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2.20 종교인 모임, 수행법회
“한 해를 돌아보는 두 가지 기준”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는 날입니다. 밤새 서울에는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아침 7시에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이 모두 도착하자 다 함께 식사하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김명혁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장염이 남아 있어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회의실로 자리를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지난주에 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를 방문하여 초등학교 교실과 장애인 특수학교 준공식을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 영상 보기

영상을 보고 난 후 종교인분들이 한 마디씩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영상을 보니까 제가 어릴 때 외국에서 학교 지어주고, 학용품 지원해 주고, 간식 지원을 해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나라도 외국 단체의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스님의 활동을 보면 종교를 뛰어넘는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거제도 애광원도 기독교 단체인데 늘 도와주고 계시잖아요. 필리핀도 대부분 가톨릭을 종교로 갖고 있는데, 그들을 도와주고 있고요.”

“가장 고생을 많이 하는 분도 법륜스님이지만, 그래서 가장 행복한 분이 법륜스님인 것 같아요. 그런 제자를 둔 불심도문 큰스님도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이렇게 훌륭한 실천을 하고 계신 법륜 스님과 매달 한 번씩 모임을 하는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사실은 우리 종교인들이 해야 하는 일들을 법륜 스님이 대신 하고 계신 거거든요.”

목사님과 주교님, 교령님이 모두 기쁜 마음을 표현하자 스님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보다 더 행복한 분이 계세요. 가장 행복한 분이 바로 김명혁 목사님인 것 같아요. 목사님은 두려움도 없으시고, 행복과 불행을 초월한 분이세요. 모임을 시작하면서 목사님께서 여는 말씀으로 설교를 좀 해주시죠.”

스님의 요청을 받고 김명혁 목사님이 여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법륜스님이 필리핀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듯이 우리들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많이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할렐루야!”

스님이 할렐루야를 말하자 목사님이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할렐루야와 아멘은 뜻이 조금 달라요. 아멘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는 뜻이고, 할렐루야는 ‘저를 일꾼으로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는 뜻입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은 후 본격적으로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난번 모임에서 한반도의 전쟁 위기 상황과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학살에 대해 우려하면서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하자고 의논했습니다. 그 사이 중동의 상황은 이스라엘이 인질을 사살하면서 국제적인 여론이 많이 나빠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할 시기를 언제로 하면 좋을까요?”

각자 의견을 말하고 토론을 계속했습니다. 박경조 주교님은 한 달 사이에 주위에 종교인 분들과 평화 문제를 의논해 본 결과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직접 종교인들을 만나서 대화를 해보았는데요. 지금 한반도와 중동의 상황에 대해 대부분이 우려를 하고 있었어요.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성명서 발표에 대해서는 모두가 찬성한다는 의견을 말해 주었습니다.”

한국의 정치 상황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평화 문제에 대한 호소와 성명서 발표는 조금 더 신중하게 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어서 한국의 여야 갈등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 대해 스님이 우려를 말했습니다.

“저는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 당나라가 왜 망했고, 송나라가 왜 망했고, 한나라가 왜 망했는지가 확실하게 이해가 되고 있어요. 망하는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은 왜 자신들의 나라가 망하는지 도무지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망해 있는 거죠. 외교 위기와 경제 위기가 곧 들이닥칠 텐데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네요.”

“세상의 흐름대로 그냥 망하게 내버려둘 것 같으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매달 모임을 갖고 온갖 노력을 합니까? 최선을 다해서 막아야죠. (웃음)

옛날에 도인들이 나라가 어지러운 데도 산속에 들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비판적으로 바라봤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한반도의 긴장은 더욱더 고조되고, 중동에서는 전쟁의 학살이 갈수록 심해지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장기전으로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종교인분들을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도 한 줄기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종교인분들을 1층 현관까지 배웅한 후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기 위해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법회입니다.

먼저 정토회 대표님이 인사말을 한 후 거제 지회에서 지난 일 년 동안 지역 실천 활동을 열심히 한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정토회 경남지부에서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환경 실천의 일환으로 비닐백이나 플라스틱 구입 없이 한 달 살아보기 실천을 해보았습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모든 것들이 보기 좋게 비닐로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릇을 들고 가서 생선을 담아 달라고 해보았습니다. 가게 주인은 처음에는 귀찮아했지만, 용기를 내어 용기를 내밀자 생선을 용기에 담아 주었습니다. 점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지회와 지부가 힘을 합쳐 고성 시장에서 캠페인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설문조사 피켓을 만들어서 시민들이 참여하게 하고, 율동을 연습해서 보여주고, 온라인 생방송도 했습니다.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도 했습니다.

