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3.19 하나금융그룹 조찬 강연회, 8일 출가열반정진 3일째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지만, 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요?”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8일 출가열반 정진 3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가볍게 식사하고 강연을 하기 위해 하나금융그룹 본사로 향했습니다. 하나금융그룹 임원진들이 오래전부터 스님에게 강연을 요청했는데 오늘 조찬 강연회 형식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금융그룹 본사에 도착하자 대표이사 함영주 회장님과 경영진들이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잠시 차담을 하며 회장님이 왜 스님에게 강연을 요청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도 고민이 많아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자주 듣는데요. 스님은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도 너무 재미있고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 주세요. 그래서 자꾸 즉문즉설을 듣게 됩니다.”

“재미있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창의력이 있으려면 집중력이 필요하고, 집중력이 생기려면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못하면 허전해요. 그래서 재미도 있고 유익해야 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 회사에서 스님을 강사로 모신 것은 처음입니다. 저희가 외환을 많이 다루는 회사인데 스님도 해외 사업을 많이 하시나요?”

“주로 가난한 나라에 가서 구호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기후 위기 시대에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주로 부탄에 자주 갑니다.”

가볍게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후 기념사진을 찍고 강연장으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임직원들 300여 명이 강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무대로 오르자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들어오기 전에 잠깐 회장님과 임원진들을 만나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회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돈밖에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어요. 오늘 돈밖에 없는 금융 회사 사람들과 돈 없이 사는 법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그럼 질문이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고 질문을 해보세요.” (웃음)

사전에 많은 사람이 질문을 신청했는데요. 그중 한 명은 현실에 만족하는 태도가 오히려 현실 도피가 아닐지 의문이 든다며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지만, 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요?

“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안분지족이라든지 평범한 소시민의 삶에서 만족을 자주 느낍니다. 제가 하는 일 자체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일상화된 부분이 많아서 이런 소시민적인 삶에 만족하는 태도가 현실 도피적이고 자기기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이 진정한 나의 행복인지 의문이 듭니다.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발전보다는 퇴보에 가까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계속 발전해서 기후 위기를 초래하여 우리가 모두 공멸한다면 이것이 과연 발전일까요? 단기간에 보면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좀 더 길게 봤을 때 과연 발전인지 아니면 해악인지에 대한 평가는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삶의 동력이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이 행위를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바로 욕구입니다. 우리는 욕구에 따라서 행위를 합니다. 욕구를 분석해 보면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먹고 싶다거나 자고 싶다거나 하는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가 있습니다. 이런 기본 욕구는 일정하게 충족되면 멈추는 성질이 있습니다. 배고프다고 밥을 열 그릇씩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 그릇을 먹으면 충분합니다. 잠을 열흘 동안 잘 수는 없잖아요. 몇 시간 자면 욕구는 끝이 납니다. 이런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시켜야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욕구는 개인적으로는 정당한 권리에 들어가고, 사회적으로는 보장해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도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의 생존에 관계되는 식품, 약품, 식수 같은 것은 인종, 국가, 종교, 정치, 이념,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제공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상대적 욕구가 있습니다.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거나, 더 좋은 옷 입고 싶다거나, 더 좋은 차를 타고 싶다는 것이 바로 상대적 욕구입니다. 이런 상대적인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1억 원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만약 1천만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하고 같이 살 때는 내가 부자입니다. 그래서 만족이 됩니다. 그러나 10억 원을 가진 사람하고 같이 살면 갑자기 내가 가난해지고, 열등감이 생기게 되고,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멈추는 절제가 필요하고, 국가 사회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격차가 좁혀지도록 일정하게 조율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강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게 교육 시스템이나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어야 합니다.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세금을 더 부과하고,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통해서 조금씩 균형을 잡아나가야 안정된 발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과욕이 있습니다. 술을 먹고 싶다고 많이 먹으면 나중에 괴롭잖아요. 과식도 건강을 해치고, 과로도 건강을 해치지 않습니까? 이렇게 과한 욕구는 멈춰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멈춰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금지해야 합니다. 과한 것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해악을 가져오기 때문에 마약을 금지하듯이 사회적으로 금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시민적인 평범한 삶에서 만족을 얻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물론 평범한 삶에 만족하면 도전 의욕이 없어지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어떤 이익을 추구하려고 했을 때는 맞는 말입니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게 작용하니까요. 하지만 인간이 어느 정도 공익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면, 삶에 만족하는 것과는 별도로 공익을 위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공익적인 인간 정신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인간에게는 짐승 세계에도 없는 이타심의 현상이 나타날까요? 물론 짐승 세계에도 이타심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미가 자기 새끼를 보호할 때는 공익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인간은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타인과 다른 생명체까지도 자신을 희생해서 보호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정신작용은 때로는 애국심으로 때로는 애민심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결코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해서 생긴 것도 아니고,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생긴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작용에 그런 성향이 있는 것입니다. 생태적으로는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고 해서 어미가 새끼를 보호할 때 이런 작용이 나타나는데, 인간에게는 타인을 향해서도 이런 정신작용이 나타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자비심이라고 말하고, 기독교에서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인간이 가진 행동 양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작용이 커지게 되면 밥 한 끼, 옷 한 벌에 만족하며 검소하게 살면서도 공익을 위한 활동은 매우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적극성과 탐구 행위가 나타납니다. 그러니 개인적으로는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삶의 행복도를 높이시고, 회사 일을 할 때는 좀 더 공익적 관점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그 적극성은 그대로 남게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행복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겪는 실패를 트라우마로 여기게 되면 인생의 큰 장애로 작용하게 되지만 ‘좋은 경험 했다.’ 하고 관점을 바꿔 바라보면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욕심에 집착해서 실패를 새로운 기회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실패를 절망으로 받아들여서 스스로 트라우마를 만들고 미래의 삶에 장애를 겪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성공했다고 들떠도 안 되고, 실패했다고 낙담해도 안 돼요. 실패했기 때문에 낙담하는 게 아니고, 욕심 때문에 낙담하게 되는 겁니다.

