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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호국호법 도량 천룡사에서 불심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특별 법회를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8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백운암에 도착한 후 산길을 걸어 9시 20분에 천룡사에 도착했습니다.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행사 준비를 하느라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법당으로 가서 삼배를 했습니다. 곧 불심도문 큰스님이 도착했습니다. 탑 앞에 내린 큰스님은 곧바로 탑을 향해 기도를 하셨습니다. 스님은 함께 기도를 드린 후 거동이 불편한 큰스님을 부축하여 선당으로 모셨습니다.
먼저 큰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큰스님, 멀리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서 큰스님의 말씀을 청해 들었습니다. 큰스님은 책 한 권을 펼쳐 보여주셨습니다.
“이게 호국호법삼부경 가운데 하나인 묘법연화경입니다. ‘강희 27년 무진 5월 경상도 경주부 남 고이산 천룡사 개간 묘법연화경’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조선의 제19대 왕인 숙종대왕 14년 때(1688년)입니다. 그때 조실이었던 태행(太行) 스님을 중심으로 호국 호법을 위해 책을 개간한 거예요. 천룡사가 호국사찰이었다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그 책이 다 없어지고 딱 한 권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법륜 스님에게 주려고 복사를 해왔어요.”
실제로 2016년 화랑문화재연구원의 발굴 조사에서 묘법연화경 경판을 새기고 그것을 보관했던 대형 건물터가 이곳에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큰스님은 숙종 이후 영조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역대 조사와 독립운동사를 설명해 주신 후 스님에게 경전을 전해주며 불법을 잘 전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동헌완규 조사님이 하신 말씀인 ‘心是佛’(심시불, 마음이 부처다)이라는 글귀를 주셨습니다.
말씀을 마친 후 큰스님은 도시락으로 아침 공양을 하셨습니다. 쌀밥에 김치반찬이 다였습니다. 큰스님이 소심경을 하는 동안 스님도 합장하고 기다렸습니다.
“스님, 밥이 다 식었네요. 이곳에 따뜻한 밥으로 바꿔드릴게요.”
“나그네가 밥투정을 하면 되나요. 입에 들어가면 뜨거워져요.”
큰스님은 만류했지만 스님은 따뜻한 밥을 가져다 드렸습니다. 공양을 하시는 동안 법당에서 대중들은 사시예불을 드렸습니다. 예불이 끝나자 큰스님을 모시고 법회를 하기 위해 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정토회 부산울산 지부에서 600여 명의 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11시 정각에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법당 안에 대중이 가득 앉고, 나머지 대중은 바깥에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한 후 큰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자리가 좁아 대중은 서서 반배를 하고, 스님은 삼배를 드렸습니다.
큰스님은 이곳 천룡사에서 ‘묘법연화경’이 간행되었다는 역사 기록을 언급하며 묘법연화경의 핵심 내용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용성 진종조사 유훈 십사목(十事目) 가운데 제6사목은 ‘신라 천년고도 경주 남산 고위산 천룡사 폐허 성지를 잘 가꾸어서 수도·교화의 언덕으로 삼아라’입니다. 이렇게 유서 깊은 천룡사지에서 정토행자 600여 명이 설법을 청하니 이곳에서 간행된 묘법연화경 사구게 게송을 읊어서 법회를 장엄하고자 합니다. 먼저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보현보살 십종대원을 살펴보겠습니다. 보현보살 십종대원의 첫 번째는 예경제불원입니다. 따라 하세요. 예경제불원!”
“예경제불원(禮敬諸佛願),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길 원합니다.”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길 원합니다.”
“... 마지막 열 번째는 보개회향원(普皆迴向願)입니다. 지은 바 모든 공덕을 회향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해요. 첫째, 부처님을 따라서 배우길 원해야 합니다. 둘째, 중생이 잘못하면 꾸중할 것이 아니라 중생의 수준, 근기, 형편에 맞춰서 구제해야 합니다. 꾸중하거나 호통치지 말고 중생의 근기에 따라 순응해서 제도를 해라는 말입니다. 법륜 스님이 즉문즉설을 하는 것처럼 하라는 말입니다.
이 도문 법사는 말로(末路)에 생로병사의 수행 중에 병들어서 죽는 과정의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하나씩 벗을 때마다 그 짐을 누구에게 주고 있습니까?”
