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01.07 부탄 답사 15일째_카르마 치팀, 국왕의 어머니 만남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억누르지도 않고, 깨달음은 무엇이죠?”

안녕하세요. 부탄 답사 15일째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왕립공무원위원회 의장과 GNH(국민총행복지수) 위원장을 역임한 카르마 치팀 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오후에는 현 국왕의 어머니인 트셰링 양돈 님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부탄 시각으로 오전 7시에 성도재일 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시각으로는 오전 10시가 되자 정토회 회원들도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성도재일을 맞이하여 기념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지난 한 해 어려운 일들을 모두 이겨내셨으니,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하루하루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우리나라와 세계가 좀 더 평화롭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날입니다. 성도절에 저는 부탄 팀푸에서 여러분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12월 23일에 한국을 출발해서 24일에 이곳 부탄에 도착했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고 있는 젬강 주 전체를 답사했습니다. 작은 마을까지는 다 방문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여서 사는 마을은 다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인도 성지순례를 하기 위해 지금은 부탄의 수도 팀푸에 도착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자로 태어나서 스승에게 배우고 부모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착실한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처음으로 농경제에 참여해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본 농부들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농부에게 ‘왜 당신들은 이렇게 고통 속에서 삽니까?’ 하고 물어보니 주인이 자신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자신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농부가 소를 때리며 쟁기질을 하니 소가 멍에를 물고 헐떡거렸습니다. 쟁기가 땅을 뒤집자 작은 벌레들이 나타났고, 온갖 새들이 날아와 그 벌레들을 잡아먹었습니다. 그때 소년은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 다른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 이런 큰 의문이 들었습니다. '함께 사는 길은 없을까?' 하는 의문의 답을 찾다가 결국 출가수행자를 만나게 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본인도 출가해서 수행을 해야겠다는 발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아들의 간절한 바람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왕자로 태어나서 모든 것이 다 갖춰졌고,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데 뭐가 불만이어서 집을 나가려고 하느냐?’ 이런 생각으로 부모님이 만류를 하니까 그는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망설였습니다. 한 번은 부모님의 말씀을 따랐다가 한 번은 자신의 원을 생각했다가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이 세상에서는 다 함께 사는 길을 찾을 수 없다.’ 하는 최종 결단을 내리고 출가를 하게 됩니다. 출가를 하면 바로 깨달음을 얻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출가해서 수행을 해보니 오히려 생활이 불편하고 삶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출가한 것에 대해 한때는 후회한 적도 있었지만, 자신이 지난 10년간 출가 수행하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돌아보고, 다시 초심을 되새기면서 여러 가지 번뇌를 떨치고 용맹정진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6년 고행’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런 철저한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그는 자신의 수행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깊이 되돌아보았습니다. 그 내용이 경전에는 마왕의 유혹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어 나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없다. 그런 말만 존재한다.’ 이렇게 마왕이 유혹하는 장면이 경전에 나오는데 이것은 부처님 스스로도 ‘정말 깨달음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을힘을 다해서 수행했는데도 그 경지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행하다가 죽어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습니다.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억누르지도 않고, 깨달음은 무엇이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자신의 수행을 다시 한번 되돌아봤습니다. 젊을 때는 욕망을 충족하는 즐거움을 인생의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즐거움이라는 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즐거움은 곧 괴로움으로 바뀐다. 고와 락이 다만 윤회할 뿐이다.’ 하는 것을 자각하고 출가수행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욕망을 억제하는 고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욕망을 억제한다는 것은 곧 몸과 마음이 엄청난 긴장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긴장한 상태로는 완전한 편안함에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욕망을 따르는 즐거움을 누려서 완전한 열반에 이를 수 없는 것처럼 욕망을 부정하고 참는다고 해서 완전한 열반에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욕망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지 탐구했습니다.

