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3.20. 백일법문 32일째, 경전 강의 4강, 불교사회대학 4강
"물질과 우주의 시원을 알면 인생에 집착할 게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32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하는 춘분입니다. 긴 겨울이 저물고, 따뜻한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산들바람에 봄 내음이 실려 오는 포근한 아침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북한 전문가들과 북한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대화를 나누는 날입니다.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밥상으로 식사를 함께 한 후 미국 대선 전후의 미국 내 정치 상황과 여론, 그리고 최근 북한의 경제 상황과 북미 관계 개선 전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을 배웅한 후 경전 강의를 하기 위해 3층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설법전에서는 오전 9시부터 사시예불을 정성껏 올린 후 대중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는 120여 명이 참석했고, 온라인 생방송 반에서는 550여 명이 참석했으며, 해운대법당에서도 17명이 참석하여 총 68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경전 강의 네 번째 시간입니다. 스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금강경 제4분, 5분, 6분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금강경 제4분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은 앞서 배운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의 관점으로 수행하는 사람의 행(行)은 미묘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말 미묘하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적으로는 그 행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수보리 존자의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이 대승정종분이었다면, 두 번째 대답이 바로 묘행무주분입니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보살은, 첫째, 일체중생을 하나도 남김없이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내라는 것이 대승정종분입니다. 둘째, 상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내라는 것이 묘행무주분입니다. 즉, 집착함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것입니다.

‘법에 머무르지 말고 보시를 행하라.’, ‘상에 머무르지 말고 보시를 행하라.’ 이런 말들은 보시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고 보시를 행할 때 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보시’라는 말이 갑자기 왜 나왔을까요? 그것은 제3분에서 중생을 구제하라는 얘기가 먼저 나왔기 때문입니다. 대승 불교에서 보살의 수행법은 보시, 인욕, 지계, 정진, 선정, 지혜, 이렇게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육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이중 보시는 타인에게 받으려 하지 말고 주는 마음을 내라는 수행법입니다. 대승정종분에서 설명했듯 나의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받으려 하지 말고 베풀라는 것입니다. 묘행무주분은 이렇게 보시를 행할 때의 마음에 대한 설명입니다. 중생에게 베풀되 색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법에 머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베풀 때는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다시 괴로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왜 베풀고 나면 섭섭한 마음이 생기는 걸까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베풀 때 자기도 모르게 상을 짓기가 쉽습니다. '내가 너를 도왔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을 짓는다.’ 하고 표현한 겁니다. 상을 짓게 되면 상대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기대하는 마음 없이 보시해야 할까요? 금강경에 의하면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이 부분에서 여러분이 좀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왜냐하면 보시를 할 때는 ‘중생을 구제했다.’, ‘복을 지었다.’ 이런 상을 짓지 말라고 해 놓고선 상을 짓지 않는 것이야말로 더 큰 복을 짓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도대체 복을 받는다는 것인지 안 받는다는 것인지 헷갈릴 겁니다. 금강경을 읽는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많이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글자에 집착해서 금강경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 여기서 핵심은 복이 더 크다는 것이 아니라 상에 집착하지 말고 보시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상에 집착하지 말고 보시하라는 것이 핵심이에요.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중생은 ‘돌려받을 기대를 하지 않고 보시하면 복을 더 많이 받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복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자꾸 집착합니다. 물론 보시할 때 겉으로 생색내는 것보다는 생색내지 않는 것이 더 낫긴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색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라도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보시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행하면 더 낫다는 거예요.

사랑이 미움의 씨앗이 되는 이유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보시를 할 때는 항상 기대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닌 것 같아도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래도 내가 너를 도왔다.’ 이런 마음이 밑바닥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고맙다고 말하든가 아니면 아는 척이라도 해주기를 바라게 돼요. 상대가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아예 상대에게 베풀지 않으면 이런 마음도 안 생기겠죠. 그런데 공연히 베풀어서 이런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상대를 사랑했지만 나중에는 미워하게 되는 겁니다. 사랑을 안 하면 미움도 안 일어나요.

