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6.14 해외 참가자 연수, 경주 남산 순례, 즉문즉설
“유독 남편에게만 화가 나요”

안녕하세요. 두북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제 6.13만인대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북미 동부와 서부,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100여 명의 활동가들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오늘은 해외에서 온 참가자들을 위해 경주 남산을 안내하고,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아침 일찍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새벽 5시 30분에 통일전 주차장에 도착하자 곧 해외에서 온 활동가들이 탄 버스도 도착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버스에서 내리자 나지막한 경주 남산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어제 6.13만인대법회는 잘 참석하셨나요? 날이 뜨거웠는데 괜찮았어요?”

“네,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행사하는데 뭐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멀리서 오셨어요? 돈이 남아돌아서 그래요?” (웃음)

스님은 경상도식으로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일본, 필리핀,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호주, 유럽, 중국, 미국, 캐나다, 홍콩, 네팔 등 전 세계에서 6.13만인대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고, 방문한 김에 서로 멤버십을 다지고 정토회 활동의 관점을 잡기 위해 2박 3일 동안 연수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경주 남산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이고, 통일 신라의 황금기를 보낸 지역이기 때문에 많은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신라의 불교는 귀족 불교와 민중 불교로 나뉩니다. 귀족 불교는 왕족을 중심으로 하는 황룡사와 불국사 같은 절들이 대표적이라면, 민중 불교는 경주 남산을 중심으로 해서 전해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들과 유물, 유적이 있습니다.

민중 불교의 중심지, 경주 남산

삼국유사에는 귀족 불교를 비판하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령 귀족 불교를 대표하는 큰 사찰에 초라한 사람은 못 들어가게 했는데, 그 사람을 왕이 넣어주었습니다. 왕이 나오면서 ‘너 어디 가서 왕이 참석한 행사에 참가했다고 자랑하지 마라’ 하고 말했더니 그 초라한 사람이 ‘임금도 어디 가서 부처님의 진신이 참가한 행사에 참가했다고 자랑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고는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말을 타고 쫓아갔더니 경주 남산 기슭에서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민중 불교의 흔적들이 대부분 경주 남산에 있습니다.

불국사 같은 절에 가면 불단 위에 부처님이 황금빛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당시 서민들은 절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웠고, 법당에 들어가도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으며 그저 멀리서 절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주 남산에 있는 부처님들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한 없이 만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경주 남산의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훨씬 더 친숙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유사 기록을 보면, 대부분 부처님이나 보살이 사람의 모습, 특히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부처님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부처님이나 보살이라고 상상하지 못하고 쫓아내 버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바로 불보살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자장율사도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백일기도를 하는데, 어떤 거지가 와서 자장율사를 보겠다고 했습니다. 시중드는 사람이 ‘스님은 기도 중이니 방해되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래도 보겠다고 하니 시중드는 사람이 자장율사에게 묻자 ‘미친 사람인가 보다, 돌려보내라’라고 하자 그 거지가 ‘돌아가리로다, 돌아가리로다. 아상이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보겠는가’ 하고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제야 보니 그 거지는 자장율사가 친견하고자 백일기도를 한 문수보살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부처님이 휘황찬란하거나 신비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우리 삶 속에 존재한다는 신앙을 보여줍니다. 경주 남산은 그런 신앙을 간직한 민중 불교의 중심지입니다.”

스님은 경주 남산 지도를 가리키며 오늘 순례할 코스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원래 스님도 함께 경주 남산 순례를 하려고 했는데, 지난주에 산행을 여섯 시간 하면서 다리를 다쳐 걷는 것이 힘들다며 대중에게 양해를 구하고 법사님들에게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법사님들이 잘 설명해 줄 겁니다. 순례 마치고 산을 내려와서 오후에는 여러분의 어려움을 듣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해가 나기 전에 산을 올라가야 시원할 겁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입재식을 마친 후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곧바로 경주 남산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순례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산행이 가능한 사람은 염불사지를 지나 칠불암을 참배하고,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지나, 천룡사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틈수골로 내려오는 코스로 순레를 하였고, 산행이 어려운 분들은 경주 남산 주위에 평지 길을 걸으며 순례를 하였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스님은 해외활동가들에게 인사를 하고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에는 실내에서 업무를 본 후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2시부터 해외활동가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땀에 흠뻑 젖은 채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모두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남산 순례 잘하셨어요?”

“네.”

