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12.5 농업 전문가 미팅, 사회 인사 미팅
“부당한 행동에 분노하는 마음,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지만, 나뭇가지마다 단풍은 여전히 붉은빛을 머금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평화재단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 오전 10시에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4월에 부탄 답사를 함께 다녀온 친환경 농업 전문가 주형로 선생님이 다른 전문가 두 분을 모시고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부탄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시범 사업 중 몇 개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마을 주민들과 여러 가지 사업을 해나갈 예정인데요. 그중에 농업은 어떻게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농수로를 만들고, 모내기 이후 추수까지 지켜본 결과, 농경지 정리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 등 그동안 답사하면서 느낀 점들과 그 현황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얼마 전에 추수할 때 부탄에 한번 가보았습니다. 주 선생님이 지난 4월에 제안한 대로 못줄을 대고 줄을 맞춰서 모를 심은 논이 하나 있다고 해서 수확량을 비교해 봤습니다. 벼가 자랄 때는 다른 논에 비해 잘 자랐다고 해요. 그런데 추수할 때가 되어서 가보니까 수확량이 똑같았습니다. 한국의 벼와 차이점은 키가 엄청 커요. 그래서 벼가 자라면서 서로 엉킵니다. 그러니까 벼 사이를 사람이 지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벼를 벨 때도 밑동을 베지 않고, 중간을 베었습니다. 그리고 농림부 책임자를 만나보니까 정부에서도 아무리 새로운 농법을 알려줘도 처음에는 조금 따라 하다가 아무도 따라 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느낀 점은 섣불리 새로운 농법을 제안하기가 어려워 보였습니다. 주민들이 평생 해온 농법이 있는데, 말만 듣고 따라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시범 농장을 만들어서 실제로 농사짓기도 편하고, 수확량도 많은 것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어야 ‘저 방식이 낫네’ 하고 주민들이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스님은 지속가능한 개발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한 후 그 평가 기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의 일곱 가지 평가 기준

“지속 가능한 개발이 되려면, 첫째, 돈이 적게 들어야 합니다. 둘째, 이용 가치가 높도록 효율적으로 해야 합니다. 셋째, 재료는 가능하면 동네에서 나는 재료를 써야 합니다. 넷째, 기술은 동네 사람이 갖고 있는 기술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이 고칠 수가 없어요. 외부에서 기술을 가져오면 몇 년 사용하다가 고장 나면 그걸로 끝입니다. 다섯째, 다수 주민이 참여해야 하고, 그 혜택이 다수 주민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여섯째,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기뻐야 합니다. 좀 힘들지만 해 놓고 나면 기분이 좋아야지 사람만 너무 고생시킨 결과가 되면 안 되잖아요. 일곱째,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 되었는지 평가를 할 때는 이렇게 일곱 가지 기준을 가지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든지, 혜택이 한 사람한테만 너무 많이 돌아갔다든지, 재료를 전부 외국에서 수입해 왔다든지, 이런 경우는 낮은 점수를 주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생산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농수로를 놓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러나 못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품종 개량을 어떻게 할 것인지, 모내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유기질 비료를 어떻게 넣을 것인지, 이런 내용들은 연구가 많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수를 심는 것, 축산을 하는 것도 앞으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생산 시설을 보강한다든지, 건조 시설을 만든다든지, 창고를 마련해서 출하량을 조절한다든지, 수입이 될 수 있는 것을 지원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생산력은 대부분 약간의 전문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생산력은 곧 수입으로 연결이 되니까 마을 주민 전체가 균형을 맞추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른 분야는 대략적으로라도 방향이 잡히는데, 농업, 축산, 과수는 부탄의 기후와 토양, 사람들의 생활 조건에 맞는 방법을 아직 제대로 못 찾고 있어요.”

스님의 설명을 듣고 주형로 선생님도 적극 공감을 했습니다.

“스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대신에 제가 궁금한 것은 부탄의 1년 내지 2년 정도의 기온, 강수량, 농업 주기 등을 파악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몇 월부터 몇 월까지 농사를 짓는지, 농한기가 언제인지, 그런 정보들을 알면 어떤 작물을 기를지 적절하게 배치를 해볼 수 있습니다. 부탄이라는 나라의 토질과 기후에 맞는 품종과 재배 방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홍성에서 마을 주민들이 협동의 재미를 느끼며 생산성을 높였던 사례가 있는데 부탄에서도 협동 농업 모델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님은 얼마 전 마을 주민들과 농로를 만들기 위해 의논했던 내용을 공유하면서 마을의 논이 어떻게 생겼는지 지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락논입니다. 노인들이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기계가 필요해지기 때문에 농로를 내어야 하는데, 주민들이 자기 논을 일부 내어 놓는 것에 반대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네요. 농로를 내면서 옆에 수로를 같이 붙여서 내면 공사하기가 훨씬 수월하거든요.”

