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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59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정토회 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며칠 사이 불쑥 찾아온 찬 기운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더니, 아침이 밝자 다시 따스한 봄 햇살이 포근히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수행법회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 14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정토회 회원들도 온라인으로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먼저 지난 한 주 동안 정토행자들의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전국 으뜸절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연등을 설치하고, 점등식을 하느라 바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대중들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전 세계 곳곳에서 연등을 설치하고 점등식 행사를 준비해 준 정토회 회원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정토사회문화회관과 전국 으뜸절에서 연등을 설치하고 점등식을 준비해 준 모든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날 세계는 미·중의 패권 경쟁과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기존의 세계 질서가 무너져 혼란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휴전 협상에서 서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더욱더 치열한 교전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해 무고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남수단에서는 2년 이상 이어진 내전으로 2만 8000명 이상 숨지고, 15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총 3000만 명가량이 굶주림과 질병에 노출되어 있어서 인도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미얀마에서는 내전 중에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해 극심한 피해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몇몇 독선적인 지도자와 국가 간 이해관계로 인해 수천만의 애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우리는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야 합니다. 굶주리는 곳에 먹을 것을 제공하고, 물이 없으면 물을 제공하고, 집이 없으면 임시로 거주할 텐트라도 제공하고, 약이 없으면 약을 지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구호 활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마음으로라도 기도를 하고, 작은 정성이라도 모으는 것이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길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행사는 비단 불교 신자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 곳곳에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내밀어서 그들도 함께 기뻐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연등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여러분이 낸 보시금을 모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구세군 냄비에 소정의 성금을 넣듯이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연등에 불을 밝히는 마음을 냅니다. 이런 분위기를 활용해서 주변 친지들이나 지인들에게 연등을 밝히도록 권유하고, 그 보시금이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잘 쓰이도록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4월에 갑자기 찾아온 추위를 이야기하며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수행자의 마음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 후 회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온라인으로 두 명이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화내는 남편과 눈치 보는 아이 사이에서 남편과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평소에 남편은 아이에게 더없이 다정하고 자상한 아빠입니다. 그런데 화가 나거나 자기 말을 안 들을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매몰찬 아빠로 변신합니다. 이 두 가지 모습을 반복하는 남편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그리고 그런 아빠의 눈치를 보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요?”
“남편이 화가 나면 무섭게 변한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나요? 화가 나면 심지어 자기 아내, 자식, 부모까지도 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이렇게 화가 나면 대부분 미친 짓을 해요. 그래서 질문자의 남편이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화가 난 상태는 일종의 미친 상태입니다. 순간에 사로잡혀서 눈에 뵈는 게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화가 난 사람은 상대하지도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미쳐 날뛰니까요. 그런 미친 상태의 사람하고는 대화해 봐야 해결되지 않으니까 상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좀 지나 화가 가라앉으면 제정신으로 돌아오니까 그때 얘기하는 게 낫습니다.
남편이 화가 났을 때 맞대응하면 화를 더 키우게 되니까 가만히 놔두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피해가 커질 것 같으면 그때는 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대응 방법이란 무엇일까요? 질문자가 화가 난 남편을 꼭 껴안고 ‘여보 사랑해.’ 하고 말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화난 사람을 진정시키는 데는 이 방법이 특효약입니다. ‘어떻게 아이한테 그럴 수가 있어요?’라고 말해 봐야 흥분한 상태에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화가 난 사람은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서 먼저 신경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안정제를 좀 써야 해요. 예를 들어, 꼭 껴안아 주든지, 욕설하는 입에 입을 맞춘다든지, 사랑한다고 말한다든지, 이런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화내지 말라고 하거나 아이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지적하게 되면, 오히려 화난 사람의 성질을 더 돋우게 될 뿐이에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대화의 주제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대화법이 갖는 큰 특징이기도 한데, 대화의 흐름을 바꿔 버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걸식하러 어느 집에 갔는데, 집주인이 ‘사지 육신 멀쩡한 놈이 왜 밥을 얻어먹으러 왔어?’라며 화를 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언제 밥 달라고 했냐? 내가 네 집 앞에 서 있지도 못하냐?’ 이렇게 따지면 논쟁을 부추기게 됩니다. 그럴 때 부처님은 그 주제를 쏙 빼버리고 ‘당신 집에 가끔 손님이 옵니까? 그 손님이 선물을 가져옵니까?’ 하면서 대화의 주제를 바꿔 버립니다. 그러자 집주인이 처음에는 화가 났다가 생각이 다른 주제로 옮겨가면서 화가 가라앉게 되는 거예요.
