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02.21 종교인 모임, 수행법회, 평화연구 세미나
“남편에게 올라오는 화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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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아침 7시에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이 모두 도착하자 다 함께 식사하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회의실로 자리를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부탄을 다녀온 모습을 사진 슬라이드로 함께 본 후 ‘지속 가능한 개발’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종교인 분들 모두 부탄의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다음에 부탄을 방문할 때는 농업 전문가, 과수 전문가, 축산 전문가를 함께 데려가서 조사 항목을 선정해서 세세하게 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샘플로 몇 개의 마을을 선정하여 시범 사업을 할 계획입니다. 이 마을은 주거 개선, 이 마을은 상수도 개선, 이 마을은 의료 개선, 이런 식으로 마을마다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평가하면, 내년부터는 한 개의 주를 전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유엔이 해야 할 일을 스님께서 하고 계시네요.”


“제가 이런 계획을 말하니까 구호 활동과 무슨 차이가 있냐는 지적을 많이 해요. 결국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밖에 안 되지 않느냐는 거죠. 물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근본적인 목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려고 합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엊그제 종교인 모임의 좌장 역할을 해오신 김명혁 목사님이 소천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의 섭섭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박종화 목사님이 김명혁 목사님을 위해 기도를 잠깐 해주시죠.”

박종화 목사님의 기도에 맞춰 다 함께 합장을 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명혁 목사님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김 목사님이 하늘나라에서도 늘 저희들을 보살펴주어서 저희들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옵소서. 종교인 모임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 목사님의 소천으로 빈자리가 생겼지만 빈자리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셔서 목사님이 하시고자 했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명혁 목사님이 맡아온 좌장 역할은 천도교 박남수 전 교령님이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다음 주 삼일절 기념식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고, 6월 13일에 장수 죽림정사에서 열리는 나라의 평화와 발전을 기원하는 대법회에 대해 공유한 후 모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종교인분들을 1층 현관까지 배웅한 후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기 위해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부탄을 다녀온 결과를 자세하게 설명한 후 부탄 답사 모습과 지난주 으뜸절에서 회원들이 실천활동을 한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에 한 명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남편을 향한 화가 올라올 때가 있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남편에게 올라오는 화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남편한테 화가 올라오는데 이를 어떻게 없애면 좋을까요? 몇 년 전 직장에 신입사원이 들어왔을 때 그 사람 성격도 괜찮고 나도 그 사람이랑 잘 어울리는데도 미운 마음이 무의식중에 올라왔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지만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 작년부터 천일결사와 명상을 한 뒤로는 화가 거의 안 납니다. 그런데 유독 남편에 대해서는 가끔 화가 납니다. 예를 들면 제가 택배 상자를 일부러 문밖에 뒀는데 남편이 식탁 위에 가져다 놓았길래 제가 ‘보자기는 좀 벗기고 올려놓지.’ 그랬더니 남편은 쓸데없는 소리 한다면서 당신이 못 봐서 갖고 들어왔는데 하며 언성을 높이고 화를 냈습니다. 그 순간 저도 화가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면서 ‘이러다가는 내가 남편을 때리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다음날 정진하는데 이 화의 근원은 엄마의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엄마가 아버지한테 미운 감정과 화난 감정을 품었는데 그 마음의 영향을 받아서 나도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화는 꼭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렇게 자신의 화의 뿌리에 관해서 탐구를 해나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내가 화가 났는데 스님한테 묻는다고 답이 나올 리는 없잖아요? 스님이 화를 냈으면 ‘당신 왜 화를 냅니까?’ 하고 물을 수 있는데, 자기가 화를 내놓고 스님한테 ‘제가 왜 화를 냅니까?’ 이렇게 묻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스스로 ‘남편이 물건을 밥상 위에 올려놨는데 왜 화가 날까?’ 이렇게 화난 그때로 돌아가서 탐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탐구를 하면, 첫째, 내가 화를 잘 내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성질은 자기가 형성한 것도 있지만 어릴 때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주로 형성됩니다. 엄마가 화를 잘 내면 그 까르마를 내가 답습하게 되는 겁니다. 둘째, 그런 까르마가 있다고 해도 어떤 자극이 와야 반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의 행동이 자극을 주니까 내가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때 마치 남편 때문에 화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까르마가 없으면 반응을 안 하게 됩니다. 또 내가 그런 까르마를 가지고 있어도 남편이 자극을 안 주면 반응을 안 하게 되고요.