다른 분들도 스님의 제안과 주형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각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저희 같은 전문가가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부탄에 상주하면서 농업 주기를 다 겪어봐야 실질적으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부탄 사람 한 명이 한국에 있는 저희 농장에 와서 직접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저희가 부탄에 가서 설명을 해줘도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한국에 와서 직접 보면 본인 스스로 부탄에서는 어떻게 적용하면 되겠다고 감이 잡힐 겁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2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내년 1월 말, 2월 초에 스님과 함께 부탄에 직접 가서 마을에 살아보면서 부탄에 가장 적합한 농법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기로 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12시에는 평화재단에 사회 인사들이 찾아왔습니다. 요즘 세월이 하 수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시국이 혼란스럽습니다. 실시간으로 뉴스 속보가 쏟아지고 있는데요. 이런 시기에 각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여러 사회 인사들이 스님을 찾아와 조언을 구했습니다.

오후 3시에는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얼마 전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경선 탈락 이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깨달음의 장을 한 후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며 스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스님, 오늘 좋은 말씀 정말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종일 연달아 미팅을 하고 나니 하루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에는 실내에서 업무와 원고 교정을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22일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대화 나눈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부당한 행동에 분노하는 마음,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저는 남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기 싫어하는 욕구와 도덕주의적인 가치관이 강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도덕적, 비양심적으로 행동하며 무책임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고 적개심에 사로잡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정해진 규칙을 어기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그리고 대회에서 남들 모르게 부정행위를 저질러서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 심사 위원이 뒷돈을 받고 부정하게 승부 조작을 하는 경우 등입니다. 부당한 일, 선 넘는 행위를 마주했을 때 그에 대응하는 제 행동은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마음은 평온하지 못하고 그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괴롭습니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마음으로 수행해야 할까요?”

“내가 ‘화가 난다’, ‘괴롭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는 것은 바로 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말을 들은 내가 화가 나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내가 화가 났다’, ‘달이 뜨는 것을 보고 내가 슬펐다’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수행자라면 ‘나의 문제다’ 하는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태를 내버려 두어야 할까요?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달이 뜨는 게 싫으면 내가 창문을 가리면 돼요. 달이 뜨지 않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구가 돌아가는 것을 멈출 힘이 부족하니 내가 달을 볼 수 없도록 창문을 가리는 방법을 쓴다는 얘기입니다. 구름이 지나가는 걸 보고 화가 난다 해도 내가 구름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까? 만약 멈추게 만들 수 있다면 멈추면 돼요. 멈추게 할 수 없다면 창문을 닫으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일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어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일을 보고 화를 내는 것 또한 내 문제입니다. 그 일에 대응을 할 거냐 말 거냐 하는 것은 나의 선택에 해당합니다. 화가 나서 대응할 수도 있고, 화가 나지 않아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혹은 화가 나지 않아서 외면할 수 있고, 반대로 화는 나지만 외면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나서 대응을 하게 되면 싸움이 커질 수 있죠. 또한 화는 나는데 외면하게 되면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질 겁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가 그 사람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런데 화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도 그런 일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일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고, 옳지 않은 행동을 말릴 수 있습니다. 화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내가 힘에 부치는 일이라면 물러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한테 손실이 적고, 화가 난 상태에서는 나한테 손실이 큰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런 일에 대응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 일에 화가 나는 것은 본인에게 손해라는 거예요. 그러니 화내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화를 안 내고 외면하라고 가르치신 것은 아닙니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니까 규칙을 정할까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없는데도 규칙을 정할까요?”

“규칙을 어긴 사람이 있으니까 규칙을 정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 있으니까 훔치지 말라는 규칙을 정할까요? 훔치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런 규칙을 정할까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 있으니까 훔치지 말라는 규칙을 정합니다.”

“부처님이 ‘술 먹고 취하지 마라’ 하신 것은 술 먹고 취해서 행패 부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술을 밥 먹듯이 먹고도 취하거나 행패 부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술 먹고 취하지 말라는 계율을 만들 필요가 없었겠죠?”

“예, 그렇습니다.”

