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1.30 자재병원, 거제도 애광원, 농산물 전달
“바쁠 때는 쉬고 싶고, 쉴 때는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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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호스피스 의료기관인 자재병원과 지적장애인 보호 시설인 거제도 애광원에 농산물을 전달하러 가는 날입니다.

지난주에 스님이 직접 농사지은 무를 수확해서 창고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두북 농장에 올해 배추 농사가 제대로 안 되어서 김장이 걱정이라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최해기 님이 배추 2000 포기를 보시해 주었습니다. 또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는 여정화 님이 정성 들여 재배한 배를 100박스 보시해 주었습니다.

다음 주 주말에 김장 축제에서 사용할 것을 제외하고 모두 자재병원과 거제도 애광원에 나눠주기로 하고, 어제 하루 종일 문수팀 행자님들이 배추, 무, 배를 트럭에 가득 실어 놓았습니다. 양이 많아서 두 대의 트럭에 가득 실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트럭에 실린 농산물을 확인하고 7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리기 위해 아예 작업복에 장화를 신어 두었습니다. 문수팀 행자님들은 곧바로 거제도 애광원을 향해 출발하고, 스님은 자재병원에 먼저 들렀습니다.

자재병원에 도착하자 비구니 스님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배추를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배추는 있다고 해서 배만 가져왔어요.”

“어떻게 이렇게 농사를 잘 지으셨습니까?”

“제가 농사지은 것이 아니고요. 나주에서 정토회 회원이 배 과수원을 하는데 보시를 많이 해주었어요. 그래서 나눠드리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봉고차 뒷자리에 가득 실린 박스를 하나씩 내렸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을 비롯해 요양 병원에서 일하는 보살님들과 거사님들도 짐을 내리기 위해 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짐을 다 내리자 스님은 자재병원에 보시금을 전달한 후 서둘러 차에 탔습니다.

“혹시 김장할 때 배추가 부족하면 연락 주세요. 올해 배추 농사가 제대로 안 되었는데 누가 그 소식을 듣고 배추를 보시해 주었어요. 연락 주시면 나눠드릴게요.”

곧바로 거제도 애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로 2시간을 달리자 가덕휴게소가 나왔습니다. 휴게소에 잠시 내려 트럭에 농산물을 가득 싣고 오는 문수팀 행자님들을 기다렸습니다.

휴게소에서는 십원빵과 어묵탕 등 여러 가지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행자님에게 물었습니다.

“뭐 좀 먹고 갈래요? 얼마인지 한 번 물어보세요.”

“빵 하나에 4천 원입니다.”

“예전에는 국밥 한 그릇이 그 정도 했는데 물가가 정말 많이 올랐네요. 눈으로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먹고 갑시다. 요즘 세상에는 정토행자들처럼 검소하게 사는 게 제일 편하게 사는 방법이에요.”

눈으로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마음껏 먹었습니다. 저 멀리 바다 위로 거가대교가 보이고, 그 앞으로 큰 배가 물살을 가르며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 풍경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잠시 후 트럭이 도착하자 다시 가던 길을 향해 달렸습니다. 해저터널을 지나고 거가대교를 건너 오전 10시에 거제도 애광원에 도착했습니다.

식품 창고 앞에는 애광원 직원 분들이 작업복을 입고 배추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애광원은 장애인복지법에 의거해 일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으나 수백 명의 장애인들의 생활과 재활, 교육을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스님은 ‘내가 못하는 일을 해주니 고맙다’고 하며 매년 애광원 생활인들과 나들이를 해왔습니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는 농산물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배추, 무, 배를 싣고 왔습니다. 스님이 짐을 내리기 시작하자 애광원 직원 분들도 함께 짐을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트럭 뒷좌석에 가득 실린 무와 배를 먼저 내린 후 짐칸에 가득 쌓은 배추를 내렸습니다.




한창 배추를 나르고 있는데 송우정 이사님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김임순 원장님은 얼마 전에 다리를 다쳐 못 나오셨습니다.


“스님, 힘쓰는 것을 보니까 아직 젊으시네요.”

“이사님보다는 제가 더 젊어요.”

“배추 농사를 정말 잘 지으셨네요.”

“배추 상태가 좋은 이유는 전문적으로 고랭지 배추 농사를 짓는 분한테 보시를 받아서 그런 거예요. 백화점에 공급하는 최고급 배추입니다. 저는 유기농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예쁜 모양이 안 나와요.” (웃음)

줄을 서서 릴레이로 짐을 나르자 두 트럭에 가득 실려있던 짐이 금방 식품창고로 옮겨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빈 상자를 트럭에 실었습니다.


배추 514포기, 배 13상자, 무 10자루를 차곡차곡 쌓은 후 애광원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차 한 잔 하고 가시지요.”

차 한 잔만 하고 가라고 권유를 해서 다 함께 애광원에서 원생들의 직업 재활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카페로 이동했습니다. 카페에는 원생들의 모습이 담긴 여러 사진들이 예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카페에서 직업 재활 훈련을 하고 있는 민지 씨가 차를 주문받았습니다. 스님이 민지 씨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커피가 많이 팔려요?”

“돈, 돈 버는, 연습, 습, 하고 있어요.”

민지 씨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수줍게 대답했습니다. 이사님이 왜 민지 씨가 말을 더듬더듬하는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갑자기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하기 위해 생각을 모으는 시간이 필요해요. 조금만 기다려주면 생각을 잘 정리해서 표현을 합니다.”

잠시 후 민지 씨가 빵과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스님과 이사님은 차를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습니다.


“얼마 전에 필리핀에서 제65회 막사이사이상 수상식이 열렸는데 저한테 기조연설을 해달라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막사이사이 재단에 가보니까 1989년에 김임순 원장님이 수상했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원장님도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원장님이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 100세이십니다.”