“땀도 좀 흘리셨어요?”

“땀이 많이 났어요.”

“경주 남산의 높이가 494미터밖에 안 되는데 무슨 땀을 그렇게 흘리셨어요? 산에 다녀와서 그런 게 아니라 날씨가 더워서 그랬나요? 아침에는 괜찮지 않았어요?”

“천룡사에서 정진을 하느라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이어서 그동안 활동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정토회 활동부터 개인 고민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주위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지내지만 유독 남편에게만 화가 많이 일어난다며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유독 남편에게만 화가 나요

“제가 살면서 일어나는 감정들은 화보다는 주로 긴장하거나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 그리고 위축되고 의기소침해하는 것입니다. 화에 대한 여러 법문도 찾아보았는데, 제가 화가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보통 제 친구나 직장동료들에게 화가 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 화가 나더라도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넘깁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시비분별도 강하지 않으며 화가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주변에서는 저를 주로 착하고, 이해심이 크며,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남편에게만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막상 결혼해 보니 남편에게 시비분별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남편이 굉장히 못마땅하며, 이해가 안 되고, 화와 분노가 끓어오르게 합니다. 이런 저를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거나, 술을 끝까지 마시려고 할 때입니다. 가게나 어디에 가서 사람들에게 비판적이거나 지적하는 언행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가게에 갔을 때 어떤 손해를 보았다거나 서비스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꼭 짚고 넘어갑니다. 남편이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쏘아붙인다는 느낌이 들면 저는 화가 나고 시비분별을 하게 됩니다. 그때 저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며, 남편은 못 되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법문 듣고 공부하면서 머리로만 옳고 그름은 없으며 사람은 각자 다르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남편의 행동을 보면 완전히 틀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에게 일어나는 강한 시비분별을 제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자꾸 긴장하거나 불안이 많다는 심리의 핵심은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잘 보이고 싶을 때 자꾸 긴장하거나 불안해하죠.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기분이 좋죠? 어제 뙤약볕에 행사를 치렀지만, 내빈들께서 ‘오늘 행사가 참 좋았습니다. 이런 행사는 정토회만 할 수 있을 거예요’ 하고 말씀하시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뙤약볕에서 이게 뭐 하는 거예요?’ 하는 반응이 오면 아무래도 기분이 덜 좋아요. 이런 말을 들어도 기분이 좋다면 저는 그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분이 다르기 때문에 행사를 좋게 보는 분도 있고 나쁘게 보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이번 행사를 사람들이 다 좋게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식 대로 봅니다. 내가 바라는 걸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기도 어렵습니다. 저마다 원하는 걸 다 이루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불안하거나 긴장이 된다면 ‘내가 잘 보이려고 하는구나!’,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자각해야 합니다. 자각하면 긴장이 조금 풀려요. 긴장이 잘 안 풀어진다면 그건 자각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긴장은 계속 유지됩니다. 긴장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은 잘 보이고 싶다는 것이고, 긴장하고 싶지 않다면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움켜쥐고 있으면 긴장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긴장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는 긴장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아요. 살 빼고 싶다는 분에게 음식을 먹지 말라는 말씀도 드리지 않습니다. ‘살 빼고 싶으시면 음식을 줄이셔야 합니다. 많이 먹고 싶다면 살찌는 것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려요. 살은 빼고 싶은데 먹는 걸 못 참겠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원하는 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 원인과 해결책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원인을 제거해서 편안하게 살 건지, 아니면 원인을 그대로 두고 과보를 받아들일 건지, 이것은 질문자의 선택이에요. 어떤 제삼자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한텐 화가 덜 나는데 남편에게만 난다거나, 남편은 괜찮은데 아이한테만 화가 난다면, 그 사람에게 내가 그만큼 집착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부부 동반 모임으로 식당에 갔는데 어떤 부인의 남편이 반찬 투정을 하면 기분까지 나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내 남편이 그러면 화가 납니다. 왜냐하면 남편을 나와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사람들에게 밉보이는 게 내가 사람들에게 밉보이는 것과 똑같이 느껴지는 겁니다.