내가 상대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않고 단지 바라기만 한다면 내 바람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무척 낮습니다. 이 경우 바람대로 되지 않았을 때 마음에 큰 고통이 생깁니다. 반면 내가 무언가를 베풀면서 상대에게 바란다면 내 바람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져요. 그러나 확률이 올라갈 뿐이지 이것도 100%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이 경우에 괴로움의 씨앗은 아직 남아 있는 거예요. 어쩌면 기대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고통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좋아해서 도와주고 난 다음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왜 그럴까요? 처음에는 좋은 마음을 내서 도왔지만, 돕고 나서는 ‘내가 이렇게 도왔으니, 네가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생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이것이 다시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겁니다. 이 찌꺼기까지 버려야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수학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 ‘경우의 수’라고 배웠죠? 경우의 수란 1회의 시행에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가짓수를 의미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총 네 가지예요. 먼저 상대를 도우면서 내가 가질 수 있는 마음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도울 수도 있고, 기대하지 않고 도울 수도 있어요. 이때 도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맙다고 인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내가 갖는 마음이 두 가지이고, 상대의 반응이 두 가지입니다. 2 곱하기 2를 하면 경우의 수는 4가 나옵니다.

내가 상대에게 기대할 때는 기대한 대로 상대가 감사해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아무런 인사도 없으면 기분이 나빠요. 반면 내가 상대에게 아무런 기대를 안 할 때는 인사가 없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예상치 못하게 감사하다고 인사하면 기뻐집니다. 기대를 하면 그 결과가 제로이거나 마이너스인데, 기대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제로이거나 플러스가 되는 거예요. 그럼 현실적으로 어느 쪽이 더 유리해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 ‘나의 노고를 당신이 알아주세요.’ 한다고 해서 상대가 그걸 알고, ‘나의 노고를 당신이 몰라도 된다.’ 한다고 해서 상대가 모를까요? 상대는 내 마음과 관계없이 그저 자기 식대로 반응할 뿐입니다. 내 마음과 상대의 반응은 상관된 것이 아니라 전혀 별개인 거예요. 내가 기대한다고 해서 상대가 감사해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기대를 안 한다고 해서 상대가 감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를 안 하면 손해 날 일 없이 이익 날 일만 있고, 기대하면 이익 날 일은 없고 손해 날 일만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어느 쪽이 나은지 자명하지요?”

“네.”

“그런데 머리로는 이걸 알아도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잘 안 됩니다. 기대를 안 하는 것이 분명 나은데도 마음은 자꾸 기대하게 돼요. 절에 가서 봉투에 이름을 안 쓰고 보시해도 마음속에서는 ‘내가 보시했다.’ 이런 생각이 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무언가를 했다.’ 하는 집착이에요. ‘내가 무언가를 했다.’ 하는 집착으로 인해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바로 고(苦)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 기대와는 상관없이 상대는 내게 보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첫째, 상대가 보답하는 경우, 내가 기대했을 때 얻는 기쁨과 기대하지 않았을 때 얻는 기쁨을 비교하면 기대하지 않았을 때 얻는 기쁨이 더 큽니다. 둘째, 상대가 보답하지 않는 경우, 내가 기대했을 때는 상대에 대한 미움이 생기는데, 기대하지 않았을 때는 어떤 미움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기대하지 않았을 때 얻게 되는 복이 내가 기대했을 때 얻게 되는 복보다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구절이 바로 ‘불가사량(不可思量)’입니다.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금강경 제5분을 함께 독송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계속되었습니다.

“여리실견분(第五 如理實見分)은 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인도 당시에는 부처님의 몸은 서른두 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그 외에도 부처님의 몸은 80가지 특징이 있는데 이것을 거룩한 부처님의 몸이라고 해서 ‘32상 80종호’라고 합니다. 그런데 앞서 묘행무주분에서 부처님이 ‘보살은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바라는 마음 없이 보시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러자 수보리의 마음속에 32상 80종호의 부처님 형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 겁니다.

전통적으로 부처님은 과거에 한량없는 보살 행을 쌓아 그 공덕으로 몸을 받아 부처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공덕도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하니까 모순이잖아요. ‘공덕이 있을 것이라고 바라지 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니까 속으로 ‘그러면 저 거룩한 부처님의 몸은 어떻게 해서 받은 거지?’ 하는 의심이 든 겁니다. 그랬더니 부처님이 손으로 몸을 가리키며 ‘32상 80종 호로 이루어진 이 몸이 부처냐?’ 하고 묻습니다. 한마디로 ‘이 몸이 부처냐?’ 하고 물으니까, 수보리가 깜짝 놀라며 ‘아닙니다.’ 이렇게 바로 알아차리고 대답한 것입니다.

