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09.23 자메이카 방문 1일째
“미래에 제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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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 자메이카를 방문했습니다.

새벽 4시 10분에 볼티모어 워싱턴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끝내고 탑승구에서 원고 교정을 보며 비행기를 기다렸습니다.


어젯밤부터 워싱턴에는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정시에 미국 남동부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워싱턴 D.C. 에서 미국의 남동부 마이애미에 있는 포트 로더데일 공항까지 간 후 비행기를 갈아타고 자메이카로 갔습니다. 자메이카의 하늘은 맑았습니다.



12시가 넘어 공항을 나오니 자메이카에 사는 김진욱, 윤경숙 부부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습니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잠시 내려 바다를 구경했습니다.



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김진욱, 윤경숙 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부부는 먼저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제가 전 세계를 다녔어도 이곳에는 올 일이 없었는데 두 분 덕분에 와보네요. 이번 방문을 계기로 카리브해와 서인도 제도에 물꼬를 틀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지원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바로 옆 나라인 아이티에 대지진이 났을 때 긴급구호를 했는데, 그때는 이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깜깜했었거든요.”

“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와주셔서 저희가 감사합니다.”

짐을 풀고 점심을 먹는데 창밖에 비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3시에 자메이카 북부 해변 오초 리오스(Ocho Rios)로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지도를 보며 함께 길을 찾았습니다.

“제가 지도 법사잖아요.” (웃음)


하늘이 개는가 싶더니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오초 리오스에 도착했습니다.


오초 리오스는 크고 작은 폭포, 아름다운 해변으로 둘러싸인 명소입니다. 1494년 콜럼버스가 자메이카 발견 시 최초로 상륙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해변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지만, 번개가 치고 있어서 위험하다고 바닷가에 사람들의 입장을 막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해변 바깥에 난 길을 따라 산책하며 멀리서 바다를 구경했습니다. 김진욱 거사님은 맑은 날 볼 수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여주지 못해 무척 아쉬워하셨습니다.

“괜찮아요. 지금 바다도 아름다워요.”

관광객이 적어 오히려 한적하게 산책하기 좋았습니다.




차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해가 지고 달이 떴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저녁 8시 40분부터 중남미의 역사와 동향에 대해 김진욱 님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중남미는 크게 보면, 1492년에 콜럼버스가 방문하기 이전에 있었던 문명들이 있었고, 그 후 300년 동안 유럽의 식민지로 지내다가, 1820년경부터 독립하기 시작해서 200년 동안 혼란 속에서 온갖 실험을 다 해보는 시기를 거칩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실험까지 해본 나라들의 다양한 사례들을 비교해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중남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시간 동안 중남미 지역의 지리,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전망, 미래 이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중남미 국가들이 자연환경은 잘 갖추고 있는데 왜 경제 발전이 더딘지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김진욱 님은 중남미의 상황을 설명해 주면서 특이한 점에 대해서도 몇 가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약간 반미 성향으로 나가면 쿠데타에 의해서 정권이 뒤집히고, 약간 좌파 성향으로 나가면 외국 기업들이 다 철수를 하니까 경제가 무너지고, 경제 개발을 위해 외국 자본을 빌려 오면 국가 부도가 나버리고, 이런 실패를 수도 없이 반복한 것이 독립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중남미 국가들의 역사입니다. 그나마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가 백인 주도로 극단적인 실험을 줄여나가면서 비교적 강한 나라로 성장했을 뿐 나머지 국가들은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헌법에 ‘자연도 권리가 있다’ 하고 세계 최초로 명시한 나라가 에콰도르입니다. 2008년 9월에 자연의 권리 조항을 담은 헌법개정 안을 국민투표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래서 에콰도르에서는 자연이 파괴된 것에 대해 국민 누구나가 제소를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 사이의 재산권 침해가 아니더라도 자연을 해친 것에 대해서도 죄로 판결 내릴 수 있다는 조항을 헌법에 명시한 거죠. 예를 들어 도롱뇽이 피해를 보는 것에 대해 인간이 대신 소송을 걸면 재판부에서 그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겁니다. 주변에 다른 중남미 나라에서도 헌법에는 명시를 아직 안 했지만, 판례로 인정해 나가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 중의 하나가 전 세계에서 탄소 중립을 넘어서서 탄소 마이너스인 나라가 일곱 군데가 있는데 그중 두 개의 나라가 중남미에 있습니다. 탄소를 많이 흡수하는데 배출은 거의 하지 않는 나라인 거죠. 부탄은 스님께서 최근에 방문한 나라이고요. 중남미에서는 파나마와 수리남이 탄소 마이너스입니다.”