질문자도 남편이 화가 났을 때 주제를 한번 바꿔 보세요. 남편의 화를 좀 가라앉혀 보려고 ‘여보, 화 좀 가라앉히세요.’라고 말하는 건 주제를 따라가는 거예요. ‘왜 화를 내?’하고 따지는 것은 기름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화를 가라앉혀요.’라고 말하는 것도 주제를 따라가는 거예요. 대화의 주제를 바꾼다는 것은 ‘여보, 사랑해!’ 하고 말하는 것처럼 주제와 아무 관계 없지만 남편이 좋아할 만한 다른 주제로 주의를 환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남편과의 갈등 주제를 따라가서 지금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고 있어요. 그럴 때는 갈등하는 주제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물론 ‘남편의 꼬락서니를 보면 속이 뒤집히는데, 어떻게 껴안아 주고 사랑한다고 말합니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냥 못 본 척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아니면 아예 문을 닫고 나가 버리세요. 아버지와 아이 그 둘이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놀다가 들어오는 겁니다. 들어오면 싸움이 다 끝나 있을 겁니다. 최선책은 적극적으로 껴안아 주는 것이고, 그게 안 되면 차선책으로 모른 척하고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도록 설득하는 방식은 가족 관계에서는 적용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스님이 즉문즉설을 통해 남편에게 ‘화가 나서 아이를 야단치면 아이가 정신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고, 본인에게도 손해입니다.’라고 말하면 조금 설득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스님이 말해도 잘 안 듣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스님이 제3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인이 얘기하면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본인이 잘못했다고 받아들이면 앞으로 부인 앞에서 기가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승복을 잘 안 하려고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한 번 고개를 숙이면 다시는 고개를 못 들기 때문에 절대로 안 숙이려고 하는 거예요.
스님 법문을 듣고 와서 ‘여보, 스님 법문 한 번 들어 보세요.’라고 권하는 것은 남편이 법문을 듣고 정신을 차리라는 의도가 담겨 있어요. 결국 남편으로부터 ‘내가 잘못했다.’ 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 의도를 갖고 말하면 남편은 질문자의 말을 더 안 듣습니다. 그러니 강요하지 말고 영상 법문을 보내주든지, 차라리 내가 보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보내는 편이 더 낫습니다. 책상 위나 차 안에 스님의 책을 슬쩍 놔두든지 해서, 남편이 스님 법문을 보게 하는 데 티가 안 나는 방법을 연구해 보세요. 그랬을 때 남편도 몰래 스님 법문을 슬쩍 보고 덮어 놓습니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습니다.
맞대응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첫째, 누구나 화가 나면 다 그렇습니다. 질문자는 남편이 특별히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화가 나면 다 미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이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화가 나면 누구나 그렇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화가 나서 미친 사람에게 대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적극적인 방법으로, 껴안아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화나게 한 주제를 논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질문자가 그럴만한 수준이 안된다면,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그 주제를 현장에서 논하면 논할수록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자각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이것이 문제라고 자각할 때만 개선이 됩니다. 남이 내 문제점을 지적하면, 때에 따라 개선된 것 같지만 완전히 바뀌지는 않습니다. 마음에서 승복이 안 돼서 그렇습니다. 자각이 안 되면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엄격한 조직 체계를 갖춘 군대에서 오히려 하극상이 제일 심합니다. 왜냐하면 권력의 속성 때문입니다.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복종을 하지만, 권력이 없어지면 치고 올라가려는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심리가 억압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 아이를 강압적으로 키우면, 심리가 억압되어서 저항하는 심리가 점점 강해지게 됩니다.