모든 일은 별일 아닙니다

이렇게 해보고 안 되면 저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안 되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삶이 별것 아니다’ 하는 진실에 접근해 가게 됩니다.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욕심을 부립니다. 열 번 해서 될 일을 한두 번에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다 한두 번으로 안 되면 포기해서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내버리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거죠.

우리의 삶은 매일매일 똑같습니다. 승진한 날도, 시험에 떨어진 날도, 부모가 죽은 날도, 아이가 태어난 날도 다 같습니다. 각각의 날들이 다르게 보일 수 있겠지만 멀리 내다보면 매일매일이 다 똑같은 날입니다. 하루하루가 다 소중하기 때문에 모든 나날이 똑같은 비중을 가집니다.

괴롭지 않은 것이 행복입니다. 조금만 살펴보면 인생은 사실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지금에 집착하면 희로애락이 생기고, 십 년을 내다보면 모든 만사가 별일 아닙니다. 오늘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 것 같지만, 십 년 지나서 오늘 뭐 먹었는지 생각하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뭘 먹었든 지금 안 죽고 살아있다는 거예요.

죽을 때가 되어서 돌아보면 과장, 부장, 사장을 한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지나 놓고 보면 모든 게 한여름 밤의 꿈이에요. 지금 그것을 깨달으면 스트레스 없이 살 수가 있는데, 우리는 어리석어서 그 이치를 모른다는 겁니다.


‘모든 것이 별일 아니다’ 하는 사실을 지금 바로 깨우쳐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월말고사 성적이 잘 나왔나 못 나왔나를 갖고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죠? 그런데 지금에 와서 중학교 3학년 때 월말고사에서 수학 점수를 90점 받았든 50점 받았든 뭐가 중요합니까? 하등 중요하지 않잖아요. 입시에 떨어지면 굉장히 충격을 받는데, 한 30년 지난 뒤에 돌아보면 서울대 떨어져서 다른 대학을 갔다고 해서 지금도 괴롭습니까?