남편을 고쳐서 자극을 안 주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남편을 고치는 것은 남편 스스로 해야 할 일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내 까르마는 놔두고 상대를 탓하게 되죠. 그렇게 해서는 자유로워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은 첫째, 남편의 이런 행동에 내가 이렇게 반응하고, 남편의 저런 행동에 내가 저렇게 반응하는 것을 계속 탐구하는 겁니다. ‘내 까르마가 이렇게 형성되어서 이런 반응을 하는구나’ 하는 것을 계속 알아차려야 합니다.

둘째, 이렇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되면 남편의 자극에 화를 내긴 하지만 적어도 남편 탓은 안 할 수 있습니다. 내 성질 때문인 것을 알기 때문에 남편 탓을 안 하니까 남편에게 화를 내도 싸우지는 않게 됩니다. 벌컥 화는 낼지라도 내가 잘했다고 우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제가 성질이 더러워서 그랬습니다’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이렇게 내 까르마에 문제가 있는 것을 자각했다면 이 까르마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차림’이라고 해요. 마음에 불편함이 올라올 때 ‘너 또 성질내려고 그러네?’ 이렇게 자기를 알아차리면 마음이 일어나다 사라집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통해서 일어난 것이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바깥으로 드러나 버렸을 때는 ‘죄송합니다’ 하고 빨리 사과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인간관계를 맺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자기 자신을 더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이 부탄을 답사하고 온 내용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부탄 개발 사업의 결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는 건가요?

“저는 스님께서 추진하시는 부탄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깨달음의 장을 수료하고 나서 스님께서 지향하시는 정토 세계가 현실에서 구현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부탄 사업이 잘 진행되면 좋은 모델이 되어서 정토 세상을 이루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부탄 사업이 완성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아직 그림이 다 나온 건 아닙니다. 아직 현장 답사도 다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림을 완성할 수가 있겠어요? 환경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은 한국과 같은 발달된 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속 가능한 개발이 되려면 탄소 제로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한국은 엄청난 탄소 배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속 가능한 삶을 경상북도나 강원도에 있는 작은 군에서 실험해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려면 생활 수준을 아주 많이 낮춰야 하는데,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소비를 줄이고 생활 수준을 낮춰서 생활하자고 제안하면 받아들일까요? 안 받아들이겠죠.

