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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달간의 인도와 부탄 방문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어젯밤 10시 비행기를 타고 인도 델리 공항을 출발하여 한국 인천 공항에 오전 8시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수속을 밟고 공항으로 나와 곧바로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정토회관에 짐을 푼 후 목이 아파서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12시 50분에 서울공동체 대중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은 먼 길을 다녀온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인도와 부탄을 다녀온 결과를 간단하게 공유해 주었습니다.
“다들 잘 지냈어요?”
“네.”
“저는 인도와 부탄 방문 일정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막판에 일정이 안 맞아서 새벽 1시에 이동하는 일들이 있다 보니까 몸이 좀 안 좋아졌어요. 진통제를 먹고 있는데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부탄 사업은 세부적으로 조사할 목록을 정하고 전체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시범 사업을 추진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 후에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계획을 세울 때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일에 많은 투자를 하려고 했는데 답사를 해보니까 산 위에 농지가 있어서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땅이 거의 없었어요. 반면에 식수 부족 문제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식수원까지 거리가 짧은 곳이 13km이고 긴 곳은 27km나 돼요. 각 동네마다 파이프를 연결해서 식수를 공급하려면 경비도 많이 들겠지만 일도 많을 것 같습니다.
보건소는 건물이 깔끔했는데 막상 동네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눈이 안 보이는 사람, 이빨이 빠진 사람,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이 많았어요. 의료 시설은 갖추었는데 의사가 부족하니까 발생하는 문제 같습니다.
집안 내에서 생활하는 환경이 열악한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집 안에서 불을 피워서 요리를 하니까 연기가 심하고, 살림도구가 부족하고, 이불이 없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도의 가난한 주민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어요. 집을 돌로 지으니까 밖에서 보면 멀쩡해 보이는데 안에 들어가 보면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집안 내부를 리모델링해 주는 작업이 많이 필요해 보였어요. 농사는 동물들 때문에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기 철조망도 소용없고, 펜스를 쳐도 땅 밑을 파고 들어오고, 현재로서는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 보였어요. 답사를 해보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달라서 새로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도 수자타아카데미는 코로나 이후에 도시로 나갔던 청년들이 대부분 집으로 돌아와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청년들의 취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과제인 것 같습니다. 부탄도 상급학교 진학 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이 직업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다음에 자세히 보고하는 시간을 따로 갖겠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곧이어 수계식을 하기 위해 3층 설법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1년 동안 전법회원 교육을 수료한 분들을 위해 수계식을 하는 날입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과 전국 으뜸절, 그리고 온라인에서 250명의 대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타종, 예불, 반야심경을 하며 수계식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수계식에 참여해 법문을 하였습니다. 신규 발심행자들이 삼배의 예로 법을 청하자 스님은 삼귀의와 오계 수계식이 생긴 연유와 앞으로 발심행자가 되면 어떤 실천 덕목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무릇 ‘계(戒)’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지침이고 방향입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 우리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까’ 이것에 대한 대답으로 부처님께서는 ‘나의 가르침인 계를 스승으로 삼아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너희들이 만약에 계를 잘 지키고 수행정진 한다면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 늘 나와 함께 있는 것과 같고, 너희들이 계를 존중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비록 내 곁에 있다 하더라도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수행자에게 계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어떤 것이 진실인가’ 하고 항상 진실을 규명하고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트라, 또는 ‘경(經)’이라고 합니다. 둘째, 일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 덕목입니다. 수행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계율입니다. 경(經)이 지혜를 밝히는 것이라면, 계(戒)는 언행을 바르게 하여 인격을 가꾸어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데 행동이 안 따라준다면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 인격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바르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스승을 섬기듯이 계를 존중하고 지키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일상에서 말과 행동을 할 때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하느냐, 즉 삶의 가치관으로 무엇을 가장 존중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다섯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생명을 가장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믿음 같은 추상적인 것보다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개미 한 마리도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생명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뱀이 징그럽다고 죽이거나, 쥐가 싫다고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됩니다. 생명 하나하나는 지구 생태계 전체에서 보면 다 필요하기 때문에 태어난 거예요. 내 입장에서 보면 이건 필요하고 저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구 생태계 전체에서 보면 그 생명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둘째, 적어도 수행자라면 남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부처가 되는 길로 가는 사람이 남을 도와줬으면 도와줬지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살겠다는 것은 범부중생의 길입니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도움을 받고 살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엄한 인권을 가진 존재가 되기 어렵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립을 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긴다면 말 한마디라도, 쌀 한 톨이라도, 행위 하나라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겠다는 자세를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결혼을 할 때 ‘그 사람은 불자이니까 손해 볼 일은 없겠네’ 하는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장사를 할 때도 상대가 불자면 손해 볼 일은 없겠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만 생명에게 그렇게 하면 좋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거나 몰래 훔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주지 않는 물건을 가져가서도 안 됩니다.