어떤 일도 세월이 흘러 놓고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때는 한 해가 엄청나게 중요한 해였겠지만 지나 놓고 보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옥 가서 10년씩 있다가 나온 사람 가운데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감옥 가서 20년 있다 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도 합니다.

너무 빨리 성공할 필요가 없는 이유

특히 여러분들은 금융계에 종사하니까 돈을 많이 만지는데, 그 돈이 자기 돈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돈은 종잇조각에 불과합니다. 너무 돈에 집착되어 있으면 여러분들의 영혼이 돈에 팔리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금융계에서도 환투기하는 사람들이 가장 자신의 영혼을 많이 소진하는 사람들 같아요.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사고팔고 하잖아요. 보상이 많을지는 몰라도 월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피폐합니다. 돈 벌어 큰 집 사고 좋은 차 구매하며 스트레스를 풀지만, 대다수는 끝이 안 좋습니다.


젊을 때는 월급을 조금 받고 살아야 나중에 어려움에 부닥쳐도 그것을 극복하기가 수월합니다. 처음부터 인기를 많이 얻어 돈을 번 사람은 나중에 어려움에 부닥치면 이를 극복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옛날 시골 초당 방에서는 ‘초장 끗발 개 끗발’이라고 했습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너무 빨리 성공하려고 하지 마세요. 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조급해한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즉문즉설이 여러분들의 인생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회장님이 직접 주차장까지 스님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금융그룹 본사를 나와 다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 도착하자 8일 출가열반재일 법회에 참석한 공동체 지부 대중들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으로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오전 10시에 8일 출가열반 정진 3일째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의 출가와 수도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서 오늘은 성도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오늘은 출가 열반 재일 정진 3일째입니다. 첫날은 부처님의 출가에 대해, 어제는 부처님의 수도 과정에 대해 말씀드렸으며, 오늘은 부처님의 성도에 대해서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보리수 아래에 앉은 부처님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 상태에서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렸습니다. 그 감각으로 인해 일어나는 느낌과 그 느낌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단지 알아차리기만 했습니다. 점차 집중력이 깊어지고 알아차림은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그러자 내부에 존재하는 카르마의 뿌리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욕망의 꽃을, 욕망의 잎사귀를, 욕망의 가지를, 욕망의 둥치를 제거해서 끝난 줄 알았더니 욕망의 뿌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성도 직전에 욕망, 성냄, 어리석음의 뿌리를 제거하는 모습을 실감 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부처님은 욕망, 성냄, 어리석음의 뿌리가 완전히 제거되고 동쪽 하늘에 빛나는 샛별을 본 순간,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지혜가 밝아졌습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모든 번뇌를 끝내고 해탈과 열반을 얻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이 무엇일까요? 모든 존재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시공간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현상은 서로 연계되어 일어납니다. 이러한 연결성을 '말미암아 일어난다'라고 표현합니다. A로 말미암아 B가 생기고, A가 없어지면 B도 사라진다는 개념입니다. A가 존재하면 B도 존재하고, A가 없으면 B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깨달으신 ‘연기’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도 일어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하는 네 구절로 표현합니다. 연기법을 깨달으면 이 세상에 번뇌를 일으킬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알고 보면 모든 일은 다 일어날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납니다. 모든 일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겨나기 때문에 허황한 생각으로 뭔가를 공짜로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하는 생겨나고 사라짐이 존재의 본질입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이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합니다. 또,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단독으로 존재하는 어떤 실체는 없습니다. 이것을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존재도 본래부터 있었던 것은 없습니다. 괴로움마저도 그 실체가 없습니다. 어떤 어리석음을 원인으로 인해 괴로움이 생겨났고, 어리석음을 깨우치면 괴로움 또한 사라집니다. 이런 이치를 알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이치를 모르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후 이 세상을 바라보니 많은 중생이 자신들이 지은 인연의 결과를 모르고 윤회의 고통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중생들은 괴로움이 왜 발생하는지, 그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르고 단지 고통스러워만 하고 있었습니다. 괴로움에 빠진 중생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방황하며, 서로를 해치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자신처럼 인연의 이치를 명확히 깨닫고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어떤 행위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고, 그로 인한 후회를 미리 방지하는 길을 가르쳐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났다.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노라.'