‘내 남편이니까 너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당신이 적어도 나와 같이 살려면 그러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럴 때는 내 남자, 내 남편이란 생각을 내려놓아야 해요. ‘그냥 한 사람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남들이 비판을 하면 ‘비판을 많이 하는구나’ 이렇게 봐야 하는데, 같이 사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걸 ‘동일시’라고 그럽니다. 여러분들도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어떤 스님이 이렇다 저렇다 할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데 법륜스님이 이렇다 저렇다고 하면 기분이 딱 나빠질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법륜스님을 자기와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스님을 두고 저렇게 말하나?’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다른 집 아이가 성적이 떨어진 건 기분 나쁘지 않은데 내 아이가 꼴찌를 했다고 하면 받아들이기 어렵잖아요. 모두 다 자기와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잘나고 싶은 마음과 똑같은 심리예요.


상대를 자기와 동일시하면 ‘적어도 내 남자는 그러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남편은 나와 결혼했을 뿐이지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는 거예요. 단지 나하고 결혼했을 뿐인 겁니다. 아이는 나에게 태어나서 자랐을 뿐이지 아이에게는 아이의 인생이 있는 거예요. 그걸 나와 동일시해서 내 뜻대로 하려니까 힘들어지는 겁니다.

원래 가까이 있으면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스님도 비서실에 있는 사람한테 잔소리를 많이 하겠어요?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분한테 잔소리를 하겠어요? 가까이 있으면 자꾸 눈에 보이니까 이런저런 지적을 하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서로 상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고마움을 모르는 건 또 아닙니다. 고마움을 알지만 고마움에 대해서는 말을 잘 안 합니다.

우리가 어제 큰 행사를 했잖아요. 행사가 끝나고 나면 잘한 것부터 먼저 평가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법문 할 때 마이크에서 하울링이 너무 울렸어. 그거 왜 그래?’ 이런다든지 ‘이쪽에는 마이크 소리가 잘 안 들렸다’ 이렇게 지적을 먼저 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지만 행사는 괜찮았다는 것이 사람들의 평가 아닙니까? 그러니 고마움이 사실은 우선이에요. 고마움이 바탕에 깔려있는 가운데 굳이 흠이 있다면 이러이러한 몇 가지 흠이 있다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얘기를 하다 보면 이렇게 평가를 잘하지 않게 됩니다. 문제 있는 것부터 먼저 이야기를 하게 되죠.


가까이에 있는 사람일수록 티끌같이 작은 문제를 먼저 얘기하고 좋은 점은 말을 안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상처를 주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상대에게 지적을 받을 때는 기분은 조금 나쁘지만 ‘그래도 가까이 있으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이렇게 받아줘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지적할 때는 ‘나와 자꾸 동일시해서 문제를 제기하는구나’라고 생각해서 지적을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상대가 지적하는 건 좋게 받아들이되, 그러나 나는 가능하면 지적을 안 하는 게 좋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가 얼마나 잘났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남자를 만날 수 있겠어요? 지적을 잘하고 똑 부러지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화끈한 면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살아보면 독선적이어서 힘듭니다. 반대로 사람이 순해서 결혼했는데, 살아보면 맺고 끊는 것이 없고 줏대가 없어서 힘듭니다.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다 그렇게 삽니다.

성질도 더럽고 일도 못 하면 벌써 헤어졌지, 누가 같이 살겠어요? 그런데 성질은 더러운데 일은 잘하니까 같이 사는 거예요. 일도 못 하는데 성질까지 더러우면 쫓아내 버리겠죠. 그런데 일은 좀 못해도 성질은 편안하니까 일 못한다고 나무라다가도 다시 또 살게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같이 사는 건 다 살만한 이유가 있어서 같이 사는 겁니다. 질문자도 힘들다고 하기는 하지만 다 살만한 이유가 있어서 같이 살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살 것인지는 내 선택이에요. 같이 안 살 거면 모르겠는데 어차피 같이 살 바에야 상대를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시비하면서 괴롭게 사는 것보다는 나 한 명이라도 행복하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요? 몇 년 같이 살아봤더니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생긴 대로 두자’ 이렇게 입장을 정하고 안 싸우고 살든지, 헤어지든지, 그건 질문자가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문제인 거예요. 질문자가 아직 자신에게 손해가 덜 나도록 사는 지혜가 없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행복을 수치화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제 직업을 가지고 행복을 전할 수 있을까요?

  • 요즘 한국 정치가 많이 시끄럽습니다. 이 정국이 어떻게 나아갈 것이라고 보시나요?

  • 마음이 울컥할 때가 있어요. 갱년기 증상인가 싶었는데, 너무 열심히 하는 업식 때문에 몸이 피곤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상태로 계속 활동을 해도 될까요?