셋째,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폭행은 어떤 상해를 입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상해를 입히는 행위나 폭력이 동반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상대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줍니다. 예를 들어 상대의 가슴을 만지면 상해를 입히지는 않더라도 주먹으로 상대의 얼굴을 때려서 코피가 터지게 하는 것보다 상대에게는 더 큰 고통을 줍니다. 가해자는 ‘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지만 피해자는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으로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떤 신체적 접촉이나 언어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 계율은 단지 성적인 접촉이나 언행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키가 작다고 또는 키가 크다고, 뚱뚱하다고, 못생겼다고, 피부 빛깔이 어떻다고, 여자라고, 남자라고, 신체장애가 있다고 해서 차별하거나 괄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차별하는 행위는 모두 삿된 음행에 들어갑니다. 이런 언행은 상대에게 신체적, 물질적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정신적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넷째, 말로도 남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말로도 남을 해치거나 괴롭히지 말고 남에게 손해 끼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앞의 세 가지 계율을 다 포함하고 있는 계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간명한 말로 표현되어 있지만 단순히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말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해치거나 손해 끼치거나 괴롭히는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을 속이는 거짓말, 욕설, 이간질, 뒷말, 비아냥대는 말, 모두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남을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수행자는 수행을 하는데 필요한 말이 아닌 잡담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적어도 거짓말이나 욕설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술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남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술에 취하면 약간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남을 해치거나 괴롭히거나 손해 끼치는 행위를 하게 될 확률이 평상시보다 열 배는 더 높아집니다. 성폭행, 도둑질, 폭행, 살인과 같은 행위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멀쩡한 사람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추행을 저질러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 계율을 오계라고 합니다. 오계는 남을 해치는 행위, 손해 끼치는 행위, 괴롭히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말로도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고, 술에 취해서도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재가 수행자가 일상 속에서 지켜야 할 삶의 지침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오늘이 있기 전에 나도 모르게 지은 허물이 있다면 모두 씻어내고 불태워야 합니다. 그것이 참회입니다.”
이어서 참회, 연비, 수계 약속, 헌화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전법활동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발심행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다음은 불명을 받는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한 후 수계증을 수여했습니다. 대표로 한 분에게 수계증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온라인으로 참석한 분들에게도 랜선으로 수계증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수계 받은 대중들을 위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수행자를 지향하는 것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수행자가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화를 낸 다음에 ‘사람이 살다 보면 화를 낼 수도 있지!’ 이렇게 합리화를 하면 안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화를 냈다면 ‘제가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보시를 한다고 해서 칭찬을 받는 게 아니라 보시는 수행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보시를 하지 않아서 ‘요즘 왜 보시를 안 하십니까?’ 이런 말을 들어도 ‘죄송합니다’ 하고 대답해야 합니다. 법회에 참석하지 않아서 ‘요즘 왜 법회에 참석하지 않으십니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죄송합니다. 바빠서 참석하지 못했는데 다음 법회에는 참석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내가 법회에 참석하든 안 하든 그건 내 일인데 당신이 왜 상관하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제는 수행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수행자로서 다 같이 지키기로 한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수행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말은 부처로 나아가는 붓다클럽의 멤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멤버를 대승불교에서는 이름하여 보살이라고 합니다. 계율을 어겼을 때는 반드시 참회를 해야 합니다. 발심행자가 되기 전에는 잘못했다 싶으면 참회를 하고, 내키지 않으면 참회를 하지 않아도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계율을 어겼을 때 참회를 하는 것이 이제 의무사항입니다. 이렇게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는 것을 ‘포살(布薩)’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포살법회에 꼭 참여해야 합니다.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번씩 포살에 참가해서 오늘 받은 계율을 어겼을 때는 그걸 드러내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제가 성질이 난다고 욕을 했습니다’, ‘제가 화가 나는 마음에 생명을 해쳤습니다’ 이렇게 반성을 해야 합니다. 포살법회에 참석하지 않고 계속 빠지면 수행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오늘 받은 계율이 무효가 됩니다.
계율을 한 번 받았다고 해서 계속해서 정토행자의 자격이 영원히 유지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수행자로서 자기 자신을 꾸준히 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사유 없이 포살법회에 연속해서 빠지게 되면 오늘 수계한 것이 무효가 됩니다. 수행자의 자격은 한 번 받았다고 해서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행, 보시, 봉사를 꾸준히 해야 유지됩니다. 그래야 수행자 그룹 안에 계속 머물 수 있습니다.