그리고 교화 설법을 하기 위해 바라나시로 길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교화의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어두운 밤에 불을 밝히는 것과 같이

오늘 출가열반 재일을 맞이하여 부처님이 깨달으시는 과정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불교의 기본 가르침인 연기법, 중도, 사성제, 팔정도, 삼법인, 십이연기 등은 모두 부처님의 깨달음을 중생에게 맞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전된 것들입니다. 깨달음의 내용을 도식화하다 보니 복잡해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어려운 이론이 아닙니다. 이 가르침들은 어두운 밤에 불을 밝히는 것과 같고, 덮여 있는 것을 벗겨내 보여주는 것과 같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정토회는 부처님의 성도와 그 가르침에 따른 '바른 불교', 누구나 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불교',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생활 불교'를 지향합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리고 타인에게 전법하고, 나아가 우리가 모두 함께 행복한 길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오늘도 함께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법문을 마치고 300배 정진을 했습니다. 유수 스님의 염불과 목탁 소리에 맞춰 각자 자신의 방에서 한 배 한배 절을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300배 정진을 마치고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나가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점심을 먹고 곧바로 12시 30분부턴 부탄 답사를 함께 하는 실무자들과 실무 준비 회의를 했습니다. 이번 부탄 답사에는 마을에 들어가서 주민들과 같이 생활할 것이기 때문에 밥통, 침낭, 반찬 등 준비해서 갈 것이 많았습니다.


답사 일정, 교통편, 숙박, 준비물, 인터넷 상황, 생방송 법회 진행 여부 등 여러 가지 점검 사항을 의논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2시에는 사단법인 ‘세상과 함께’ 활동가들이 평화재단을 찾아와서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상과 함께’는 수경 스님을 중심으로 해서 많은 활동가가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생태 보존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미얀마의 빈민층 구호 활동도 하고, 환경 활동가들에게 환경상을 수여하여 연대활동도 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활동가 여섯 분이 그동안의 활동을 정리하여 백서를 만들고 있는데, 스님에게 추천사를 받기 위해 직접 찾아왔습니다.

추천사에 담겼으면 하는 내용에 관해 대화를 나눈 후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활동가 한 분이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에는 그동안 해온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정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환경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저희가 2003년에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를 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는 4대 강 사업을 막기 위해 오체투지 하면서 환경운동을 했었는데, 그때 수경 스님은 ‘탐진치 삼독을 내려놓고 나로부터 참회한다.’ 하는 의지를 갖고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때 일들을 다시 정리해서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에는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정신이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현재 환경운동은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식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환경 운동이 있습니다. 댐을 막거나, 도로를 만들거나, 습지를 파괴하거나, 고래를 사냥하거나 하는 것에 대해 전투적으로 저항하며 반대하는 방식의 환경운동입니다. 이렇게 저항하는 방식의 환경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많이 전개되고 있고, 실제로 환경정책을 바꾸어내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과거 민주화 운동처럼 격렬해지면 폭력적으로 가기가 쉽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두 번째 방식은 우리의 생활 습관이 가진 모순을 개인이 먼저 고쳐나가는 방식입니다. 기후 위기를 얘기하면서 자동차는 계속 타고, 소비는 줄이지 않으면서 댐을 건설하거나 산림을 파괴한다고 저항하고, 동물권을 얘기하면서 육식은 계속하는 것이 우리의 모순입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환경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기후 위기의 주된 원인은 과다한 에너지 소비입니다. 소비 수준을 줄이는 실천을 개인이 먼저 행해야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소한 삶을 사는 것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개인의 실천에서 시작하여 이웃과 사회가 이에 동조하도록 해서 새로운 삶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두 가지 방식은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정책은 저항과 시위를 통해 막아야 하고, 환경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개인의 삶을 전환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수경 스님과 여러분들은 그동안 저항을 통해 환경 파괴를 막는 관점에 서 있었고, 정토회는 주로 교육이나 삶의 가치관 정립을 통해서 소비를 줄이고 검소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환경운동을 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기쁨이라는 정신적 만족을 물질적 소비를 통해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물질적 소비를 추구하지 않도록 하려면 그것에 대한 대체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대체재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한테 기쁨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생겨나는 모성애와 연관이 됩니다. 이런 모성애적인 이타심을 확대해 나갈 때 개개인들의 소비 수준도 자발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장 생존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생명을 돕는 것이 나에게도 좋다는 관점을 갖는 것입니다.