물론 정토 공동체처럼 개인이 자발적으로 ‘검소하게 살아 보겠습니다’하고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은 검소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두북 수련원도 폐교를 수리해서 살고 있고,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도 건물을 짓기는 했지만 내부에는 재활용 가구들만 배치하고, 새 옷을 사지 않고 모두 재활용해서 입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 개발이란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서 진행해야 하는데, 정토회 회원도 아니고 일반 주민들이 어떻게 이런 검소한 생활을 하려고 하겠어요? 제가 볼 때 한국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탄소제로 상태로 생활 수준을 낮춘다면 대부분이 반발을 해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은 한국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아주 열악한 삶이기 때문에 아마 불편해서 못 살 겁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자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부탄은 1인당 GDP가 3천 달러가 조금 넘는 저개발 국가입니다. 소득 수준이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의 가난한 나라죠. 부탄 안에서도 제가 답사한 지역은 가장 개발이 안 된 지역입니다. 아무리 자연환경이 좋다고 해도 사람이 먹을 게 없어 영양실조 상태로 살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한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역 주민 모두가 그렇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본 생활 조건이 지금 그들이 사는 수준보다는 개선이 돼야 합니다. 먼저 주거 환경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부탄에서는 생활 수준을 더 낮추는 게 아니라 약간 높이는 방향으로 개발을 하게 되니까 그 사람들이 거부할 이유가 하나도 없죠. 오히려 좋아합니다. 그래서 부탄의 가난한 지역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가능한 거예요. 한국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하려면 소비수준을 낮춰야 하지만, 부탄에서는 소비수준을 좀 높여 줘도 탄소제로의 지속 가능한 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개발이 외부의 지원으로 유지될 때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지원해서 개선하지만, 그것을 계속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생산 활동이 되도록 지원을 해주어야 합니다. 먹는 것을 자립할 수 있고, 생산해서 나오는 돈으로 신발을 사거나 옷을 사서 생활하는 게 가능해야 합니다. 자립이 되는 생산 구조와 시설을 어떻게 가지도록 할 것인가가 연구과제입니다. 한국 사람들처럼 돈을 벌어서 축적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아플 때 치료받고, 아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소득수준 50퍼센트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지원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하위 20퍼센트의 주민들에게는 우리가 확실하게 지원해서 생활 수준을 개선해 주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삶을 가늠하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자립이 되느냐입니다. 둘째,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가입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살아보니 아무런 불편함이 없고 좋다고 평가가 되는 곳은 모델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건 욕구일 뿐 지속 가능한 삶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탄에서 만들고자 하는 것은 더 이상 문명사회의 삶이 유지될 수 없을 정도로 기후 위기가 초래되었을 때에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기후 위기로 인해 농지가 바닷물에 침수가 되고, 산불이 나고, 엄청나게 공기가 나빠져서 스모그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기관지 천식으로 죽는 사람이 수천 명이 생기고,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여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는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하는 거예요. 그런 일이 안 생기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인간이 소비를 줄이지 않아서 그런 위기가 닥쳤다고 할 때 ‘히말라야 산 속에서 탄소배출 제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들처럼 살면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겠다’ 하는 희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진행되면 모두가 꿈꾸는 정토 세상이 완성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욕망을 기준으로 해서 숲도 좋고 생활도 좋고 모든 게 다 좋도록 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개발이 아닙니다. 제가 구상하는 모델은 자연 상태에서 살아가지만 굶지 않고, 병이 났을 때 치료받을 수 있고, 아이들이 기본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인터넷으로 정보 소통을 할 수 있는 정도예요. 물론 정보 소통이 되면 소비에 대한 동경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동경이 일어나면 그 사람은 부탄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떠날 사람은 떠나야지 어떡합니까. 그것까지 우리가 강제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외국으로 떠날 사람은 떠나더라도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행복도가 높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야 합니다. 그러면 외국에 나가서 돈 벌고 찌들어 살다가 ‘이렇게 사느니 적게 먹고 살더라도 고향에 돌아가서 여유 있게 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이 정도예요. 목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지만 90퍼센트는 생활 조건과 생산 시설을 개선해 주는 모습으로 드러날 겁니다. 그래서 개발이라고 이름을 붙인 거예요. 그러나 최소한의 생활을 개선해 주는 것만 지원을 하겠다는 겁니다. 그 이상은 지원하지 않겠다는 전제를 깔아놓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욕망이 일어나서 외국으로 나가겠다든지 더 큰 집을 짓고 싶다든지 하더라도 그건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하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우리가 강제로 소비를 멈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간섭하면 안 되잖아요.”