이 문제는 질문자가 해결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오히려 남편을 문제 삼지 않고 껴안아 주거나 진정을 시키는 게 현명합니다. 남편을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깨달음의 장’에 보낸다든지, 즉문즉설을 들을 수 있게 인연을 맺어 줘서 자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이한테는 어떤 말도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아이를 위로한다고 ‘너희 아빠는 성질이 안 좋으니까, 네가 이해해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빠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가 내 편을 안 들고, 아버지 편을 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는 가능하면 언급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이를 그냥 달래주세요. ‘힘들었지? 밥이나 먹자.’ 이렇게 달래는 것이 좋습니다. ‘아빠가 그런 데는 다 이유가 있단다. 널 사랑해서 그렇단다.’ 이렇게 말해 봐야 별로 도움이 안 돼요. 그럴 때는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편을 두둔해도 안 되고, 아이를 두둔해도 안 됩니다. 둘이 싸우는 건 둘의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엄마는 그래도 널 사랑한다.’ 하는 정도만 말해야지, 그 사건에 개입해서 두둔하면 안 됩니다. 이런 관점으로 남편과 아이를 대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이어서 미국에서 외국인 정토회 회원도 질문했습니다. 질문에 대해 답하다 보니 법회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 시간에 또 대화를 나누기로 하고 12시가 다 되어 수행법회를 마쳤습니다.
3층 설법전을 나온 스님은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한편 공동체 지부에서는 점심시간에 모두가 길거리로 나가 즉문즉설 홍보 활동을 했습니다. 서초동 사거리와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에게 종이로 직접 만든 연등과 전단지를 나눠 주었습니다. 봄기운 속에서 거리 곳곳을 누비며 지나가는 시민들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오후 내내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0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하고,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 화상 회의 방에 접속한 가운데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법회처럼 4월에 갑자기 찾아온 추위를 이야기하며 기후 위기 시대에 수행자는 어떤 관점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완연한 봄기운에 꽃들도 저마다 화려한 자태를 뽐냈습니다. 그러나 변덕스럽게 들이닥친 한파로 이른 개화를 한 꽃들이 놀라고 밭작물은 냉해를 입었습니다. 싹이 터서 뿌리를 내리고 이미 자란 상태라면 기온이 다소 떨어져도 냉해를 잘 입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종을 갓 옮겨 심은 작물은 기온이 5도 정도만 되어도 냉해를 잘 입습니다. 그렇게 냉해를 입은 작물은 거의 한 달가량 성장이 멈추다시피 합니다. 특히 따뜻해진 날씨에 일찍부터 봄을 준비한 벌들이 한파에 피해를 입으면 꽃의 수정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이런 기상 이변은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58년 전,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식목일에 나무를 심으러 가려는데 아침에 싸라기눈이 날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기상 이변이 있었다는 거죠. 그러나 지금은 이런 기상 이변이 좀 더 자주 일어나고 세력이 더 강해졌습니다. 일요일 아침에는 돌풍까지 불어서 비닐하우스가 다 날아가는 일이 있었어요.
기후 위기를 막거나 좀 늦추기 위해서는 우리가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소비를 줄이는 것은 제가 보기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고, 오히려 갈수록 소비가 늘어날 것이 자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렵다는 걸 알지만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수행자는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길을 선택해서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보통 성공을 염두에 두고 목표를 설정합니다. 반면에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활동은 실패할 게 뻔한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행자이기에 먼 미래를 보고 이 길을 가는 거예요. 멀리 내다보면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정진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근시안적으로 눈앞의 이익만 쫓아서 성공 여부에 따라 희로애락을 거듭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넓게 보면, 성공 한 번에 기뻐하지도 않고, 실패 한 번에 낙담하지도 않습니다. 이 길이 바른 길이라면 그저 담담히 갈 뿐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길입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온라인으로 두 명이 질문하고, 현장에서 세 명이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머니 간병, 직장생활, 정토회 활동이 모두 겹쳐서 점점 지쳐가고 있다며, 부담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친정어머니께서 여러 노인성 질환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 중이십니다. 가까이서 어머니를 돌보던 오빠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제가 어머니의 주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업과 어머니 간병을 병행하다 보니 점점 지쳐갑니다. 작년에는 정토회 활동도 부쩍 힘들어져 수행법회 참석을 못한 날이 많았는데, 차라리 출석률 부족으로 전법회원 자격이 박탈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제가 이번에 모둠장 소임을 맡게 되면서 소임 덕분에 수행법회에 잘 참여하게 되었고, 정진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모둠장 소임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서 부족한 제가 정성을 다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직장생활에 어머니 간병, 정토회 활동까지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시네요.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수행 정진은 놓지 말아야 합니다. 즉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만큼은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일을 하겠다고 기도를 빼먹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 같아요? 질문자가 말한 대로 더욱더 지치게 됩니다. 가정생활과 어머니 간병에도 소홀해지고, 직장생활과 정토회 활동도 힘들어집니다. 얼핏 보면 제일 먼저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수행 정진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울수록 수행 정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진의 끈을 놓지 않았을 때 가정생활, 직장생활, 어머니를 돌보는 일, 이 모두를 능히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특히 정진은 어려울수록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바쁘거나 힘들면 오히려 정진을 가장 먼저 놓아 버리고 ‘시간이 나면 정진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 정진해서 집중해야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 정진과 수행법회는 꼭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모둠장이나 전법회원 소임은 집안일이 너무 바쁘거나 질문자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때 사의를 표명할 수도 있습니다.
