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활동가 100여 명은 오늘도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기도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문경 선유동 연수원 곳곳에 흩어져 모둠별로 공동 울력을 했습니다. 마당에 잡초를 뽑고, 화단을 정리하고, 산책로 주변에 부러진 잔가지와 솔방울을 주웠습니다.
운동 삼아 가볍게 일을 한 후 각자 장갑을 빨아서 바위에 널어두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8시부터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시작했습니다. 청춘캠프가 3일째로 접어들면서 대화의 내용도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2일간의 대화 내용을 토대로 ‘청년의 미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어제 ‘국제자원활동’을 소개하면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JTS 활동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부탄, 캄보디아, 파키스탄, 시리아 등 남아시아와 서아시아에서 JTS가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 모습을 본 후 JTS의 활동 원칙과 그 속에서 청년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스님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그동안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들이 자유롭게 손을 들고 주제에 관계없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직 한 번도 질문을 못해 본 사람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어 보세요.”
여러 명이 손을 들고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아쉽지만 대화의 시간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백중 회향 법회를 생방송하기 위해 문경 수련원 방송실로 향하고, 청년들은 유수 스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들은 1분 스피치 시간을 통해 청년특별지부가 어떤 활동을 했으면 좋겠는지 자유롭게 이야기한 후 전체 투표를 통해 모두가 집중해야 할 한 가지 사업을 결정했습니다. 만장일치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을 해나가 보기로 뜻을 모으고 이후 계획도 함께 논의한 후 대화의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선유동 연수원을 출발하여 문경 수련원 방송실에 도착한 스님은 오전 10시 정각에 백중 회향 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지난 7주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백중 기도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오늘은 백중 기도를 회향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백중 기도를 하는 종교적 의미와 수행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법회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천도재(薦度齋)를 지냅니다. 오늘은 일요일인 만큼 아침반, 저녁반이 다 같이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천도재는 첫째, 나와 직접 관계있는 조상 영가를 천도하는 날입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과 같이 나를 존재하게 해 주신 윗대의 조상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사회적으로는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지탱해 주신 순국선열들, 호국열사들, 산업역군들, 민주열사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들의 영가들도 천도해야 합니다. 셋째, 역사적으로 억울하게 죽은 많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는 날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정성을 기울여 재를 지내야 합니다. 나 개인의 이익만 바랄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재를 지낸 공덕으로 한반도에 전쟁이 없는 평화가 정착되도록 해주십사 하는 원(願)을 세우고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정기 법회를 하는 날도 아닌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엇보다 백중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기도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어서 생중계 현장을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지장전으로 다시 연결해서 무변심 법사님의 집전에 따라 백중 마지막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백중 회향 법회를 마친 후 스님은 다시 선유동 정토연수원으로 돌아와 청춘캠프에 참석했습니다.
청년들은 2박 3일 동안의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소감문을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핸드폰으로 소감문을 작성한 후 모둠별로 모여 앉아 자신이 쓴 소감문을 읽고 나누었습니다.
다시 전체가 한자리에 모여 각 모둠을 대표하여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소감문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공양 바라지를 한 선배 모둠의 소감문 발표를 듣고 모두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청년들은 2박 3일 동안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스님도 청년들의 소감을 경청하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소감문 발표를 마치고 스님이 정리 말씀을 추가로 한 후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는지 질문을 더 받은 후 마지막 대화의 장을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차를 타고 다시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하여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생방송을 했습니다. 지난 3월에 온라인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여 5개월의 교과과정을 수료한 2000여 명의 학생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오후 2시 정각에 졸업식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6개월 동안 사랑과 정성으로 수업을 진행해 준 진행자, 돕는 이, 운영자들이 준비한 졸업 축하 공연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5개월간의 발자취를 담은 졸업생들의 영상도 보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온라인으로 졸업장을 수여했습니다.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자, 받으세요.”
“잘 받았습니다.”
이어서 개근상과 정근상을 수여했습니다. 개근상 수상자들은 특별히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스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졸업생들은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삶의 변화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졸업생을 대표하여 두 명이 소감문을 발표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어려움을 극복해 낸 감동적인 소감문이었습니다. 이어서 졸업생들이 스님에게 졸업 기념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졸업생들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2024년 봄 학기 정토불교대학생 여러분,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입학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개월이 지나 이렇게 졸업을 하게 됐습니다.