스님이 웃으며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지속 가능한 개발을 중남미에서도 작은 나라를 하나 교섭해서 해볼까요? 인구가 10만 명도 안 되는 나라가 몇 개 보이네요.”

“중남미는 작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이미 미국의 영향을 받아 소비주의에 잔뜩 물이 들어서 쉽지 않을 겁니다.”

“작은 나라도 이미 기득권층이 형성되어 있으니까 지속 가능한 개발이 쉽지 않겠네요. 부탄은 왕이 지속 가능한 개발에 대해 동의를 해서 가능할 수도 있거든요.”

이 외에도 중남미의 미래 이슈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밤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일정에 대해 간단히 공유한 후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9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미국인과의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이 질문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미래에 제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The question is thinking about how do I think less and worry less about tomorrow and think a bit more in the now. As a father and a husband I worry about provision for family. I worry about the future. I find myself increasingly worrying about the future. And so it gives me nightmares. It gives me continuous thoughts about tomorrow. Am I going to be able to provide? Am I going to be here? There's nothing that's threatening my existence but I worry about tomorrow. And I really want to get to a place where I can sort of live more in the now, more in this sort of happiness factor. And in fact, when I saw you were coming to speak, I saw the word happiness and I was hoping for your wisdom in thinking about sort of repositioning my life to more in the now rather than worrying about the future.”
(제가 궁금한 것은 어떻게 미래에 대한 걱정과 생각들을 덜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을까입니다. 아빠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우리 가족을 돌보는데 걱정이 많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죠. 앞날에 대한 걱정이 날로 늘고 있습니다. 악몽을 꿀 정도입니다. 내일에 대한 갖가지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가족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내일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저는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 행복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말이지요. 스님께서 오신다고 포스터를 봤을 때 행복이라는 단어를 보고 스님과 대화를 통해 지혜를 얻고 싶었습니다. 제 삶을 재정비해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현재에 중심을 잡고 살고 싶습니다.)

“자녀가 몇 살입니까?”

“It was two marriages. One is 26, a 21 year old, and I have an 11 year old.”
(두 번의 결혼으로 26살, 21살, 그리고 11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보살펴야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Yes, but I still worry about the 26 year old and the 21 year old. Because I don't, I still don't think they've landed at a place where I feel like I can not direct or not guide and still feel they need me in terms of where their lives are.”
(네, 하지만 아직도 26살과 21살인 아이들이 걱정입니다. 아직도 제가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는 준비가 안 된 상태인 것 같고, 아직 아이들의 인생에 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질문자는 스물한 살, 스물여섯 살 때 어땠습니까? 아버지가 도와줘서 살았습니까?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했습니까?”

“So, I left home at 16. I ran away from home and fended for myself. Another family took me in and gave me space to which I could live safely. So it wasn't good at all.”
(그러니까, 저는 16살에 집을 떠났습니다. 가출해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왔습니다. 다른 가족이 저를 받아주어서 안전하게 살기는 했습니다. 좋지는 않았습니다.)

“질문자가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도 인생의 여러 어려움을 겪고 경험을 하면서 점점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성인이 되었는데도 그들을 걱정하는 이유는 아직 어린아이 취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자녀 때문에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짐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성인이 되었는데도 부모의 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서로를 괴롭히는 일입니다.

자연의 세계를 한번 보십시오. 어미 새는 새끼가 어릴 때는 먹이를 입 안에 넣어줍니다. 새끼가 점점 자라면 어미 새는 벌레를 물고 와서 입에 넣어주지 않고 그냥 자기 입에 물고 있습니다. 새끼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쳐도 주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몸을 움직여서 어미 입에 있는 벌레를 빼앗아 먹습니다. 이때 새끼들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일부는 둥지에서 떨어져 죽기도 합니다. 어미 새는 왜 이렇게 할까요? 그것은 새끼에게 자립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새끼가 다 자라면 날아가게 합니다. 어미 새는 더 이상 새끼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새끼도 더 이상 어미 새를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성체가 되면 개별체로서 각각의 생명을 유지해 나갑니다. 여기에는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떠한 갈등도 없습니다. 부모가 과다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자녀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조금 더 자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자녀들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부모만큼 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부모 이상으로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걱정이라는 정신적인 작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본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화면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화면이 나타납니다. 사람이 죽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보고 두려움도 느끼고 슬픔도 느낍니다. 화면을 한번 꺼봅시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두려움을 느낄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 이유는 영화에 집중해 있는 동안 우리의 뇌는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슬픔 같은 갖가지 감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미래에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떡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스스로 머릿속에서 영상을 트는 것과 같습니다. 그 순간 질문자의 뇌는 그 일이 지금 일어난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근심과 걱정이 일어납니다. 보통 미래의 일을 앞서 생각하면 주로 근심과 걱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나간 과거의 기억을 생각하면 주로 괴로움과 분노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다 뇌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 일도 없지 않습니까?”