대신 수행자 그룹 안에 들어오면 정토회에서 어떤 의사 결정을 할 때마다 여러분들에게 결정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상가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표를 뽑을 때도 투표권이 주어지고, 지부장을 뽑을 때도 투표권이 주어지고, 지회장을 뽑을 때도 투표권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정토회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여러분은 그 결정을 승인할 권한을 갖게 됩니다. 또한 정토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의 연유나 타당성을 문의할 수 있는 권리도 갖게 됩니다. 수행공동체의 일원이 문의를 하면 정토회는 그것에 대해 대답을 해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수행자는 세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 수행자는 자기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수행자의 모임에 들어와서 자기 수행을 하지 않는다는 건 커다란 모순입니다. 자기 수행을 꾸준히 해서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취급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수행자가 되기 전에는 남편과 싸우거나 아이를 야단치거나 해도 모두 개인사였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여러분들이 성질이 나서 남편한테 욕을 하거나 아이를 때리거나 해서 형사소송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그건 가정폭력 사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정토회에서도 수행자로서 인격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수행자의 그룹에서 제명을 합니다. 이제는 수행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가정사라고 해서 개인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생활의 모든 면에서 수행자의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반면, 여러분들이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수행의 계율에는 어긋나지 않는 행위인데 세속적 가치로 비난당하거나 형사처벌을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계율적 가치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세상의 기준에서는 법적 제재를 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수행공동체에서 여러분을 보호해 줍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기준을 갖고 비난한다고 해서 우리도 같이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살핀 다음 수행자의 계율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긋남이 없다면 설령 세속적 기준에서 비난을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보호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에게는 수행자로서 보호받을 권리도 주어집니다.
둘째, 수행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전법 활동을 해야 합니다.
셋째, 사회적 실천을 해야 합니다. 적어도 정토회 멤버가 되었다면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어서 식량 지원을 하자고 할 때 ‘북한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들도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 왜 식량을 줍니까?’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일본에 지진이 나서 구호물품을 보내려고 할 때 ‘일본 놈들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하는데 왜 도와줍니까?’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세속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수행자는 굶는 사람을 먹이고,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난민을 돕는 일에 정치적 이유나 종교적 이유로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평소에 애국심을 갖거나 보수적인 이념을 갖고 지내는 건 괜찮지만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할 때는 수행자적 가치관으로 임해야지 세상의 가치관을 적용하면 안 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수행, 보시, 봉사를 해나갈 때 여러분은 보디사트바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자기 수행을 해서 인격을 쌓아가야 하고, 둘째, 이 좋은 법을 널리 전하는 전법 활동을 해야 하고, 셋째,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활동을 해나가야 합니다.
수행자는 세계 시민적 관점을 가지고 평등성을 지향해야 합니다. 차별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분노하는 게 아니라 평등성을 지향해야 합니다. 세상살이에서는 차별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향점은 평등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카스트로 인한 차별도 부정하시고, 성차별도 부정하시고, 항상 모든 사람을 평등한 관점에서 보고 그들을 대하셨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자기한테 불리하니까 부처님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수행자로서 하는 일도 비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행자로서 세상의 평화와 만 중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나의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오늘 수계를 받았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갑자기 모든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계율을 어겼을 때는 ‘죄송합니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놓쳤을 때도 뉘우치지 않고 ‘사람이 다 그렇지, 너는 안 그러냐’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수행적 관점을 놓쳤을 때는 항상 ‘제가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성질이 난다고 해서 수행도 다 때려치우고 자기 마음대로 주장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대중들 앞에서 ‘수행자로 나아가겠습니다’ 하고 공표를 했기 때문에, 이제는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놓쳐서 지적을 받으면 ‘제가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스님이 ‘당신은 요즘 왜 아침기도를 안 합니까?’, ‘당신은 요즘 왜 봉사를 안 합니까?’ 이렇게 말할 때 ‘내가 하든지 말든지 스님이 무슨 상관인가’ 이러면 안 됩니다. 놓치면 ‘죄송합니다’ 하고 수행자의 자세로 돌아와야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수계식을 마친 후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수계를 받은 발심행자들은 이어지는 2부 프로그램에서 소감 나누기를 이어나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을 보고 그동안 밀린 업무들을 처리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영어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진 후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에 참석해 법문을 하고, 오후에는 경전대학 졸업식에 참석해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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