출발할 때는 졸업이 까마득하게 보였는데 이렇게 졸업할 때가 되어 입학했을 때를 돌아보면 마치 엊그제 일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무엇이든 지금 할 때는 어렵게 느껴지지만 지나 놓고 보면 다 별일이 아닙니다. 인생을 오래 살면서 얻게 되는 지혜는, 지금 일어나는 어렵고 불안한 일들도 시간이 지난 뒤에 되돌아보면 별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지난 뒤에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알면 그 일을 겪으면서도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져오는 기적
두 분의 졸업 소감을 들으면서 5개월 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분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 모두 크든 작든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줌에 접속해 있는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면 입학할 때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 보입니다. 예뻐 보인다는 뜻입니다. 6개월 동안 성형수술을 받아서 그렇게 달라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얼굴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이처럼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사람들의 관심사는 ‘내 운명이 어떻게 되어 있지?’, ‘내가 전생에 뭘 했지?’, ‘내 사주팔자가 어떻게 되어 있지?’ 이렇게 운명을 알아내서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정해진 운명은 없고, 그것은 다 형성된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운명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스스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지금 크든 작든 자기 변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래서 돈을 들여 화장을 하거나 성형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쁜 얼굴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져오는 기적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들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진행자님, 돕는 이, 반 담당, 담당법사님 등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서 스님은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수행, 보시, 봉사의 삶을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정토회의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되는지 자세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졸업식에 참석하며 느낀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누구든지 지금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소감을 들으며 훈훈해진 마음을 뒤로하고 사홍서원으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을 마쳤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스님은 다시 선유동 정토연수원으로 돌아와 오후 4시부터 청춘캠프 회향식에 참석했습니다. 그사이 청년들은 대청소 시간을 가진 후 사용한 공간을 원래의 모습으로 정돈해 놓고 모두 대강당에 모였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을 한 후 2박 3일 동안 많은 가르침을 준 스님에게 모두가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가장 먼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청년 활동가 여러분, 2박 3일 동안 수련을 잘 마쳤습니다. 이제 자기 집으로, 또 회사로, 또 정토회 청년지부 활동으로, 이렇게 현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현장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
첫째,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요?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한다’라고 생각하지만 자기를 함부로 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나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둘째,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도 내가 나를 소중하게 안 여기는데 누가 나를 소중하게 여겨 줄까요?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겨도 다른 사람은 나를 별로 소중하게 안 여겨주잖아요. 그런데 나도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데 누가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겠어요? 그러니 내가 남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기 위해서도 그렇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기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는 내가 나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달리기를 해서 다른 사람보다 좀 뒤처졌다고, 공 던지기를 해서 다른 사람보다 좀 못한다고, 영어 시험에서 성적이 잘 안 나왔다고, 돈을 조금 적게 번다고, 사회적 지위가 좀 낮다고, 온갖 이유를 붙여서 자기를 하찮게 여깁니다. 사람하고 관계를 맺다가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또는 주식을 샀다가 주식이 좀 떨어졌다고 해서 자기를 하찮게 여긴다면 그것이 어떻게 자기를 사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태도는 자기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지위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났다’ 하며 잘난 체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애들을 학대하지 말라’, ‘남편이나 아내를 학대하지 말라’ 이런 말을 하기 이전에 자기를 학대하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 자기를 진지하게 한번 돌아보세요.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은 이에 대해 ‘자기가 가장 소중한 존재다. 이 세상에 그 무엇과도 견줄 수가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리석어서 자기를 소중하게 여길 줄 모릅니다. 그래서 남도 소중하게 여길 줄도 모르고, 남으로부터 소중하게 여김을 받을 줄도 모릅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도 모르고, 남을 사랑할 줄도 모르고, 남으로부터 사랑받을 줄도 모릅니다.
매일 한 시간 정진을 해야 하는 이유
그래서 먼저 자기가 소중한 줄 알아야 해요. 자신을 하찮게 여기거나 괴롭히지 않아야 합니다. 차바퀴가 고장 났으면 갈면 되는 것이고, 창문이 깨졌으면 창문을 교체하면 되는 것이지 차를 버릴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어리석어서 그렇게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한 시간은 다른데 신경 쓰지 말고 자기에게 좀 집중하라는 거예요. 하루 종일 자기에게 집중하면 제일 좋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매일 한 시간은 자기에게 관심을 좀 가져보라는 겁니다. 아침마다 정진을 해보면, 내가 나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자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가 묻었으면 씻고, 응어리가 졌으면 좀 풀고, 학대를 했으면 보듬어 안아주세요.
아침마다 정진하자고 하면 여러분은 ‘일찍 일어나기가 어렵다.’ ‘다리가 아프다’ 하면서 자꾸 힘들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시간에 산에 놀러 가자고 하면 망설임 없이 가잖아요. 시간이 없다 해놓고 여자 친구한테 전화 오면 바로 뛰어나가고요. 그게 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다른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방증입니다.