‘욕망을 따르는 것도 해탈의 길이 아니고, 욕망을 거부하는 것도 해탈의 길이 아니다. 둘 다 한쪽에 치우쳐있다. 쾌락주의와 고행주의의 양극단을 버리고, 다만 욕망을 욕망인 줄 알 뿐이다. 욕망이 일어나면 다만 욕망이 일어나는 줄 알아차릴 뿐이지, 그것을 따라가지도 않고, 그것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중도의 길을 발견함으로써 욕망으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행림을 나와서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수자타가 준 미음을 먹으며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풀을 한 움큼 얻어서 자리를 깔고, 편안한 가운데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증상을 관찰했습니다. 그는 호흡을 알아차리고, 몸에서 온갖 감각이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그것이 느낌으로 변하고, 다시 욕망이 되고, 그래서 행위가 일어나고, 다시 고통이 따르는 과정을 편안한 가운데 지켜보며 알아차렸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는 우리의 모든 고통이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시작됨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욕망이 일어나더라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업식에 반응해서 일어나는 좋고 싫은 느낌을 곧바로 알아차림으로써 욕망이 일어나기 이전 단계에서 멈추었습니다. 결국 욕망이 일어나는 근원은 무지이기 때문에 무지를 깨트리자,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연관 고리를 찾아서 그는 무명을 타파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발 한발 걸을 때 발에 밟히는 모래의 감각을 느끼고, 나뭇잎에 맺힌 이슬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다 인연을 따라서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구나.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원한 것은 없다. 서로 연관되어 변화할 뿐이다. 구름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인연을 따라서 일어나고 인연을 따라서 사라져 가는구나. 일어난다 해도 일어난 것이 아니고, 사라진다 해도 사라진 것이 아닌, 그냥 변화하는 것일 뿐이구나!’

이렇게 깨닫게 되자 모든 의문이 사라지고, 기쁨과 괴로움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냥 편안한 가운데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날이 바로 오늘, 음력으로는 12월 8일 새벽녘입니다. 샛별을 보는 순간 마지막 의문이 사라지고 환히 밝아졌습니다. 어두운 밤에 불을 켜듯이 그렇게 모든 것들이 환히 보여졌습니다.

인연을 따라서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구나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거나, 어떤 생각을 하거나, 어떤 말을 할 때, 이것을 인연으로 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법을 깨닫게 되면 내가 지은 조그마한 인연으로 인해 그 인연의 과보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훤히 알게 됩니다. 즉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연을 지을 때, 즉 행위를 하거나 말을 할 때 모든 것을 삼가게 됩니다. 내가 하는 행위가 가져오는 괴로움의 과보를 미리 알기 때문에 욕망이 일어나도 멈출 줄 알게 되고, 싫음이 일어나도 능히 행할 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모르면,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하면 ‘왜 해야 하느냐?’ 하면서 굉장히 힘들어하게 됩니다. 반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로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게 되거나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훤히 알게 되면, 좋고 싫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또 나에게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를 모르니까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과거의 어떤 인연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하나의 결과임을 알게 되면 원망할 일이 없어지게 됩니다. 바람이 부니까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과거에 지은 어떤 인연으로 인해서 그냥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원인을 모를 때는 왜 갑자기 나뭇잎이 흔들리는지 의문이 드는데 바람이 불어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을 알면 의문이 사라집니다. 그것처럼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과거의 어떤 인연으로 인해서 그냥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위에서 물을 보내면 비가 오지 않아도 아래에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원망할 일이 없어집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다 과거의 이런저런 인연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미 일어난 일은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해서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행동할 때 삼가게 됩니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삼가게 됩니다. ‘삼가다’ 하는 말은 결과가 보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서 유의한다는 뜻입니다.

수행은 각오하고 결심하며 참는 것도 아니고, 온갖 자기 욕망대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증상을 다만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런 것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릴 뿐입니다. 그래서 놓쳐서 어떤 행위를 행했다고 하더라도 잘못했다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로 인한 미래의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행위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과거 잘못의 결과가 일어난다면 담담히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래서 밖에서 보면 다른 사람처럼 똑같이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배고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처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괴롭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두려움이 생기거나 근심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다만 알아차릴 뿐

수행을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행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냥 인연에 따라서 일어나고 사라질 뿐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담담한 것이 수행자입니다. 알아차림을 놓쳐서 자기도 모르게 욕망을 따랐다고 하더라도 후회하고 애달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놓쳤구나!’ 하고 그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겁니다. 원망이 일어났을 때 과거 인연의 결과임을 자각하게 되면 비록 찰나 무지에 빠져서 괴로움이 생겼다 하더라도 금방 알아차림을 통해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항상 깨어 있으면 아무런 두려움과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설령 깜빡 놓쳐서 괴로움이 일어나더라도 왜 괴로움이 일어나는지를 자각하면 빠른 시간 안에 편안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열반을 증득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생은 항상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고 싶으면 뭐든지 해야 하고, 내가 하기 싫으면 안 해야 하고, 이렇게 원하는 것이 다 성취돼야 하는 것에 매달리기 때문에 늘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기뻐했다가 슬퍼했다가 후회했다가 하면서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욕망을 따라가는 길을 가서는 괴로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기 위해 부탄에 와 있습니다. 부탄 주민들에게 살기가 어떤지 물어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식수가 부족합니다.’
‘농수로가 부족해서 올해 농사를 못 지었습니다.’
‘집이 없습니다.’
‘집이 있지만 너무 불편합니다.’