애광원 운영 현황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년 봄에 나들이할 때 또 뵙겠습니다.”

“스님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 잘 챙기셔요.”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은 차에 올랐습니다. 이사님은 트럭이 사라질 때까지 서서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이제서야 앞치마와 장화를 벗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휴게소에 들러 수고한 행자님들에게 식사를 사주었습니다. 내일부터 서울에서 일정이 계속 있기 때문에 스님은 서울로 바로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차에서 업무도 보고 휴식도 취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해가 저물었습니다. 서울 인근에서 퇴근 시간과 겹쳐 차가 밀리는 바람에 저녁 6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저녁에는 실내에서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9일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바쁠 때는 쉬고 싶고, 쉴 때는 불안합니다

“저는 평소에 많은 일을 하고 싶어서 상당히 많은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주말에는 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막상 주말에 쉬게 되면 불안합니다. 쉬고 있으면 ‘내가 이래서 뭐가 되려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대부분 사람들이 질문자와 비슷합니다. 목장에 있는 소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소가 풀을 뜯을 때 풀을 뜯기 싫어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면서 풀을 뜯습니까, 아니면 그냥 꾸준히 풀을 뜯습니까? 소가 바쁘게 서둘러서 풀을 뜯습니까, 아니면 천천히 풀을 뜯습니까?”

“천천히 풀을 뜯습니다.”

“소는 서두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한가하되 꾸준히 풀을 뜯습니다. 소가 배불러서 누워있다고 심심해합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밥 먹고 똥 누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일이 많아서 힘들다’ 하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힘들게 억지로 일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주어진 일은 그냥 하면 됩니다. 만약 의사라면 환자가 오는 대로 진료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밥도 먹지 않고 무리하면서 일을 하면 안 됩니다. 무리하게 일해서 건강을 해치면 일을 지속성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환자가 오지 않게 되면 어떻게 할까요? 책도 보고 청소도 하면 됩니다. ‘일이 없으니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 ‘왜 사람들이 요즘 안 아프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안 아프니 좋은 일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아무 일이 없어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 일이 없다고 해서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일 중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약 중독처럼 질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바쁘게 살다가 명상을 하게 되면 처음 며칠은 몸은 가만히 있는데 머리가 엄청나게 돌아갑니다. 앉아서 온갖 일들을 떠올립니다. 회사의 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일까지 꺼내면서 명상이 아닌 사색을 합니다. 그렇게 머릿속이 한시도 가만히 못 있다가 며칠이 지나면 마음이 안정됩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이 주어지면 바쁘게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놀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움입니다. 채근담(菜根譚)에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바람이 자면 나뭇잎도 멈춘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죠. 질문자도 가만히 있을 때 불안한 마음이 들면 오히려 시간을 내어 10일 명상에 참여해 보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한가하게 지낼 수 있고, 일이 바빠도 안정된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다면 일상생활에 큰 번뇌가 없어집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질문자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삶이 고달파지는 것입니다. 일이 있으면 힘들다고 하고, 일이 없으면 심심하다고 하거나 세상에 뒤처진다고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어떻습니까? 인류문명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환경위기로 인해 지구에 사는 모두가 공멸로 치닫고 있지 않나요? 이처럼 좀 더 크게 보면 빨리 발전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 있으면 꾸준히 하되 때로는 한가하게 멈출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돈을 못 벌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가장 큽니다.”

“돈을 못 벌면 어쩌나, 이런 생각을 한다고 돈을 벌 수 있나요? 예를 들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내가 불효했구나’ 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부모님이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자신의 잘못을 자각했다면 현재 살아있는 주변 사람에게는 후회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과거의 잘못이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불효했다고 후회하고, 남편이 죽으면 남편에게 잘못했다고 후회하고, 아이가 죽으면 아이에게 잔소리한 것을 후회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어리석음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잘못하면서 삽니다. 잘못, 실패, 실수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실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때 그 실수는 더 이상 실수가 아니게 됩니다. 인류문명은 수많은 실수가 쌓여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버섯이 독버섯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은 누군가 그것을 먹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 개인으로 보면 불행한 일이지만 인류 전체를 본다면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도주의, 인권, 민주주의, 국제협약이라고 일컫는 것들은 1차,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생긴 것들입니다. 최소한 6천만 명의 사람이 죽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난 후에야 반성하면서 만든 것이죠. 그런데 왜 지금 전쟁과 같은 바보 같은 짓을 또 하게 될까요? 몇 세대가 흘러가면서 과거의 실수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불안해만 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수를 교훈 삼아 지금 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지 고민해야 합니다.

바쁘게 서두른다고 해서 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위에서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 성과를 얻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라는 이솝우화에서 보듯이 짧은 시간을 두고 보면 토끼의 승리 같아 보이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거북이가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조급하게 무리하기보다는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해나가는 자세가 나와 세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에서 현장 생중계로 오전과 저녁 두 번에 걸쳐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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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조급하게 무리하기보다는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해나가는 자세가 나와 세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2024-03-19 22:42:49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

스님 국밥 물가도 알고 계시네요.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양념을 숟가락의 5분의 1 정도 넣고
후추를 두세 번 뿌리고 새우젓을 기호에 따라 넣고
섞어서 드세요.


밥은 말지 말고
처음에는 따로 먹다가
마지막에 밥 조금 남겨두고 국밥에 말아 드세요.

깍두기 국물은 넣지 말고
깍두기를 하나씩 국에 담가서 후루룩 마시세요.


맛없으면 국밥값 배상함

2024-02-25 14:24:59

정주희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스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12-08 08: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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