자기를 소중히 여겨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천하 모든 사람이 다 나에게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세요. 그건 그들의 눈에 그렇게 비친 것뿐입니다. ‘그들이 볼 줄 몰라서 그런 거지, 남이 뭐라 하든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혹시 잘못 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면 상대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는 있어요. ‘혹시 내가 잘난 척을 했나?’ 이렇게 한번 체크는 해볼 필요가 있지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건 그 사람이 보는 관점이니 뭐라고 하든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금덩이를 보고 남들이 은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게 은이 되나요? 여러분들이 자기를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니까 자존감이 없어지고 자꾸 남의 말에 흔들리게 되는 겁니다.
자기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말의 뜻은 자기를 함부로 하지 않고 괴롭히지 않는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리석어서 그럴 수가 있기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한 시간은 자기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겁니다. 아침에 하루를 시작할 때 자기를 온전하게 해서 출발하라는 거예요. 직장에 출근해서 정신없이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함부로 할 수도 있으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기를 온전하게 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때가 묻었으면 씻고, 어리석었으면 어리석음을 버리고, 잘못한 게 있으면 뉘우치고, 그래서 다시 자기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신을 온전하게 한 상태에서 나라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것은 희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길이다’ 하고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그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자꾸 ‘남이 알아주나?’ 이런 생각을 하니까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내 공로를 몰라준다’, ‘나는 너를 사랑했는데 너는 내 마음을 몰라준다’, ‘내가 스님을 얼마나 좋아하고 따랐는데 스님이 나를 못 본 체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아무리 헌신을 해도 자기중심이 없으면 그 헌신마저도 원망의 과보가 따르게 됩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르게 갖는 것을 수행이라고 해요. 정토회는 수행을 바탕으로 하는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들, 적어도 그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정토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수행을 도와주는 일도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도 우리가 좀 도와주자는 거예요.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구호 사업도 하고 평화 운동도 하지만, 그 이전에 수행자입니다. 수행을 기본으로 하고 사회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정치를 하더라도 수행자가 세상의 필요에 의해서 그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수행자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에요.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다고 해도 그건 부차적인 거예요. 수많은 일들을 해서 상을 받았다 한들 본인이 괴롭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러니 정진을 해서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자기를 괴롭히지 않는 사람,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리가 아프면 좀 아플 뿐이고, 허리를 다쳤으면 다쳤을 뿐이고, 못 걸으면 못 걸을 뿐이지, 그로 인해 괴로울 이유는 없습니다. 다리가 아프면 지팡이를 짚으면 되고, 못 걸으면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됩니다. 그것도 못하면 그냥 참선하고 앉아 있으면 됩니다. 멀쩡한 다리도 안 움직이고 참선을 하는데, 아픈 다리를 그냥 두고 참선하는 게 무슨 어려운 일입니까. 이렇게 수행적 관점을 좀 분명하게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괴롭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래서 괴롭습니다’, ‘저래서 괴롭습니다’라고 주장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건 괴로워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면 또 ‘저것 때문에 괴롭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또 ‘그것도 괴로워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면 또 ‘이것 때문에 괴롭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몇 번 주고받다 보면 마치 자신이 괴롭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말합니다. 그래서 ‘그래, 그렇게 괴롭고 싶으면 실컷 괴로워해라’ 하고 말하게 되죠. (웃음)
이렇게 수행을 바탕에 깔고 나서 세상에 좀 쓰임새가 있고 남에게도 보탬이 되는 보람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보람된 일을 같이 해보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혼자 하기에는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도 해보니 힘든데 무슨 근거로 여러분에게 헌신적으로 하라고 말하겠어요? 그러니 할 수 있는 만큼 조금만 하라는 겁니다. 기부도 다 하라는 게 아니고 번 것 중에 일부만 하고, 시간도 조금만 내고요. 먹는 것도 조금 줄이고, 입는 것도 조금 줄여 보세요. 이렇게 조금만 조절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가볍게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개개인은 미미할지 몰라도 그것을 모두 합치면 사회적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고 ‘그거 괜찮겠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젊은 사람이어야 할까요? 나이 든 사람이어야 할까요?”