부탄 주민들이 사는 동네에 가보면, 먹고 입고 자기는 하지만 정말 불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들에게도 기쁨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동네에 가서 재료를 지원해 준다고 하면 ‘저희들 힘으로 고치겠습니다. 재료만 지원해 주세요. 우리는 뭐든지 하겠습니다’ 하고 희망을 가지며 좋아합니다. 그런데 조금 살만한 동네에 가면 재료를 지원해 준다고 해도 시큰둥합니다. 뭐라도 좀 해달라고 요청만 합니다. 가난한 동네에 가서 ‘철조망만 지원해 주면 산에 가서 나무 베어서 말뚝 박고 울타리를 만들겠느냐’고 물어보면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조금 살만한 동네에 가서 똑같이 물어보면 ‘나무 썩으면 또 새로 해야 하잖아요. 쇠 파이프로 박고 철망을 만들어주세요’ 이렇게 요구합니다. 재료를 지원해 주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아닙니다. 해주세요’ 하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가난할수록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고, 스스로 하려고 하는데, 살만할수록 요구조건이 많고 자립적인 운동이 어렵다는 것을 이번에 답사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살만해질수록 세탁기, 냉장고, 자동차, 이런 것들을 점점 더 원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세탁기, 냉장고, 자동차를 다 가지고 사는데도 번뇌가 없나요? 우리는 우리대로 또 고뇌가 많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민주화됐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안에서는 온갖 일이 일어나서 싸우잖아요. 지금 부탄의 산골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뉴스에 보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가난하게 살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을 따라가는 길을 가서는 괴로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비록 가난한 사람 축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볼 때는 큰 부자 축에 들어갑니다. 여러분들이 노력해서 돈을 더 버는 것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괴로워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불만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돈이 더 필요하면 더 벌면 됩니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면, 첫째, 내가 편안해집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원망할 일이 없어지고,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일이 없어집니다. 둘째,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일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도 할 수 있고, 사회에서 차별을 없애고 평등하게 나아가도록 할 수도 있고, 정의를 실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뭔가 내가 세상을 위한 일들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 절약하면 가난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마실 물을 제공할 수도 있고,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자신의 존재가 존엄함을 느끼게 되고, 하루라도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위에 앉아서 온갖 걸 누리면서 해탈을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면서도 고통받는 중생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에 이 법을 알면 누구나 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보편적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법은 바르기도 하지만 보편성을 갖기 때문에 누구나 다 깨달을 수 있다는 뜻에서 인도말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말합니다.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여러분 모두 수행 정진해서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쳐서 괴로움이 없도록 해주기 위해 즉문즉설, 깨달음의 장, 정토불교대학, 행복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마실 물, 식량, 집, 약이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합니다. 이런 수행자를 우리는 ‘보살’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성도재일을 기해서 여러분 모두 발심하여 보살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스님의 법문이 끝나자, 정토회 회원들은 부처님이 성도한 의미를 다시 새기며 다 함께 108배 정진과 명상을 했습니다.

법회를 마친 뒤 스님은 BNF 재단 비구니 스님들이 준비해 준 아침 식사를 하고, 한국과 소통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어 카르마 치팀 님을 만나기 위해 팀푸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10시 45분에 초에고 센터(Choego Center)에 도착하자 카르마 치팀 님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작년 7월에 만난 이후로 5개월 만입니다.

“어서 오세요, 스님. 젬강 답사는 어떠셨습니까?”

스님은 답사를 하며 느꼈던 점을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젬강주를 전체적으로 돌아보니 시범사업을 계획했을 때보다 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아 보였습니다. 시범사업 지역은 도로가 닦여 있어서 생활 수준이 비교적 나은 편이었어요. 이번에 방문한 지역 중 좁카 게옥 같은 곳은 상황이 훨씬 열악했습니다. 보통 한 치옥에 집이 없는 가구가 2~3 가구였던 데 비해, 좁카 게옥의 치옥에는 10 가구 이상이 집이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상했던 것보다 집을 짓는 일이 두 배는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우선, 집 내부에 칸막이가 없는 집에는 칸막이를 설치하고, 물건을 수납할 선반이나 식탁 등을 마련하려 합니다. 방 안에서 나무를 떼는 집에는 아궁이와 연통을 설치하고, 화장실도 청결하게 수리할 계획입니다. 기둥이나 바닥이 낡아 구조적인 보수가 필요한 집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을 고치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에 예산을 미리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카르마 치팀 님은 스님에게 구체적인 상황을 물으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나무는 어떻게 마련하시려고 합니까?”