“법륜 스님이요.”
“뻔할 뻔 자 아닙니까? 왜냐하면 저의 은사 스님인 동헌 조사님께서 ‘여러 말을 하지 말게. 저 사람은 자네가 죽은 뒤로 자네를 빛나게 할 사람이네’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말씀을 안 들을 수가 없잖습니까? 다른 제자들은 유학도 시켜달라고 하고 돈도 달라고 하고 절도 달라고 해서 많은 지원을 해주었지만, 법륜 스님은 유학도 안 간다고 하고 저한테 돈 달라는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륜 스님이 이 노인을 극진히 대접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방금 전에 법륜 스님으로부터 용성 진종조사의 유훈 십사목을 어떻게 실현해 가고 있는지 보고를 들었습니다. 성심성의를 다해 가야불교 초전법륜 성지인 봉림사지를 잘 가꾸고 있다고 하고, 폐허 성지인 이곳 천룡사도 하나씩 복원해 나가고 있다 합니다. 가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역사를 복원해 낸다면, 서역 인도에서 한국으로 불교가 전래된 것이 중국보다 20여 년이나 더 빨라집니다. 그래서 이 일은 한국불교의 역사를 바꾸는 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지 말고, 법륜 스님에게 성심성의를 다 하십시오. (모두 박수)
법륜 스님은 도문 스님의 허물을 안 봅니다. 스승의 허물을 안 봐요. 나는 허물이 참 많은 사람인데 내 허물을 절대 안 보고 끝끝내 극진하게 대접을 해줍니다. 또 제가 항상 무거운 짐을 던져주는데 거절을 안 하고 빙긋이 웃으면서 받습니다. 이런 위대한 도인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도문 큰스님은 용성조사님의 유훈 실현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정토회 회원들에게 거듭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용성조사님은 호국호법도량 천룡사가 흥할 때 나라도 흥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우리나라 800년 국운과 불법 중흥을 위해 천룡사 복원을 제자 동헌완규 조사님에게 부촉했습니다. 동헌 완규 조사님으로부터 그 부촉을 이어받은 불심도문 큰스님은 20여 년에 걸쳐 농가로 변한 천룡사지 6만여 평을 구입하여 지금까지 천룡사지 복원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불심도문 큰스님의 평생 동안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불심도문 큰스님이 법상에서 내려온 후 사홍서원으로 법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큰스님을 부축해 선당으로 모신 후 가사를 받아 접고 다리를 주물러드렸습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다 늙은 노인이 자꾸 짐만 넘겨주어서...”
“아닙니다. 스님 그런 말씀 마세요. 오늘 법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셔서 참 좋았습니다.”
이어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큰스님께서 소심경을 모두 독송할 때까지 모두 합장하고 기다렸다가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 스님은 불심도문 큰스님이 가시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대중들은 삼층석탑 주위에 지회별로 모여 앉아 각자 싸 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모두가 마당에 모였습니다. 한파가 내린 날이지만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부산울산지부 회원의 날'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하지회 새물정진팀에서 플래시몹 공연으로 분위기를 달구었습니다.
이어서 천룡사 보리수 정진팀의 공연을 함께 보았습니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흥겨운 공연을 뒤로하고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정지회, 남울산지회, 동래지회, 사하지회, 수영지회, 중울산지회, 해운대지회에서 각 지회를 소개하는 퍼포먼스를 재미있게 준비해서 보여주었습니다.
다음은 금정지회에서 팬플룻 연주 공연을 했습니다.
감미로운 연주를 통해 마음을 고요하게 한 후 다 함께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오랜만에 볕이 좋은 마당에서 야단법석이 펼쳐졌습니다.