몸이 부처일 수는 없습니다. 만약 부처님의 몸에서 세포 하나를 딱 떼어서 복제하면 형상은 부처님하고 똑같을 순 있겠죠. 그럼 그 사람이 부처님입니까? 부처님하고 똑같이 닮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부처님입니까? 아닙니다. 부처는 형상이 아니라 깨달아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이 거룩하게 보이니까 우리는 그 몸을 부처님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 몸은 부처가 아니에요. 우리가 절에 가면 불상을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절을 하지만, 그렇다고 불상이 부처는 아닙니다.

이어서 금강경의 전체 내용을 담고 있는 한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을 ‘사구게(四句偈)’라고 하는데, 그중 한 구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상이 있는 바는 다 허망하니 만일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보리라.

이 문장은 어떤 상도 짓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상에도 실체, 즉 아(我)라고 할 것이 없고, 변하지 않는 항상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비상(非相)’이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말로는 ‘공(空)’입니다. 금강경은 대승 불교가 일어나고 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기 때문에 아직 공(空)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니 부(不) 자를 쓰든지, 아닐 비(非) 자를 쓰든지, 없을 무(無) 자를 써서 ‘상(相)이 없다.’, ‘상(相)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반야심경에서는 ‘제법이 공(空)한 도리를 알면 곧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즉견여래(卽見如來)를 그대로 해석하면 ‘부처를 눈으로 본다.’라고 할 수 있지만, 부처를 본다는 말의 뜻은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상도 짓지 않을 때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지막으로 제6분을 함께 독송하고,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처님께서는 ‘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다.’ 라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뗏목은 강을 건널 때 필요합니다. 힘들게 뗏목을 구해서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지요. 그래서 뗏목을 어깨에 메고 간다면 어떤가요? 이미 강을 건넜으면 더 이상 뗏목이 필요하지 않잖아요. 불필요한 뗏목을 못 버리고 어깨에 메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비록 뗏목을 의지하여 강을 건넜다 하더라도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두고 가야 합니다. 하물며 뗏목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법도 응당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금강경 제7분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기로 하고 강의를 마쳤습니다.

참가자들은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지하 1층 식당에서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필리핀JTS 사업을 오랫동안 함께 해오고 있는 활동가들이 한국에 들어왔다고 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4강 강의를 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시간으로 ‘우주와 물질의 근원’을 주제로 불교의 우주관에 대해 배우는 시간입니다.

지하 대강당에는 불교사회대학 입학생 200여 명이 자리하고, 온라인 생방송 반에는 1,9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전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았는데요. 그 결과를 영상으로 함께 본 후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물질의 근원과 우주의 시원알 알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물질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위에서 생명 현상을 유지하고 있고, 그 위에 정신 작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인간 존재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에 대해 이렇게 인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럼 물질이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 말은 결국 물질의 근원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물질을 계속 쪼개어 나가다 보면 결국 근본 알맹이가 있을 것 아니냐는 거죠. 물질의 근원이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대해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 우주는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어떤 원인으로 형성되었음을 뒷받침하는 많은 과학 이론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는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 ‘그럼 우주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물질의 근원이 무엇인가?’와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두 가지 의문은 별개인 것 같지만 사실 현대 과학에서 보면 거의 유사한 질문입니다. 이렇게 물질의 근원과 우주의 시작이라는 주제에 대해 근본적인 이해가 되어 있을 때 우리의 사유가 균형이 잡힙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르게 인식하고 난 뒤에 이 땅에서 내가 무슨 직업을 갖든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신념을 가지든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과정 없이 공부든 일이든 한 가지에 치중하다 보면 전체를 보는 눈이 없어서 좁은 시각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즉,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물질의 근원과 우주의 시원, 생명의 근원과 시원, 정신 작용의 근원과 시원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불교의 여러 경전 속에서 우주와 물질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을 설명했습니다. 구산팔해(九山八海), 4주(四洲), 육도윤회, 사왕천, 33천, 욕계, 색계, 무색계 등 불교에서 하나의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여러 경전을 읽어보면 불교의 우주관은, 첫째, 다른 종교에 비해 그 규모가 굉장히 큽니다. 둘째, 우주를 정체되어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변화하는 것으로 봅니다.