“지속 가능한 개발이 구호 사업은 아니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럼 환경 사업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90퍼센트는 구호사업에 해당이 됩니다. 왜냐하면 열악한 삶을 개선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구호를 하더라도 환경적인 기준이 있어요. 예를 들어 청년들이 양계장을 운영하는데 닭 500마리를 사료를 사다 먹여 키우겠다고 하면, 그것은 지속 가능한 개발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 사업은 지원이 안 되니 그들이 알아서 해야 합니다. 집에서 닭을 10마리 키우는데 농사를 짓고 나서 남은 채소와 곡식을 먹여서 키운다고 하면, 그것은 지속 가능한 개발에 해당이 됩니다. 젖소를 한 마리 키우는데 농사짓고 남은 것을 먹여 키우겠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가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를 세 마리 키우는데 사료를 사다 먹이겠다고 하면, 그것은 지원이 안 됩니다. 이것이 지속 가능한 개발입니다. 구호적 성격을 가졌지만 더 이상 욕망을 부추기는 개발에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는 반드시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공동체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익적인 것에 지원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물론 최소한의 생활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개인적 이익을 위한 지원을 하지만, 대부분 공공재에만 지원을 합니다. 사적인 욕구를 부추기는 지원은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현실적으로는 구호사업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구호사업에 머물지 않고 환경 문제를 함께 고려하는 개발입니다. 셋째, 공동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지역 평화를 추구하는 개발입니다. 마을에 갈등이 없도록 항상 의논해서 개발을 하니까 평화도 고려하는 개발입니다. 하나의 작은 지역에서 구호, 환경, 평화, 세 가지가 결합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환경 문제 해결이지만, 내용적으로는 90퍼센트가 구호사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은 어디까지나 추구하는 방향이지 현실에서는 이상이 완전하게 실현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상을 지향하되 현실에서는 항상 이상보다 부족한 수준에서 실현해 나가는 게 현실입니다. 너무 이상을 추구하게 되면 현실에 늘 불만이 생깁니다. 그래서 막상 가봤더니 기대한 것에 못 미친다고 하면서 실망하기가 쉽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탄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에 대해 잘 이해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점심식사를 하고 곧바로 이비인후과로 향했습니다. 법문을 하는 중에 계속 기침이 나고 목소리가 잠겨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 1시부터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이번 달 세미나의 주제는 '신동학과 문명전환'이었습니다.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장님이 주제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구 원장님은 동학 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기반이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제공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인간과 자연의 조화, 사회 정의, 평화에 대한 동학의 가치를 강조하며 이 사상과 가치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현대 근대 국가 문명의 발전 과정과 존 로크와 애덤 스미스 같은 주요 사상가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구 원장님은 '신동학'을 동학과 근대 국가 문명의 융합을 기반으로 하는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기초가 되는 사상으로 정의했습니다. 미국과 중국 등 현대 국가들의 도전과 위기를 언급하며, 한국이 신동학과 신개벽사상을 바탕으로 근대 국가 문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결합해 동양을 대표하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시간 동안의 발표를 마친 후 토론을 했습니다. 스님은 발표를 잘 들었다고 인사를 한 후 현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높아진 위기 상황에서 북일 간 대화가 가능할 지에 대해 의견을 구했습니다.

구 원장님은 북한이 전쟁 발발 시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개입을 줄이기 위해 일본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려 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의 질문을 더 받은 후 오후 3시 55분에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두 시간 동안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전 법회처럼 지난 부탄 답사 결과를 자세히 설명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 우울증을 앓고 일을 쉬다가 정토회를 만나 많이 극복을 했습니다. 저는 경제활동보다는 봉사를 하려고 하는데 아내는 경제활동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공간적 상호관계를 시공간을 따로 떼어 이해하려니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스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22살 된 아들이 군입대를 앞두고 휴학을 했는데, 게임과 유튜브로만 시간을 보내고 무기력해 보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아들을 바라봐야 할까요?
  • 부모님의 유산 분배 문제로 형제간의 갈등이 심합니다. 어떡하죠?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도쿄로 이동하여 일본 원로 정치인들을 만나 북일 관계 개선으로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낮출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한 후 저녁 비행기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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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그러니 질문자가 스스로 ‘남편이 물건을 밥상 위에 올려놨는데 왜 화가 날까?’ 이렇게 화난 그때로 돌아가서 탐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2024-03-27 18:29:07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

2024-03-12 15:18:47

호롱불

알아차림에 집중하여 성질을 덜 내는 방향으로 살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2-27 17: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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