“규칙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예요. 그걸 어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규칙도 정해지지 않습니다. 규칙 자체를 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열 명에 두 명일 경우 규칙을 만듦으로써 열 명에 한 명으로 줄이는 것이 규칙의 존재 의미입니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아주 없앨 수는 없어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어지면 규칙 자체도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없애는 게 아니라 제로에 가깝도록 할 뿐입니다. 앞에서 질문자가 열거한 일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들이에요. 성추행도 있는 일이고, 성폭행도 있는 일입니다. 타인 사이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도 벌어지는 일입니다. 윤리 도덕이 있으니 바깥에서보다는 가족 안에서 덜 일어나지만, 어떤 특수한 환경 아래서는 가족 간에 더 많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규칙을 정하는 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줄여서 피해를 줄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처벌을 하는 것은 원래 규칙을 어기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처벌을 복수로 여기고 있습니다. 자꾸 보복을 하려고 해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보면 때려주고 싶다든지, 죽여 버리고 싶다든지, 이런 마음을 갖는데 그것은 복수의 개념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일, 규칙을 어기는 일은 세상에 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윤리와 법률을 내세워 가능하면 그런 일이 더 이상 늘지 않도록 하려는 거예요. 윤리에는 처벌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저 비난을 할 수 있을 뿐이죠. 눈치를 보도록 만드는 겁니다. 법률로 정해 놓은 것은 처벌을 해서라도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을 줄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법으로 정해 놓아도 오히려 그런 일들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 스님. 잘 들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제가 부당한 피해를 입기 싫어하는 욕구와 도덕주의적 관념에 사로잡혀서 계속 화가 일어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수행할 때 이런 것들을 조금 내려놓으려고 계속 노력하는데도 그런 욕구와 관념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좀 더 효과적인 수행 방법이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질문자가 도덕적인 관점을 갖는 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본인이 도덕적으로 살면 되는 것인데, 질문자는 지금 자신도 비도덕적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있으면서 자꾸 남에게 도덕을 적용하려고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꾸 남에게 간섭하고 싶은 거예요. 도덕이란 남보고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차를 운전할 때 신호등과 차선, 주차 구역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교통 법규를 어길 때는 필요에 의한 일이었다고 하면서 남이 어기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화를 내지요. 본인은 가능하면 규칙을 지키되, 남이 규칙을 어길 때는 ‘아, 나도 교통 법규를 어기고 싶을 때가 있지’, ‘저 사람이 바빠서 저러는구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강의 시간이 촉박할 때는 갓길이라도 막 달려가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의 행동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정신적인 질환 문제로 자기 통제가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어떤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옆에서 볼 때는 규칙을 어겼다는 상황 하나이지만, 개개인마다 물어보면 거기에는 수백수십 가지의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내가 화가 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는 가능하면 규칙을 잘 지키려고 하는 것이 나에게 피해가 적습니다. 과보가 적게 따른다는 말입니다. 이런 관점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가 자꾸 저절로 화가 일어난다고 한다면 어릴 때 입은 트라우마가 있거나 가정 환경적으로 규칙에 대한 관념이 강하게 자라서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혹은 가정 폭력을 보고 자랐을 수도 있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적이었다면, 어릴 때 어머니가 피해를 입는 것을 보며 어린 마음에 같이 피해자가 되어 아버지를 미워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분노하는 감정이 생기거든요. 어릴 때 어떻게 해서 생성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질문자에게는 그런 카르마가 있습니다. 본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습에서 일어나는 문제라는 거예요.

자신의 습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한번 관찰해 보십시오. ‘아, 내가 이런 말과 행동에 특별히 민감하구나’ 하고 자기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에 따라 이해관계에 특별히 민감한 사람도 있고, 성적인 문제나 명예에 민감한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습관에 반응하는 것을 다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화가 날 때 ‘나는 이 문제에 민감하구나’, ‘나는 이것에 대해 시비 관념이 강하구나’ 하고 자신을 알아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고뇌로부터 조금씩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내일은 오전에 조계종 원로 의원이자 서울 전등사 회주이신 동명 스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한 후 차담을 나누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고양시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13번째 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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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그것은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내가 화가 났다’, ‘달이 뜨는 것을 보고 내가 슬펐다’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수행자라면 ‘나의 문제다’ 하는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2025-01-07 22:29:39

김애자

감사합니다

2024-12-13 18:54:54

CACTUS

자신이 화 가 났을때의 생각과 대처함의 설명 너무 이해가 가네요. 자신의 습관에 반응하는것을 남 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감사합니다.

2024-12-08 22: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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