불교에서는 하나의 세계가 천 개 모인 것을 ‘소천세계(小千世界)’라고 했습니다. 소천세계가 천 개 모인 것을 ‘중천세계(中千世界)’라고 했고, 중천세계가 천 개 모인 것을 ‘대천세계(大千世界)’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삼천대천세계’라고도 부릅니다. 이런 삼천대천세계가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다고 생각한 게 불교의 우주관이에요. 우주의 이쪽저쪽 세계마다 수많은 중생이 살고 있고, 그 세계마다 부처가 출현해서 교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부처님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계시다는 것을 뜻하죠.

그러면 각각의 세계마다 생활상이 비슷할까요? 아닙니다. 지옥처럼 굉장히 어렵게 사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극락처럼 살기 좋은 곳이 있고, 또 사바세계처럼 나쁜 곳과 좋은 곳이 공존하는 곳도 있다고 했어요. 이렇게 여러 모양의 세계가 수도 없이 많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는 넓은 우주 공간 속에서 무한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성주괴공(成住壞空)’ 한다고 했습니다. 물질이 모여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면, 그 세계가 존재하는 동안 생명이 출현합니다. 그 생명 안에 인간이 출현하고 또한 부처가 출현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세계가 무한히 계속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생명의 수명이 늘었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한 후 생명은 멸종되고 세계는 점점 붕괴하다가 결국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형성되는 시기를 이룰 성(成) 자를 써서 ‘성겁(成劫)’이라고 부릅니다. 형성되어 머무는 시기로 ‘주겁(住劫)’이라고 부릅니다. 변하기는 하지만 비교적 같은 형태를 유지하면서 머무르는 시기인 이때에 생명이 출현합니다. 일정하게 유지되다가 붕괴가 되는 시기가 ‘괴겁(壞劫)’입니다. 이 시기에는 생명도 없겠죠. 그러다가 폭발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때를 ‘공겁(空劫)’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는 것이 이 우주라는 겁니다.

또 다른 예로 발우공양을 할 때 외우는 소심경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오관일적수 팔만사천충 약불염차주 여식중생육
吾觀一滴水八萬四千蟲 若不念此呪 如食衆生肉

물 한 방울을 살펴봐도 팔만사천 마리의 벌레들이 살고 있네

내가 이 주문을 외지 않고 먹는다면 얼마나 많은 중생을 먹게 되는 것인가

물 한 방울을 미세하게 관찰해 보면, 물 한 방울 안에 8만 4천 마리의 미생물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마시면 물속의 모든 생명을 내가 먹어서 죽이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임을 당한 이들까지 생각해서 염불을 한 후 식사를 했던 것입니다. 요즘은 과학이 발달해서 우리가 이런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불교에서는 옛날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이런 얘기를 보면 불교에서는 크고 무한한 세계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미세한 세계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불교의 가르침은 아주 작은 미시 세계와 무한히 큰 거시 세계를 모두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제된 위에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현대 과학이 밝혀 낸 거시 세계

그럼 현대 과학에서는 거시 세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요? 먼저 거시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 주위에는 여러 천체가 있습니다. 태양을 가운데에 두고 태양 주위를 도는 천체를 행성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태양 빛을 반사해서 빛이 나는 천체예요. 지구도 행성에 속하죠. 태양은 항성이라고 해서 스스로 빛을 내는 별입니다. 지구와 같은 행성 주위를 도는 천체를 위성이라고 합니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태양계는 가운데에 태양이 있고, 그 주위를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순서로 돌고 있습니다.


