연습 과제를 안내했습니다. 학생들은 다음 주까지 수행 연습을 부지런히 해보기로 하고, 조별로 마음 나누기를 이어갔습니다.

스님은 지하 1층 공양간에서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평화재단 회의실에서 외교 안보 전문가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전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한국의 외교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의 휴전과 이후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어떻게 나아갈지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오후 4시에는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 명예 원장과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이 평화재단을 찾아와서 스님과 미팅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 이후에도 국론 분열이 계속되고 있는데, 대한민국이 불행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원로들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의논을 했습니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헌법 개정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저녁반 6강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지하 대강당에는 직장을 마치고 달려온 200여 명의 입학생이 자리했고, 온라인 생방송 반에는 34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읽고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강의처럼 불교의 가치관인 오계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오계에 세 가지를 추가한 팔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 계율인 오계는 금기사항입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말하는 세 가지는 권장 사항입니다. 형식은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기사항처럼 되어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권장 사항입니다.

남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 세 가지

첫째, 사치하지 말라. 이것은 내가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 검소하게 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돈이 많은 사람이 검소하게 살면 훌륭한 사람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도 돈을 빌려서라도 사치를 할 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돈이 있는 사람이 사치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재산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사치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 계율이 생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처음에는 ‘꽃으로 꾸미지 마라.’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옛 인도나 중국에서는 온갖 금붙이와 비녀 등으로 머리에 장식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이 사치의 가장 큰 상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꽃으로 꾸미지 마라.’ 하는 내용이었는데, 시대가 흘러 조금 더 직설적으로 ‘사치하지 말라.’ 하는 내용으로 변했습니다. 내용상으로는 둘 다 동일하게 ‘검소하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처럼 기후 위기 시대에는 소득이 얼마인지보다 얼마나 소비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가 큰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후 위기를 막으려면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과소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는 갈수록 빈부 격차가 커지는 상황입니다. 소득 상위 1퍼센트가 전 세계 소득의 약 4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득 하위 50퍼센트는 고작 1퍼센트를 나눠 가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 때문에 고가품이 더 많이 팔리고 있는 거예요. 부자 수가 많은 게 아니라 소수의 부자가 가진 돈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서울에 아파트를 지어도 수백억 하는 아파트가 잘 팔리지, 서민 아파트는 잘 팔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 사회 전체가 왜곡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사치하지 말라.’ 하는 계율이 매우 중요합니다. 누구 한 대 때리는 것보다 이 계율을 어기는 게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둘째, 교만하지 말라. 아무리 지위가 높더라도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위가 높으면 교만해지기 쉽고, 지위가 낮으면 비굴해지기 쉽습니다. 수행자는 교만하면 안 되고 겸손해야 합니다. 또한 비굴하면 안 되고 당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우리는 비굴함과 겸손함을 비슷하게 보고, 교만함과 당당함을 비슷하게 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겸손함과 당당함은 같은 말입니다. 교만함과 비굴함도 같은 말입니다. 만약 돈에 집착하면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 앞에서 기가 죽고, 나보다 돈이 적은 사람 앞에서 목에 힘이 들어갑니다. 만약 지식을 중요하게 여기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 앞에서 위축되고, 나보다 모르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누구를 만나든 당당해지고 겸손해지는 방법

그렇다면 당당해지는 것과 겸손해지는 것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면 됩니다. 돈이 있든 없든, 지위가 높든 낮든, 잘생겼든 못생겼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평등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똑같이 대하면, 남들이 보기에 ‘당당하다.’라고 말합니다. 나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을 똑같이 대하면, ‘겸손하다.’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평등하게 대하면 그 결과가 당당함과 겸손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계율이 생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처음에는 ‘높은 평상에 앉지 마라.’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인도 문화를 알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인도에서는 대중 집회를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닥에 앉는 좌식 문화입니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방석 같은 것을 깔고 바닥에 앉습니다. 그리고 앞에 큰 평상을 하나 놓는데, 거기에 저처럼 법문하는 사람이 앉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중석에 앉지만, 인도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유지들은 전부 평상 위로 올라와서 법문하는 사람 옆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습니다. 이처럼 인도 문화에서는 유지들이 평상 위에 앉아 청중들을 내려다봅니다. 그래서 ‘높은 평상에 앉지 마라.’ 하는 것은 교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셋째, 가무를 즐기지 마라. 가무를 즐긴다는 것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남방 불교 스님들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일절 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어떤 스님이 노래 부르며 춤추는 공연을 하니까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는 공연 금지를 했던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라고 볼 수도 있지만, 승가에서는 이 계율에 근거하여 가무를 즐기는 행위를, 일종의 승가 모독 행위로 간주합니다.

보통 노래하고 춤을 추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기분이 좋다는 것은 마음이 들뜨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들뜨는 즐거움은 곧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되는 것이 윤회입니다.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현대적으로 이 계율을 해석하자면 ‘들뜨는 즐거움을 추구하지 마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즐거움을 무조건 추구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들뜨는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명상 음악을 틀어 놓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들뜸이 없습니다. 승무(僧舞)를 추는 것도 들뜸이 없습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가무에 들어가지만, 들뜸이 없기 때문에 계율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 계율의 핵심은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이 있어도 검소하고, 지위가 높아도 겸손하며, 항상 감정 기복이 없이 고요하다면, 그는 존경할 만한 사람입니다. 수행자라면 오계를 지켜서 최소한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는 정도는 되어야 하고, 나아가 팔계를 지켜서 남에게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계율, 선정, 지혜, 세 가지 중에서 계율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선정과 지혜를 닦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로 하고 6강 수업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사회자가 학생들에게 수행 연습 과제를 알려준 후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59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주간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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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환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이들의 어리석음. 나 또한 그러한 잘못을 하는지 살펴봅니다. 연기된 세상..아니..연기 자체인 세상과 나를 알아차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04-22 19:35:46

문은영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왜 대형교회 교인들이 목사들 말에 휘둘려 극우화 되는지 그 과정을 알것 같습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그것을 근거로 현 시대를 해석하는 목사들의 설교에 반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님 법문대로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개헌을 반대하는 회원들에 대해 상을 짓지 마십시오.

2025-04-20 13:03:35

굴뚝연기

[또한 오계는 우리가 괴로움이 없는 세계인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울타리 역할을 합니다. 계율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괴로움이 없는 세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계율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닙니다.][업식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있습니다.]
[ᆢ유전자는 육체의 기본 바탕이고, 업식은 정신의 기본 바탕입니다. 그러나 업식은 끊임없이 변해 갑니다.

2025-04-20 01:4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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