스님은 천룡사를 가꾸고 있는 부산울산지부 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유생들이 불을 질러 이곳이 폐허가 된 후에 나라가 어지러우니까 저 아래에 사는 민간인들이 하나 둘 이곳에 올라와 땅을 일구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30여 가구 가까이 살게 되었고, 일제 강점기 때 토지를 등록하는 과정에서 이곳 토지가 전부 개인 소유가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용성조사님의 유훈에 따라 불심도문 큰스님께서 1970년대부터 20여 년 간 이곳 6만 여 평을 구입하셔서 복원을 해오셨습니다. 지금은 정토회가 그 뜻을 이어받아 이곳을 유지하고 관리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높은 곳까지 걸어 올라와서 천룡사를 관리해 주신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이곳이 수행 정진하는 도량이 되고, 여러분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도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는 큰스님의 법문 내용도 좋았지만 ‘큰스님께서 아직 건강하시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내내 편안했습니다. 큰스님은 저보다 훨씬 더 건강하신 것 같죠? 목소리도 쩌렁쩌렁하시고요. 큰스님이 아직 건강하시다는 점이 저에겐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다섯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대화를 나눈 후, 이어서 현장에서 자유롭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암투병 중이라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어떻게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사람이 죽거나, 병이 나서 죽을 위기에 처해 있거나, 전 재산을 잃어버리거나, 중요한 시험에 떨어지거나, 이럴 때 옆에서 무슨 말을 한들 그게 위안이 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살다가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 위로를 구하는데, 이렇게 위안을 얻으려는 데서 5천 년 전에 나온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사람은 가진 것을 잃어버릴 때나,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괴로움을 느낍니다.
질문자는 남편이라는 존재가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괴롭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 전 즉문즉설에서 자기가 아끼던 반려견이 죽어서 너무 괴롭다는 사연이 있었어요. 49재도 지냈는데 극락에 갔는지, 다음 생에는 개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겠는지, 다시 반려견으로 태어난다면 나와 다시 만날 수 있겠는지, 스님이 좀 이야기를 해달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들어보면 왜 영혼설이 나오고, 왜 환생설이 나오고, 왜 내생에 좋은 곳에 간다는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키우던 강아지한테도 집착을 하니까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키우던 강아지한테도 이런 마음을 느끼는데 하물며 같이 살던 사람한테는 더 하겠죠.
이럴 때 위로를 해주는 게 종교입니다. 기도를 하면 좋은 곳으로 간다거나, 환생을 한다거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때 그게 사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이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위로를 받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시고 어떻게 해야 괴로움을 근원적으로 없앨 수 있는지 그 길을 찾아 출가를 하셨습니다. 만약 위로에 만족을 했다면 왕자로 살던 붓다가 출가할 이유가 없었겠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다 그런 위로로 만족을 했는데, 붓다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출가해서 탐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데 헤어지는 인연이 되면 괴로움이 발생하고, 내가 싫어하는데 만날 인연이 되면 괴로움이 발생한다는 걸 발견하신 거예요. 헤어지는 것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과 인연이 되면 괴로움이 발생하고, 또 싫어하는 마음과 인연이 되면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얻고자 하는데 얻지 못하면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이처럼 내 마음에 왜 괴로움이 발생하는지 탐구해서 괴로움의 발생 원인은 집착이라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 집착을 놓으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왜 집착이 놓아지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좋고 싫음을 떠나버리면 집착할 바가 없어지고, 집착할 바가 없어지면 괴로움은 사라집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정토불교대학에서 배운 내용입니다.
괴로움이 발생할 때 왜 그런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소심해서 고민이라면 소심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탐구해야 합니다. 소심해지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쪽에서도 욕을 안 먹고, 저쪽에서도 욕을 안 먹으려고 하니까 소심해지는 거예요. 남한테 욕을 하나도 안 먹고 다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욕심입니다.
누가 돈 빌려달라고 할 때 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그 뿌리를 살펴보면 모두 욕심 때문입니다. 얼핏 들으면 내가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 고민하는 게 왜 욕심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빌려주려고 하니 못 돌려받을 것 같고, 안 빌려주려니 욕을 먹을 것 같고, 돈도 안 주고 욕도 안 먹는 방법이 없을까?’
이렇게 머리를 굴리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질문자의 경우에도 남편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과의 관계로 인한 원인이 있을 거예요. 정신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에 남편이 죽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고, 남편이 떠난 뒤 미래의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자식에 대해 괴로움을 느끼는 건 대부분 자식에 대한 애착심 때문이에요.
질문자도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그 원인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우선 내가 걱정한다고 병이 낫는 건 아니에요. 치료는 의사가 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게 아니니까 그 부분은 의사에게 맡기고, 대신 나는 거기에 필요한 병원비를 지원한다거나 간호를 도와준다거나 할 수 있겠죠.