태양계 (출처 : NASA 홈페이지)
▲ 태양계 (출처 : NASA 홈페이지)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를 은하계라고 합니다. 은하계에는 태양과 같은 항성이 1천억 개 내지 2천억 개가 있다고 해요. 그러니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겠죠. 빛의 속도는 1초에 30만 킬로미터인데,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빛의 속도로 8분 정도 걸립니다. 빛의 속도로 1년이 걸리는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해요. 은하계의 지름은 약 10만 광년이라고 합니다. 우리 태양계는 은하계의 중심으로부터 약 2만 5천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요. 즉 태양계는 은하계의 중심이 아닌 약간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은하계 (출처 : 난징대 신화사 홈페이지)
▲ 은하계 (출처 : 난징대 신화사 홈페이지)

은하계의 모양은 볼록렌즈처럼 생겨서 가운데가 두꺼운데, 두께가 약 1만 5천 광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위에서 보면 소용돌이처럼 보이고, 옆에서 보면 볼록렌즈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허공이에요. 왜냐하면 별과 별 사이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여러분이 횃불이나 전등을 빨리 돌리면 불빛이 원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과 같습니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없는 것이 우주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하계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과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약 2조 개가 있다고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 많이 발견되겠죠. 이렇게 태양계 천억 개가 모인 것을 소우주, 소우주가 1조 개 모인 것을 대우주라고 합니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관측에 의해 나온 과학적 사실입니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표현하고 있는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강이 있고, 그 모든 모래알 수만큼 많은 세계가 있다.’ 하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래서 우주적 시각으로 보면 우리가 몇 년을 사는지, 지위가 높고 낮은지, 잘생기고 못생겼는지, 누구하고 갈등이 있는지와 같은 문제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은 시간도 아닌 것 같고, 우주의 크기에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크기는 크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별의 생애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
▲ 별의 생애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

그런데 이 우주는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우주에 있는 미세 물질들이 모여서 원시별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핵융합 반응이 시작되면 주계열성이 됩니다. 그러다가 수명을 다하면서 팽창을 하는데 이때를 ‘거성’이라고 해요. 성간 물질이 모여서 주계열성이 되고, 주계열성에서 거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거성이 붕괴가 되면 백색왜성이 되는데, 그중에 태양보다 훨씬 큰 질량을 갖는 별들은 초신성 폭발을 하며 중성자별을 남기거나 블랙홀이 되기도 합니다. 별이 죽으면서 우주에 뿌린 산소, 탄소, 철, 칼슘 등의 원소들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밤하늘에서는 지금도 수없이 많은 별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치 폭죽놀이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밤에 폭죽이 팍 터지면 불빛이 쫙 퍼지다가 조금 있으면 싹 없어지잖아요. 그 현상이 한 백억 년쯤 걸리는 거예요. 그 백억 년 중에 지구의 역사는 45억 년이고, 그중에 인간의 역사는 원숭이 비슷한 단계부터 시작해도 7백만 년입니다. 인류 문명사는 약 1만 년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수명은 기껏해야 백 년 남짓이니까 우주의 시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짧은 시간이죠.

그러니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와중에 인간의 수명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그러면 살 이유가 별로 없네.’, ‘사나 죽으나 아무 차이도 없네.’ 하고 자칫 허무주의에 빠질 수가 있는데,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게 집착할 게 없다는 겁니다.

현대 과학이 밝혀 낸 미시 세계

우리가 어떤 물질을 한없이 쪼개다 보면 티끌조차 비교가 안 될 만큼 작아집니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상태에서 한 번 더 쪼개면 그 물질의 고유한 성질이 사라집니다. 물방울을 계속 쪼개다가 거기서 한 번 더 쪼개버리면 물이 아닌 게 되는 거예요. 물의 성질을 갖고 있는 상태까지만 쪼갠 것을 분자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분자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분자도 원자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자를 쪼개면 원자가 되니까 원자가 만물의 근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서로 다른 원자를 원소라고 하는데 이런 원소가 지구상에 총 92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물론 인공적으로 더 만들 수도 있죠. 원자의 크기는 약 10⁻¹⁰m, 즉 1억 분의 1미터입니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상태라고 주장한 것이 돌턴의 원자설이에요. 이렇게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질량 불변의 법칙, 배수 비례의 법칙, 일정 성분비 법칙 등 여러 화학 법칙들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원자 모형 (출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홈페이지)
▲ 원자 모형 (출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홈페이지)