“젊은 사람이요”
“그런데 요즘은 이런 얘기를 듣고 나이 든 사람들만 심장이 뛰어서 이런 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젊은 사람들은 참여가 저조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심장이 없나 봐요. 아니면 귀에 안 들리는지 보청기를 하나씩 사줘야 할 것 같아요. (웃음)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렇다고 각오나 결심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각오나 결심을 한다고 해서 며칠 가겠어요? 뜻대로 안 되면 자학만 하게 됩니다. 그러니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조금만 해보세요. 해보고 좋으면 좀 더 하고, 이 활동이 정말 좋으면 공동체에 아예 들어오면 됩니다. 그러니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마세요. 여러분들 한 명이 더 참여한다고 해서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겠어요? 여러분들 한 명이 안 한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나빠지겠어요? 아니에요. 그러니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 이런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나 내 작은 힘이라도 하나 보태면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도움이 좀 되겠죠. 그러니 ‘안 해도 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니깐 한번 해보자’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해 보면 좋겠어요. 50년 전에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목숨 걸고 운동을 해야 했어요. 항상 신발을 문 옆에 두고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으로 살았지만, 지금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 시대는 여러분들이 껄떡거리지만 않으면 돼요. 승진하려고 껄떡거리고, 일은 조금 하고 돈은 많이 받으려고 하고, 주식이나 코인을 사면 갑자기 돈이 뻥튀기되어서 들어오는 줄 알고, 이렇게 우리는 투기적 관점을 갖고 살아갑니다. 사회에서 내가 지능이 좀 모자라든, 기술이 좀 모자라든, 돈이 좀 없든, 키가 좀 작든, 이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조금 더 당당하게 살면 좋겠어요. 비굴하게 자꾸 껄떡거리지 말고요.
본인은 키도 작고 인물도 별로면서 결혼 상대는 늘 잘 생기고 키 큰 사람을 원하면, 첫째, 상대가 나를 보고 좋아할 가능성이 낮잖아요. 너무 목표를 높이 세우면 도전을 해도 안 될 확률이 높습니다. 둘째, 도전할 수는 있습니다. 투기도 하는데 뭔들 못하겠어요. 그러나 안 됐다고 울지는 말라는 겁니다. 심지어 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본인을 학대하잖아요. ‘내가 키가 작아서 안 됐다’, ‘나는 못 생겨서 안 됐다’, ‘나는 코가 낮아서 안 됐다’ 자꾸 이렇게 자기를 학대하게 되면 결국 성형수술을 하러 가게 되는 일도 벌어지는 겁니다. 키가 작으면 아예 신발 속에 요소 비료를 넣고 다니든지요. 혹시 클지 압니까? (웃음)
이런 행동들은 모두 여러분의 인생 낭비입니다. 무얼 하라, 무얼 하지 마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인생을 너무 낭비하지 말라는 겁니다. 넘어져도 항상 배울 게 있습니다. 투자를 해서 실패를 했으면 거기에서 뭐든 배워야 할 것 아닙니까. 연애를 해서 헤어져도 ‘상대는 저렇구나!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저는 여러분이 너무 위축되지 말고 젊은이답게 좀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관상이 확 바뀌어버려요. 여러분의 얼굴을 3일 전과 비교해 보면 지금 엄청 많이 밝아져 있어요. 3일만 수련을 해도 이렇게 얼굴이 밝아지는데 매일 꾸준히 수행을 하면 관상이 바뀔 수가 있습니다.
제일 못생긴 사람이 달마대사 아닙니까. 그런데도 달마대사가 훌륭하니까 집집마다 몇 백만 원씩 주고 달마대사 그림을 모셔놓고 그러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의 마음이 바뀌면 관상도 금방 바뀌어버려요. 멀쩡한 얼굴을 두고 왜 쓸데없이 성형을 합니까? 눈은 크고 예쁜 게 중요해요, 잘 보이는 게 중요해요? 보라고 눈이 있는 것이지 모양이 예쁘라고 눈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눈이 크고 동그라면 먼지만 많이 들어갈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왜 늘 남한테 끌려 다녀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도록 만들어야죠. 자주 모여서 뭐든지 의논을 해보세요.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정토회 활동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혹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좌절하거나 방황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잘됐다. 봉사할 시간이 생겼네’ 이렇게 생각하고 정토회에 나와서 봉사를 하면 되니까요. 봉사를 하다가 또 다른 회사에 원서를 넣어보고 합격이 되면 ‘죄송합니다.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직장을 다니면 됩니다. 이렇게 좀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각오와 결심을 하면서 너무 무겁게 살지 말았으면 해요. 함부로 살아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얼마나 살다가 죽으려고 그렇게 무겁게 살아요?
청년특별지부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보세요. 그래서 ‘특별지부’라고 이름을 붙여 놓은 겁니다. 특별히 활동을 할 수 있게 길을 열어 놓았으니 마음껏 활동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직장을 그만둘 필요가 없어요.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힘을 모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다른 일에 투여할 시간을 줄여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설계를 해서 추진해 나가 보시기 바랍니다. 특별지부의 ‘특별’이라는 의미를 최대한 활용해 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큰 박수와 함께 회향식을 마쳤습니다.
다 함께 연수원 앞마당으로 나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청년특별지부 파이팅!”
청년들은 2박 3일 동안 특별히 시간을 내어준 스님에게 모두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스님도 연수원에 상주하는 법사님들과 인사를 나눈 후 저녁 6시가 넘어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모두 수고했어요.”
차가 넓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스님은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해가 저물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2시간 달린 후 저녁 8시가 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병원 진료를 다녀온 후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달아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