수행자는 자신의 인생을 자립하는 게 우선입니다. 자립하고 남은 시간을 내어 남을 돕자는 정신에 기초해서 모든 정토회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분 개개인이 모자이크 붓다의 한 조각이 되자는 것이 정토회 활동입니다. 그런데 정토회 활동을 하고 있는 내 처지가 나와 내 가족도 돌볼 겨를이 없고, 직장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라면, 이럴 때는 나와 내 가족을 돌보는 것도 정토회 회원이 해야 하는 봉사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내 가족이 자기들 나름대로 잘 사는데도 불구하고 내 가족이라는 생각에 돌본다면 그것은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가족 중 누군가가 남이라도 돌봐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 가족을 돕는 일 또한 정토회의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그래도 어려우면 모둠 구성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모둠장 역할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바빠서 수행 법회에 참석을 안 하는 것은 정진을 놓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안 됩니다. 모둠장이나 전법회원 소임은 내가 정말 형편이 안 되면 솔직하게 얘기하고 모둠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서 사임을 하고, 집안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복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지금 좀 힘들지만 한번 해 보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에요. 사실은 마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몸이 아파서 힘들어하다가도 옆에서 폭탄이 떨어지면 언제 아팠냐 싶게 날쌔게 도망갈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이 힘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물러서는 마음을 내면 모든 일이 자꾸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적극적으로 내게 되면 우리는 어지간한 일들은 다 해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마음을 내서 해 보고,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 싶으면 도반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다리를 다쳤는데 이를 악물고 절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거예요. 하기 싫은 마음 때문에 막 몸이 아플 때는, 이를 악다물고 끝까지 해서 극복하는 것이 정진입니다. 그런데 무릎 관절이 다쳤거나 무릎 뼈가 부러졌다면, 그것은 보호를 해야 할 상태이지 단련해야 할 상태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마음이 물러나는 것이 원인이라면 그냥 밀어붙여야 하고, 정말 힘에 부치는 것이라면 먼저 전법회원 소임을 그만두고 회원으로서 틈나는 대로 봉사 활동을 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뒤에 다시 전법회원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첫째,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한번 해봅니다. 둘째,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면 도반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합니다. 봉사를 내려놓는 것을 중도 탈락이라고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이런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 활동에는 나의 행복도 포함이 됩니다. 남이 행복하도록 도우면서 나는 불행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수행자의 관점이 아닙니다. 나만을 위해야 한다는 것도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지만, 남만을 위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모두’라는 말 속에 나도 포함해야 합니다.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일단은 한번 해 보고, 정말 어렵다면 도반들에게 상황을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도반들이 봤을 때 질문자가 물러나는 마음 때문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면, 능히 한번 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다시 해보겠습니다!’ 이렇게요. 그런데 도반들이 ‘우리가 봐도 좀 어렵겠습니다. 정토회 활동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이번에는 집안일을 먼저 정리하는 게 필요하겠습니다.’ 하면 집안일을 먼저 정리하면 됩니다.
정토회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출가해서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 중에는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집안이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남이라도 우리가 도와야 할 상황이라면 정토회 정신에 의해서 돕는 거예요. 반대로 아무리 가족이라도 도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돕는다면 사사로움에 들어갑니다. 수행자의 가족 중에 굶주리거나 병든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돌봐야 하는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 돌볼 사람이 있으면 굳이 출가한 내가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때는 내가 돌봐야 합니다. 공동체에 양해를 구하고 돕거나, 상황이 안 되면 공동체를 회향하고 나가서 가족을 돌보고 임무를 마치면 다시 복귀하면 됩니다. 이럴 때 사사로운 정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가족이라고 무조건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모든 중생 속에 나와 가족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다섯 명과 대화를 나누고 나자 수행법회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모둠별로 마음 나누기를 한 후 밤 10시가 다 되어 수행 법회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60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경전 강의 12강을 하고, 오후에는 불심도문 큰스님 생신 행사에 참석하여 큰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저녁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12강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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