우리의 캠페인이 점점 확대되어 나간다면, 앞으로 용기를 들고 시장 보는 사람들에게 할인을 해주거나 쿠폰을 발급해 주는 제도가 언젠가는 정착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용기를 들고 장보러 가는 일이 너무 당연한 것이 되는 날이 언젠가는 찾아올 것입니다. 지금 경남지부에서는 ‘용기내어 용기내’ 캠페인이 모든 모둠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어서 채팅창을 통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감을 각자 올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렇게 한 해를 가볍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 다 함께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송년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지역 실천 사례 발표를 들은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법회는 2023년을 마무리하는 송년법회입니다. 한 해를 시작할 때는 1년이라는 기간이 꽤 길어 보였습니다. 지나놓고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해가 지나가 버렸습니다. 세월이 긴 것 같지만, 지나놓고 돌아보면 10년, 20년, 30년이 어제 일 같은데 휙 지나가 버렸습니다. 아마 눈 감을 때 되돌아보면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장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긴 인생이 찰나에 불과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이라는 게 한순간이다.’ 하는 말은 지나놓고 나서 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저는 조금 전에 지역 실천 활동 사례를 들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제 자신에 대해 반성을 했습니다. 저는 농사도 짓고 수확한 농산물을 포장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비닐은 안 쓸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왜냐하면 비닐은 가볍고 부피가 작고 수분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농사지을 때 농사용 비닐을 쓴다고 환경 운동의 관점에서 비판적인 댓글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저는 ‘농사를 안 지어보니 몰라서 하는 소리다’라고 생각했어요. 비닐 문제만큼은 분해되는 비닐을 생산해서 해결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늘 보여준 실천 사례를 보면서 반성을 했습니다. 저도 비닐을 완전히 안 쓰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지만 적게 쓰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지역 실천 활동의 하나의 모범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토회 천일결사의 10대 목표 중 하나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지역 실천 운동을 펼친다’입니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여력이 없어서 손을 못 대고 있었어요. 그런데 ‘용기내서 용기내’ 운동은 아이디어도 좋고 같이 하는 활동가들이 합심한 지역 실천 활동의 모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 지역 실천 활동을 개척하는 데 어떤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는 면에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필리핀 민다나오를 다녀온 영상을 보여준 후 JTS가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 주었습니다. JTS는 지난 20년 동안 학교가 없는 원주민 마을과 학교가 없는 무슬림 분쟁 지역에 많은 학교를 지어왔습니다. 영상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닦거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다음은 전국 으뜸절에서 회원들이 실천 활동을 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각 실천 장소에서 실천 활동을 해주시고 봉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어서 스님은 한 해를 어떤 마음으로 마무리하면 좋을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올 한 해는 단순히 생각하면 2023년이라는 한 해가 지나간 거고요. 정토회의 역사 측면에서 보면 2차 만일의 첫발을 내디딘 한 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넓게 보면 정토회 창립 이후 지난 30년을 마무리하고 다음 30년을 출발하는 시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30년을 회향은 했지만, 지난 30년 동안 마무리하지 못한 것들이 있어서 올해는 남은 과제를 열심히 마무리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또한 앞으로 30년 갈 길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다 보니 앞으로 30년을 준비하기에는 좀 부족했고, 지난 30년의 유산을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두 가지 기준

그래서 여러분이 지난 1년을 되돌아볼 때 어떤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추수가 끝나면 뒷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또 내년 봄 농사 지을 것도 미리 준비해야 하죠. 겨울을 농한기라고 말하지만, 이 기간에 지난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새로 지을 농사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매우 중요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두 개로 요약한다면 하나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고, 다른 하나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근시안적으로만 보고 인생을 살기가 쉽습니다. 매일매일 하는 일이나 마주하는 인간관계를 짧게 보면 여러 어려움이 있고 갈등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10년 후에 되돌아보면 지금 죽고 못 사는 일이 다 별일이 아니죠. ‘일이 잘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 그와 친해도 그만 갈등을 겪어도 그만, 같이 살아도 그만 헤어져도 그만’입니다. 지나 놓고 보면 다 별일이 아닙니다. 짧게 보면 매일매일 큰일이 생깁니다. 매일매일 시시각각으로 어려운 일을 겪는데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에요. 큰 눈으로 보고 지구적으로 보면 한 나라가 망하고 흥하는 것이 그렇게 큰일이 아니에요. 나라의 측면에서 볼 때는 한 집안이 망하고 흥하는 것은 별일 아닙니다. 큰 틀에서 보면 사람 하나 죽고 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에요. 자연계에는 수도 없이 새 생명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너무 좁은 눈으로 세상을 보니까 화나고 짜증 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슬퍼하고 근심하고 걱정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좀 큰 눈으로 보자는 겁니다. 큰 눈으로 보면, 즉 넓게 보고 길게 보면 다 별일 아닙니다. 이게 색이 공한 도리입니다. 색이 공한 도리, 제법이 공한 도리를 알게 되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화날 일도 없고 짜증 날 일도 없고 미워할 일도 없고 슬퍼할 일도 없고 근심 걱정할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지요.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열반, 니르바나입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이런 측면만 있는 게 아닙니다. 다시 공즉시색입니다. 무한한 우주를 보지만 그 무한한 우주도 티끌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무한히 긴 시간도 찰나 찰나가 모여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찰나 찰나를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데 이 찰나의 순간이 쌓여서 긴 시간이 되잖아요? 그래서 이 찰나에 깨어 있지 못하면 괴로움이 발생하고 여러 가지 큰 문제가 생기고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즉시색입니다. 크게 보면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해도 되지만, 이 시간과 이 공간에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인연 따라 정해지는 거예요.