남을 돕고 환경을 살리는 행위는 나를 희생하는 게 아닙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보다 환경을 살리는 행위가 나한테도 좋은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될 때 우리는 희생 없는 이타행을 통해서 환경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희생이 없어야 합니다. 희생을 하게 되면 반드시 대가를 바라게 되고, 희생한 것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낙담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수행은 희생하는 게 아니라 나를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남을 아끼는 것이 자기를 아끼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도와줬는데 배신했다고 도와주는 걸 멈추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후회를 하게 됩니다. 공연히 힘만 들이고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기 행동을 후회합니다. 후회는 수행이 아니에요.


이타행과 남을 돕는 마음의 확대를 통해 소비로 삶의 기쁨을 얻는 게 아닌 함께 공존하는 길을 찾아 삶의 기쁨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야 합니다. 요즘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운동은 정부 정책을 바꾸기 위해 저항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격렬한 저항과 시위를 통해 환경운동을 하고 있죠. 요즘은 제일 강한 행동을 보이는 게 환경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저항 운동과 개인의 삶의 변화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 운동을 한 단체가 동시에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할 분담을 해서 환경운동을 하는 게 필요합니다. 삼보일배와 오체투지와 같은 방식은 많은 사람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저항함으로 해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도법 스님이 했던 생명 평화 탁발 순례도 그런 의미에서 매우 소중하죠.

두 가지 방식을 우리는 모두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항 운동은 자꾸 반대 세력과 부딪히니까 지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지도자가 그만두거나 성과가 안 나오면 금방 지쳐서 꾸준히 하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반면에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방식은 자칫하면 사회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포클레인으로 자연을 대량으로 파괴하는 것은 외면한 채 본인은 개미 한 마리 안 죽이겠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잖아요. 두 가지 방식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어서 양쪽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면서 환경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활동가들은 스님이 요즘 추진하고 있는 부탄 지속가능한 개발 사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무엇인지, 부탄 주민들의 생활은 어떠한지, 스님은 어떻게 부탄 정부와 협의하고 있는지, 부탄을 답사하고 온 결과는 어땠는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제가 부탄에서도 여러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들을 한번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좀 기다려 주세요.” (웃음)

다음을 기약하며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오후 5시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과 차담을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손님이 돌아가고, 저녁에는 실내에서 원고를 교정하고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고, 8일 출가열반 재일 4일째 법회를 한 후, 오후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하고, 저녁에는 부탄을 답사하는 실무자들과 실무 준비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9

0/200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4-11 12:06:32

드림하이

“재미있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창의력이 있으려면 집중력이 필요하고, 집중력이 생기려면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못하면 허전해요. 그래서 재미도 있고 유익해야 합니다.”

2024-04-04 12:04:07

세숫대야

고맙습니다()()()

2024-03-27 21:29:05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