큰스님이 나이가 점점 들어가시는데, 제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부축해 드리는 일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가시는 걸 제가 막을 수는 없잖아요. 대신 밥 한 끼 사드리고, 걸어 다닐 때 부축해 드리는 일은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없는데도 마치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기 때문에 번뇌가 생깁니다.
자식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고민하는 사람은 질문자의 사연을 듣고 ‘남편 같으면 내가 집착을 놓겠는데 자식은 집착을 놓기가 어렵다’ 하고 이야기를 할 겁니다. 반대로 질문자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 ‘정신적인 문제는 받아들이면 되지 병에 걸려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이렇게 사람은 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근본 원리를 꿰뚫으면, 그것이 병이든, 재산의 상실이든, 늙음이든, 장애든, 그 집착을 놓으면 누구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질문자도 앞으로 살면서 이런 끄달림 없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있으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배우면 됩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머리로 배우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우선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직접 경험하고 마음에서 받아들여져야 자기 것이 되지,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인생은 이런 거야’, ‘인생은 저런 거야’ 하고 말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픈 사람은 막상 내 아이가 아프니까 내 마음이 편안하게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고, 남편이 갑자기 암 진단을 받으니까 내 마음을 추스르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지금 남편의 병이 낫느냐 안 낫느냐는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해 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살펴서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정토회 일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남편을 간호하는 데 장애가 되면 안 해야 하고, 간호와 아무 관계가 없다면 계속 이어가는 것도 괜찮습니다. 남편이 아픈 것과 정토회 일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그걸 연결시켜서 마치 상관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건 순간적인 착각에 불과합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그동안 스님 법문을 들을 때는 다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 경험을 하니까 배운 대로 잘 안 되더라고요. 남편과는 사이가 아주 좋은 것도 아니고, 돈 문제도 크게 걱정이 될 상황은 아닌데도 괴로운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같이 사니까 집착이 생기죠. 강아지도 같이 지내면 정이 들고 집착이 생겨서 떠나보낼 때 괴로운 거예요. 대상이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괴로움은 모두 집착으로 인해 생깁니다.
지금 가자 지구에서는 하루에 아이들만 60여 명이 죽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거기에 대해 크게 괴로워하지는 않잖아요. 신문에서 기사를 읽을 때는 조금 안타깝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런 걸 보면 누군가 죽었기 때문에 슬픈 건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도 매일 매시 매초 단위로 사람이 죽고 있잖아요. 그러면 매일 슬퍼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누가 죽으면 괴롭고, 누가 죽으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의 원인이 나의 집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으면 이 괴로움이 집착으로부터 온 줄 알고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고, 괴롭고 싶으면 그냥 집착을 하고 괴로움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괴롭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그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음식에 쥐약이 들었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먹을지 말지는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죠. 자꾸 부처님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잘못 이해하니까 ‘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하는 질문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어떻게 살지는 각자가 알아서 사는 거예요. 부처님은 괴로움이 왜 생기는지 밝히셨고, 괴로움 없이 살고 싶으면 그 원리를 따라 행하면 되고, 감정이 끌리는 대로 살고 싶으면 그에 따른 괴로움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관점을 이렇게 갖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시간을 갖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부산울산지부 담당 법사인 혜등명 법사님의 인사말을 듣고 회원의 날 행사를 마쳤습니다.
사홍서원을 한 후 다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이어서 지회별로도 선당 앞 계단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7개 지회별로 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양해를 구하고 빠르게 내려갔습니다.
“제가 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얼른 가서 농사일을 해야 해요.”
행자님들이 어제 무를 수확한 밭을 정리하고, 남은 무를 수확하고 있어서 스님도 일손을 보태기 위해 아주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습니다. 고무신을 신고 내리막길을 달려가는 스님을 보며 앞서가던 대중들도 깜짝 놀라 길을 비켰습니다.
와룡사까지 달려 내려와 곧바로 차를 타고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행자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밭일을 어느 정도 했어요?”
“다 끝냈습니다. 밭에 안 오셔도 됩니다.”
행자님들이 밭일을 모두 끝냈다고 해서 밭으로 가지 않고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본 후 하루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미얀마, 스리랑카,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태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봉암사 사찰 순례를 하고, 선유동 정토연수원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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