필리핀 민다나오에 사람이 많이 살든 적게 살든, 거기 이슬람교도가 살든 기독교인이 살든, 전쟁이 나서 죽든 평화롭게 살든, 큰 눈으로 보면 별일 아니에요. 그걸로 너무 분노하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색즉시공의 도리를 알면 내 마음이 여일하게 니르바나의 경지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베지 말아야 하고,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하고, 신발이 없다면 신발도 신겨야 하고, 밥을 못 먹는다면 밥도 줘야 하고, 병이 나면 치료해 줘야 하고, 전쟁이 나면 막아야 하고, 차별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일체가 공(空)하지만 인연을 따라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색(色)한 도리도 알아야 합니다. 제법이 공(空)한 도리를 혜안(慧眼)이라고 한다면, 공이 색한 도리를 아는 것이 법안(法眼), 불안(佛眼)이라고 해요. 즉 부처의 눈, 보살의 눈입니다.

보살은 중생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서 아픔을 치료합니다. 중생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다는 말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충족해 준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는 세세하게 살펴서 정교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것에 너무 치우치면 번뇌 망상이 일어납니다. 반대로 공함에 너무 치우치면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다못해 김치를 담을 때에도 세심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김치의 간을 어떻게 맞출지, 배추를 얼마 동안 소금에 절일지, 양념은 어떻게 배합할지 등 세세하게 살펴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세밀한 부분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제법이 공한 도리와 같이 큰 원리에 보편성이 있다고 본다면, 색한 도리에는 각각의 특수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을 할 때도 꼭 기술이 뛰어나고 지식이 많아야 하는 게 아닙니다.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과 직관력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을 할 때는 항상 상황을 먼저 파악해서 앞뒤 순서를 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일에는 순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농사를 지을 때는 거름을 먼저 뿌리고 나서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합니다. 밭에 풀을 맬 때도 제때에 맞춰서 풀을 매면 일이 수월합니다. 이렇듯 모든 일에는 다 순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하는 말이 있잖아요. 때를 맞추면 일이 적은데, 때를 놓치면 수고로이 일만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수행의 기본관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행한다고 하면서 제법이 공한 도리를 모르고, 세상의 윤회 속에서 헐떡거리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면 거꾸로 공이 색 한 도리를 알지 못해서, 허황한 소리를 하는 일종의 수행병에 걸린 사람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수행자는 감각도 생각도 없이 멍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어떤 일을 하든지 집착하지도 말고 외면하지도 말아야 해요.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사실 지나놓고 보면 다 별거 아니에요.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지나놓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수행은 별거 아니라는 사실에만 붙들려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현실 또한 항상 잘 살펴야 해요. 그렇다고 현실에 너무 집착해서 근심 걱정에 빠지면, 제법이 공한 도리를 모르는 거예요. 걱정 하나 없이 태평스럽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생각에 빠지면,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너무 세세한 데 집착해서 번뇌가 많습니다. 도를 닦는 사람들은 너무 공한 도리만 알아서 현실에 맞지 않는 허황한 소리를 합니다. 수행자라면 여일함과 세심함, 즉 색이 공한 이치와 공이 색한 이치를 둘 다 놓쳐서는 안 됩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나는 어디에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상태를 한번 점검해 보라는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럼 남은 한 해를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스님의 말씀을 새기며 사홍서원으로 송년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지회별로 다시 화상회의 방에 모여 송년회 프로그램을 따로 가졌습니다.

전국에 강추위가 찾아와서 낮 기온도 영하 10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오후에는 실내에서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여 기획위원들과 두 시간 동안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원고 교정을 보고, 업무를 더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북한 전문가들과 한반도의 평화, 중동의 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하루 종일 실내에서 업무를 볼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9

0/200

드림하이

“할렐루야와 아멘은 뜻이 조금 달라요. 아멘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는 뜻이고, 할렐루야는 ‘저를 일꾼으로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는 뜻입니다.”

2024-03-22 16:04:18

Olivia_Lee

항상 모 아니면 도 였던 저에게 와닿는 스님의 하루였습니다. “수행자는 감각도 생각도 없이 멍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어떤 일을 하든지 집착하지도 말고 외면하지도 말아야 해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하지만 집착은 하지 않겠습니다.

2024-01-01 21:16:46

보승

수행자라면 여일함과 세심함, 즉 색이 공한 이치와 공이 색한 이치를 둘 다 놓쳐서는 안 됩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나는 어디에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상태를 한번 점검해 보라는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2023-12-29 17:28:4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