그런데 물질의 근원인 줄 알았던 원자가 다시 다른 무언가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최소의 알갱이가 원자라고 믿고, 이것을 기반으로 모든 학문 체계와 화학 법칙이 이루어졌는데, 그 원자 속에서 전자의 존재를 새로 발견하게 되었어요. 만일 원자가 빵이라면 전자는 빵에 박혀있는 건포도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톰슨(Thomson, Sir Joseph John)이 발견한 원자의 첫 번째 모형이에요. 이후에 조금 더 연구해 보니 원자 가운데 핵이 있고, 그 바깥에 전자가 핵을 중심으로 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태양에 해당하는 핵이 가운데 있고, 그 주위를 지구가 돌듯 전자가 돈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리더퍼드(Rutherford, E.)가 발견한 전자혹성모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주위를 도는 전자가 여러 개이고, 층이 있어서 궤도를 달리해서 층층이 도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새로 발견한 겁니다. 그래서 원자 모형을 다시 수정합니다. 이것이 보어가 발견한 불연속적 원궤도입니다. 이렇게 재발견을 해가면서 현재의 원자 모형이 나왔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보어(Niels Bohr)의 원자 모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운데 핵이 있고 바깥에 전자가 안개처럼 포진해 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습니다. 안개처럼 좀 진한 데가 있고 약한 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 주위의 전자가 확률 분포에 따라 나타난다고 하는 전자구름모형입니다. 그리고 핵 속에 양성자와 중성자도 새로 발견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전에는 원자의 무게로 주기율표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양성자 숫자에 따라 새로운 주기율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핵의 크기는 원자의 크기에 10⁻⁸을 곱한 크기입니다. 핵이 동전의 크기라면, 원자는 지구의 크기만큼 큰 거예요. 그러니 원자가 아주 작은 알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빈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무게가 없고, 무게는 핵에 있습니다. 그러니 미시 세계도 텅 비어 있는 셈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볼 때 미시적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요? 텅 비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육안으로 보면 우주가 텅 빈 것처럼 보이듯이 미시적 관점으로 인간을 보면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단단한 금붙이도 그 속은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자를 떼버리고 핵끼리만 뭉치면 무게는 그대로인데 지구가 농구공만 해집니다. 그럴 때 밀도는 엄청나겠죠. 여기에 빛이 끌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자, 양성자, 중성자, 이런 것을 ‘소립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힘의 작용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과학 이론은 거시세계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힘인 중력과 미시세계를 구성하는 힘인 전자기력, 두 가지였습니다. 중력은 물질과 물질 사이에 서로 잡아당기는 힘을 말하죠. 전자기력은 N극과 S극이 서로 잡아당기거나 미는 힘이 있다고 하는 자기력과 음전기와 양전기가 서로 잡아당기거나 미는 힘이 있다고 하는 전기력을 말합니다. 전기력과 자기력은 똑같다는 것이 바로 전자기장의 힘입니다. 이것을 쿨롱이 발견했기 때문에 쿨롱의 힘, 즉 쿨롱 포스(Coulomb force)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력과 전자기력을 계산하는 수식이 똑같습니다.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두 질량의 곱에 비례하며 앞에 만유인력 상수 G를 씁니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F=G·(m1m2)/r²입니다. 그런 것처럼 전자기력도 두 전하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전하량의 곱에 비례합니다. 대신 쿨롱 상수 K를 쓰죠. 수식으로 표현하면 F=K·(q₁q₂)/r²입니다. 지금까지 힘에 대해서는 이 정도까지 밖에 발견이 안 됐어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원자핵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를 들어 산소의 원자핵은 양성자가 8개입니다. 이 8개가 따닥따닥 붙어 있으면 서로 미는 힘, 즉 척력(斥力)으로 인해 깨져 버려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힘으로는 원자핵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원자핵을 구성하는 힘이 무엇인지 가설을 세워 연구한 사람이 일본의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입니다. 그는 마이너스 전기를 띤 파이 중간자를 가상으로 설정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여러분 중에 한 사람과 서로 공을 던진다고 해봅시다. 제가 공을 던지면, 그걸 한 사람이 받아서 저에게 다시 던집니다. 이런 작업을 아주 빨리 한다고 해봅시다. 그 속도가 빨라지면 공이 마치 선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 가설이 나중에 실제로 증명이 되어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즉 양성자 8개, 중성자 8개라고 할 때 양성자가 따로 있고 중성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중성자에서 마이너스 전기를 띤 중간자가 튀어나오면 그 중성자는 양성자가 되고, 또 그 중간자가 양성자에 달라붙으면 그 양성자는 중성자가 됩니다. 거기서 또 튀어나오면 다시 양성자가 되는 겁니다. 이 작용이 얼마나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느냐 하면 10⁻²³ 초라고 합니다. 양성자가 8개이고, 중성자가 8개인 것은 맞는데, 이건 양성자이고 이건 중성자라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자핵 내부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시키는 힘을 핵력(核力)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연구해 보니까 방사선이 붕괴될 때 나오는 핵력이 새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원자핵을 결합시키는 힘을 강한 핵력이라고 하고, 방사성 붕괴와 입자 변환 과정에서 작용하는 힘을 약한 핵력이라고 합니다.