  • 용성조사님의 일대기를 볼 때마다 너무 아쉬운 게 시자였던 사람이 밀정이 되어 일제의 일망타진을 당했다는 겁니다.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요?

  • 현충원 투어를 갔더니 용성조사님의 위패만 있었습니다. 조사님의 유해는 있는 것인지, 유해가 있다면 현충원에 모셔야 하는 건 아닐까요?

  • 북경에서 혼자 봉사활동을 하려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어떤 관점을 갖고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해나가야 할까요?

  • 외국인 남자와 결혼해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요. 한국에 들어오고 싶은데 남편도 반대하고, 첫째 아이도 힘들어해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지금부터는 두북수련원의 재활용센터와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내일 아침에 감은사 참배할 때 잠깐 합류하겠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즉문즉설 시간을 마친 후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 살리고 센터를 둘러보았습니다.



버려진 우산을 재활용해서 만든 가방, 현수막을 재활용해서 만든 장바구니, 오늘 수확한 농산물 등 다양한 재활용 물건들을 구경하고 구매한 후 다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두북수련원의 농장을 둘러본 후 해외활동가들은 숙소로 향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스님은 저녁 7시 30분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 50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어제 장수 죽림정사에서 열린 6.13만인대법회 소식을 공유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그중 한 명은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학대받은 기억으로 지금도 마음이 불안할 때가 많다며 어떻게 치료를 해나가야 할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어린 시절 학대받은 기억에 지금도 마음이 불안합니다

“저는 44살 주부입니다. 어릴 적, 가족과 친지들이 술에 취해 자주 싸우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에게 학대받은 기억이 많고, 어머니는 시집살이가 힘들어 어린 저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고 하십니다. 저는 외로웠고, 어머니가 도망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습니다. 그나마 사랑받기 위해서는 말 잘 듣고 착하고 공부 잘하고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인정 욕구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러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이 싫어서 독립하는 방법으로 도망치듯 결혼했지만 남편과의 결혼 생활도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제 애정 결핍을 채우기 위해 갈구했던 것 같습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산후 우울증이 심해져서야 정신과에서 약물과 상담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8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분명히 나아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나아지려고 노력했지만 아직도 어릴 적 제가 어른이 되지 못한 채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득문득 불안함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혼자 힘겨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안 나아져도 괜찮아요. 지금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금도 살 만하니까 그렇게 사는 거거든요. 그런데 조금 개선하고 싶다면 관점을 좀 바꿔야 되겠죠. ‘나에게 왜 불안이 생겼느냐’ 하는 원인은 심리학자들이나 의사들이 분석하는 겁니다. 집에서 부부가 싸우고 남편이 술 먹고 행패 피우고 아내가 악을 쓰고 이런 집에서 자라면, 어린아이들은 상황을 모르니까 놀라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요. 그걸 정신적 학대라고 합니다. 학대를 받고 자랐으니까 성인이 돼서도 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최소한 3살 때까지는 정말 따뜻하게 아이를 대해주어야 합니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도 가능하면 아이들이 정신적 충격을 안 받도록 해주는 게 좋아요. 이것은 부모의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이미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 버렸고, 거기서 이미 여러 가지 마음의 상처를 입어버렸어요. 스님 법문을 듣고 나서 ‘우리 부모가 싸워서 내가 이렇게 불안하구나’ 이렇게만 받아들이면 부모를 원망할 일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아무 도움이 안 돼요.

대부분의 부모들이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 이유는 아이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본인도 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본인도 너무 힘드니까 아웅다웅하고 사는 거예요. 어린 내가 볼 때는 내가 엄마한테 학대받는 것 같지만, 엄마한테 물어보면 자신도 살기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아버지도 34살밖에 안 되는데 사업은 안 되지, 돈은 빌려주고 못 받지, 살기가 너무 힘드니까 술 먹고 악을 쓰면서 산 거예요. 내가 어른이 돼서 그 사람들을 보면 아무도 잘못이 없어요. 그러나 어린애한테는 그게 굉장한 상처로 남습니다. 상처를 왜 입는지 모르고 입었지만 어른이 돼서 돌아보면 그게 인간사예요.