“시골에서는 집을 짓기 위해 나무가 필요하면 정부 허가를 받고 인근 숲에서 나무를 구한다고 합니다. 나무 크기에 따라 가격을 매긴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나무가 준비되어 있는 집은 시멘트와 지붕만 추가하면 되지만, 나무조차 준비되지 않은 집은 경비가 더 많이 들 것 같습니다. 준비 정도가 가구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별 상황에 따라 지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예상되는 문제는 새집을 짓는 경우 기존 집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게 되니, 집을 수리하려던 사람들도 새집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웃음)”

스님은 얼마 전에 리마퐁 지역에서 수로를 만들었던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카르마 치팀 님이 여러 차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beautiful!”(멋집니다!)

스님은 답사에서 느꼈던 점을 덧붙였습니다.

“답사를 하다 보니 물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기보다는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서 물 사용량이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인 것 같습니다. 세면이나 화장실 사용 빈도가 늘다 보니 주민들이 집집마다 수도를 설치하고 싶어 했습니다. 심지어 농번기에 농장에서 거주하는 경우, 농장에도 수도를 설치하고 싶어 하기도 했습니다. 기존 상수원만으로는 물이 부족해 몇 킬로미터 떨어진 새로운 상수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상수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물탱크 크기를 키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카르마 치팀 님은 주민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하던가요?”

“네, 전반적으로는 적극적이었지만, 생활 수준이 괜찮은 마을은 적극성이 다소 떨어지고, 해달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대나무 울타리를 철조망으로 교체해 주기만 해도 감사하다는 마을이 있는 반면, 조금 사는 마을에서는 쇠 파이프와 철 그물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나왔습니다. (웃음)”

스님은 행정 인력 충원에 대한 고민도 나눴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면 정부의 행정력이 얼마나 뒷받침될지 걱정됩니다. 예를 들어, 집을 짓기 위해서는 가족 수와 준비된 자재 여부 등 기본적인 조사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사가 끝나면 기술자가 견적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제안서를 작성해 승인받아야 합니다. 이후 자재를 공급하고, 현장에서 자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아마 이 문제는 각 지역 주지사와 협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조사가 완료되면 인력을 보강하고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은 답사 내용과 고민을 상세히 공유하며 약 1시간 20분 동안 카르마 치팀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치팀 님은 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여러가지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2월에 트롱사 답사까지 마무리하면, 그때 다시 찾아뵙고 전체 내용을 다시 상의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무 도움도 못 드려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아직은 치팀 님에게 구체적으로 ‘이것을 도와주세요’ 할만한 단계가 아니니까요.”

대화를 마친 후 산마루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고, 15일간 부탄 답사를 함께 하며 통역을 해준 린첸 다와 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번에 린첸 님이 함께해서 정말 수월하게 답사를 했습니다.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마을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건강히 일정 잘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뵙겠습니다.”

1시 30분에 BNF 재단으로 돌아와 정비를 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에는 BNF재단으로 트셰링 양돈(Tsheyring Yangdon) 왕대비님이 찾아왔습니다. 트셰링 양돈님은 현재 부탄 제5대 국왕의 어머니이자 국가와 국민의 복지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헌신하고 있는 분입니다.

스님은 왕대비님에게 이번 젬강 답사를 통해 보고 느낀 점들을 나누며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통역을 할 사람이 없었기에 짧고 간단한 단어들을 사용해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앞으로의 계획도 공유했습니다.

“2월에는 트롱사 지역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답사를 마치고 2월 12일에 팀푸로 돌아오면, 그때 다시 찾아뵙고 전체적인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왕대비님도 부탄에서 진행 중인 활동에 관심을 보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네, 스님께서 부탄에서의 활동을 저에게도 이렇게 공유해 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4시 30분에 대화를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이었기에 몇 차례 멈춰 쉬어야 했습니다.

저녁에는 숙소에서 원고를 수정하며 남은 하루를 휴식으로 보냈습니다.

이로써 15일간의 부탄 답사 1차 일정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한 후 파로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인도 가야로 갈 예정입니다. 이제 34차 인도 성지순례 일정이 시작됩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37

0/200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5-01-15 06:16:01

길상화

감사합니다

2025-01-11 19:10:52

보리상

네 스님 건강히 잘 다녀오십시오♡

2025-01-11 14:47:43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