4대 기본 힘 (출처 : 과학기술정보연구원 홈페이지)
▲ 4대 기본 힘 (출처 : 과학기술정보연구원 홈페이지)

이와 같이 우주 안에 작용하는 힘은 현재까지 발견된 게 4개입니다.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로 설명하려는 것이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 UFT)입니다. 현재까지의 연구로는 약한 핵력이 전자기력과 그 원리를 같이한다는 것까지는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런 과학적 사실들을 살펴보면, 미시 세계가 그만큼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립자가 물질의 근원이냐? 그것도 아니에요. 다시 쿼크가 등장해요. 하지만 쿼크도 세 개 이상이 묶여서 소립자를 구성하지 단독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시 세계에서 성립하는 법칙을 연구하는 것을 양자역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시 세계에서 성립하는 법칙을 연구하는 것이 상대성 이론입니다. 현대 과학은 거시 세계를 설명하는 상대성 이론과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이 중심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현대 과학은 물질세계의 근원을 어느 정도 밝혀나가고 있습니다.

빅뱅 이론과 우주의 팽창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
▲ 빅뱅 이론과 우주의 팽창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

우주의 시작은 어떤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점으로부터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쿼크의 결합으로부터 점점 소립자의 결합으로 나아가다가 원자가 등장합니다. 현재의 우주는 빅뱅이라는 대폭발 이후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습니다. 별들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면 계속해서 서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 한 점이 있고 여기 다른 한 점이 있다고 합시다. 만약 우주의 크기가 같다면 한 점이 다른 한 점을 향해 이동하면 그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만약 고무풍선에 점을 여러 개 찍어서 바람을 불면 각각의 점이 점점 멀어지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런 우주 속에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의 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점점 복잡한 단계의 결합으로 물질이 형성되어 나갔습니다. 생명은 더 복잡한 과정의 결과물이고, 정신세계는 더 복잡한 연관을 가집니다. 중중첩첩 결합이 되어 있는 것이 인간 존재입니다.

물질과 우주의 시원을 알면 인생에 집착할 게 없다

이렇게 현대 과학이 밝혀낸 결과들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과 일치하는 면이 많습니다. 미시적 세계에서 보면 인간 존재는 우주보다 큰 존재이고, 거시적 세계에서 보면 티끌보다 작은 존재입니다.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인간의 수명 100년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소립자의 시간에서 보면 인간의 1초는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입니다. 그런 시공간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허무하다고 말해도 안 되고, 영원하다고 말해도 안 됩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먼저 이해한 후 불교의 세계관을 보면 둘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연기되어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모든 과학적 사실과도 부합합니다.”

오늘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을 과학적으로 이해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생명과 진화의 본질에 대해 배우기로 하고 4강 수업을 마쳤습니다.

참가자들은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음 나누기 속에서 오늘 배운 내용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33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주간반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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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성

스님의 천재적인 지식은 백과사전보다 더 깊어보입니다
제 역량으로 읽어도 읽어도 담을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잘 귀기울여 듣고 내 삶에 도움이 되도록 잘 쓰이겠습니다
이런 법문을 들을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2025-03-28 08:42:01

김 종 근

감사합니다

2025-03-28 06:28:05

굴뚝연기

[ᆢ그중에 태양보다 훨씬 큰 질량을 갖는 별들은ᆢ블랙홀이 되기도 합니다. 별이 죽으면서 우주에 뿌린 산소, 탄소, 철, 칼슘 등의 원소들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ᆢ양성자가 8개이고, 중성자가 8개인 것은 맞는데, 이건 양성자이고 이건 중성자라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립박수쳐야 하는거 아닌가요?ㅋ스님 과학에도 저렇게능통하시니!

2025-03-26 02: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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