“The parent piece of the older children, how do you break that, in terms that release of them that you're describing, this idea of removal, let them fend for themselves, let them get on with it. How do you break that if you have, if you feel you're too connected, or too close? How do you break that pattern that may be existing?”
(큰아이들에게 있어서 부모라는 부분은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요?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스스로 삶의 방향을 찾아가고 독립적일 수 있게 분리하는 방법 말입니다. 특히 아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아이들과 매우 가까운 편이라면 어떻게 분리하죠? 이미 존재하는 이 반복적인 관계를 끊을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지금 자녀가 성인이 되었는데도 어릴 때 보살피던 습관이 계속 남아 있는 겁니다. 이것은 사고의 습관일 뿐입니다. 이것을 집착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볼게요. 겨울입니다. 아이가 방 안에 있습니다. 아이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장작 10개를 땠습니다. 봄이 되면 그것을 5개로 줄여야 합니다. 여름이 되면 장작을 때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겨울에 불을 오래 때던 습관이 남아서 봄에도 계속 그렇게 불을 때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아이를 위해서 불을 때지만 아이는 더워 죽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나는 너를 위해서 사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기에 따라 다르게 자녀를 대해야 합니다. 어릴 때는 지극한 사랑으로 돌봐주어야 합니다. 사춘기 때는 그냥 지켜보면서 그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할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그 시기에 지나친 지원을 해버리면 그들은 자립심을 키우지 못합니다. 그러면 평생 어렵게 삽니다. 성년이 되면 정을 끊어줘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사랑이 아닙니다. 무조건 도와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그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어야 사랑입니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 도움은 되지만 그것은 그들의 자립심을 해칩니다. 내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아이들을 사랑하십시오.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에 불과합니다.”

“I thought it was amazing that you were able to connect quickly that my anxiety was based on my children and my own feelings about my children. It was amazing that you connected it back to own child-lived experience and how my anxieties are sort of based on what I didn't have, what I want to provide for my children. But I clearly understood that this idea that love isn't just about the embrace or what I showed in my love for them. It's sort of what I have to do differently in order for them to learn differently or be different from where they are now. So, it's a lot more to think about in terms of how I do that. But that's a removal of myself to allow them to be more independent and more autonomous about their own existence.”
(제 불안증의 핵심에는 제 아이들과 제가 아이들에게 가진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바로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년 시절에 제가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제가 어릴 때 가지지 못한 것들을 지금 아이들에게 제공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불안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단순한 포용이나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내가 앞으로 어떻게 달리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아이들도 내가 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아이들 인생에 제 과거를 더 이상 투여하지 않고 아이들이 더 독립적이고 자기 존재에 대한 더 자주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부모가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는 세 살 때까지는 안전하게 보살펴야 합니다. 큰소리를 치거나 화를 내서도 안 됩니다. 아이의 심리가 억압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아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어야 그 아이의 삶에 행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둘째, 자립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춘기 때 가능합니다. 사춘기 때 아이들이 겪는 시행착오를 지켜봐 주고, 그것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여 야단을 쳐서는 안 됩니다.

부모로서는 자녀의 행복과 자립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이 볼 때는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높은 게 중요하겠죠. 그러나 부모는 자녀가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Thank you. Thank you very much.”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일은 오전에 자메이카의 역사 유적지 포트로열(Port Royal)을 답사한 후 오후에는 다시 워싱턴D.C.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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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현

저희 자녀에게 참으로 제가 어리석은 행동을 많이 했음을 깊이 참회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10-13 06:22:53

김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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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8 10:19:43

조성칠

감사 합니다 20살 예쁜딸 잘키우고싶었는대 . 방향잡아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2023-09-30 20: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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