'엄마 아빠가 나를 상처 주려고 그런 게 아니고 자기들이 살기 힘들어서 그랬구나. 그렇게 힘든 가운데도 나를 키워주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생깁니다. 상처받은 것만 붙잡고 자꾸 부모를 원망하지 마세요. 내가 상처를 받은 이유는 엄마 아빠가 잘못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어렸기 때문에 상처를 받은 거예요. 내가 어른이 되어서 돌아보면 그런 일은 세상사에 늘 있는 일입니다.

나라를 위해 국가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국회의원들이 지금 싸우는 모습을 한번 봐요. 밥 먹고 하는 일이 욕하고 싸우는 것 아닙니까. 똑똑한 사람도 그렇게 싸우는데 우리 엄마 아빠 같은 보통 사람이 어떻게 안 싸우고 살겠어요?

'내가 커서 보니까 서로 싸우고 사는 게 보통이구나. 내가 어려서 그걸 몰라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구나. 커서 보니까 별일 아니구나. 그래도 나를 키워주셨으니 정말 감사하다'

이렇게 자꾸 생각해야 내 상처가 치유됩니다. ‘엄마 아빠 때문에 내가 상처를 입었다’ 이런 얘기를 만 번 하면 뭐 합니까? 치유에는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런 분석은 박사 논문 쓰는 데에 필요할지는 몰라도 나의 삶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다리를 다친 것처럼 그냥 마음에 정신적 상처를 좀 입은 게 현재의 나예요.

'눈이 안 보이고도 사는 사람이 있고, 다리 없이 사는 사람도 있고, 피부 아토피로 고생하며 사는 사람도 있는데, 마음에 좀 상처 있는 게 무슨 문제야. 그냥 이런 문제를 좀 가지고 살면 되지. 이 정도면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불안증을 어떻게 치유하면 됩니까?' 맨날 이렇게 생각하면 치유가 잘 안 됩니다. 약을 먹어도 치유가 안 돼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이 정도 상처 입고 자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치유가 됩니다.

그러니 약간의 불안을 안고 살면 됩니다. 자꾸 과거 생각만 하지 마세요. 마음이 좀 불안하면 어때요? 좀 불안해하면서 사는 대신 거기에 빠지지는 말라는 겁니다. ‘내가 어릴 때 상처 입은 게 자꾸 재발하는구나’ 이렇게만 생각하면 됩니다. 더 심하면 약을 좀 먹으면 되고요. 이렇게 대범하게 생각을 하면 치유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으면 엄마 아빠한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자꾸 절을 하세요. 엄마 아빠는 나한테 상처 준 것도 있지만 그래도 밥 먹이고 학교 보내고 빨래해주고 나한테 잘한 것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감사함을 자꾸 생각하면 이 섭섭함이 치유가 되어 나갑니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던 그건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에요. 지금은 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상처를 치유하려면 지금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보다 더 나쁜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 환경에서 이 정도로 상처 입고 자란 것만 해도 다행이다.’

넘어져서 한 다리가 부러졌다고 합시다. 그럴 때도 ‘두 다리 다 안 부러지고 한 다리만 부러져서 다행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자꾸 가져야 마음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첫째, 세상이 어떻든 나부터 자립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이왕 사는 거 조금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려면 다른 사람도 행복하도록 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세요.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든, 봉사를 하든, 캠페인을 하든, 그런 일을 할 때 보람이라는 게 생깁니다. 내가 세상을 다 받아들이면 편안함이 생기고, 화나 짜증이나 원망이 안 일어납니다. 내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마음에 뿌듯함이 생겨 보람이 생깁니다. 그런 삶을 살면 좋지 않나요?

‘이렇게 하면 죽어서 천국에 갔을 때 복을 준다’ 이런 얘기는 필요가 없어요. 복을 주든 안 주든 내가 누구한테 상 받으려고 이 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이런 인생이 좋다’ 이래야 마음속에 원망이 없어집니다. 관점을 이렇게 가지고 좀 더 자기를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를 기약하며 밤 9시가 되어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새벽 일찍 동해로 가서 해외활동가들과 함께 문무대왕암과 감은사지를 둘러본 후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와 오전에는 결사행자·법사단 자자수련 입재 법문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 통일의병 즉문즉설을 하고 자자수련 회향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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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이보다 더 나쁜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 환경에서 이 정도로 상처 입고 자란 것만 해도 다행이다.’

2024-06-21 16:22:53

최상훈

고맙습니다 ^^

2024-06-20 12:08:26

희장엄

감사합니다 🙏

2024-06-19 2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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